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비평사이트 두고보자


976  6/66 0  관리자모드
baumtest 추천하기 수정하기 삭제하기
파일 : tokyopopad.jpg (81KB) tokyopopad.jpg (81KB)   Download : 154
미국에서 만난 `Manhwa`
제가 사는 곳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이 도시에서는 가장 큰 만화서점인 "Chicago Comics"라는 곳이 있습니다.
가장 크다고 해봤자 겨우 40평 남짓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소규모 출판사의 작품부터 외국의 작품들까지 비교적 다양한 품목을 갖추고 있는 곳이죠.
이 곳에서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진열칸을 늘려가고 있는 부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Manga" - 일본만화 코너입니다.
그 곳에 처음 들렸을 때, 한쪽 벽구석에 알 듯 모를 듯 숨어 있었던 일본만화 코너는, D.C나 Marble Comics의 수퍼 히어로물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로 커져서, 이제는 그 가게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서점 체인인 Borders와 Barns & Noble 등지에서 "Ghost in the Shell", 혹은 "Revolutionary Girl Utena" 등의 일본만화 번역본을 보는 것도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Cartoon Network"에서 해주는 "Cowboy Bebob"에 빠져있는 청소년들, 가장 좋아하는 cartoon character가 누구냐는 제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Dragon Ball Z"의 "Vegeta"라고 대답하는, 열 살짜리 보스니아계 꼬마를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Toys 'R' Us 장난감 가게 한 쪽편에는 "Wing Gundam series" 프라모델이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사실, 미국사람들이 일본만화(좀 더 정확히는 애니메이션)를 처음 접한 것은 꽤 오래 전 입니다.
'독수리 오형제'는 "Battle of the Planet" 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전함 V호'는 "Star Blazers", '달려라 번개호'는 "Speed Racer", 그리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는 '기갑창세기 모스페다' 등의 몇 작품들과 섞여 미국 방송 실정에 맞게 "Robotech"이라는 이름으로 각색되어 나온 것은 여러 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Harlock Saga"라는 이름으로 출시 된 레이지 마츠모토씨의 '니벨룽겐의 반지' DVD가 있습니다.
이것의  special features 중 "Behind the Scenes"란을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영어 더빙판의 '하록' 역을 맡았던 성우 매트 호버만씨의 인터뷰 중에, 인터뷰어가 '지금까지 본 "Anime"가 있느냐'고 묻자, "그 큰 우주전함이 나오는 그거... 이름이 뭐였더라... 네? '스타 블레이져스(우주전함 야마토)'라고요? 그걸 재미있게 봤어요"  "...거기에 당신이 연기했던 하록이 나온 적이 있었던 건 아세요?"  "(눈이 휘둥그레지며) 정말요? 농담하지 마세요..."
그들도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에니메'에 어느정도는 노출이 되어 있었던거죠.

이제 시간이 흘러 맥도날드 "Kid's Meal" 에 딸려 나오는 장난감이 '포케몬'들로 뒤덮이는 세상이 왔습니다.

얼마 전, 일반서점에 잡지를 사러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망가' 코너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청춘 남녀 한 쌍이 있더군요.
그 중 금발의 한 아가씨가 남자 친구에게 신경질을 내며 말합니다.
"도대체 '소녀혁명 우테나' 2권은 언제 나오는 거야!  이 동네 서점은 정말 구려!  엘에이만 같았어도..."
두 달전에 열린 "Chicago Wizard World" (만화)컨벤션에 갔을 때 일입니다.
한 '순정' 만화 틱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아마추어 여성작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웬 얼빵하게 생긴 청년이 부쓰로 다가와서 "도키메키 메모리얼 2" 게임 CD를 들이대며 말합니다, "여기 있는 얘 좀 그려주세요"

이러던 어느 날, 글 맨 위에 이야기 해드렸던 만화서점의 망가 코너 한 구석에서 이상한 만화책을 한 권 보았습니다.  'XX' - 'XXX프로덕션' - '도서출판 XXCOM'
혹시나 해서 펴 본 그 만화는 분명 제가 십 년 전쯤 '만화방'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대본소 스타일'로 그려진, 영문으로 번역 된 "만화" 였습니다.
그걸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느낀 감정은 실로 기묘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느낀 솔직한 심정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만화를 '출판사'까지 만들어서 이 먼 곳까지 팔아넘긴 것일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은 정말 이 곳에서 이 만화가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나 따위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다른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 뒤로, 그 서점에 갈 때마다 예의 그 "만화" 책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책은 제가 처음에 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악성재고'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만화 서점에서는 (앞에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외국에서 들여온 만화들도 팝니다.
주는 일본, 프랑스 등지의 만화들이지만, 대만이나 홍콩 등지의 동아시아권 만화들도 '망가' 코너에 같이 섞여서 간혹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홍콩, 대만)만화 들은 대개 뚜렷한 자기 세를 만들지 못한 채, 어느 날 조용히 재고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의 'XXX프로덕션' 관계자 분들은 이 'XX'란 만화를 여기에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이 'XX'로 '히트' 칠 자신있다" 라는 생각일까요?
"우리 만화는 '미국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라는 선전을 어딘가에 덧붙여서 목에 한 번 힘주고 다니기 위함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나라의 '참담한' 만화현실 속에서 다른 방면으로는 도저히 '탈출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던져 본 마지막 주사위인가요?
어쩌면, 이분들은 '무궁한 한국만화의 발전을 위해', 자비를 탈탈 털어 출판사까지 만들어, 한국만화를 세계에 홍보하는 '전도사의 사명'을 띄고, 밑지는 장사도 불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한 사람의 독자에 불과한 제가, 과연 어떤 사정으로 이 분들이 이런 일을 시작하신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는 진열되어 있던 다른 홍콩, 대만 만화들을 넘겨보면서, 제 지갑을 열어 그것들을 사 본 적이 단한 번도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아하, 대만(혹은 홍콩) 만화는 다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은 꼭 들더군요.

'XXX프로덕션' 관계자 분들이 자신들의 작품으로 인해 흥하건, 망하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혜성처럼 나타난 괴작 'XX' 때문에, 한국의 다른 작가 분들이 도맷금으로 넘어가는 사태는 분명 옳은 일이 아닙니다.
가뜩이나 파이가 작어져서 허덕인다는 한국 만화계.
여기서, 이 땅을 뛰어넘어 시장 자체를 넓혀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신 작가 분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지금 서있는 이 곳에서 "신토불이"라도 한 번 외쳐 보시겠습니까?

이 곳 미국에서도 '망가'의 영향을 짙게 받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하나 둘씩 보입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쉽게 뜨이는' 영향이라면 아무래도 망가 스타일의 큰 눈과 작은 코, 입 등으로 그려진 얼굴의 - 소위 "Manga cute" 스타일의 - 캐릭터들이지요.
하지만, 불행이도 이들의 '망가 스타일'은 우리 눈에 보기에도 허접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거의 일방적인 '망가'와 '애니메' 세례를 받고 자라난 우리들의 눈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지금 껏 본 바로는, 일본 작가들 외에 '망가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작화를 해낼 수 있는 작가들은 한국 작가들 뿐입니다.
어쩌면, 이 곳에서도 본 궤도에 오른 '망가 열풍'에 편승해서, 시장의 틈을 헤집고 '유사 망가'를 만들어 내어, 90년도 초반의 "100만부 신화"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다시 한 번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은 "검열"의 족쇄없이 이 곳으로 밀려드는 '오리지널' 일본 만화는 둘째 치고, 언제까지 '미국 망가 작가'들이 '허접한' 실력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들에서 진화 한 일본 '망가 스타일'의 캐릭터들, 그것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역으로 이들이 데스카 오사무의 캐릭터를 더 진화 시킬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혹시 안 해보셨는지요?
그들은 한국의 만화 작가와 비교해서 훨씬 나은 출판 환경, 균형 있는(거기다 양적으로 어마어마 하기까지 한) 시장, 그리고 '미국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일본 만화가 가지는 강점은, 그게 단순히 "Manga cute" 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요?
이 곳의 메이저 출판사들은 그걸 빨리 눈치채고, 그 플러스 알파를 자신들의 작품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정리 하면서,
여러분이 "저 시건방진 X끼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배터지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 라는 식의 말씀을 하시는게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쓰시는가는 순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곳에서는 "X서 대여점" 따위는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요술나라의 삐삐"에 등장하는 "대마왕"처럼 여러분의 앞길을 막는 X판 따위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X소년 보호법" 따위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출판사들이 항시 "새로운 재능"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맞아가며 배우는 기이한 예술'이라 할 지라도.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던, 혹은 그렇지 않던, 그 기회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P.S.
이곳 사람들이 잘 아는 한국 제품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들어온지 십 오년이 되도록 시시껄렁한 코미디 프로에서 아직까지 놀림감이 되고 있는 XX 자동차입니다.
다른 하나는 들어온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꺼내들면 주위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는 XX 휴대용 전화기 입니다.
그 차이점은 도대체 어디서 생긴 걸까요?

* 첨부한 이미지들은 글 내용 중 언급한 작품 "XX", "XXX프로덕션", 그리고 "도서출판 XXCOM"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길고 난삽하기 만한 글을 여기까지 꾹 참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Comment : 4,  Vote : 209,  Read : 4674,  IP : 172.169.82.164
2002/09/10 Tue 17:24:47
capcold 

!@#...음. 민감한 부분, 용기있게 건드려주셨군요. 야컴의(아아...죄송합니다, 본문에서는 가려주셨는데...) 미국시장 도전기는, 음. 쫌 이야기가 깁니다. -_-; 언제 한번, 한국만화의 해외 진출기를 제대로 분석을 해드리기로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2002/09/10
곽경신 

그 유명한 야컴의 첫 미국진출작들....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알지요...-_-;;;

2002/09/12
오사카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이야기로군요.

2002/10/31
모과 

요즘은 완전 미국식 그림으로 미국시장에서 연재하는 작가분들도 꽤나 있는 걸로 압니다. 김재환선생님의 메카닉물은 판매순위에도 올랐었다는 말도 있고... 하지만 바쁜 만화가들이 직접 현지시장에서 활동할 수 없음을 악용해 이익의 상당한 부분을 중계인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더군요. 결국 자신이 직접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 이상 현재는 미국시장 진출이란 좋은 허울을 가져도 수입은 한국에서 연재하는 것보다 못한 실정이라고 합디다...

2002/11/30
목록보기 게시물 작성하기 답글쓰기


   게시판 이용에 관한 몇 가지 ...  dugoboza   2002/03/11 1628  152059 
1516    올바르지 않다 아니다는 지금 말할 문제가 아니죠 [17]  halim   2002/12/09 136  3649 
1515    소설가 장정일이 만화가 이현세에게 [1]  깜악귀   2002/12/09 233  3733 
1513    개념을 재규정하기 [5]  halim   2002/12/08 155  2864 
1511    反신파 ... 反소시민? [8]  halim   2002/12/08 162  2873 
1506    PALM, 신 타미키의 反신파, 우리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깜악귀   2002/12/06 146  2830 
1503    재밌다...그리고. [2]  조이   2002/12/04 117  2831 
1489    [토론제안] 어떤 정부냐와 어떤 만화판이냐 [7]  깜악귀   2002/11/26 146  2975 
     Re: 대선후보 문화지수 by 한겨레 [1]  횰   2002/12/08 154  2640 
1419    대장장이와 목수, 건축가의 관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   .....   2002/10/15 196  2847 
1367    절판된 만화를 비싸게 사는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shincomic   2002/09/19 165  3709 
현재 게시물    미국에서 만난 `Manhwa` [4]  baumtest   2002/09/10 209  4674 
1340    대여료보다 더 싸게 만화책을 팔 수 있을까? [15]  tepi   2002/09/07 134  3649 
1314    20자 별점   시내마로   2002/08/18 158  3282 
     제 생각입니다. [2]  nomodem   2002/08/21 176  3277 
1313    만화저작권보호 협의회?? [2]  wangmul   2002/08/16 158  3407 
목록보기  이전 목록보기 다음 목록보기
 [1  [2  [3  [4  [5  6   [7  [8  ... [Next]   [66] 
게시물 작성하기
EZBoard by EZNE.NET / kissofgod / skin Ez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