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27일
인사동 골목에 위치한 갤러리 창에서는 우만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제목은 "이땅에서 만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가한 평일오후, 할 일없는 두고보자 인간들은 만화가들의 고충이 원고지 위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알아보기 위해 전시회장으로 달려갔다.
푸념에 가까운 제목이기는 하지만, 만화라는 것, 아니 표현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푸념이 아닐까. 내부의 울림을 외부로 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 나아가서 그것을 파는 것. 그 행위가 예술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한국에서 만화가 가지는 위상, 만화가의 위치라는 것이 결코 온당치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전시회는 어떤 면에서 타당하고, 기획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곳에서도 기획의도를 읽을 수가 없다. 무료로 가지고 갈 수 있는 포스터를 제외하면 보도자료도, 판매용으로 나온 전시물 모음집도 없다. 왜 이렇게 큰돈을 들여 비싼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는지, 우리는 한줄짜리 제목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두고보자는 만화(뿐 아니라 만화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제목 한줄로도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아마 두고보자 독자들도 마찬가지리라 여겨진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란 모름지기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전시회장 내부에는 제목에 걸맞는 주제의 일러스트나 짧은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것만으로는 전시회장 벽을 채울 수 없었는지, 출판만화나 인터넷 연재 만화의 원본도 진열되어 있다. 이두호와 같은 기라성같은 기성만화가부터 홍윤표와 같은 신세대 만화가까지, 단행본 만화에서부터 일러스트, 인터넷 연재물까지.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만화가로서 꿋꿋이 살아가는 용감한 군들의 인터뷰 비디오가 돌아가고 있다.
전시물들의 주제는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가 제목과 부흥하는, 이 땅에서 만화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충이다. 만화와 만화가에게 가해지는 여러 압력과 억압을 때로는 가볍게(조남준), 때로는 자조적으로(김형배) 그려놓았다.
두 번째는 원고 전시. 이두호를 필두로 작가들의 칼라 원고를 읽을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만화계 내에서 우만연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듯 벽에 걸린 전시물 중에서도 원본 원고가 꽤 있어서,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원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전시회를 찾을 이유가 명확해지는 셈이다.
세 번째는 자검댕 특별전시회와 기타 잡다한(나쁜 뜻은 없다) 전시물. 원본 원고도 아니고, 제목과도 상관없는 만화와 일러스트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중에는 유명한 인터넷 연재만화도 있고, 신인들의 일러스트도 있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섞여 있어 벽면을 채우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세 벽을 꽉 채우는 재미있는 작품들을 구경하는데만 1시간은 족히 걸리는 셈이니, 썰렁한 다른 전시회보다는 훨씬 낫다. 과연 큰 단체에서 하는 전시회이니. 그러나 단순히 전시물에 대한 감상이 아닌, 제목에 대한 평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큰 단체에서, 많은 예산과 노력과 뚜렷한 기획의도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한다) 연 전시회이니.
어째서 푸념밖에 하지 못하는가.
가끔씩은 푸념을 해도 괜찮다.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타인의 이목을 끌기도 쉽다. 하지만 어째서 푸념밖에 하지 못하는가. 신세한탄을 할 시간이 있으면, 불평불만을 할 시간이 있으면 자신들의 대접을 바꿀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어째서 만화가들은 그 흔한 집회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가. 정당한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째서 정당한 대응한번 하지 않는가.
디지털시대에서 밀려나는 예술가가 만화가에 한정되어 있을까? 자신이 하고싶은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 고픈 배를 쥐는 사람이 만화가에 한정되어 있을까?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만화가에 한정되어 있을까? 물론 예술가들이 밀려나는 것, 예술가들이 배를 곪는 것이 당연하거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인정을 위해, 만화가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정당한 대가를 위해 그만큼의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인정받는 작가반열에 올라서거나, 대중적인 고소득 만화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인 이상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창작자의 정당한 권리와 기본적인 정당한 대가를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내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 역시 만화가들의 몫이다. 만화가들이, 혹은 우만연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대를 누구로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대가 출판사이든, 일본만화든 대여점이든 대량생산 만화 프로덕션이든, 구걸해서, 신세한탄 해서 칼을 빼앗아야 할 것일까? 밥그릇을 채워달라고 운다고 해서 누가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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