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중 애니메이션 감독과 만화가들중에는 자신의 주관으로 재구성해낸 독자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평생토록 그 세계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몰두하는 인물들이 많이 있다.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나가노 마모루(永野 護)등이 대표적인 예다. 오시이 마모루 역시 자신만의 이야 기를 풀어내기 위한 독자적 시공간을 창조해낸 바 있는데 [붉은 안경](86.영화) , [켈베로스-지옥의 파수견](89.영화),[견랑전설](90. 만화. 후지와라 카무이가 오시이의 원안을 토대로 그린 만화)이 그에 속하는 연작들이다. 세 작품은 모두 반체제세력의 무력진압을 위해 조직된 특수부대인 '특기대'(일명 켈베로스)의 인물들을 중심에 놓고 그들의 이합집산과 갈등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오시이 는 실제로 존재했던 60년대의 일본사회라는 무대에 가상의 조직체인 '특기대'를 등장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전후 일본의 역사를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전전의 추축국 세력은 완전히 패망하지 않았으며 전후질서는 미-소 대결구도가 아닌 독-소 대결구도로 양분되어 있다. 일본의 전전 군부세력은 전후에도 여전 히 살아남아 전후 경제부흥을 주도하는 상황이며, 테러리즘에 의존하는 반체제 세력과의 충돌은 실제보다 훨씬 첨예하게 그려진다. 오시이의 일련의 연작들은 체제에 맞서는 학생들이나 반정부단체가 아니라 체제의 안전을 수호하는 하부 조직인 '특기대'를 무대의 중심에 놓고 조직원들의 개인적 갈등과 관료제 아래 에서의 조직간의 알력, 그들의 장비와 총기류에 대한 묘사에 다분히 비정치적이 며 매니악한 입장에서 관심을 기울인다.
[ 인랑(人狼. JIN-ROH)]은 그의 '특기대'시리즈 연작 중 극영화로서는 세 번째 작품이며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공각기동대](95)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담당했던 신예 오키우라 히로유키에게 연출을 맡기고 자신은 각본으로서만 관여했다. 애 니메이터로서의 경력은 길지만 연출로서는 이번이 첫 작품인 오키우라는 오시 이의 초안을 상당부분 손질하면서 [인랑]에 기존의 오시이 스타일 이상의 "솔 직한" 감성을 담아내기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라 는 대중적 코드와, 극중에서 액자 소설로서 등장하는 '붉은 두건' 이야기다.
특기대의 대원인 후세는 어느날 자신이 쫓던 반정부조직의 소녀가 눈앞에서 폭탄을 끌어안고 자폭하는 사건을 당하면서 심적 혼란에 빠져든다. 소녀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에서 소녀와 같은 붉은 옷을 입은 소녀의 언니를 만난 그는 죽은 소녀의 이미지와 겹치는 그녀를 만나면서 감정의 동요를 더해가게 되고, 친숙한 관계로 변해간다. 그러나 거기엔 과거의 동료이자 경쟁부서인 공안부의 실무자인 헨미의 '특기대' 숙청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권력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의 희생양으로 후세가 선택된 것이었다. 조직의 일원 으로서의 자아와 개인적 자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붉은 두건의 스토리와 흡사한 윤곽을 드러내면서 빠르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대치되는 입장의 낮선 타자였던 소녀의 죽음을 목도한 후세가 아메미야에게 느끼는 감정의 울림은 애초에 소녀에게 물었던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 된다. '늑대'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의 행동에 의문을 갖고 죽은이와 닮은 또하나의 사람에게 접근하며 사람의 생각과 행동 을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에 섞이고자 하는 충동. 감독은 '붉은 두건' 동화의 늑대와 소녀 에피소드를 모티브삼아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가 사회 안에 속한 타인과 교류하고 동화되는것이 가능한지의 문제를 남녀간의 연애감정 이라는 익숙한 테마로 그려낸다.
후세와 아메미야의 관계를 기본 축으로 움직이는 이야기의 틀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다. 후세가 아메미야에게 느끼는 감정은 죽은 소녀의 잔상과 늑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이 뒤섞인 가학적 충동에 방해받으며 결국 자신과 상대를 파괴하는 결말에 이른다. 아메미야를 제외한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은 극도로 가라앉아 있으며 건조한 필치의 인물묘사와 세심하게 그려진 60년대 동경의 겨울 풍경에서 전해오는 을씨년스런 느낌은 철저한 '현실주의'로 마무리된 이야기의 성격을 더욱 강조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제시되는 '붉은 두건'의 동화는 극중에서 소녀의 유품 으로 후세의 손에 넘겨져서 읽히는 형식으로 극의 흐름 사이사이에 등장한다. 극의 흐름과 거의 같은 속도로 읽혀지는 '붉은 두건'은 죽은 소녀와 언니인 아메미야가 모두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는 사실과 겹쳐서 그것이 전체 이야 기의 복선을 제공함을 암시하며,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와 잡아먹히는 사람의 이분화된 구도를 제시하여 후세=늑대와 아메미야=사람이라는 은유를 관객들 에게 연상시킴으로서 이야기의 예정된 비극적 결말과 운명론적 메시지를 예고하고 있다. 극의 모티브 역할을 하는 '붉은 두건'과 전체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무리없이 짜여져 있으며 평온에서 긴장으로, 긴장에서 다시 갑작스런 반전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붉은 두건'이라는 동화의 단순명료한 구성과 맞물려 완벽에 가까운 짜임새를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높은 완결성에 비해 그 결론은 다소 진부하며 원론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도입부에서 죽음 직전의 소녀에게 후세가 물었던 "왜?"라는 질문은 체포되길 거부하고 자신을 내던진 소녀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자, '늑대'와 사람이라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각자의 행동양식 을 이해하고 융화될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스스로가 다루고 있는 60년대의 시대정신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될수 있으며 그 자신이 시작부터 전체 맥락의 핵심으로서 제기한 질문에 대해 "그것은 그가 인간이 될수 없는 늑대일 뿐"이기 때문이라는 동어반복적 결론만을 제시할 뿐이다. 스스로의 자아를 늑대 무리속의 그것과 동일시하며 남아있는 개인적 자아의 외침에 몸부림치면서도 결국 조직의 논리에 순응 하여 아메미야를 쏘는 후세의 행동은 그 자신이 했던 "왜?"라는 질문에 대해 " 늑대는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에"라는 막연한 운명론적 결론 이외에 어떤 것도 제시해주지 못하며,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조직의 논리에 순응 하는 것에 어떤 이유도 붙이지 않고 단지 '숙명'으로서 받아들이는 일본적 사회관의 투영으로도 보인다.("현대적 외피를 뒤집어쓴 일본의 전통적 사무 라이 서사"라는 김영하씨의 인랑에 대한 멘트는 타당해보인다.)
" 왜?"라는 질문이 가진 복합적인 의미에 대해 원론적인 답밖에는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인랑]이 자신이 무대로 삼은 60년대의 의미에 대해 실은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패할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묘사한 이야기의 짜임새는 뛰어났지만 시공간적 배경과 이야기의 맥락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원안인 [견랑전설]의 가상 시공간으로서의 60년 대 묘사가 가질수밖에 없는 한계에 기인한다. [견랑전설]의 공간은 60년대 일본의 시대적 분위기만을 빌려왔을 뿐, 그 역사와 기반은 주관에 따라 임의 적으로 만들어진 '상상된' 공간이다. 그 의도는 정치적 은유와 풍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상의 장갑부대인 '특기대'를 무대 위에 등장시키려는 작가 의 매니악한 취향에 더 가깝다. [인랑]을 포함한 [견랑전설] 연작들의 시점 은 항상 '특기대'를 중심으로 한 지배조직 내부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들의 활약과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작가의 취향 에 따라 선택된 협소한 시점은 결국 시대적 환경과 그 구성원들이 갖고있는 다양한 입장에 대한 폭넓은 묘사를 가로막으며 특정 조직에 대한 매니아적 애착은 가감없는 객관적 묘사를 어렵게 한다. [인랑]에서 특기대를 중심으 로 한 정부조직 내부의 이해관계는 실제 못지않게 세부묘사에 충실하며 타 당성높게 그려지고 있다. 활동영역이 겹치는 두 경쟁부서간의 알력과 권력 상층부로부터 기획된 특기대의 제거음모, 조작한 스캔들로서 특기대 제거 의 명분을 만들려는 공안부와 특기대의 비밀조직 '인랑'의 대결 등이 음모 론적 이야기구조로 짜임새있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권력조직의 내 부항쟁에 '도착'적으로 촛점을 집중한 결과 정작 주인공이 "왜"라고 물었던 저항하는 자들의 입장이나 60년대를 살아가는 일상적 존재들의 입장은 묘사에서 제외된다. '한때' 반정부조직의 일원이었던 아메미야 케이는 자포 자기한채 공안부의 음모에 이용당하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아마 운동에 몸담았던 세대들중에는 운동권에 대한 이러한 순응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묘사에 분노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후세가 몸담 은 '특기대'의 일상과 훈련과정에 대한 묘사는 후세를 비롯한 특기대원들을 ' 늑대'로 탄생시키는 공간으로서는 그다지 비중있게 묘사되지 않았으며, 특기대와 비슷한 성격의 실제 조직인 군대 등의 그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미화된 느낌마저 준다. 결국 영화는 안제이 바이다(재와 다이아몬드)가 했던 것처럼 체제에 맞서는 자와 체제를 수호하는 자의 입장을 선명하게 부각시 키면서 혼란한 사회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데도 이르지 못했고, 큐브릭(시 계태엽 오렌지)이나 고다르(알파빌)가 했던 것처럼 개인이 조직의 논리에 종속될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과 구조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데도 이르지 못했다. "왜?"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늑대'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동어반복에 그치고 만 것은 감독이 60년대라는 시공간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 그다지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인랑]은 오시이가 전작들에서 확립한 애니메이션의 시각 적 리얼리티를 모범적으로 이어받고 있다. 오구라 히로마사의 60년대 동경 시내에 대한 묘사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꼼꼼한 고증과 세부묘사로 재현하 면서 강한 실재감을 느끼게 한다. 번화가에 놓인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와 흑백 TV에서 비춰지는 촌스런 맥주광고, 화염병과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위 대의 행렬 등은 그러한 고증의 산물이다. 60년대의 동경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해낸 공간묘사는 단순히 사물 자체에 대한 재현만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입체감과 그 시대를 겪은 상당수가 공감할 시대적 분위기까지 표현하고 있 다. 적절하게 사용된 CG는 공간의 원근감을 강조하거나 일부 기계(전차 등) 의 묘사, 후세의 러닝 씬에서의 카메라워크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가장 최소 한의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되어 CG의 남용으로 인한 작화의 질적 하락을 막고 셀화로 표현하기 힘든 작은 부분에서의 실재감을 살려내고 있다.
시각적 연출 면에서 오키우라는 배경과 인물의 시각적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오시이식 리얼리즘을 상당부분 따르면서 곳곳에 인물의 주관적 심상에 대한 묘사를 삽입하고 있다. 특히 폭발이나 총격전등에 대한 묘사는 화기류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되어 기존의 오시이 작품을 뛰어넘는 사실성을 보여주 고 있다. 오키우라는 이러한 사실성에 충실하면서도 후세의 착란이라는 형태 로 인물의 몽환적인 심상을 사실적 내러티브 사이에 갑작스럽게 삽입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는데, 밖으로 거의 표현되지 않는 인물의 중첩된 심리상태를 관객들에게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인물의 행동이 변화하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시각적 연출은 전반적으 로 그다지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선배인 오시이가 확립한 스타일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내러티브의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해 표현주의적 묘사도 일부분 차용하고 있다.
애석한 것은 배경과 움직임의 시각적 사실성은 높았지만 인물의 형상화라는 측면에서의 사실성은 그에 다소 못 미쳤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의 대사는 일상 적이라기보다는 문어(文語)적이며, 아직도 역할에 따른 만화적 전형성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인상이다.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주어진 역할에 따른 대사와 행동만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양식(樣式)적인 느낌에 가깝다.(오직 아메미야 케이만이 비교적 변화무쌍한 감정묘사를 보여 주는데 이것은 그가 극의 거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다른 의미의 만화적 전형 성이 작용한 바가 크다.) 인물들의 가라앉고 절제된 성격묘사가 극의 분위기 에 적합하다는 점은 분명했지만 인물의 성격이 극의 분위기와 내러티브에 지나치게 종속된 나머지 입체성을 잃고 평면적으로 보이게 된것은 아쉽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오시이가 재구성한 60년대의 일본을 무대로 하여 ' 이루어질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잘 짜여진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영화는 시대배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붉은 두건'이라는 동화 에 더 많은 것을 의지함으로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영화는 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60년대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고 있는것이 없으며 굳이 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성립될수 있는 이야기 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복잡하게 고민할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그저 "인간이 될수 없는 늑대와 인간의 가슴아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60 년대를 경험해본적이 없으며 한 사람의 애니메이션 장인에 불과한 오키 우라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는것은 부질없을지도 모르겠다. 오시이였다고 얼마나 달랐을지는 의문이지만.
JSH(Yasujiro@hitel.net) --------------------------------- ... 공짜로 감상하게 해주신 이종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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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Read : 2568, IP : 211.196.216.56 2002/10/17 Thu 22:34:54 |
| M |
저도 인랑을 보았을 때, 어떤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건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상깊었던 점은 빨간두건 동화였죠. 이게 왜 여기서 띠리릭 나왔으며, 애니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궁금했구요. 빨간 두건에는.. 약간 비틀어보면, 자신 때문에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역하 의식이 있고 그건 어쩌면 스스로 잡아먹은 거나 다름없다는 우울함으로 연결되는데요. 이런 전제와 인랑의 스토리가 맞물리면서 작품 전체에서 모종의 부채감이 풍겨나오게 되는 듯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죄책감, 자신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지각, 그 이후의 뭔가 빚진 듯한 기분을 빨간 두건 동화를 통해 은근슬쩍 은유하는 바가 있다고 볼 수도(..있다고 주장할 수도, 믿거나 말거나 ^^) 어떤 분은, 오시이가 `빨간 두건` 동화를 차용한 것이 한때 운동권이었던 오시이의 감성을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과거 운동권들의 마인드 속에는 운동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자신의 인간적 삶을 돌아보며 `엄마 잡아먹은 거나 다름없다`라는 자책이 있었다..는데, 이런 감상을 접하고 나니 인랑이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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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8 |
| capcold |
!@#...일본의 `운동권` 전공투세대들은 애초부터 관념의 포로였고 말기로 가면 테러집단화해버리는 꼬락서니(말 험해서 죄송합니다)로 빠졌죠. 뒤돌아 볼 때 남은 것은 어렴풋한 `반항에 대한 낭만`. 인랑에서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모호한 것은, 원래 그 시절 그사람들도 싸우는 이유가 모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 20년쯤 지나면 한국도 그리 될지 누가 압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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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8 |
| M |
..그래서 남은 잔재나 시대의 이름(이건 확실한 거니까^^)에 집착하는 걸까요? 싸우는 이유가 모호할 때 자꾸 사후설명을 하고싶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호한 이유, 잊어가는 이유 속에서의 시대의식은 낭만적일 수밖에 없을 테고. 일본 모 대학에 갔다가 60년대 운동 진압 과정에서 불타버린 건물이 여전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흐려지는 `싸웠던, 싸우는 이유` 사이에서 뭔가 기억해야한다, 확실한 것을 남겨두자는 듯하더군요. 어쩌면 인랑이라는 작품제작도 그런 노스탤지어의 일환일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 작품은 현실을 굉장히 잘 반영하는 작품인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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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8 |
| tepi |
일본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독재정권시기에는 `관념`이 아닌 생생한 `현실의 삶`을 위해 싸웠던 것이죠. 싸우는 목적이 흐려진 것은 적어도 일차적인 승리를 만끽한 이후인 80년대 중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에는 참 절실한 문제였던 것이 지금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그 혜택을 누리면서.. 당시에 목숨까지 걸며 싸웠던 자들도 점점 `본전`생각이 났는지 당시의 `빚`을 받으려고 여러가지 추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일본보다 우리가 `인랑`같은 애니메이션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애니가 나오지 않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영화라면 간간이 나오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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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1 |
| JOSH |
음.. 위에 말씀하신 분의 글을 반박하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나라도 과거엔 학생/노동운동이 전부 친북 좌익으로 몰렸던 시대도 있었지만... 어쨌든 `바꿔나보자`가 성공했습니다. 그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이 정권을 바꾼 나라 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과거의 패배자랄까.. 진심으로 사회운동을 했던 몇몇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더 나이를 들면서 사회를 살다보니 과연 예전의 그 험악한 투쟁이 과연 필요했나, 인생이 뭐고 사회가 뭔가 를 보다보니 자신의 그 신념이나 행위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속에서 더욱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메게 된 것이죠. 오시이마모루같은 경우, 견랑전설(인랑만이 아닌)이나 패트레이버2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그런 체제에 대한 반감과 `동경`, 체념 그리고 과거와 같이 않은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섞여 나타나는게 아닌가 합니다. 뭐 일부러 그걸 예술로 승화시켰다 어쨌다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보는게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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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3 |
| JOSH |
아, --; 그래서 말인데, 역시 `이루었도다` 하는 사람과 아직 그걸 속에 넣어 앓는 사람과는 작품으로 나타나는 느낌이나 강도가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죽을둥 살둥 여자를 쫒아다니던 남자가... 한번 하고 나면 돌아눕는 건... 남자입장에서 보면... 계산적이어서 그런다기 보다 남자는 정말 짐승이라 `전`과 `후`는 정말 생각이 다르다는... (쿨럭) `전` 에는 어찌 그렇게 멋진 미사어구와 예술적인 공략법이 창출되다가도... `후` 가 되면... 그게 자신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니.....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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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3 |
| 해성 |
후세가 물었던 `왜?` 라는 질문은, `넌 왜 죽으려 하냐`고 묻는 질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빨간 두건단이나 특기대나 마찬가지로 이념 아니면 조직의 일부가 되어서 개인이 기꺼히 희생하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가? 후세가 물었던 질문이 그게 아닐까요? 결국 그 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못 구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것 자체가 그런 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암울한 결말이 아닐까요. 인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오시이 마모루는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차이가 없다고 하더니 인랑에서는 인랑과 짐승이 차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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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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