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의 '언제나 꿈을'은 다른 하라의 만화와 비슷한 설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콤플렉스 덩어리 주인공들이 삶의 새로운 단계(?)에(입시나 구직과 같은, 갑자원도 포함인가요?)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를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한컷을 세단으로 나누어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표현이나 주인공의 성격,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 마저도 다른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만화를 보면서 어떤 처절함 같은 격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라의 만화라면 H2가 가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청공'정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감정이라고 할까요.(적어도 청공의 전반부는 멜로가 아닌 비극에 가까웠지요)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하여 스스로를 철저하게 착취하는 그런 처절함이라고 해야할까요? 창조자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자신에게서 바라보고 있는 예술가의 자괴적 쾌감(?)이라고 해야 하나? '내집으로 와요'에서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군요. 젠장
(에잇! 왜 이렇게 이 글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지?)
어쨌든 제가 이 만화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런 진정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존재로서 자신을 냉정하고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하라의 존재가 느껴지는 것이 참 근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라 만화의 미덕을 사실성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저는 하라의 만화가 사실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작업을(만화가, 사진작가)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집요한 자의식이야 말로 하라의 만화를 다른 만화들과 구별짓는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만화들이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내집으로 와요, 언제나 꿈을)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그 만화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몇권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직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던진 한마디의 독백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친구와 같이 자는 것을 머리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평범한 녀석입니다. 전 이게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거절당한 사랑의 핵심은 사랑의 완성되지 못한 안타까움이나 상대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배려인 것 같거든요.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만화방에서 이 부분을 보다가 갑자기 '자우림' 의 '파애' 라는 곡이 떠올랐답니다. 그 노래 무척 좋아하는데, 그 노래중에도 이런 부분이 있답니다. (김윤아 같은 카리스마 재능 만빵 이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감정마저 알 수 있었을까요? 삶은 참 불공평하죠?)
"손을 내밀어도 미소지어 봐도 나를 바라 보지 않아 나를 바라보지 않아 조각조각 부서지는 마음 부서지는 내 마음에서 레몬과자 맛이 나"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효과음으로 넣고 싶네요)
전혀 다른 삶을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순간에 도달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사실 하라의 우유부단하고 능력없는 주인공들이 만화 속의 삶에서 퉁겨나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하라의 여성들 때문 같아요. 우리는 하라의 어둡고 패배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만, 아마 하라의 여성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라의 주인공들을 지켜보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하라의 주인공들 역시 그 삶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하라의 여성들은 사랑스럽고 의연하지만 가부장적인 판타지의 산물 같아요. 만화의 주인공과 만화를 보고 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다는 면에서 상업적인 안전핀 같기도 하고.(순정만화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나, 왕따의 숨은 재능같은 극적 안전장치라고 보이네요.) 게다가 하라의 베드신은 은근히 인상적이고 야하답니다.
도저히 아무것도 정리가 안되지만 제 생각 그냥 올려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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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Read : 2554, IP : 211.113.212.35 2003/04/11 Fri 23:49:28 |
| ㅋㅋㅋ |
내집으로 와여..의 가슴이 아리는 끝장면이 기억나는군여..그들이 한때 사랑했던 텅빈 방의 서글픈 정경..그러나 두 남녀 모두 서로의 현실에 충실을 다하는 모습으로..또 그속에서 아픈 상처들을 서서히 망각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현실상에 존재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확실히 하라히데노리는 순정성의 환상은 없지만 가장 리얼하게 현실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작가입니다..물론 최근작 `시소게임`에서는 그 정도가 약간 순화된 느낌도 들구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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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3 |
| ㅋㅋㅋ |
음..어떻게 보면 달콤새콤 순정만화에 대한 안티-테제를 제공한다고도 볼수 있고..여하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중의 한명 이야기가 나오니 기쁘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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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3 |
| tepi |
전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그 만화 시나리오가 혹시 하라의 `내 집으로 와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순간 생각했습니다. 한발치 떨어져서 본 사랑했던 순간과 그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을 차갑지 않은 냉정한 시선(?) 으로 포착해내고 있죠... 그러나... 하라의 스포츠 만화에도 좋은 평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열혈스포츠의 잔재에 불과하고 감정의 과잉으로 이미 독자들을 버겹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프리킥`같은 졸작은 얘기거리도 안돼지만 `청공`이나 `그래 하자` 같은 만화들이 말이죠. 그런면에서.. (제가 아다치의 팬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H2의 경우 스포츠만화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열혈이라는 기름기를 제거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다치가 이제와서 터치와 같은 작품을 그리는게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듯 하라 히데노리도 이제 그만 열혈스포츠물은 시대와 함께 떠나보냈으면 합니다. 꼭 그게 보고 싶으면 추억의 명작을 보면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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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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