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형상화된 이야기'라는 라까생이 내린 만화의 정의를 수용합니다.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정지화상으로 내러티브 또는 플롯을 표현하는 매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만화라고 부르는 캐리커처나 큰눈을 한 인물 삽화를 만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한칸 그림이라도 내러티브가 있다면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대사가 있다면 거의 100%만화라고 봐야겠지요. 물론 이 정의의 경계선 상에 걸쳐 있는 모호한 영역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분류는 점이 지대를 경계로 하며, 이것이 만화의 정의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음은 내러티브, 플롯에 대한 참고 글입니다.
1. 내러티브의 정의
내러티브는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는 오직 문자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이 언술이 영화에서는 이미지, 대사, 문자, 음향 그리고 음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는 이야기를 조직하기 위하여 채택되는 전략, 약호와 관습을 (미장센과 조명 등도 포함해) 지칭한다. 흔히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실제 이보다 더 큰 범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2. 내러티브의 기능
어렸을 때 우리는 동화와 신화를 배우고, 커가면서 단편적 이야기, 소설, 역사, 그리고 전기 등을 읽는다. 유대교나 기독교적 전통은 성경과 율법(내러티브의 방대한 집합)을 통해서, 그리고 과학적인 발견은 때로 실험자의 시도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제시된다. 또한 우리 주변의 여러 문화 형식들 (소설, 연극, 신화, 회화 등) 도 이러한 이야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잠을 잘 때도 우리는 작은 내러티브의 형태로 꿈을 꾸며, 또한 이야기 형태로 그 꿈들을 기억해낸다. 내러티브는 이처럼 우리들의 삶 자체 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할 경우, 대부분 그것은 한편의 내러티브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내러티브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조직하고자 하는 전략을 ‘현실’ 세계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영화를 의미하며, 관객은 영화를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신호를 끄집어내고 정보를 상기하고 무엇이 다음에 나올 것인가 기대하면서, 결국에는 영화 형식의 창조에 참여한다. 영화는 호기심, 서스펜스, 그리고 놀라움을 유발시킴으로서 특정한 기대를 형성한다. 관객은 또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특유한 예감을 전개시키고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거나 속이는 임무를 맡는다. 결말은 또한 관객에게 가능한 한 이전의 사건들을 재검토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보도록 신호함으로써 관객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3. 내러티브에 관한 연구
영화의 내러티브에 관한 연구는 1920년대 민담에서의 행위와 내러티브 기능에 관한 블라디미르 프롭의 연구와 1950년대 신화의 구조에 관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의 영향 아래에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영화이론가들에게 있어 내러티브 연구의 중요한 초점은 헐리우드 -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고전 내러티브 영화 - 에 있었다. 이 시기 헐리우드 영화에 있어서의 내러티브는 대단히 표준화된 패턴의 집합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 패턴은 ‘질서 / 무질서 / 회복’ 의 삼항도식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현대 영화에선 이런 단순한 플롯에서 벗어난 새로운 패턴 -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같은 - 이 종종 나타나기도 하는데, 아직도 여전히 위의 기본 패턴은 유효하다.
4. 구조주의 서사학 (Narratology)
구조주의 서사학(narratology)은 마치 내러티브의 문법을 찾듯이 다양한 내러티브에 내재한 공통된 구조를 찾아내려 했는데, 최근까지 이 접근법을 고수하고 있는 이론가들은 제라르 쥬네트의 작업(1980)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쥬네트는 세 종류의 내래이션을 명료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내러티브(narrative), 디제시스(diegesis), 내래이트하기(narrating) 가 그것이다. 먼저 그는 ‘내러티브’를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 하려는 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다. 그리하여 영화에 있어 내러티브는 내러티브적 진술로서의 영화, 내러티브 텍스트로서의 영화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의 두번째 용어인 ‘디제시스’는 특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건의 연쇄와 그 사건들의 다양한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디제시스는 스크린 위에 투사되는 이야기와 스토리 라인, 시각적 미장센 모두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내래이트 하기’는 언술행위를 가리키는데, 영화에서의 말하는 행위, 즉 내러티브에 동기 부여하는 캐릭터들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하면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내래이트 되고 우리는 내래이트 하기의 행위를 목격하는 것이다. 사실 구조주의 서사학에 관한 이러한 쥬네트의 분류가 처음엔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각 용어에 대한 확실한 개념 이해가 선행된다면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참고 문헌]
1.영화 예술 (데이비드 보드웰, 크리스틴 톰슨/ 주진숙, 이용관 역) - 이론과 실천 2.영화의 이해 (L. 자네티/ 김진해 역) - 현암사 3.영화학, 어떻게 할 것인가 (자끄 오몽 外/ 강한섭 역) - 열린책들 4.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수잔 헤이워드/ 이영기 역) - 한나래
*플롯: 간단하게 ‘줄거리’라고 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간적 경과에 의한 줄거리의 전개를 뜻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작품의 주제를 증명하는 데 관련된 등장인물 등의 내적(內的) 인과관계를 추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플롯을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 이래 작품의 ‘묘사’에 선행하는 극적 효과의 중요한 지주(支柱)로 삼아왔다.
출처: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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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6, Vote : 163, Read : 3037, IP : 211.43.78.5 2003/05/19 Mon 13:04:58 |
| 깜악귀 |
제 생각 : 내러티브를 함축한 형상화, 혹은 내러티브 그 자체인 형상화.. 가 만화의 최소단위로 이름지어질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형상화 행위가 일단 내러티브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면에서 무용한 정의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연속성... 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하고요. (연속성은, 내러티브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방법이죠) 회화는 내러티브, 혹은 연속성을 `응축`하려는 시도이고, 만화는 내러티브, 혹은 연속성을 `전개`하려는 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응축과 전개는 당연히 서로 꼬리를 문 뱀과 같은 관계이므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응축은 전개를 내포하고 전개는 응축을 내포합니다. 한 편의 회화를 보면 머리 속에서 웅축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느끼고(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정물화에서조차!?), 만화를 보면 컷과 컷 사이의 응축을 느끼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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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9 |
| 깜악귀 |
저는 `만화`라는 말은 예술매체적 정의인 만큼이나 문화적 정의이므로, 전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만화의 예술화라는 명제에 지나치게 매달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회화`라는 것도 문화적 정의라고 생각하고, 만화는 결국 특정표현방법을 둘러싼 문화적 관습이겠지요. 사실 요즘 세상에 매체간을 뚜렷하게 구분해주는 정의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다른 매체들은 해체의 쾌감을 맞보려는 중인데(그게 사도의 쾌감이건 마조의 쾌감이건) 만화는 아직 사춘기적 고민에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난 도대체 무엇일까? 난 왜 태어난 거지?` -] 그러니까 해결방법은 여러가지 있겠다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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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9 |
| 깜악귀 |
요컨데 한 칸이 만화가 아니냐...는 내러티브와 연속성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고 그것은 타당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정의는 사진과 회화를 모두 포괄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진과 회화에서 내러티브와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칸 만화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요. 이 경우에 그것을 만화로 부르냐냐 회화로 부르느냐는.. 아마도 `만화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그려졌느냐`에 의존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화적 관습에 의존한 상례적인 방법이 현재로서는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만화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데에도 동의합니다만.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실존을 해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정의를 원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가 만화의 범용적인 사례인 comics로부터 만화의 정의를 도출해낸 시도에 찬성합니다. 그 결과로 한 칸 만화를 도외시하는 결과가 나왔다 해도 말이지요. 별로 정리 안 된 생각입니다만, 한 번 풀어보았습니다. 용어에 혼란이 있거나 조금 모순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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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최 |
분류는 실용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학자들이 더 엄밀하고 일관성있는 분류의 기준을 찾아내려는 것도 문화적 관습에 의존한 분류방법이 벽에 부딪힐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문화적 관습에 의존한 상례적인 분류방법이 무엇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았지 않습니까?(벌써 한칸만화를 어떻게 분류할지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르지요.)만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면 관습에 기초를 두되 최대한 일관성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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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최 |
님처럼 회화에도 내러티브가 있다고 얘기한다면 서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혼돈에 빠질 것입니다. 내러티브의 뜻이 너무 확장되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내러티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표현 매체 중 서사장르라고 묶이는 것들(서사시,소설,연극,영화 등)에서 찾을 수 있는 내러티브만 내러티브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합니다. 만화에서 찾을 수 있는 내러티브, 플롯도 여타 서사장르에 유비되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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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음...사춘기적 고민에 골몰이란 말에...상당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깜악귀님이 지적하신 만화 내의 실용적 분류 방식 외에, 만화 영역 자체를 보았을 때, 지금 역시 만화를 예술화 시키려는 시도나, 여성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는 활동들처럼 마이너리티 영역들의 생존을 위한 고민 역시 동시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회화의 경우, 모더니즘이 이러한 매체 검증-생존의 시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일반적 시각입니다. 적어도 100년 전부터 60년대까진 말이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만화는 많이 늦어서, 이것 저것 전부 다 해도 모자를 만큼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만화계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 없어서 압박을 해오고 있으니, 그에 대한 존재 해명과 동시에, 현재의 예술 영역들의 상황-호환들까지 설명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실용적으로 필요한 분류만큼이나, 만화는 끊임없이 그 매체의 의심을 받아오고 있다가, 심지어, 생존 위기가 소멸할 상태까지 이르는 위기를 계속해서 맞이하는 상황이었죠. 저희 나라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여기 계신 분들 중 상당수도 그에 대한 위기감? 혹은 사명적 의식에서 출발하신 분들도 많지 않나요?(나만 그런걸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때 스콧의 이어지는 제안- 만화의 미래는, 그러한 위기감에 대해 살아 남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의 제안이 되는 것이죠. 산업으로서의 침체, 예술 혹은 매체로의 생존 모색…이러한 상황에서 사춘기적 고민과 현실 세계 해결책은 동시에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맥클루드를 비롯한, 많은 이론가들의 애매모호한 정의의 영역과 모순들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만화 고유성을 해명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낳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홈통이론은. 마이너리티의 존재 해명을 위한, 특수성을 요구하는 다른 주류적 매체들에게 있어 그 고유함으로 극찬을 받았고, 그로 인해, 어쨌든…만화의 숨통은 전보다 조금은?! 트였습니다. 적어도 어디 가서 만화의 특수함과 고유 장치에 대한 해명 꺼리 한가지는 늘었던 셈이죠. 영화의 예술 검증 역사도 비슷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영화의 경우, 타 매체에 대한 해명으로 100년을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다르가 열심히 뛰었죠…한 매체 관계자 분은 아직도 영화가 의심 받고 있다고 얘기하시더군요…저에겐 배부른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만-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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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최-님의 구조주의적 서사학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해체되고 분열되고 지멋대로들 접속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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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만화가 무엇이냐...역시 사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화가 무엇이다-를 정의내리기 앞서서 만화 매체 특성들에 대해 먼저 최대한 찾아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화의 특성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나가는 만큼이나, 만화에 대한 저변과 영역들을 확대시킬 수 있겠지요. 사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만화가 안될 이유는 뭐가 있겠습니까..ㅡㅡ;; 다닥다닥 나열된 도시의 건축물들의 창문에 스누피 만화를 한 칸, 한 칸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디자인이자, 건축이자, 만화가 될 수도 있겠죠..뭐 그 행위를 캠으로 돌려버리면 회화적 퍼포먼스도 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독립영화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무엇이냐는 예술 매체의 의미부여로 인한 논쟁은 이것저것 다 혼합되어서 알 수 없는 요즘같은 때에 참 곤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만화에 대한 인식/바이러스를 유포시켜서 생존하게 만드는 일, 혹은 제국주의든 종교든 이리저리 확산시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회화나 조각, 디자인들의 내러티브를 만화로도 보게 할 수 있는 마인드따위 말이죠...왜냐면 만화의 그 끊임없는 가능성은 벌써 온라인에서도 검증되고 있듯이 그 원류의 순수성으로 인해 무한한 것이며, 지금으로써 어떤 가능성에 대한 차단은 오히려 만화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깐요. 스콧은 그랬기 때문에 만화 예술 정의의 영역을 어마어마하게 넓게 잡았던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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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앗...마지막 문장의 만화 예술 영역-]예술 영역 입니다.. 갑자기 스콧이 `메롱`하는 정의론 말이죠...ㅋㄷㅋ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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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깜악귀 |
사실 만화가 무엇이냐는 만화가들이 무엇을 만화로 불리우게 하느냐.. 하는 만화가들의 실천에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실천을 외면하지 않는 독자도 역시 필요하고...(그런 것도 제가 생각하는 문화적 관습에 속합니다) 담론만으로 해명하려고 하는건 오만이겠죠. 물론 담론은 중요하고, 그러니까 저도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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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최 |
만화가는 어떻게 만화가가 되죠? 순환적 정의는 배척되어야 합니다. 만화의 정의는 분류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분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 목적에 잘 이바지할 수 있는 만화의 정의를 찾고자 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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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그럼 최종 목적은 데이터베이스 구축입니까? 데이터 베이스 구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이것이야말로 순환론적 정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만화의 정의를 찾는 것은 중요하지요. 하지만 무엇이 정의이며 분류해내기 이전에, 저희는 만화의 특성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만화가 어떤 서사구조를 가지며, 어떤 방식으로 읽히는 것인지조차 거의 어떤 시도들도 거의 전무합니다. 서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의 경우, 스콧이 처음 했을 뿐이며, 스콧의 만화의 이해는 말그대로 거대한 문제제기이지 무엇을 설명해주는 해법책이 아닙니다. 결국 만화의 정의, 존속과 영토 확장의 문제가 목적이 된다면, 분류해내서 따로 떨어뜨리는 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성급하게 만화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하기엔, 우리가 아는 지식이 너무 없기 때문이죠. 정의의 시도역시 물론 끊임없이 필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탐구가 이렇게나 미약한 상태에서 그것만으로 분류해내기엔 성급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단지 그것은 만화를 분류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능성 차단 자체는 오히려 만화 자체를 가두어두는 수가 있으니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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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최 |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하고 이용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요. 정의내리기와 분류가 만화에 대해서 아는 것을 도우면 도왔지 가능성을 차단하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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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0 |
| pinksoju |
네...돕지 않는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시도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노력과 인식을 닫은 채 잘 알지 못한채 미리 내려버리는, 섣부른 판단만으로 잘못 굳어진 불변(하다고 믿어지는!!)의 화석들은 참 깨기 힘들지요. 님께서도 스콧이 한칸만화의 가능성을 차단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으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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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1 |
| 깜악귀 |
순환은 단지 순환에 그치지 않습니다. 순환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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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1 |
| 愚公 |
이리저리 분류하다보면 언젠가 뒤돌아보며 `아, 이렇게 분류되는구나` 하지 않을까요. 영화의 장르분류도 누군가 혼자 정리한 것이 아니지 않나요. 덕분에 시간이 지나며 `분류`는 변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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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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