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 '남자 연예인들 중 누가 과연 진짜 잘생겼는가'를 가지고 사소한 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나는 그들이 논하는 특정 연예인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도 못했고, 그들의 미적 취향에 대해서도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논점 1 : 내가 정말 그렇게 잘 생겼단 말인가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남들이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 인디 밴드의 리더를 '진짜 잘생겼다'고 주장을 하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묘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심지어 그는 요즘 가장 잘생겼다고 일컬어지는 모 아이돌 스타보다 차라리 필자가 잘생겼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나도 인간인지라 일견 흡족한 마음도 생겼지만, 나의 이성이 그 희열을 가만두고 보지 못했다. 솔직히 나의 외모를 판단해보건대 '1000명중의 1명이라도 내가 그 스타보다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독특한 미의식을 만들어냈을까?
나는 그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호불호(好不好)의 개념을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그 반대인' 미추(美醜)의 개념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래서 '정말로 아름답다'(美)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단지 스타일이 좀더 '마음에 들기 때문'(好)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그 생각을 누구도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주관을 무시하진 않지만, '객관적으로는' 그 스타가 나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이야기했고, 그 논쟁은 '과연 객관적인 미인이란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진전되어 갔다. 그리고 그의 소수파적인 의견에 동조하는 누군가가 '아름다움이란 절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며 나의 '객관적인 미인, 객관적인 미'의 이론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때부터 한동안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잘 생기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미학적 논거들을 내놓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왜 연예인이 잘생겼냐 않느냐를 가지고 그런 논쟁까지 벌이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고 싫어함'을 떠나 진정 '아름답고 그렇지 않음'을 밝힐 객관적인 미의식은 나에게는 절대절명의 것이었다. 만약에 그 객관성이 없다면, 비평가, 적어도 비평적 문화 향유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에게 '객관적으로 그 음악이 아름답다' '객관적으로 그 만화가 훌륭하다'고 주장할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개개의 주관적 판단만이 존재 가능하다면, 결국 다수 대중의 의견을 모은 '차트'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될 것 아닌가?
논점 2 : 조금 튀면, 새로운 아트라 잘난 척해도 좋은가
지난 십여 년 동안 문화, 혹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미의식은 좀더 세련되어졌고, 그리고 넓어졌다. 대중 가요와 영화들이 미적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으로 격상되었고, 인디 밴드와 인디 만화들이 기존의 문화적 질서를 뒤엎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세계를 선보여주었다. 촌스럽고 유치하게만 느껴졌던 낙서가 '그래피티 아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고속버스의 뽕짝 메들리가 '한국적 테크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나는 그 모든 비주류적인 행동들이 가진 에너지들을 높이 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한 의문이 계속 솟아올랐다. 과연 저들은 자기들이 누릴 만한 대접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인디 문화가 그 동안 너무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예술적 창의성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반대쪽으로는 조금 '튀기만' 해도 새로운 예술입네 허세를 떨게 되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논점 3 : 한국 만화 판의 허영과 착각
내가 그래도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는 만화의 영역만 이야기해 보겠다. 90년대 중후반, 주류 만화계에 대항하는 수많은 인재들이 인디 만화, 언더 만화 등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했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놀랍고 신선한 에너지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들의 예술적 성과는 '좋은 출발'에 불과했다. 아무도 달려가지 않은 길을 달려가는 그들에겐 당연히 박수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출발에서부터 그들의 '자만심'은 지나쳤던 것 같다.
'주류 만화에 물든 대중들은 몰라 줘도 우리의 만화가 진짜 예술이고, 일본이나 유럽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놀라운 자신감을 표현해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스트리트 페이퍼에서부터 중앙 일간지 문화면까지 순식간에 장악하며 수많은 만화 독자와 만화가 지망생에게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래 이것이 새로운 예술, 새로운 만화구나 라며 키치와 펑크라는 '깨고 튀는' 스타일을 퍼뜨렸다.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그 중에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성과들이 있었다.
그러나 키치와 펑크가 지닌 무질서성은 곧바로 아마츄어의 어설픔과 섞여 들어갔고, 결국 '색다르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미적 가치도 없던 작품들이 인터넷 공간의 엽기 유머 만화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지경에 이르렀다. '언더'와 '인디'라는 멋진 레테르는 아직도 반짝거려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 독자들과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쓸쓸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들의 스타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 작품이 충분한 질을 가지지 못해서이다.
논점 4 : 스타일 예찬, 치기와 불성실과 무능의 변명은 아닌가
지금 젊은 문화 향유자 그리고 문화 창작자들에게 '스타일'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적어도 외모의 면에서는) 주류 아이돌 스타가 절대 잘생겼지 않았다고 과감히 거부하는 그의 판단 역시 외모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가진 총체적인 스타일을 고려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좋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얼굴'만이 아니라, 몸매, 행동, 말투, 향기, 교양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 모든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스타일이든 그 스타일 내에서 미적인 정수에 근접하느냐 않느냐의 질적인 차이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이 음악은, 이 영화는, 이 사람은 이래서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면 반대자는 말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스타일이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의 스타일을 판단할 수 있는가?" 모든 비평의 행위는 중지된다. 모든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자족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스타일'이라는 말로 모든 오류와 치기와 불성실이 용서받는다. 그렇지만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감추어주지는 못한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발견했다면, 이제 '다름'을 넘어선 '틀림'을 분간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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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4, Vote : 121, Read : 5218, IP : 211.237.249.162 2002/07/26 Fri 02:47:29 |
| 무슨 |
출처: 컬티즌 (http://www.cultizen.co.kr/front/ematter.htm?Ematter_code=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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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6 |
| qoo |
동감하는 내용이지만 이상하군요. 이명석이 `모든 비주류적 행동이 가진 에너지를 높이 산` 행적을 본 적이 없어서. 일관되게 무관심 아니면 비판대상으로 경계하지 않았나? 이제와서 높이 샀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실력증명을 못했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건 우습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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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6 |
| 깜악귀 |
음.. 이명석씨는 `네모라미` 쪽을 평가할 때 위에서 말한 `에너지를 높이 산` 평론을 했었죠. 그 이후에 어떤 글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분의 이미지는 역시 일본만화 해설가.. 라는 것이 되어놔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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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6 |
| qoo |
저도 치졸하게 한마디하자면 취향도 아니신 한국 비주류엔 관심꺼주시고 일본만화 해설이나 계속 하셨으면 싶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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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7 |
| DIKY |
같은 어설픔도 의도한 것이라면 다름이 되고 역량 부족에 의한 것이라면 틀림이 됩니다. 틀렸음에도 다른 것이라고 우긴다면 그건 틀린 녀석입니다. 그런 틀린 녀석들에게 질려서 쓴 글이란 걸 쉽게 알 수 있긴 하지만, 정말로 다른 녀석들에 대한 배려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글이 틀려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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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8 |
| qoo |
자꾸 불평해서 죄송하지만 이명석의 비주류에 대한 줄기찬 신경씀이 불쾌한 이유는 이 사람은 지극히 주류매니아이며 주류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용한 `다름`이란것조차 진정 이해하고 받아들였었는지 의심스럽다는거지요. (`틀림`부터 찾아내려고 신경쓰고 있던건 아니구요? 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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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8 |
| ..... |
글쎄요..예술에 다름이 있다는 말은 이해하겠지만 틀림이 있다는 말은 좀...대체 그 틀림이란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인가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틀림`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인데 과연 만인의 기호식품, 예술에서 그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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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8 |
| ..... |
미의 척도를 마치 그래프를 보듯한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미라고 하는 것이 꼭 전년대비 매출변화 그래프를 비교하 듯 명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물론 `미`라는 것이 반드시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적어도 외모와 관련됨에 대해서는 성형학이 일궈놓은 성과들을 무시할 수 없는지라...) 그 밖에 인간의 미가 다종복합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아무리 성형학 적으로 완벽한 눈, 코, 입, 얼굴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서로 다른 요소들과 조화롭지 않다면 전체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없죠.아름다움이란 각 요소별로 완벽함이 아니라 어눌한 곳이 있어도 그것들이 갖는 각각의 조화로움과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있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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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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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왠지 글보다는 글쓴이를 비판하는 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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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0 |
| qoo |
비평가도 비판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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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6 |
| ... |
물론 비평가도 비판대상이 될 수 있지만 댓글들 중 몇몇분의 것은 좀 심한 것 같아요. 글쓴이를 무작정 비판만 하려고 드는 것 같거든요. 너는 저런놈이니까 이런 글은 안어울린다...이런 글은 쓰지도 마라. 라는 느낌만 듭니다...이명석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아주 나쁜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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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3 |
| ... |
물론 비평가도 비판대상이 될 수 있지만 댓글들 중 몇몇분의 것은 좀 심한 것 같아요. 글쓴이를 무작정 비판만 하려고 드는 것 같거든요. 너는 저런놈이니까 이런 글은 안어울린다...이런 글은 쓰지도 마라. 라는 느낌만 듭니다...이명석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아주 나쁜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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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3 |
| 멍멍이 |
전 비평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거하고 거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는 거하고는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어떤 덧달기는 좀 부당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술의 절대적 그리고 상대적 미의 기준에 대해서도 별 생각없지만 확실히 어느 한 부분 잘못 수술된 성형미인이 있다면 딴 부분이 세계 최고로 잘생겼다고 해도 그 사람 잘생겼다고 말할 사람 팍 줄어듭니다. 그렇지만 아무데도 세계 최고로 잘생기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사람들 마음에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얼굴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라고 말할만 합니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성이 언제나 같은 취향으로 드러나진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에 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먹히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하고 왜 같이 삽니까. 그러지 않으시려고 한다면 몰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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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4 |
| pinksoju |
이제 `다름`을 넘어선 `틀림`을 분간해내야 한다. 어이없다...나름대로 먹물 좀 먹었다는 분이...그것도 철학인가 미학 전공이 아니셨던가...다름과 틀림은 당연히 퀄리티 문제다...퀄리티의 질적인 부분의 충족 사이에서 다름이 인정되는 것이며...그래서 주류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가...물론 나는 설사 오류와 불성실과 치기를 스타일이란 말만으로 용서해줄 만큼 사람들의 눈들이 그만큼 멍청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 가능성들에 대한 목마름을 알기나 하는 것인가...눈들이 멍청해지는 이유는 스타일의 차이라고 부를만큼의 작품의 양조차 충족되지 않는 비약한 현실 때문이다...모든 작품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진주가 나올 수 있는 것이지 가능성조차 차단된 세계에서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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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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