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만화는 일본 제국주의 당시의 사회대립구도와 사회 지도층 세력의 뒷얘기와 그에 고통받고 있는 한중일 민중들의 삶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을 이끌어 가는 힘은 류와 타쯔오의 사랑이야기 -서로 만나고 싶어도 사회적 압력으로 만나지 못하고 엇갈려 가는 안타까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주인공들이 모든 것을 버리면서도 끊임없이 만나려는 열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약 '용'의 무대가 막부 초기였다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아마도 지금 소개하려는 '바람의 처춘(凄春)'이라는 만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귀족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을 낸 '바람의 처춘'은 小池一夫, 小島剛夕이 그렸다. 어려운 한문이라서 다시 번역하자면 '바람처럼 흩날리는 처절한 청춘의 이야기'가 되겠다. 대략적인 내용은 케이라는 무사가 함께 어린시절부터 생활한 카렌이란 여자가 자신이 케이의 출세길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간 후 '오직' 사랑의 힘으로 출세길을 팽개치고 갖은 고생 끝에 카렌을 만나 결국 서로의 사랑을 위해 농부의 삶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매우 건조한데 어쨌든 지고지순한 '로드러브로망' 정도로 보면 된다. '용'과 마찬가지로 초기 막부의 권력 암투가 조금 다뤄지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주인공은 점차 성장하게 된다. 창녀가 되어 수많은 남성과 교접을 가졌더라도 나를 위해 희생한 여주인공이 없으면 자신의 인생은 없다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부재하는 것에 대한 향수를 더 많이 부채질하고 있고, 특히 에피소드를 통해 주인공이 혹은 나레이트로 전달되는 사뭇 철학적인 언급들도 볼만하다. 그림체는 우리나라 70년대 만화를 연상케 하는 거친 붓으로 그린 듯 해서, 요즘과 같이 매끈한 그림체에 익숙한 독자들은 첫권만 보면 꺼림칙하겠지만 계속 만화를 읽어 나가다보면 오히려 힘이 느껴진다. 이는 '용'의 매끈하고 섬세한 그림체가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격한 감정의 표현에 더욱 적합하지 않은가 싶다. 한두권만 보고 말리라 다짐하며 잡은 '바람의 처춘'이 결국 17권 모두를 보고 일어나게 만들 정도로 강하게 독자를 끈다는 나의 경험담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필독을 권한다. 사랑이 말라있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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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880, IP : 211.119.190.126 2001/02/09 Fri 01:02:47 → 2001/02/09 Fri 01: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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