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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의 백성민 샘 인터뷰
거장 백성민 선생님을 만나다..

12월 4일 화요일 저녁 6시 광명시 광명 2동 우체국 근처에서 백성민 선생님을 기다렸다. 백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다른 유명한 작가들처럼 접근 자체가 어렵거나 하진 않았지만 선생님의 성격적 특성(건망증, 시간관념 부족)으로 만날 날짜를 정하는 것도 몇 번에 걸쳐 성공했고 전주 토요일에 이미 광명시까지 갔다가 선생님이 약속을 잊고 안성으로 가시는 바람에 실패한 일이 있는 터였다. 11월 말부터 전화로 약속시간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토요일 약속이 깨지는 과정까지 주변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난 그 시간이 즐거웠다.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면 짜증이 났을 테지만(당면한 숱한 과제들 때문에 나에겐 전혀 짬이 나지 않는 기간이었다) 대상이 백성민 선생님이라는 것이 그 모든 삐걱거림을 즐거움으로 만들었다. 나 자신도 약속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보니 약간의 동질감(백선생님은 약속시간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담주 무슨 요일 오후정도로만 말했고, 나 또한 친한 친구들이 날 만날 때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오늘 무슨 서점에서 보자는 식이다)까지 느꼈다.
광명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갈 무렵이었다. 내 전화를 받은 선생님은 곧바로 내가 있던 장소로 나와서 식전이냐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 때까지 내가 선생님의 외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만화책에 나온 직접그린 캐리커쳐 밖에 없었기 때문에 왜소하고 웅크린 모습이 낯이 설었다. 그리고 예상보다는 더 늙어 보였다.
식당에서 마주앉은 선생님은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말을 꺼냈고 그 이후로 2시간 여 동안 내게 거의 질문을 할 틈을 보이지 않고 감동적인 말씀들을 쏟아내서(아마도 몇 번이나 약속을 깬 미안함과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인 듯 했다) 나는 준비해간 질문들 중 반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질문을 하지 않았어도 준비한 나의 질문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일반적인 인터뷰 기사처럼 쓰고 싶지만 내 질문에 의해 대답이 나온 것도 아니고 또한 선생님의 말씀이 자주 중복되고 관련되는 여러 이야기를 전혀 다른 대목에서 말한 것도 많아 몇가지 주된 항목 밑에 관련되는 것들끼리 정리하도록 하겠다. 항목별로 "▶" 뒤에 선생님의 말씀을, "-" 이 부호로 항목에 대한 나의 생각과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의견이나 설명을 달고, "최" 뒤에는 중간중간 없으면 연결이 안 되는 내 말들을 적겠다.

산호선생님에 대해....
- 산호선생님은 백성민 선생님의 스승으로 70년대에 라이파이라는 공상과학 만화를 국내에서 연재했고 후에 미국에 건너가 미국에서 우리말이 삽입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를 연재하다 90년대 후반에 '대 쥬신 제국사'와 '두만강'이라는 총천연색 양장본 만화를 출간했다. 국내 최초 잠수함 관광을 실현시킨 이력도 있다.
▶ 산호 선생님은 천재다. 그리고 인생이나 사고 자체가 만화적인 분이다. 잠수함 관광도 그렇고 전에는 타히티 섬에 디즈니랜드 같은 걸 만들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47대 단군 모두의 영정을 100호로 작업했고, 지금은 국내에 단군 성지 20만평을 조성하는 일을 진행중이다. 천재지만 장사꾼이 아니라 돈은 못 번다.
산호 선생님의 전수 방식은 그냥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


천재와 범인, 그리고 범인의 무기 노력에 대해
- 선생님은 자신이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했고 자신의 만화를 독자가 적고 재주 없는 사람이 그렸다는 이유를 들어 서푼짜리 만화라 했다. 반면에 젊은 나이에 등단해서 상업적으로나 작품으로나 성공한 사람들을 천재와 금돈 만화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자신들이 재주가 없고 천재가 아니어서 슬퍼하는 극화작가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제시할 말들이다.
▶ 내가 재주가 있었다면 허영만이 처럼 그렸을 테지만 재주가 없어서 이런걸 그린다. 천재가 아니라면 붙어 있는 놈이 이기게 된다. 나도 동기들에 비해 모든 것이 10년씩 늦었다. 김수정이나 김동화가 데뷔하고 뜰 때 나는 데뷔도 못하고 있었다. 재주가 없어서 멋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니뽄도라면 나는 부엌칼이다. 이현세는(직접 무언가를 때리려는 포즈를 잡으며) 이렇게 그리면 멋있는데 난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그림이 나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멋없는 게 내 강점이 됐다.
최 : 그래도 누구나 선생님 그림의 무게가 다르다는 평을 하는데요..
▶ 한가지를 30년 해서 이정도도 못하면 죽어야 된다.
우만협 만화학교 한 달인가 할 때 양영순이 학생으로 있었는데 그 때 과제 해온 거 보고 놀랬다. 아니나 다를까 일 이년 지나니까 바로 뜨더라. 하지만 양영순도 권가야 그림 보면 기가 죽는다. 물론 양영순도 자기 삶과 작품에 대해 열정을 쏟겠지만 권가야 처럼 치열하지 못하다. 작가들은 일본놈이든 미국놈이든 서로 작품 까고 보면 치열하지 못한 놈이 죽게 마련이다. 100만부가 팔려도 소용없다. 작가들끼린 다 안다. 나도 권가야 원고 처음 보고 울었다. 그의 재주가 뛰어난 건 아니지만 거기 베인 땀을 보고 내가 공밥을 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권가야가 지금은 다른 작가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게 끝난 게 아니다. 권가야 작품은 앞으로 서점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있고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한 다섯 개 정도만 더하면 그 다음은 그냥 간다.
일본작가들이 우리나라 작가들 그림 보고 비웃어도 내 그림 보면 아무 말 못한다. 왜냐하면 내 만화에는 최소한 땀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재주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 진짜 재주는 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동용 만화를 보면 따뜻함이 베어 있는 작품이 있고 성인 만화에는 피와 땀이 베인 작품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게 그림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그런 건 손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천재는 먼저 가지만 결국에는 같이 가게 된다.
- 마지막 말은 천재라도 모든 걸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 색을 가진 작가라면 결국 자기 분야에서는 자신이 최고가 되므로 천재와 차이가 없다는 말인 듯 하다. 양영순이 아무리 천재적인 감각을 가져도 역사만화를 하면 이두호나 백성민 처럼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역사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 이 항목에 대해서는 질문도 했지만 내가 기대한 자기 내적인 필연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외적인 이유들만 말씀하셨다.
▶ 이두호 선생 전에 전통 때 객주로 시작을 했다. 그러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경고 몇 번 먹고 그만 뒀다. 뒤에 노통 들어서고 이두호 선생이 다시 객주를 그렸다. 화가 나는 건 분명 원작 소설에 있는 대사를 그대로 썼는데 대사를 가지고 경고를 먹였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대하적인 작품을 항상 생각했다. 박경리 선생이 어머니와 절친한 사이였고 그런 영향도 있고 해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 해도 책은 엄청나게 읽었다. 그 때 읽었던 게 지금까지 재산이 된다.
장길산은 황석영 선생이 내 그림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 와서 하게 됐다. 황선생의 제의를 듣고 내 스스로 칸을 메울 능력은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 때 집에 있던 모든 것을 버렸다. 옆에 있으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때 출판사가 어렵고 책도 많이 안 나가서 1500만원짜리 전세 다 까먹고 시골에 150만원짜리 농가 빌려서 살았다.
장길산 20권이 끝날 때 쯤에 내 그림이 만들어졌다. 장길산 전의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니었다. 서른 이전에 어린이용으로 그린 게 내 그림이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장르에 안 맞아서 더 안 그렸다. 나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림 스타일을 만들고 하는 일을 잘 못한다. 그래서 짧은 걸 못하는 것 같다. 작품을 하면서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최 : 그렇다면 장길산 이후의 연출이나 그림의 변화는 의도된 게 아닙니까?
▶ 그건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더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영화적인 연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사람이 차에서 내리면 문짝 보여주고 손 보여주고 나오는 발 보여주고 하는 식으로.... 하지만 요즘은 한 장으로 모든 상황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료 수집과 이용에 대해
▶ (고개 흔들며) 별로 없다. 30대 중반까지는 자료를 모았다. 사진 한 장 때문에 책 한권을 산적도 많고 어떤 잡지는 하나 샀다가 그 전권이 궁금해서 모으다 보니 창간호까지 모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장길산 하기 전에 다 버렸다. 중고등학교 때 독서량이 많아서 어느 시기건 몇 번씩은 거쳤기 때문에 자료 없이 그려도 속아넘어간다. 그냥 그렸는데 사람들은 보고 그린 줄 알더라.
최 : 글하고 그림이 다른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 글의 무게가 그림에도 실린다. 그리고 나는 그림이나 사진은 구도가 달라서 참고하기가 힘이 든다. 조금 고쳐서 그리면 쉽긴 하지만 못생겨도 내 새끼를 갖자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서른 이전까지는 좋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한번씩 그려보고  티 안나게 베끼는 것도 좋다고 본다. 실제로 나도 미국만화 보고 그리기도 했고 동료나 선배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오래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나이 먹어서 누구랑 똑같단 소리 들으면 반성해야 된다. 모방에서 시작하는 것은 좋지만 나이 들면 문제가 된다.
나는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오히려 문학을 많이 참고로 하는데 '토끼'에서 15페이지 정도가 최인호씨 등의 작품을 차용한 것이다. 일이 바쁘면 어쩔 수 없다.

경제적 문제 해결에 대해
- 아마도 "백성민" 하면 가장 많은 질문거리가 바로 이게 아닐까. 과연 그렇게 그리고 밥은 먹고 살았을까?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 돈 없으면 굶어야지.
최 : 다른 리얼리즘 작가(박흥용, 이희재 등)들도 어려울 땐 전집류나 학습물에 손을 데는데 선생님은 전혀 그런 전력이 없는 것 같던데요?
▶ 나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땐 먹어야 되니까 친구들 하는 거 도와주고 돈 받고 그랬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친구들에 비해 못살긴 하지만 내가 내 자식들 등록금 늦게 준 적은 있어도 안 준 적 없고 메이커 운동화는 못 사 신겨도 만원짜리 신발은 사 신겼다. 뭐 나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고생한 게 없지만 집사람이 고생은 많이 했다.

국내 대학 만화과에 대해
- 최근 만화학과 수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한 때 학교마다 시각 디자인과가 유행처럼 번져 현재 그 인원을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일 것이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정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다.
▶ 많으면 좋다. 하지만 교수진도 없는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문제만 없다면 학교마다 하나씩 생겨서 많은 인재를 키우면 그 중에 뛰어난 사람도 많이 나올 거라 본다. 치열성 면에서야 고생한 사람들이 낫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게 많다. 그걸 대학에서 해 줘야 된다. 그게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 남는 방법이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그냥 밥만 먹고 살아도 좋으니까 점잖은 사회가 됐으면 하지만 경망스러운 자본주의에서 살아 남으려고 한다면 양영순이나 권가야 같은 사람이 수십명 나와야 된다.
한국 영화가 잘 되는 것도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의 인재들이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 여기서 많으면 좋다는 말은 진심이 아닌 듯하다. 그러니까 "나와는 별 상관 없지만 지금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잘 되고 싶으면 많으면 좋다"정도의 말인 듯 하다. 선생님은 경망스러운 세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고 이 경망스러움 속에서 만화가 살아 남는 방법에 대해 이 말을 한 것 같다. 인간사를 떠나 초야에 묻혀 사는 도인이 인간사에서의 방법을 얻기 위해 오는 이들에게 답을 알려주듯이....

문하생 시스템에 대해
▶ 두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화실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원고에 직접 손을 데면서 배우는 스타일이다. 첫 번째 방식이 옛날 방식이고 두 번째가 요즘 방식인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주 있는 사람들은 모방을 잘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 하에서 쉽게 돈을 벌 수가 있어 자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좋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데생만 하고 살게 된다. 실제로 방학기(고우영 문하)나 이희재(김종래 문하) 같은 경우 화실에서 별로 인정을 못 받아서 나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보다 재주 없는 사람을 거의 못 봤는데 방학기는 정말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원고를 보면 구멍이 난게 보이는데 데생이 안 돼서 하도 지워서 구멍이 난 거다.
재주가 있으면 힘들 때 쉽게 다른 곳으로 빠지게 된다.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밑에서도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 윤태호(허영만 문하)나 권가야(하승남 문하)를 들 수 있는데 이것도 스승에 따른 차이가 있다. 허영만은 선이 기본에 충실한 선이라 변용이 쉬운데 이현세나 일반적인 순정만화의 선은 감각적인 선이라 변용이 어려워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요즘 극화시장의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
- 극화시장이 침체됨에 따라 극화작가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개선이라는 작가 외적인 방법을 제외하고 작가적인 입장에서는 어려운 상황에도 잘 팔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거나 버티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아마도 작품을 팔기 위해 자기 스타일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테고 이런 면에서 백선생님 만큼 훌륭한 조언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질문을 했다.
▶ 두려워하는 게 바보다. 시대는 변하는 것이다. 옛날 어린이들이 보던 잡지에 동화가 굉장히 많았는데 만화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하면서 동화작가들이 만화를 욕하고 자신들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동화는 예전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서점에서 팔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 극화가 축소 된 것은 사람들이 극화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원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데뷔 초기에 내 재주가 모자라서 작가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지만 그 때가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업적인 만화만 살아남을 것처럼 보이지만 좋은 작품은 언제나 살아남고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간다.
감각적인 게 튀어 보여서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그림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감각적인 그림과 데생을 바탕으로 하는 그림이다. 바둑에서도 그렇듯이 정석에 강해야 생명이 길다. 대하소설을 봐도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두 톤이 같다. 단편소설에서와 같은 톡톡 튀는 문체로는 긴 호흡을 쉴 수가 없다. 유행을 리드하든지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유행을 떠나라. 나는 유행을 따라 갈 능력이 없어서 무딘 그림들을 그렸지만 이제 내가 서른 이전에 그린 작품들이 재출간 된다. 유행을 타는 그림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선을 잘 쓰려고 하지말고 생긴대로 써라.
서른 이전에는 이것저것 좋아 보이는 것들을 하다가 30대에 승부를 내야 한다. 끈질긴 놈이 살아 남는다. 그리고 몇 명 없어져도 티 안 나는 자리도 있지만 어떤 자리는 그 작가가 없으면 텅 비는 그런 자리가 있다. 그런 자리를 찾아야 한다. 마흔 넘어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 뒤는 그냥 간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버텨서 자기 세계를 가져라.
누구나 10년만 노력하면 자기의 꿈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극화에 대한 관점
- 질문과 상관없이 다른 말들에 섞여 나온 선생님의 극화에 대한 관점들을 엮었다
▶ 옛날에는 좋은 그림 나쁜 그림 가리는 게 많았는데 요즘은 다 좋다. 참새나 고래나 다 똑 같은 생명이듯이 어떤 만화든지 나름대로의 생명이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너무 가리지 마라. 모두가 같은 생명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고 만화에 대해 치열한 태도를 가진 후배가 더 예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세훈(현재 권가야가 데생일을 해주는 작가)이가 나한테 연락도 자주 하고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 주는데 반해 권가야는 성격이 개차반인데다 별일 있기 전엔 전화도 안 하지만 권가야가 더 예뻐 보인다. 후배는 자식과도 같아서 박봉성도 후배가 허영만처럼 되길 바라지 자기처럼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예전엔 만화가 애인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마누라가 된다. 연애시절처럼 맨날 죽자사자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마누라를 예전 애인이었을 때보다 더 사랑한다. 연애시절에 애인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기고 싶어하듯이 젊을 때는 만화를 이기려 든다. 하지만 만화를 이길 수는 없다. 이기려면 진다. 만화는 마누라에게처럼 져야 된다. 마누라에게 이길려는 놈은 미친놈이다. 이렇게 만화가 마누라처럼 여겨지고 나면 그 후에는 치열성과는 다른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때부터는 남을 속이는 만화를 할 수 있다. 젊은 작가의 만화는 아무리 잘 해도 좋다는 느낌은 들어도 속아넘어가질 않는다.
50대 독자까지는 속여보고 그만 둘 생각이다.

원고 분실 사건에 대해
- 얼마전 서울문화사에서 토끼 원고를 분실한 사건이 있었다.
▶ 7000만원 요구해서 7000만원 받았다. 억대라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건 출판사 쪽 변호사들이 이 일이 재판에 넘어 갈 경우 그쪽에서 물어야 될 돈을 예상한 게 3억이었던 데서 나온 말일 거다. 일본의 만화 원고 경매에서 아직 그쪽으로 원고가 나간 건 없지만 거기서 예상한 가격이 내 거랑 오세영 선생 게 장당 10만엔이었다. 그래서 출판사 측에서 처음에는 내 요구보다 덜 주려고 하다가 재판까지 가면 손해가 클 거 같애서 그냥 준거다. 나도 출판사 사람들이랑 친하고 다들 아는 사이라 재판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출판사에서 작가 원고 잃어버리는 건 비일비재하다.
일본에서는 작가랑 출판사 계약할 때 분실 시 몇 배로 보상할지 다 정한다. 일반적으로 고료의 10배로 정한다. 그래도 이번 사건 뒤로 출판사의 원고 관리가 철저해 졌다. 화재위험이 없는 방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

향후 계획에 대해
▶ 현재 바다 출판사에서 4년 계획으로 20권 짜리 극화를 준비하고 있다. '삐리'를 7권으로 개작해야 하고 그 다음은 중단편들을 할 생각이다. 지금 준비하는 극화는 서른 이전의 그림체랑 비슷한 것인데 동화스타일의 만화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생명을 걸고 해야 하는 작품이다.
-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선생님과 친한 상명대 교수 두 분에 대해
▶ 수철이(안수철 교수)는 작가로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머리 좋은 사람들보다도 더 좋은 지혜를 가졌다. 선생으로서는 아주 뛰어나다. 주완수는 아직 자신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금 선생을 하고 있고 선생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양영순도 그렇듯이 호기심으로 잠깐 선생을 할 수 있지만 만화쟁이는 오직 만화다. 이두호 선생이 교수로 간 것도 아쉽다. 60 넘어서 하면 뭔가 우리랑 다른 경지를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환갑 때까지는 열심히 해야 된다.

중간에 식당에서 커피숖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선생님은 시간이 아깝다는 듯이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했다. 그동안에 내가 꺼내 놓은 담배를 거의 다 피웠는데 내가 하루에 얼마나 피우냐고 묻자 두갑을 피우지만 건강이 안 좋아 금년까지만 피고 끊을 것이라고 했다. 순한 걸 피다가 디스를 피워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습관인지 몇 모금 피다 끄고를 반복해서 굉장히 자주 담배를 피웠다. 차시간이 다 돼서 급히 커피숖을 나섰고 선생님은 내 담배를 다 피운 게 미안했던지 슈퍼에서 자신의 담배와 디스 한 갑을 사서 내게 건냈다. 작별인사를 하는 도중에 버스가 왔는데 선생님을 저걸 타야 된다면서 내게 잔돈이 없는 것을 보고는 급히 천원짜리를 꺼내 주고는 내 등을 밀었다.
처음 뵀을 때 내 극화를 보여 드려서인지 선생님은 나를 마치 친한 후배에게 하듯 유쾌하고 격의 없이 대했고 내 그림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데뷔는 하겠지만 돈을 많이 벌긴 힘들겠다는.....
Comment : 9,  Read : 2468,  IP : 211.206.41.15
2002/06/13 Thu 20:37:25
깜악귀 

`내가 나보다 재주 없는 사람을 거의 못 봤는데 방학기는 정말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원고를 보면 구멍이 난게 보이는데 데생이 안 돼서 하도 지워서 구멍이 난 거다.` / 죽음이군요.

2002/06/14
깜악귀 

그러고보니 권가야 선생님 인터뷰 갔을 때, 백성민 선생님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거 들었습니다. `아직 백성민 선생님같은 경지가 못 되었다`라고 하셨던 듯한 기억. 서로 경애하시는 분위기로군요.

2002/06/14
capcold 

!@#...! 특별투고로, 7호에 기사로 정식 제안합니다. 취재 사진 등이 있으면 같이 넣어서, 아예 정규기사로 넣으면 좋겠습니다. 모과님의 허락에 따라서...^^

2002/06/14
iytu 

몇몇 작가들을 실례로 든 부분은 실로 적나라하군요. 우선은 속이 시원하구요. 선에 대한 부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륜 없이는 꿰뚫어 볼 수 없겠지요. 존경스럽습니다.

2002/06/14
모과 

capcold님 아수비게도 사진이 아마 한장정도 있을 겁니다. 카메라를 갖고 가긴 했지만.... 선생님께서 거의 1분도 쉬지않고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찍을 타이밍을 놓쳐버렸군요....

2002/06/15
capcold 

!@#...ㅜ.ㅜ 아, 뭐 그렇지만 원래 `두고보자`는 독자들의 편의, 웹진의 `시각적 아름다움`따위는 신경쓰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한장이라도 어딥니까^^... 의향 있으시다면, 사진 보내주세요...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인 코멘트 달기를 통해서 하는 동네도 드물겁니다--;)

2002/06/16
chocochip 

--]그러게 말에요. (진행상황을 얼결에 보게되서 웃음이 ^^;;)
글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많지만 `어느 순간 만화가 마누라 된다`는 부분이 특히나.

2002/06/16
깜악귀 

사진이 없더라도 허락의사를 표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2/06/17
gg 

허영만선생님을 왠지 맘에 안들어 하는것같은 인상을 받았는데...아닌가요??

200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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