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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님 글을 읽고 - 유시진님의 폐쇄자
깜악귀님 글을 읽고 - 유시진님의 폐쇄자


유시진님 만화의 재능과 한계- 에 대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그 쪽(?) 이해의 극단이, 폐쇄자라고 봅니다.

다음은 제 해석입니다. ^^



폐쇄자는 자기 파괴 욕구에 충실하죠.

엄밀히 말해, 숙명이라는 소리는 변명에 지나지 않고... (주인공이 손수 만든, 주인공 자신을 위한 숙명이니까)
쿤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게이(이름 기억 안남)가 새 여자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면서 그 절망을 극대화 하여 마침내 자신을 망치도록 겉보기에 애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애초에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한 존재가, 자신이 속한 타인과 자기 자신을 모두 파멸시켜버리는 이야기 입니다.

이 경우, 세계는 자기가 속한 세계가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자기가 어떤 짓을 하여도 상관 없는) 그러한 자기 발 밑의 세계랄까요. 자기가 혼자 사라질 때 흔적이 남으면 찝찝하니까, 자신이 원치 않았던 부속품으로 취급하여 없애버리는.

밖으로 뚫린 구멍, 새 여자의 반짝임에 쿤이 순수하게 흔들렸든 말았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새 여자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습니다만, 역시 타협이라거나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너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적어도 1인의 손아귀에서 내내 빙글빙글 돌다, 어린애가 버리는 장난감처럼 쉽게 파괴되는 모습), 그러면서도 작품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인, 기이한 만화입니다.

쿤이 왜 새 여자를 게이의 손을 빌려 죽였을까요?
자신이 외부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꺼려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인형처럼 조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외부의 존재가 엄연히 존재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처참한 방식으로, 하잘것 없는 '즉물적인 대상화의 존재'(정육점 고기로 취급되는 여성의 경우처럼)로 죽여버릴 수 밖에 없었다- 라는게 몇년 지난 후의 제 느낌입니다.
부정적이죠? ^^
독자를 배신하는 작품은 반발을 사게 된답니다. =.=; 해피엔딩을 바란게 아니라, 애초에 소모품으로 취급당했다는 점에 분노(?)가;
- 자, 반짝이던 새 여자를 사귄 이유가 네(주인공) 절망을 불리기 위해서 혹은 변명거리를 불리기 위해서일 뿐이었어? -
(개인주의를 심각하게 가장한 이기주의... 사실 저는 새 여자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요. ㅠ.ㅠ)


자기 외의 남을 인정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억눌리고 인정당하지 않았다고 피해자의 위치를 고수하는 모습. 네. 모순입니다. 유시진님의 작품들에서 너무 오래되고 뿌리깊은 모순이라, 이를 허물어뜨리기 쉽지가 않지요.
결국, 타인의 시선, 더 나아가 타인의 존재 자체가 폭력이 되는 겁니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관점이 구조적으로 치밀하게 제공되어, 결국 주장의 요지에 관하여 설득력은 대단히 강력합니다.

우리는 외로운 존재이고, 타인은 무지와 몰이해 및 폭력의 덩어리이며, 따라서 '현실적으로는'(쿨핫) 이를 무시하려고 애쓰거나 혹은 하찮은 존재로 파괴해버려야 한다. 그 근거는 타인=폭력 이라는 것이다.
여기 나를 흔들려고 헛수고 할 필요 없다. 내가 바라는 형태의 이상 외에는 나를 오염시킬 뿐이다.
(이런 면에서, 외형적 성장은 튼튼히 일관되게 해 왔는데, 내면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는 말씀도 동의합니다.)


유시진님의 작품은, 완전 무결한 개인적인 결론을 매력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마주친 게 폐쇄자인 듯.

그리고 그 파괴의 완결성이, 역시 유시진님이군 끄덕끄덕 할 정도는 되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큼 충족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유시진님의 만화가 매력적인 만화, 감탄할만한 만화라는 생각에는 변함 없지만, 이제 한 발 나아간 모습을 보고 싶어진달까요? 주변도 둘러보고 하는 모습을... ^^
Comment : 17,  Read : 2689,  IP : 211.194.50.235
2003/03/11 Tue 08:43:49 → 2003/03/11 Tue 08:58:31
깜악귀 

음.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저는 작가의 매력은 모순에서 나오고, 거기에 대고 정치적 올바름이나 여러가지 사회적 기준을 일면적으로 들이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매력의 근원-모순은 심화되거나 더욱 정교화되거나 더욱 포용력있게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모순에 근거한 매력을 가진 작가의 문제점은, 그 모순이 고정된 형태로 고착될 경우 ..... 매력의 근원을 상실할 뿐 아니라 작품의 진정성도 의심하게 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 게시판에서 올라온 다른 글도 있어서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그래서 저는 엘리트 주의라는 정치적인 언어로 유시진만화에 잣대를 들이대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매력을 상실하거나 작가와 캐릭터의 감정이 쳇바퀴를 돈다면 그것은 비평이나 비판의 기준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 저는 작가에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거나.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라든가.. 하지만 작품에게는 더 매력있어질 것을 요구합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요. 그리고 다른 분은 다른 이야기를 하시겠지요.

2003/03/11
깜악귀 

유시진의 만화에 대해, 저의 혼잡스러운 글이.. 많은 생각들을 파생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다시 한 번 유시진의 만화에 대해 쓸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많은 내용이 바뀔 듯 합니다.

2003/03/11
컥 

설마 엘리트주의라는 말을 정치적/도덕적 잣대의 언어라고만 해석하는 것일까 걱정이.

2003/03/14
깜악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제 글에서 그 말을 거의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정치적/도덕적 잣대로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트주의라는 말이 그런 함의를 많이 띄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엘리트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이 자아에 어떻게 작용하며 작품에 있어서 어떤 미적 효과를 낳느냐입니다. 그러나 정치적/도덕적 잣대를 비도덕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고 이 사회에서는 그것이 도덕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도 아주 흔하게 발견할 수 있지요.누가 그랬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우려일 뿐입니다.

2003/03/14
깜악귀 

유시진 작품에 대해서 논할 때 경유할 수 있는 몇 가지 미학적 논제를
제 나름대로 들어보겠습니다. 단순히 `엘리트적이다/아니다``엘리트적이다/그게 무슨 상관이냐`라는 논의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2003/03/14
깜악귀 

+ 만화작품과 예술작품에서의 `엘리트적 미감의 문제` (`엘리트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적우월주의`만큼이나 잘못된 말이지요)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쿠즈모토 마키를 함께 거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적, 계층적 엘리트 미학의 존재 이유는 그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미감의 가치에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파멸의 미학이라는 징후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쿠즈모토 마키가 미감이라는 문제에 철저하게 매달리고 있다면, 그래서 순수하게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한다면 유시진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작품의 한 축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엘리트적 미감`과 가부장성에 대한 감각에 있어서, 만화는 아니지만 환타지 작가, 로저 젤라즈니와 유시진을 함께 놓고 볼 만 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경우 앰버 연대기와 클로져의 유사성에 대해서 집착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이 점에서는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참고하지 않았다면 참고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설렁 참고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의 작품이 보여주는 기묘한 대척관계와 유대관계가 저에게는 흥미꺼리입니다. 물론 로저 젤라즈니의 경우에는, 가부장적인 남성 느와르 환타지 작가이고 유시진 만화의 입장은 정치적으로는, 그와 반대편에 있다고 보아야 옳지만 작품에 드러내는 미감의 문제는 훨씬 복잡합니다. 그것은 어느 쪽이 어느 쪽에서 영향받은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동족.. 정도의 관계가 아닐까.
또한 김진의 90년대적 적자로서 유시진을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권교정은 강경옥의 후예이지요)
결국은 그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계층의 정서, 혹은 정치적 입장과 작품이 우리에게 부여주는 미감의 문제의 균열과 부조화가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작품을 보는 저의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시진 작품에 대한 논점들이었습니다...

2003/03/14
깜악귀 

그리고 구현화계의 작가가 사실 저한테는 꽤 매력이 있지요. 유시진씨는 크라피카 계열. 물론 김진도. `라그나로크`를 보면 이미 폐쇄자와 비슷한 발상을 하고 있지요. 저도 구현화계의 사람인 거 같기 때문에.. --;

2003/03/14
컥 

네. 당신도 엘리트적 미감;;;, 혹은 구현화계의 사람이니 같은 해석밖엔 못내린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평을 보고 싶지만 반론만 일삼고 끝나는 분위기가 전반적인듯.(흥미가 사라지는)

2003/03/14
2월화 

컥님이 다양한 평을 하나 보태심이 어떨까요?

2003/03/15
컥 

그럴만큼 관심없어요. 두고보자에 비평인이 몇분 계실텐데 다 똑같은 의견인가 싶을 뿐이지요. 깜악귀님의 글이 공감,혹은 반문을 야기시키는 글이라 그런지 계속 기준이되어 언급되는 분위기같네요.

2003/03/15
2월화 

흠... 두고보자 비평단(?)이 유시진 전문 분석 집단도 아니고, 일단 기사에 깜악귀님 글이 실렸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ㅡㅡ; 깜악귀님과 다른 방향에서 보고 싶으시다면, 그런 글을 쓰시면 되지않겠습니까? 컥님도 비꼬는 한마디로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실텐데요.

2003/03/15
2월화 

--; 참 저는 두고보자든 어디보자든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2003/03/15
컥 

제가 언제 주장이란걸 했던가요? 유시진 특집해달란 소리도 아닙니다(솔직히 지겨운쪽이죠. 한국에 만화가가 이리없나싶고). 깜악귀님의 글이 두고두고 회자되는데 별로 생산적인 논의는 못되는듯하여 지겨워졌다는 얘기일 따름입니다. 굳이 다루려면 다른 해석을 보고 싶다는거지요.

2003/03/15
깜악귀 

예. 관심은 없어하시지만 굳이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3/03/15
깜악귀 

다른 분들의 많은 이야기가 나오면 아주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2003/03/15
ash 

유시진에 대한 비판 내지 비난의 상당 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쓰자면, 조금 긴 글이 되겠지만...

2003/03/19
pinksoju 

애쉬님은...여기서조차...ㅡㅡ;;; 오해가 있다는 말만하면 어떡해요...;;

200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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