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9월 - 제 2회 부천 만화축제 관람 후기

  우선 간단한 행사 소개로 시작하겠다. 올해의 부천 만화축제(00.9.30-00.10.4)는 두 개의 테마전을 중심축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만화의 새로운 시선'이라는 제목 하에 한국의 인디만화전 (큐레이터: '화끈'의 모해규씨), 그리고 프랑스 만화전이 그것이다. 프랑스 만화전은 프랑스 작가 롤메드와 르와젤, 그리고 평론가/편집자 떼브네 씨 등 3인을 초청해서 세미나 및 강연을 하는 것과 연계가 되어 있었다.

  이외에 실시된 부스전시회, 코스튬 플레이 등은 그 비중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대단히 미미했기 때문에 (아니, 미비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듯 하다.

  물론 모든 행사들과 마찬가지로 부천 만화축제 또한 일장일단을 고루 겸비하고 있었고, 여러 내부사정으로 인한 진행상의 부족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 등 담당자들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만들어내는 운영의 묘가 공존하는 듯 했다.

  우선 이번 축제의 근본적인 한계는, 역시 부천이라는 지역적 협소성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기획능력, 사전홍보와 인원 동원능력이 크게 부족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부천 만화축제가 관례적인 '부천시의 마을잔치'가 아닌, 의미있는 만화축제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 즉 '더 큰 목표를 향해서 가야 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작가들의 강연이 이루어진 두 대학 중 하나인 서울대에서 조차 초청강연회의 인지도보다 부천만화축제의 인지도가 더 낮았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부천시의 다른 행사인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와는 달리)부천시를 벗어나면 거의 어떤 장소에서도 축제 포스터를 구경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그나마 부천시민들의 인지도가 과연 얼마만큼 되는지도 의심스럽다. 적어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심야 상영회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호응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화를 중심축으로 사고해서 행사 자체를 잘 꾸려서 부천시를 덩달아 승격시키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할 행사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부천이라는, '어차피 소도시의 조그마한 예산과 규모'라는 한계로 스스로를 옭아매서 행사들이 자꾸 '웅크러 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번 행사의 두 주축 가운데 하나인 인디만화전은 전반적으로 잘 꾸며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공간배치나 각 소개 작가들, 잡지들의 선정 등에서 인디만화계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었던 듯한 노련함이 베어나오는, 무척 '자연스러운' 전시였다.

하지만 다소의 결점이 없지 않았다. 우선, 언더의 범주를 몇몇 집단으로 한정시켜 놓아서, 동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든지, 아예 집단을 이루지 않고 활동하는 소수 작가들 (이상한 씨 등), 혹은 인터넷 상으로만 활동하는 작가들 ('피바다 공작실'등) 같은 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즉, 언더의 범주를 '공식' 집단화, 단체화된 종이매체 활동으로 한정지었다는 점에서 인디만화계의 또다른 커다란 부분을 빼놓고 지나갔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인디 만화작가와 잡지의 소개에 치중하여, 정작 인디 만화 제작 현실의 어려운 상황들을 부각 하는 일에 실패했다('화끈' 3호가 스폰서한테 배신당하고 나서 돈이 없어서 못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가!). 즉, 만화 잡지와 작품에 대한 소개에 그치고, 인디만화가 더욱 주력해야 할 부분인 만화현실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판매부스 등 실제적 판매와의 연계가 부족했다(밑층의 판매부스에서 소개된 책들을 구할수 있다는 안내문 정도는 기본이어야 한다!소개만 해줄 것이 아니라, 책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각종 단체로의 연락처(이메일, 홈페이지, 등) 부분도 다소 미진했다. 하지만 이런 전시회를 '주류적'으로 실시했다는 점은 좋은 성과이며, 만화정보센터에서 이 전시회를 그대로 하나의 전시관으로 상설했으면 한다. 단순한 '전시회'가 아닌, '전시관'으로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현재 부천만화정보센터 건물 안에 있는 '만화 팬시 상품 전시 코너'보다 백배는 의미있을 것이다.

  프랑스 만화전의 경우는, 사실 프랑스 출판사 측과의 협조를 해서 이런 책들을 국내에서 전시 및 판매했다는 측면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롤메드씨가 직접 작업한 벽화는 본 행사의 백미였다. 전반적으로 큐레이팅은 잘되어 있으나, 불어권 만화를 소개하는 기초작업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불어권 만화를 접하게 된다는 한계에 대한 극복노력은 다소 부족했다. 즉, '일반인 대상'의 배려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만화인들, 그리고 성인취향에 집중되어서 다양한 층위의 손님들을 끌지 못했다. 불어권 만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성인 지향의 예술성' 만이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남는다. 이것은 이 행사가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의미를 저버린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만화인들을 직접 초청, 강연 및 세미나를 개최했다는 점은 매우 높게 살만 하다. 이 부분은 앞으로 정례화를 시키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기대한다.

  사실, 나머지 부분에서의 한계점은 명확하다. 두 개의 중심 전시회 이외의 행사는 매우 지지부진했다. 판매부스는 거의 형식적이었으며, 참여규모도 적었다. 행사성 이벤트, 즉 코스프레 쇼, 상영회 등은 전반적인 진행부실이 여실하게 드러났고, 전체적으로 '축제'라는 성격이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전시회로서의 성공은 거두었지만, 심지어 부천시민이라는 좁은 범주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하나의 '만화축제'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각종 야외행사, 퍼레이드, 경연대회 등 총체적인 축제분위기가 아닌, 복사골 문화센터라는 한정된 실내공간 안에서의 '전시회'로서 머무른 것이다. 거기에는 떠들썩한 길거리 코스프레 퍼레이드도, 잔디위에 앉아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젊은 만화지망생들의 모습도, 만화 퍼포먼스 쇼도 없었다. 두 전시회가 전문적 식견을 갖춘 외부 큐레이터가 진행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천 만화정보센터에서 직접 준비 진행했을터인 이러한 영역들이 미진했다는 것은 상설기관으로서의 지원기관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공예산으로 운영하면서도 '비전문' 아마투어들이 하는 행사들보다 (ACA, CAN 등) 전문적인 축제 진행능력이 크게 뒤떨어진다면 그것을 대단한 수치로 여기고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행사들이 으레 그렇듯이 전문적 진행자를 제때에 스카웃하지 못한 결정구조, 충분한 준비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행정적 실수,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지 못한 장기적 지휘능력 부재 등 구조적, 행정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야기되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만화를 가지고 축.제.를 하겠다는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 상부단위에서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도대체 '만화탄압'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잊혀지고 없었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항상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싸워야 얻는 것이지, 사건 한번 터질 때 특위 한번 조성했다가 흐지부지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해결된 것은 한가지도 없는데 만화축제가 만화현실을 외면하고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근원적인 한계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오래 지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 달밖에 안지났는데 최소한의 고민의 흔적마저 없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매년 항상 바라는 바가 되겠지만, 다음 행사는 지금 행사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행사의 구조적 결점들이 더욱 커져서 악재로 작용하여, 다음 행사가 아예 좌초되는 경우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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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capcold
 ▶ 조회: 1787 | 등록: 200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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