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깜악귀가 전에 그랬다. 한혜연 작품안에서 결혼과 남자는 공포라고.. 일리 있는 얘기지만, 뭐,(그 연장으로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의 작품안에서 공포스럽게 설정되는 것들은 비단 결혼과 남자 뿐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우정, 형제애, 사랑, 행운, 기타등등 ... 보통 일상속에서 긍정적인 연상작용을 일으키도록 약속되어있는 이런 지점들을 공포의 기제로 뒤집어보는데서 한혜연식 반전과 재미가 가능해진다. '낯설게 하기'나 '거리두기'같은 미학적 개념에 의해 논의될 수도 있겠지만,음.. '냉정해지기'같은 것은 어떨까.
- 일상은 두개의 자의식 간의 교묘한 감정의 시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라는 순수한 (? 이런 개념이 가능하다면) 개체의 자의식이 나 자신을 포함한 사회속, 일상속의 나와 공존하며 시소게임을 벌인다. 물론 전자와 후자사이에서 가치를 따질 생각은 없다.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이 없다면 그 긴장감을 어떻게 견뎌? 죽지. 그래서 천재는 요절하나? 그래서 그것은 삶과 동의어일 수도 있는건가?
- 어떻든지간에, 20대 청춘이 3,40대 중년보다 더 늙은이인척 하며 똥폼잡는 법.그때는 감정의 시소가 수시로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반면에 어떤 분기점을 지나 일상이 마치 세탁기속에 빨래 돌아가듯이 정신없이 돌아갈때 그 감정의 시소는 한동안 게임을 중지한듯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습관적 감정의 무게로 한참을 기울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어떤 분기점에 이르면, 혹은 예측하지 못한 운명의 방문을 받으면 다시 떠오르는 시소 반대편의 또 하나의 나. 그는 평소에는 그냥 받아들였던, 아마도 행복감 조차 비스끄레하게 느꼈을 똑 같은 상황을 이번에는 냉소하기 시작한다.
- 하지만 신포도의 여우에게 있어 냉소란 또한 자기 방어기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금 더 똑똑한 여우라면 아마 냉소하기보다는 냉정해졌을 것이다. 냉소는 그 상황속에 몸을 싣고 있는 행동이지만, 냉정해진다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제 3자의 눈으로 스스로를 훑어본다. 냉소는 상황을 덮어버리는 눈가리고 아웅이지만 냉정하다는 것은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자폭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 단편집 [또 하나의 환상]안에 수록된 작품중에 [매니큐어]라는 작품이 있는데, 작중의 '나'는 자신의 손을 매니큐어로 단장하는것에 집착하므로써 현실을 눈가리고 아웅하려는 친구 정난정의 상황속에 빠져든다. '나'는 한편으로는 정난정의 아름다운 손톱에 대한 동경,그것에 기초한 근근한 우정의 감정, 또 한 방향으로는 그 손톱 망가질까봐 설거지 하나 변변히 안하는 정난정의 뻔뻔함에 대한 불만사이에서 시소를 탄다. 독자로서 나는 어느새 작중 '나'와 같은 시선으로 정난정에 대한 감정의 시소를 타는데, 주목할 곳은 바로 1년후 재회한 정난정이 스스로 손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키게 되기까지의 사연을 묘사한 부분이다. 자동차에 치어 잘려나간 피투성이 손가락,손톱들을 처음으로 '외부'에서 보았다는 정난정. '나'와 함께 독자인 나, 우리셋은 함께 손톱을 외부에서 목격한다. 그때껏 물신화되었던-집착의 대상이 되었던 그것이 프레임으로 분리되어 정면으로 던져 진다.
- 그 순간 그 손가락과 손톱들은 공포스러웠다. 피투성이라서도 아니고, 잘려나가서 끔찍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며,생소하며, 무감한 것이었던가. 즉, 공포스러운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그 현실의 냉정함이었다.
- 다행히;우리의 정난정은 그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집착으로부터 해탈해서 행복한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리고 정난정의 친구 '나' 역시 그러한 정난정의 사고과정에 완전히 동일시되어 만사는 평화롭게 끝났지만 책장을 덮은 독자인 나의 경우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나의 평화롭지만 안일한 습관적 일상이 깨지는 순간. 간만에 내 안의 시소가 서서히움직이는 순간이다.
- 사회속에서, 인간에게, 예술의 역할은 존재를 들추는 모험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을,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은 공포다. 시소를 탄다는 것은 공포와 공존한다는 것이다.
- 원종우가 전에 그랬다. 한혜연의 두축은 패미니즘과 호러라고. 하지만 한혜연한테 그 두 주제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한테 있어서 (따지고 보면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좀 더 위급한 위기상황이라는 측면에서) '결정된' '관습화된''일상화된' 하나하나에 그저그려려니 하고 무작정 빠져들다 보면 어느순간 시소가 영영 고장날 수도 있다는 공포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 어떻든 한혜연의 작품에서 공포는 그런식으로 여러모로 중첩되어 있다. 그러니까 덤으로 복잡함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한혜연 작품들을 몇번이고 다시 읽어도 물리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잔혹한 공포영화 속 피의 향연처럼 보다보면 익숙해질 성질의 공포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Read : 2023, IP : 211.227.72.252 2001/08/06 Mon 20: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