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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 (http://www.dugoboza.net)  추천하기 수정하기 삭제하기
사회적 위상과 만화에 관해서 논하기.
[ (주의) 보통 그렇듯이, 장문입니다. -_-; ]

!@#...음. 확실히 h모 님의 말처럼 '예술론' 논쟁은 결코 끝나지도 않고 결론이 나오지도 않는 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만화예술론, 만화의 위상 등 여러 논의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이곳의 열기에 편승해서(그리고 저기 옆동네 릴레이 단평의 무한 리플을 보면서 느낀 바도 좀 있어서), 저도 몇 가지 잡설을 좀 덧붙이겠습니다.

  우선, 만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동의를 할 수 있을 법한 항목들부터 뽑아보겠습니다.

- 만화는 표현수단이다.
  만화는, 예술이라는 범주 따위로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만화는 표현수단, 혹은 표현 양식 가운데 하나로서, 의미와 감성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표현양식이라는 개념의 하위 범주로 들어가 있는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예술을 넓은 의미에서 '생존 본능을 즉각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행위를 제외한 모든 잉여 행위들'로 규정하든, 아니면 보다 좁은 의미에서 '그럴싸한 전시장이나 공연장에 놓고 고상하게 지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일련의 창작물들' 따위로 규정하든지 간에(유감스럽게도, 일상생활의 대화에서는 후자를 '예술'로 규정하는 편협함이 꽤 일반적입니다) '만화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모든 만화는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선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어려우며, 또한 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오히려 옭아매는 결과를 가지고 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만화는 예술일 수 있다'라는 명제를 사용하고자 하는데, 이 명제는 '어떤 생물은 인간이다'라는 말만큼이나 너무나 자명하고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합니다(...이런 자만심을...-_-;). 질문은 오히려, "어떤 만화작품이 '예술'로 규정될 수 있는가?"이어야 할 것입니다. 

- 어떤 만화작품이 '예술'로 규정될 수 있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 이를 때, 비로소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하게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예술의 넓은 정의와 좁은 정의,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정의들이 한꺼번에 합의된 바 없이 서로 충돌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본입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100명이 있으면 예술에 관한 자신만의 개념 역시 100가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려면, 먼저 자신의 예술관을 먼저 어떠한 형태로든지 납득 가능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뒤에 그것을 기본전제로 하고 '평가'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작품의 좋고 나쁨은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흔히 '예술'은 '좋은 것'이라고 이미 전제를 하는 예술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다소 이의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말이죠...-_-; 좋은 예술, 나쁜 예술 등의 평가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좋고 나쁨의 평가와 구분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이상, 좋든 싫든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이러한 사실은 논쟁의 대상이 아닌, 현실적으로 주어져있는 하나의 기본 전제입니다). 하지만 좋고 나쁨의 판단기준은 예술관보다도 더 다양하고 복잡한, 그리고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주고 받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 역시 서로 밝혀나가면서 충돌과 합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 가장 광범위하게 - 즉, '보편적으로' - 받아들여지게 되는 기준이 바로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서 여러 작품들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확실히 나쁜 것',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확실히 좋은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무수한 '어떻게 보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나쁜 것 같은' 중간 지대로 구성된, 일종의 스펙트럼을 만들고 있습니다(무지개를 상상해보시면 쉽습니다: 확실한 빨간색이 있고 확실한 주황색이 있지만, 그 사이에는 말로는 도저히 부를 길이 없는 중간색들이 경계선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반적인 평가 기준과 사회적 위상을 반영하여 충족시켜주는 작품들이야 말로 비로소 '예술'로 보편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오래된 잘못된 관행에 정정을 가하고자 합니다. 판단기준이 다양해진 복잡한 사회 속이라고 해서, "좋고 나쁨의 구분과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실용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실현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유한한 물질세계 속에서 살아왔고, 따라서 평가와 판단이라는 행위는 유전자 속 깊숙히까지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합의된 '일반적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아, 물론 저도 상당히 자주 '일반적 기준'과는 확연하게 다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논리적, 감성적으로 무장시켜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가티브 전략, 즉 '기존의 평가기준은 잘못됐다! 없애자!'라는 것은 별다른 실질적인 힘이 없습니다. 효과를 얻으려면 '기존의 평가기준은 잘못됐다! 내가 그것보다 더 우월한 평가기준을 제시해주마! 자, 봐라!'라는 포지티브 전략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포르노그래피도 예술이다!'라고 주장하려면, 포르노의 예술성을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포르노 성향이 있고 기존에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들이, "다른 요소들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포르노 성향이기 때문에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고 증명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증명을 위해서는 각종 미학적, 철학적 근거들과 유사한 비교 사례들을 주어주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요("내 말이 맞단 말야! 그러면 그런 줄 알란 말이야!" 라고 소리친다고 설득당할 사람들은 없으니까요...유감스럽게도). 물론 포르노, 예술 등등 자신이 사용하고 주장할 모든 개념들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논지전개의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더욱 어려운 부분, 바로 논리를 뛰어넘는 감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동성애는 꺼림칙한 것'이라는 담론은 지금껏 수많은 논리와 근거를 통해서 이성적 차원에서는 반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꽤 굳건하게 박혀 있습니다...

  아 뭐 여하튼. 요약하자면, '일반적 평가'라는 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그것을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포지티브 방향의 논지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기준들, 논지들과 충돌하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 기준들을 알고 받아들이며 반박하는, 그러한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의 참여, 그리고 승리 없이는, 유감스럽게도 만화의 사회적 위상을 변화시킨다는 것 같은 커다란 포부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 만화의 사회적 위상에 대하여.
  현재까지도, 만화의 사회적 위상은 낮습니다. "일본은...", "미국은..."어쩌느니 하는 소리들은 대부분 자기비하를 위한 과장이 많습니다(더군다나, 십중팔구는 확실한 근거 없는 '카더라'통신 내지 '먼 발치 목격담' 입니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낫다는 유럽에서도 만화가 권위있는 출판 상을 수상하는 것이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가 사회적으로 위상이 낮은 것은 하나의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 물론 만화의 사회적 위상과 좋은 작품 창작의 어려움 사이에는 일정한 순환적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닭과 달걀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현대 만화는 만화의 다양한 표현적 가능성들을 단지 한정된 연령층과 소재, 주제에 집중시켜 나간 경향이 있고, 어느 틈에 그 결과로서 사회적 위상도 낮아진 것입니다. 특히 '만화는 대중적이다'이라는 장점을, '만화는 단지 대중적이기만 하다'라는 식으로 망쳐버린 것에 대한 책임회피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어떻게든 다시 제대로 맞추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아직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한 셈입니다.

  만화가 사회적인 위상을 확보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걸작'입니다 ('히트작'은 산업은 활성화시킬 수는 있지만, 만화의 위상을 활성화 시키는 충분조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깝게는, 지금도 끊임없이 잘나가는 '학습만화'의 히트작들을 상기하시기를). 그것도, 걸작이 지속적으로 계속 '등장'해야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걸작은 작품 자체로서 걸작인 것이 아닙니다. 즉, 그 작품이 보편적으로 걸작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맥락과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잣대는 만화만의 것이 아닌, 한층 더 보편적이고 큰 것이어야 합니다. '만화의 걸작'이 아닌, '걸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잣대는 물론, 만화가 사회적 위상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안해내어야 하고, 그것을 만화 바깥의 세상에 공개하여 그들의 기준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만화에서 감동을 얻는 방법, 우수한 만화를 판단하는 기준을 계속되는 논의를 통해서 만들어 나아가야 하며, 만화 바깥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보편성의 힘을 획득해야 합니다.

  바깥 세상에서 다른 매체들의 경우 그리고 사람들 일반의 고정관념과의 싸움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만화가 '그냥 막 만든 것이 아니라는' 증명입니다. 이 부분은 만화 미학, 철학, 사회학 등 이론적 정당화 작업이 필요한 부분으로, 연구자들, 평론가들의 몫입니다. 둘째는 좋은 만화가 주는 감동은 다른 매체의 좋은 작품이 주는 감동만큼이나 진정성이 있다는 증명입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직접 증명해야 할 부분입니다; 바로 진.지.한. 감상, 의견교환과 토론을 통해서 말입니다.

즉, 어떤 만화가 감동적이며, 그럴싸하고 멋진 것이라는 주장을 감.성.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당당하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일련의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서 만화라는 양식에 대한 이러한 판단기준이 보편화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만화의 위상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검열을 없앤다고 해서, 산업을 활성화시킨다고 해서 만화의 사회적 위상이 확보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 영화에서는 정반대의 사례도 나타납니다!).

- 만화에 관한 논의에 대하여.
  아무튼, 이러한 담론화 전략을 위해서는,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만화가 어설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당연히 영화니 음악이니 소설이니 하는 선행 주자들만큼이나, 혹은 더욱 더 강력하고 권위있는 내적 논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만화에 대한 논의, 논쟁을 할 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어떤 만화는 훌륭하다'라고 말하려면, '왜?'라는 질문에 '끝내주잖아!' 따위보다는 훌륭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는, '어떤 만화는 쓰레기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씨바, 졸라 편파적이다...'라고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그렇다면 왜 그 만화가 훌륭한지 납득할 만한 근거를 대면서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만화독자들이 전문지식을 갖춘 평론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화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스스로도 만화를 상당히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자신들의 경박함이 만화를 만화 바깥의 세상에서 더욱 우습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지 못한다는 것은 숫제 비극입니다. 논리보다는 고함소리와 빈정거림이, 논쟁보다는 말꼬리 붙잡는 개싸움이 벌어지는 것(아, 물론 욕설, 개싸움 등도 나름대로의 오락적인 효과는 있습니다...저도 그런 구경을 꽤 즐기는 편입니다)이야 말로 '그래, 원래 만화라는 건 저따위 밖에 안되니까 저따위 이야기 밖에 안나오는 거지'라는 반응을 불러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화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음. 이야기는 중구난방으로 천리만리 흘러가고, 논지는 삐걱대고 있습니다. 적당히 마무리를 지어야 겠군요. 제 중심 논지는, 만화의 앞날을 희망하고 싶다면, 만화 바깥 세계의 수준을 무시하고 안쪽으로만 침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논쟁에 있어서는 더욱 더 말입니다. 특정 작품에 대한 비호의적인 평에 대해서 '후련하다', '좆같다'라는 한 문장짜리 리플이 수백개 달려있는 것 보다, 다른 시각 다른 논지에서 바라본,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능한 정도의 완성도는 갖추고 있는, 그 작품에 대한 다른 평이 하나 올라오는 것이 더 '좋은'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르노나 폭력이 예술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어떤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 해서 포르노나 폭력을 통해서 예술성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평을 보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논쟁이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논쟁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분들이 보여주시고 계신 열정이면, 무언가 좋은 것이 탄생하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고 있습니다. 

-- (만약 처음부터 읽으셨다면)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기니까 그냥 쭉 스크롤하고 여기만 보고 계시다면) 그래도 리플 달기 전에 한번 읽어 보시기는 해 주세요...-_-; --
Comment : 2,  Vote : 50,  Read : 1031,  IP : 203.229.55.144
2002/01/11 Fri 00:26:59
날고기 

누가 님께서 현학적인 장문을 한다고 욕을 했나 보네요. 글 말미에 그런 메세지가 있는 걸 보니. 암튼 잘 봤습니다. (김낙호팬클럽회장)

2002/01/11
capcold 

!@#...(사실, 내부에서도 제 장문 성향 때문에 적지않은 구박을 받고 있습니다...ㅜ.ㅜ)

200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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