|
|

|
|
|
|
■ 강경옥, '이불속의 만화가'
|
명확한 저자 없이 내부게시판에 떠있던 글. 아마 Nufgirl의 글인 듯 (두고보자 창간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1. 86년..87년쯤이던가, 대본소에서 강경옥의 첫 단행본 [이카드입니까]를 만난 이후로 한동안 강경옥의 세계에 사로잡혀 옴쭉달쭉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 깔끔한 스타일도 신선했지만 ( 나는 당시 모범생이었기에 (^^) [ 사이파]같은 깔끔한 일본순정만화의 조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좀 지나서 [사랑은 약속이야]라는 이름으로 나온 [사이파]의 해적판을 보고 이 작가는 강경옥의 영향을 받았군..하고 생각했었다.흐흐흐) 더욱 신선했던 것은 읽은후 느껴지는 공감의 깊이와 진정성에 있었다.
2. [이카드입니까]의 레이아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힘으로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강한 여자애지만 사실은 몹시 고독감을 느끼고 외로워한다. 가족과 친구, 연인등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 바람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는 스타일, 단지 그들을 짝사랑하면서 자기는 원래부터 그런 상황에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것으로 단정하고 미리 포기하는 등 소심하고 어떻게 보면 겁쟁이쪽이다.
그런 레이아가 여러 가지 사건과 정황에 말려들어가면서 자기자신의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고 결국은 좀더 자신의 상태와 감정,바람 등에 솔직해진다면 미래에 대해서도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만화는 마무리된다. ( 이 만화 때문에 빌리조엘까지 사게되었다는 전설,그 테잎은 아직도 가지고 있음 (^^))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폐쇄되어있는 사춘기적 고민이 개방되면서 성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주는데 있 다고 하겠는데, 당시로서 그런 레이아의 모습은 얼마나 가깝고 설득력있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레이아와 나를 이입시켜서 자기자신의 콤플렉스와 폐쇄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3 . 그러한 매력은 당시엔 참 특이한 종류의 것이었다. 가령 그보다 동시대의 (혹은 그보다 좀 전의 ) [불새의 늪]이라든가[북해의별]이라든가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라든가 당대를 주름잡던 순정대작들은 독자인 나를 또다른 시대,또다른 공간에서 또다른 다소 스케일있고 무게있는 상황을 접하게 하면서 그 세계를 즐기고 여행하도록 이끌어주었지만 사춘기소녀인 나의 구체적인 실제고민과 공감할 여지는 별로 없었다. 한편 권현수의 작품이라든가 몇몇 학원물들이 있어서 내또래의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했어도 대부분 문제아인 남자 (또는 여자아이)와 삐그덕거리면서도 어찌어찌하여 잘 되게 된다라는 식의 로맨스 경과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기 일쑤였지, 레이아의 경우처럼 주인공의 콤플렉스해법을 가지고 내 자신을 돌아볼 정도의 공감과 진정성으로 다가온 경우는 없었다.
공감과 진정성이라.. 생각해보면 작가 강경옥은 자신의 내적 고민을 가지고 만화를 통해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들속에 흔히 나오는 상황-친구네 집에서 이불뒤집어쓰고 밤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근거리는-처럼 말이다. 아마도 당시 강경옥은 주인공 레이아와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당시 강경옥의 또 다른 작품 [현재진행형]의 주인공은 [이카드입니까]의 레이아와 하등 다를것이 없어보인다.
[현재진행형]의 주인공은 고아출신으로 자기를 선택해준 양부모님에게 인정받고 보답하기위해 일류대에 진학하기로 한다. 하지만 힘에 버거웠고 고독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자기자신의 다소 자학적인 버둥거림에 대해 인정하기로 하고, 보다 솔직한 의사소통을 시도하게 되고 ,그리하여 'honesty'가 다시 한번 울려퍼지고...
단, [현재진행형]의 상황은 입시문제가 매개된 우리상황이었고, [이카드입니까]의 상황은 대본소만화답게 다른 나라,다른 공간과 관습의 이국적 매력을 적당히 살린 설정이었다는 점이 차이랄까. 어떻든 나는 [이카드입니까]로 강경옥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같은 주제를 [현재진행형]에서 확인하면서 그를 믿게 되었다. 그는 진지하고도 일관되게 말을 걸어온다. 말하자면 이불속에서 수근거리며 비밀이야기를 할만한 상대인 것이다.
4. 독자인 우리가 나이를 먹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됨에 따라 여고시절과는 또 다른 새로운 고민에 빠져드는 것처럼, 강경옥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명한 [별빛속에]를 접할 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구의 유신혜가 등장할 때까 지만 열광적인 독자로 있었다. 그후 유신혜가 시이라젠느가 되어서 카피온에 가고 다소 존재론적인 분위기로 이야기가 발전해가면서 슬며시 멀어져갔던 나를 기억한다. 그렇다고 내가 sf를 특별히 싫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강경옥으로부터 기대했던 공감의 여지가 별빛속에 후편으로 가면서 점점 흐려지는 느낌이었달까.
지구에서 유신혜가 겪는 일련의 상황과 질문들은 충분히 공감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어릴적 밤하늘을 보면서..혹은 우주에 관한 책이나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그것을 그리워하고 꿈꿔보지 않은 사람도 드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주가 멀리있는 것이 자명할때의 이야기다. 우주가 가까이 다가와 실제 나의 구체적인 상황을 뒤흔들 때, 게다가 내 의지와 선택을 요할 때, 그것은 공포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그런데 시이라젠느가 카피온으로 가면서부터 문제는 붕 뜨기 시작한다. 근저에서부터.., 주인공 자체가 이미 이입되기에는 별스런 존재가 되어버렸고, 권력계승을 둘러싼 암투와 전쟁상황은 이제 강경옥만화가 이불속의 소근거림이 아니라 극장에서 상영하는 스펙타클영화인듯한 어리둥절함을 남겨준다.
래디온과의 관계역시 공감가질법한 종류의 관계라기보다는 그때것 예의 순정대작들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충성-> 애정->희생의 과정을 거치는 드라마틱하고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어쩐지 강경옥 답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가? 그러면 강경옥은 더 이상 만화를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기를 포기해버렸단 말인가? 글쎄..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난 강경옥의 고민의 중심이 좀 바뀐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강경옥은 이제 햇병아리 작가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이름을 날리는 순정작가들 -가령 르네상스군단-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까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적어도 프로만화가의 상태가 된 것이다. 콤플렉스,혹은 만화가가 되고싶지만 주변에서 이해해주질 않아..라든가, 진학문제라든가, 그밖의 사춘기적 고민은 이제 더 이상 고민의 중심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는 주목받는 작가로서 그 기대와 책임감, 그러나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걸까 라는 질문도 생길법하고, 더구나 그는 20대초반 인생의 봄을 맞이하고 있는데 구석방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상황도 좀 갑갑하고..(^^)
이건 순전히 추측이다. 당시 작가의 구체적인 정신세계가 어땠는지야 그의 일기장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의 사춘기적 고민에서는 좀더 떨어져 나와서 프로만화가로서 자신의 위치와 부담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말했듯이 강경옥이라는 작가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하고 진척시킨다. '카피온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할을 떠맞게 된 시이라젠느, 지구와 카피온과 인간과 그 모든 것의 허무한 종말을 알게되었지만 그래도 결국은 맞겨진 역할을 해내며 보살과 같은 이미지로 산화된다.' 이 것을 이렇게 바꿔도 무방할까?
'죽자고 만화를 그려보았자 남는 것은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화가 로 남을 것인가? 그렇다. 나는 만화가니까.."
비록 [별빛속에]에서는 거창하게 다루어졌지만, 이 문제-개인의 의지와 행동, 그것이 모여진 하나의 인생이 죽음과 사회,우주라는 전체속에서 얼마나 의미있을 것이며, 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는 만화가의 인생고민에도 적용되며, 카피온의 왕녀에게도 적용되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한쌍의 남녀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문제다. 거창하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거창하게, 소소하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소소하게..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 강경옥은 가끔 자신의 문제를 거창하게 해석하기를 즐긴다.
데뷔시절 레이아였던 강경옥은 프로작가가 되어서 유신혜가 되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내 경우 거창하게 말하는 강경옥보다는 이불속에서 말하는 강경옥이 더 좋았던 것이다. 혹은 당시 내가 덜 컸던 것일수도..
5. 인기만화가에게 쏟아지는 , 그것도 데뷔하고 바로 스타덤에 오른 신예작가에게 비춰지는 조명은 한편으로는 즐겁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뜨겁고 불안한 것이기 마련이다.
끝없는 불안과 스트레스와 회의속에서 만화자체는 그래도 언제나 단순하고 정 리된 모양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다가온다. 고민하면 무얼하나 어차피 그리지 않을 수 없는걸, 그리고 만화를 만드는 그 순간만큼은 또한 얼마나 행복하고 단순명쾌한 상태인지. 주변의 모든 것은 잠들거나 사라지고 오직 만화와 나만 존재하는 것이다.... 단편 [달의 찻집]이나 단편 [그때에]등에는 마치 달님, 혹은 연인과도 같은 만화에 대한 기쁨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또 [라비헴폴리스]에서 하이아와 라인킬트가 펼치는 단순과 복잡, 개방과 폐쇄의 모순적 하모니와도 비견된다. 라인 킬트는 마지막에 말한다 '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단순한 것이었을지도..' [스타가 되고싶어?]의 경우 상황은 다소 비관적이고 암울하게 그려진다. 작가자신의 상태나 욕구와는 관계없이 밀려오는 압박감같은 것. 그외에 [지구를 떠나고싶다..(확실한 제목인가?)]라거나 하는 작품들.
여하튼 강경옥은 여전히 만화를 통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고 그러한 한에서 진정성이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강경옥의 만화를 점차 찾지 않게 된 것은 그녀의 변화와 함께 나의 변화때문일까? 그래서 이젠 서로 더 이상 고민의 공감대가 찾아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물론 그런 면이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여고시절, 혹은 졸업을 눈앞에 둔 상태의 거의 모든 여학생들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기 마련이지만, 그후에는 좀 더 다른 각자의 경험을 가지게 되니까. 하지만 말이다.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되,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오랜만의 sf [노말시티]에서 양성인간 마르스는 -이경우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로 해석해도 되겠다- 점차 스스로를 폐쇄시키면서 철저히 주변에 반목하고있다.그의 신경질은 스타가 되고싶어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작품내적인 논리가 있지만, 어떻게 풀수 있을까 함께 고민할 수 없을 정도로 설득력없는 사면초가의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즉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다. 공감대..라는 것이 노말시티에서는 거의 실종되었다. 신경질만 부리는 상대하고는 말을 할 수 가 없으니까..
6. 그는 머물러서 벗겨먹는 작가는 아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순정만화 기왕의 흥행코드를 가지고 별 진정성이 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싸구려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적어도 스스로 하고싶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강경옥만화의 진정한 매력은 아직도 공감대와 진정성에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함께 이야기하고 드러내기에 기분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아마도 전자에서 점차 후자로 가는 느낌이 강하기는 하지만) 노말시티를 포기하고 강경옥을 한동안 만나지 않다가 (물론 작품상으로.) 몇몇 단편집,약간 성인취향의[천애][천사의 병]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더 이상 사춘기나 20대초반의 강경옥이 아니라, 그리고 [노말시티]의 신경질적인 처녀 강경옥이 아니라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강경옥을 발견했다. 여기서 그녀는 콤플렉스나 스트레스, 혹은 예의 무작정 신경질, 만화에의 골몰보다는 구체적인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관심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두사람이다]가 있다...
사람에 대한 의심,회의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기뻤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고싶어진건 어제 [두사람이 있다]를 보고나서였다. 충분한 공감대, 충분한 진정성. 다시 강경옥만화의 진수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7. 하지만 공감대와 진정성을 갖춘 대화로서의 만화라..과연 강경옥만의 장점일까. 좀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본다면 순정만화전체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어려운 것이랴.
80년대이후로 한국 순정만화들이 그나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독자층을 만들어오고 발전해온 것은 사실은 그런 어려운 면을 당연히 생각하고 달갑게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 대표적인 작가 강경옥을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순정만화들이 독자들과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순정작가들이 그 초기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변화를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
순정독자들은 언제나 10대,20대에서 머물러있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고 나이에 맞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사고방식과 생각의 변화가 있다. 순정작가들 역시 나이들어가고 그에 따라 생각도 변화한다. 나는 순정작가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나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에 맞는 공감대 속에서, 보다 치열한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걸어오는 만화,그를 통한 대화...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부분의 순정잡지들이 강요하는 10대 독자층에 억지로 사고를 맞추려고 하면 역시 무리일 것이다.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그리고 커버린 독자는 버림받는가.. 하지만 이불속의 친구와의 대화는 오래 묵을수록 더욱 좋은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