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페스티발 간략소개
지방
소도시 앙굴렘에선 올해도 20만명의 관람객을 친절히 맞이했다. 5일간의
이 축제는 끝나기 하루 전, 항상 「올해의 만화」 그랑프리-이번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적이 있는 「기울어진 아이」의 프랑소와 스퀴텐 (Fran ois Schuiten)이
선정되었다-를 비롯 수상자들을 발표한다. 이 축제는 크게, 작년의 그랑프리
수상자의 전시회, 그리고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올해의 국가」로
선정된 미국의 작품전시회들, 즉 「미국만화의 거장전」과 「코믹스
: 독립세대전」, 보스니아전쟁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 죠 사커(Joe
Sacco)의 전시회, 세계만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방문, 코믹스의 직판장 설립 등이 이루어졌다.

그외의
부대행사로 여러가지들, 「스포츠와 만화」전,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된
적이 있는 레지스 르와젤(R gis Loisel)의 새 「피터팬」의 출판기념
전시회, 「현대적 시선들」이라는 새로운 세대들의 작품전은 물론, 젊은
작가들과 아마츄어 동호회의 전시회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마지막
밤에 벌어지는 애니메이션 상영회, 그리고 때때로 거리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작은 음악회 등 자그마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근방에서 떼제베를 타고 와서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은 출판사들이 자신의
작가들과 함께 대동하여 작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사인(...이라기보단
그림에 가깝다. 엄청 줄도 길게 서 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퍼질러
앉아서 느긋하기만 하다)을 받거나. 그리고 아이들이 과자와 더불어서 재미있게
만화주인공들을 그리면서 놀아볼 수 있는 공간들, 작가와의 대담 등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원체
동양인들을 구경하기가 힘든 동네라서 그런지, 이 앙굴렘 시민들의 하나를
물으면 열을 가르켜주고 싶어하는 그 상냥함과 15분마다 전시장을 순환하는
버스, 페스티벌의 티켓을 산 사람을 위한 기차표의 왕복 25%할인혜택
등 이 도시가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들어 줄 준비는 아주 잘 되어있었다.
수많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만화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즉
필자처럼 아, 이번 기회에 미국가기도 힘든데 알차게 전시를 보게 되겠구나
라는
다른 흑심을 품은 사람에겐 실망이었다. 전시도록 하나 없고, 설명서는
불어로만 붙어있으며, 어두운 전체조명과 부분조명으로 상당히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국립만화이미지센터에서 관장하는 전시라면
상당히 그 질이 보장되는 편임에도 불구, 이번의 전시 포맷은, 전반적으로
무성의하다고 밖엔 볼 수 없었다. 오리지널 패널 걸어놓고(물론 각 패널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만화책 몇 권 가져다 놓고, 오브제 몇
개
쌓아놓고, 무성의한 10여분짜리 비디오 하나 덜렁 틀어두고 ... 이건 전시가
아니라 "나열"이다. 게다가 전시도록과 불어버전의 문제.
이 정도면 불어 사랑이 아니라, 자만심의 수준으로 넘어가는게 아닐까나.
길거리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것과, 더 많은 대중에게 양질의 작품을
선사해야 하는 전시에서 영어버전이 없다는 것은 고려해볼만하다. 이런
태도가 앙굴렘을 점점 더 국지적인 만화축제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작년의 <유럽만화의 거장전>과 대비해보면 이번 <미국만화의
거장전>은 전체 전시개념만이 아니라, 세세한 성의들도 부족했다.
폐막이후
언론에선 작년보다 관람객수가 늘었다고, 또 3일짜리 티켓을 사는 사람이
더 늘었고, 기자단도 늘었고 하며 호황이었다고 평가하지만, 그러나
사실 올해의 앙굴렘을 초긴장시킨 소식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번
6월에 파리에서 벌어질 <만화 살롱>이다. 물론 이것은 세계적인
규모로 벌어지진 않지만, 적어도 유럽권, 프랑스내의 만화출판계의 관심이
쏠릴 것은 명확하다. 게다가 이 살롱은 엄밀히 상업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앙굴렘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부분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비록 올해는 앙굴렘이 먼저 있어서 그냥 지나갔지만 내년의 앙굴렘은
어떻게 바뀔 지 모른다. 프랑스내 출판사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앙굴렘으로선 현실적으로 닥친 일종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앙굴렘이 가지는 비상업적인 측면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는것일까?
2.
내년의 한국전과 관련해서
축제
이후, 앙굴렘 페스티발의 공식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는 곳(http://www.labd.com)을
뒤지다가, 해마다 앙굴렘특집을 내보내는 신문(http://www.special.sudouest.com)에서
내년에 한국전을 열 것같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아마도 앙굴렘 조직위원회의
위원장과의 인터뷰에서 밝여진 내용으로, "Autre axe devoile :
la ligne coreenne. ≪ Une delegation de pres de 70 personnes est
arrivee de Seoul, avec la vraie volonte de travailler avec nous
≫, se rejouit le directeur du festival, certain deja de ne pas
proposer une exposition manga bis." 번역하자면, "다른것이
드러났는데, 한국과의 연결이다.(의역) <서울에서 70명에 가까운
대표단이 정말로 우리와 함께 일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도착했다.>라고
페스티발 조직위원장은 즐거워했는데, 망가와 유사한 전시가 제안되지
않을것은 확실하다", 역시, 약간은 절제있는 내용으로, "L'edition
2003 du festival d'Angouleme -la trentieme- accueillera bien evidemment
une exposition Francois Schuiten, et pourrait egalement etre placee
sous le signe de la bande dessinee coreenne (fortement differente
de la BD japonaise a l'honneur l'an dernier). Une delegation coreenne
etait ainsi presente dans les rues d'Angouleme a l'occasion de cette
29eme edition."'2003 앙굴렘-30회-는 프랑소와 스퀴텐의 전시가
열릴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의 만화(작년의 초청국이었던
일본의 만화와는 확실히 다른)가 특정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단이 이번 페스티발에 참가했다." 내년을 의식해서인지, 딱히
여타의 언급들은 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필자는 언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의 대표단에 대해서. 왜냐하면
진지하게 내년의 한국특별전을 기획하고 있었던 대표단이라곤 생각할
수 없고, 정말 전시를 잘 하고 싶다면, 이런 준비태세부터 비판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70명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선가의
실수나 과장으로 비롯되었으리라. 윗글에서 보다시피, "한국만화,
일본만화와는 확실히 다른" 점을 보여주기 위해선 아마 형식적으론
아무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앙굴렘측과 이야기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사람도 있고, 부스도 남들보다 4배는 더 큰 것을 차지했으며, 또 자료집도
있었고, 몇 백권에 달하는 한국만화책도 ... 물론 있었다. 작가들도 있었고,
실무자들도 있었으며, 열의도 있었고, 무언가를 획득해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가지지 못한 것이라면 일사불란한 내년을 준비할 조직과 번역된
만화책뿐이다. 이 부족한 것들의 공통점은, 내년의 전시에 관한 생각과
정책의 부재이다.
앙굴렘에
진출하는 목적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의 정책적 문제(문화적으로, 산업적으로),
한국만화를 "어떻게" 규정해서 내놓을 것인가부터,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선정하는가 등의 미학적인 문제(이 축제의 경향을 읽어야),
그 작품들의 세심하고도 명확한 번역의 문제, 이 전시의 개념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의 큐레이터의 역할(미리 와서 전시공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일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카탈로그의 내용과
디자인 편집의 문제, 번역출판 가능한 출판사들과의 교류문제, 그리고
선전과 언론 담당자, 부대행사 담당에서 사소하게는 통역과 앙굴렘에서의
호텔예약까지(올해는 미리 예약이 안되어서 앙굴렘에서 1시간 반 거리의
다른 도시에 숙소를 잡았다. 이럴 경우 저녁이후의 모든 광란의 행사에는
본의 아니게 불참하게 되었다)를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는, 또는 내년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왔어야 이상적일
터이다.
너무나
원칙적이라서 냄새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또는 시간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선보이고 수출하겠다는
계획이라면 당연히 치밀하고 조심스러운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터인지.
떠나간
버스를 애통해하면 무엇하리. 일단, 내년의 앙굴렘 전시가 가시화되었다면,
이젠 좀 잘 준비되었으면 한다. 위의 사항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위원회가
조속히 꾸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각기 개인의
고유의 영역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도 서로 의견을 내어 내년의 준비에
도움이 되고, 비록 주먹구구식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축제였지만
그 경험들이 모아져 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3.
부록
원래
우리 부스가 위치한 곳은, 출판사 관련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들이 찾아와서 자기 작품의 출판을 요구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출판사들끼리
물론 이런저런 작품의 번역출판이나 저작권의 문제나 이런 논의가 되는
곳이다. 뭐 딱히 준비단이 있을 자리가 없기에 이 부스에서 상주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개인자격으로 함께 온 한 출판사 이외의 딱히
담당자가 없다는 것은...답답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유럽권의 만화를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 했다면, 우리의 만화 역시
이쪽으로 내밀기에는 부드러운 조건을 가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출판사들이
국내만화전문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국내만화전문출판사가
그 영세성에 의해서건 또는 돈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 작품들을 번역해서
출판할 의도 자체가 없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공적 기금>또는
<문화적 정책>의 힘이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항상
한국 부스에 붙어있지 않았기에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워낙에 준비
자체에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각 개인들은 위 출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적인 일로 참가해서 공적인 부분까지 서포트를
해 내었다. 위 출판사는 부스로 문의해오는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나
출판사의 연락처를 인계받아 한국의 적당한 작가에게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부스를 지키는 작가들과 함께 해내고 있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에
대한 문의를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여 통역하는데 옆에 함께 끼여서 통역에게
설명을 하고, 공무원들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까운 부분은 역시, 개개인의 힘을 소진시키지 않는 조직과
준비의 힘이다.
4.
웃기는 이야기 덧붙이기
프랑스에서
있다보니, 한국만화에 대한 갈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부스에 갔더니,
세상에 만화책이 있는 것이 아닌가(내겐 산더미처럼 있는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이 책들은 전시가 끝나면 사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비싼
운반비내고 가져가지도 않을터이고, 뭐 읽을 줄 모르는 애들이 그림이
예쁘다고 몇 권 집어갈 순 있겠지만...그래서 아주 나쁜 짓을 했다.
2권씩 가져온 책들을 한권씩 몰래 훔쳐내다가...들켜서 혼났다. 전시중인데
훔쳐낸다고^^. 그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읽을 줄 모르고 집어가는
애들은, 번호가 빠져도 상관없는데...하며 중얼거려도, 원칙적으로 보면
어디 전시중에 책을 뺀단 말인가!!!(사실은 전시중이라고 보기엔 약간...바닥에
쌓여져 있었으므로...) 결국 책을 훔쳐왔다. 옛말에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올해의 한국부스는 그런 의미에서, 또 작가들과 함께 보낸것도
내겐 즐거움이었다. 전시이후, 그 책은 앙굴렘 조직위와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지금이라도 훔치러 가볼까나...여전히 눈앞에 가물가물한다.
뻔뻔하게
훔친것을 후회하지 않고, 더 못훔친것만을 후회하는 걸 보면, 만화탐닉이
지나친 걸까나.... ***
by
한상정 (프랑스 주재 자유기고가)
*
두고보자
주 : 본 기사의 전반부는 필자가 월간 "뉴타입"에 기고한 글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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