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님하고 토론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제작비건, 제작편수건, 제작뽕수건 뭐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대 영화로 대결을 한다는 전제하에 쿼터제 폐지는 고려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규모의 경제학을 깔고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규모에 걸맞게 거창한 '배급망'과 '상영관'이 필요합니다. 왜 이번에 국산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죽 쒔을까요? '배급망'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어렵게 상영관을 잡아도, '낮'에만 틀고, 관객이 들만한 저녁 시간에는 다른 '영화'를 틀었습니다. 별 수 있습니까? 상영관은 계속 줄어들고, 마침내는 개봉 2주만에 문 닫고, 일부 극장들에서 겨우겨우 연장 상영해줬습니다. 오늘이면 수도권에서 마지막 극장 역시 종영합니다.
쿼터제는 영화대 영화의 대결을 보장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마치, 현재 신문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고 지역별로 시범 시행되고 있는 공동배급시스템과도 유사한 효과가 있습니다.
매우 많은 구독자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신문 배급소를 설치할 수 있는 일부 (조폭) 언론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신문사들은 그날 나온 신문 제 때 가정에 배달하기도 힘겨운 실정입니다. 애시당초, '경쟁'이 될 수 없는 상태인 겁니다.
국내 영화와 헐리우드 영화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배급시장을 누가 먹겠습니까? 제작비 충당하기에도 급급한 국내 영화와 헐리우드 대자본 둘 중 누가 배급시장을 잠식하고, 상영관에 걸 영화들의 리스트를 결정하겠습니까? 애시당초, 누가 시장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끔 방치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쿼터제는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벨트일 뿐입니다.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비율을 조정하는 것 자체가 쿼터제의 전부가 아닙니다. 돈놓고 돈먹는 '독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 쿼터제입니다. 지금도 국내 영화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라고, 자기들 중에서도 박터지게 배급망 놓고 싸우는 중이고, 이 와중에 괜찮은 영화들은 제대로 상영될 기회도 못잡고 영사기 내리는 판인데, 여기에 쿼터제까지 풀어주자구요?
자유 경쟁 말은 좋지만, 약자와 신참이 자유롭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유경쟁'입니다. 약한 놈 밀쳐놓고, 신참 갈구는 건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텃세'라고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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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4, Vote : 104, Read : 4545, IP : 61.104.117.100 2003/06/20 Fri 21:36:58 |
| 최 |
우선 스크린 쿼터는 내 관심사가 아님을 밝히며. 유통을 가치의 원천이 아니라고 믿는 원시인의 글이군요. 유통-배급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닦아 놓은 터에 약자가 무임승차하려는 것이야말로 뻔뻔한 짓이지요. 더욱이나 정치권력의 힘을 빌어 남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는 짓은 기본권 침해입니다. 극장주가 극장을 경영하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습니까? 신문공동배급제를 지원하는 정부를 돌아가게 하는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습니까? 남의 재산을 날로 먹으려는 도둑놈 심보는 버리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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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iamX |
제가 먹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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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제가 쓴 글에서 `약자`라는 표현은 `신참`으로 바꾸지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미 형성된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자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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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스크린쿼터는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극장주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배급망이 필요하다면 새 유통망을 개척하든지 기존 배급망에 자본을 투자하든지 해야 합니다. 흔히 영화인들이 쿼터제 폐지의 부작용으로 드는 `끼워팔기`는 공정거래법의 영역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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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흐음 |
쿼터제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 된것이 아님을 미리 발힙니다. 불이익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미 형성된 부로 인해서 가난한 자가 못사는 일 역시 당연한 일이겠네요. 그것이 당연합니까? 신참이 어떤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와도 그것을 유통망으로 인해 풀어놓지 못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이 왜 나쁘죠? 텃세는 결국 물을 고이게 만들고 고인물은 썩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정부의 지원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면서까지 지키려하는 것의 가치를 너무 우습게 아는 것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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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기존의 스크린쿼터가 좋은 영향을 끼쳤음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산업 보호의 논리가 재산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영화산업을 보호하자고 더 큰 경제적 손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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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당연합니다. 님의 말대로라면 저축과 투자는 금지해야 하는 일이겠죠. 저축과 투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신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과거의 경제적 성취를 미래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일회적인 소비만이 판칠 뿐이며, 그런 사회가 어떤 미래를 맞는가는 명백합니다. 그리고 유통망은 공짜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유통망에 투자한 자가 투자의 과실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유통에 투자합니까? 정부가 다 해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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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시내마로 |
흐음님 이미형성된 부로 인해서 가난한자의 불이익을 얼마나 줄일수 있느냐의 방법으로 신문공동배달제같은것은 통제의 한계를 넘은 위험한 방법입니다. 최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재산권 문제도 있겠지만 정부주도로 한다는 자체로도 많은 문제가 있을수 있습니다. 더구나 몇몇방송사가 독점하는 공중파의 방송분야하구 형평성도 문제가 있지요. 제생각은 이렇습니다. 진정으로 공동배달제를 할려면 방송분야역시 개방하고 현제 공동배달제로 손해를 볼 언론사들에 최소한 재산상 보상을 한다음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어느시점에서 완전히 손땐다는 보장도 필요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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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iamX |
공동배달제 시행 이전에 부당한 이익을 본 언론사들의 `그릇된 이익`은 어떻게 여태껏 손해를 본 언론사들에게 나눠줘야 좋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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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부당한 이익이라는데 도대체 뭐가 부당한 이익이라는 것이지요? 기존 언론사가 강도질이라도 했습니까? 탈세는 이미 표적 수사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엠비시나 대한매일같은 정부소유 언론사들은 얼마나 부당한 이익을 토해내야 할까요? 그 언론사들이 독재정권 하에서 했던 일은 조중동과는 정도가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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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0 |
| 최 |
아! 그리고 위에 흐음님에게 대답합니다. 정부야말로 한계없는 텃세를 자랑하는 조직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를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 방법은 이민 뿐이지요. 경쟁에서 거의 완전하게 면제된 정부에게 시장의 텃세를 조정하라는 건 늑대를 피해서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짓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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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시내마로 |
부당한이익? 그릇된이익? 이분 또 요상한 경제 논리를 펴는군. 과거 독과점방지하는 법이 없을때 본 이득을 전부 부당한 이익이기때문에 다내놓아야 한다는 논리가 어디있죠? 현실의 좋은법도 앞으로 언제 악법이 될지 모르는겁니다. 그법이 악법이 되는순간 과거의 이윤을 신법에 소급적용해서 물어내야 되겠군요. 경제를 도덕이나 윤리로 따지려 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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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시장에서의 텃세는 기존 게임 참가자가 그 시장에 투자한 만큼의 당연한 권리임도 분명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불법적이거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진입장벽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극장주가 극장에 어떤 영화를 거는지 결정하는 것은 불법적이지도 않고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는 일도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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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만일 미국계 영화사들이 영화관에 끼워팔기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처리하면 됩니다.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멀티플렉스는 블록버스터들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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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3배 이상의 성장을 이루며, (어떻게 이루었을까?) 부동의 1위의 신문이 된 좃선일보. - 이 좃선일보가 아직도 1위라는 건 좃선일보가 지지하고, 좃선일보를 지원하는 자들이 우리나라의 `메인스트림`이라는 거겠죠.- (SamSung) 재벌 옹호만을 일삼는 중앙일보. 이미 망해야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반개혁` 구호 하나만으로 여지껏 버텨오고 있는 `동아`일보. 이야 부당한 이익을 취한 언론사.. 대충 세개만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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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그러니까.. 얘기가 겉돌지 않습니까. 애시당초, 저를 비롯한 스크린쿼터 축소/폐지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정적으로 영화관에 `헐리우드`의 쓰레기들의 폭격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행복한 `백인`들이 희희낙락 대는 꼴을 보는 건 뉴스에서만으로 족합니다. `블록버스터로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어쩌고 하는 것 자체가 반대하는 이유라는 걸 모르겠습니까? 왜 우리가 우리가 사는 나라의 풍경이 아닌, 미국의 풍경이 담긴 영화를 봐야 합니까? 아니, 보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본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배급망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극장들은 배급망을 타고 온 작품 중, 경쟁력이 있는 작품을 골라서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게 됩니까? 끼워 팔기요? 하~!!! 극장이 영화를 고르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힘있는) 배급사들이 극장을 고른단 말입니다. 스크린 쿼터 폐지해서 돈 많은 배급사가 초기에 돈 쏟아부어서 전체 배급망을 쥐고 흔들게 되면, 흥행 이익이 `배급사`로만 쏠리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게 `유통`을 통한 가치의 획득입니까? 웃기지 마십시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게 `유통`의 묘미입니다. 독점해서 자기네들 영화만 트는 환경 만들고, 관객들은 원치도 않는 영화보며 돈 버렸네하고, 극장은 극장대로 울상이고.. 이런 악순환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것이 스크린 쿼터 축소/폐지의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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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소수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싶으면 DVD를 사서 보세요. 유통이 손해보면서까지 그들의 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미국놈들 얼굴 보기 싫으면 혼자 미국 영화 보지 마세요. 남의 자유를 당신 뜻대로 제한하려 들지는 말고. 그리고 공정한 경쟁 운운하는데 배급망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으면 직접 자기 자본을 투자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말에 모순을 정녕 찾지 못하시는지요? 배급사가 극장을 고른다구요? 그럼 스크린쿼터 없이도 한국영화 전용관은 저절로 확보되는 것 아닙니까? 블록버스터에 필요조건 중 하나가 최대한 많은 상영관 확보라는 상식도 모르고 말하는군요. 극장과 배급사의 관계가 그렇게 일방적이 되면 배급사 쪽에서 경쟁이 붙게 됩니다. 이거 설명해야 되나요? 기본적인 경제학 상식인데... 영화배급사업에 제도적인 진입장벽이 없고 일시적인 독점으로 높은 이윤이 보장되면 반드시 새로운 자본이 유입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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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정말 어리석군요. 왜 자국내에서 자국의 영화가 `자국영화 상영관`에 갇혀서 상영되어야 합니까? 그게 `구조조정`입니까? 극장에서 영화보겠다는데, 무슨 DVD입니까? 블록버스터건 레고버스터건 상영관 확보하던지 말던지, 정 스크린 쿼터 시행하는거 맘에 안들면 미국에서도 스크린 쿼터 시행하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러면 당연히 결사 반대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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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누차 말하지만, 댁의 블록버스터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주 많이 있습니다. 최님은 일반화 시켜서 유통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유통`이 `손해` 보는게 아니라, `블록버스터 유통`이 손해보는 겁니다. 마이너 필름의 배급 유통이 손해보는 건 대체 어떻게 메꿔주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시장이 해결해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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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halim |
어차피 이런 문제에 어떤 절대적인 원칙이나 도덕률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재산권 보호, 공정한 경쟁 보장 ... 말은 좋은 데 먼저 누구를 위한 공정성이고 누구의 재산을 보호하자는 것인지 명확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경제, 한국문화의 여러 영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어느 것이 자신(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유리한가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유로운 권리 보장 ... 예 좋죠.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의 산업과 미국문화의 권리보장과 자유경쟁을 보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스크린 쿼터 실행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봤을 때 스크린 쿼터로 보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 어느 쪽이 한국(의 문화산업)에 이득이 되는 것인지는 명확합니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그럼에도 미국영화산업이 영화시장에서 손해 본 부분은 없습니다. 동기간에 영화시장 자체가 두 배로 커졌기 때문이죠. 한국영화의 부흥과 전체적인 파이 증가로 인해 오히려 미국영화까지 이익을 본 셈입니다. 아하 ... 공정하게 경쟁했으면 미국영화는 더 큰 이익을 봤을 테니 기회비용으로 보면 오히려 손해다? 그럴 리는 없죠. 영화시장 확대의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잘난 공정경쟁으로 인해 미국영화가 과거에 그랬듯이 시장의 80%를 차지하게 되었다해도 시장전체 규모 또한 (증가의 원인과 상반되는 이유로 인해) 같은 비율로 감소해버린다면 결국 미국영화는 손해보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적인 부분을 애써 무시하면서 `공정하게 하는 것`이 이득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게 바로 궤변이죠. 아아 ... 스크린 쿼터 같은 것으로 미국이 안티를 걸어와서 다른 분야에서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느냐 ... 는 소심한 걱정을 하고 계십니까? 그럴 경우에는 미국으로부터 불공정거래에 대한 소송을 당해서 그로 인한 손해가 이것(스크린 쿼터 든 뭐든)으로 인한 이득을 넘어서기 직전까지 만이라도 최대한 불공정하게 이득을 취하면 됩니다. 한국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불공정한 방법으로 미국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설마 이런 판국에 어쨌든지 `공정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음 ... 미국인을 위한 도덕률에 입각해서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군요 ... ps. 만약 `현재 미국이 공정하게 한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 아니 최소한 결과적으로 누구의 이익이던 간에 `공정하게는 하고 있다` 라는 증거가 제시된다면 위의 주장은 철회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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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시내마로 |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별로 생각할필요없듯이 미국역시 공정하게 할필요가 없는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이득이 중요하고 그들은 그들의 이득이 많은쪽으로 움직이는건 당연하죠. 다만 타분야에 비해 이 영화부분만 막으려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는겁니다. 약 50프로의 한국영화 점유율이 과연 우리영화의 우수성때문일까라는 물음에는 아마 선뜻동의 하시기 힘들겁니다. 또 그점유율이 10프로대로 줄어든다고 해서 관객의 입장에서 볼때 손해라고 볼수 있을까요? 만화계에 만약 스크린쿼터같은것이 일본만화를 막고 있다고 한번 쳐봅시다. 과연 80년대 공장만화의 전성시대는 어디까지 계속 되었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비유하자면 책방이나 대여점의 만화중 절반을 국산만화로 체워야 된다는 법이 있다면 그속에서 과연 우리만화의 질은 얼마나 성장할수 있을까요? 물론 영화와 만화의 단순비교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하나만 보더라도 영화계의 이기주의를 볼수가 있지요. 그리고 그영화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손익분기점을 과연 어떻게 잡을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현제가 그손익분기점에 이득쪽이라고 어떻게 단정할수가 있습니까? 굳이 미국의 공정성은 들먹일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지만 우리나라자체의 각분야별 공정성에는 심각하게 문제제기가 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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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halim |
Q) 스크린 쿼터제는 (한국영화제작자는 관두고) 한국관객의 입장에서 손해인가? A) 이 문제는 극장에가서 길을 막고 물어보면 간단히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과연 2003년 시점에서 영화관객 중에 한국영화의 높은 점유율 때문에 미국영화를 좀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Q) 스크린 쿼터로 `영화만` 보호하는 것은 타 장르에 대해서 불공정 한 것 아닌가? A) 이것에 대해서는 타 장르에도 `영화와 마찬가지의 특혜` 즉 `한국의 이익에 입각한 불공정한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그나마 공정한 조치이겠지요. Q) 만화계에 만약 스크린쿼터같은것이 일본만화를 막고 있다고 한번 쳐봅시다. 과연 80년대 공장만화의 전성시대는 어디까지 계속 되었을까요? A) 반대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일본만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이후의 한국만화가 80년대보다 발전했습니까?` ... 그리고 이에 관해서 시내마로님께서 간과하시는 부분을 조금 더 지적하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장만화의 폐해`라는 것은 실제로는 90년대 이후 새로 형성되거나 더욱 심화된 것 입니다. 80년대의 대본소 만화는 지금의 인식보다는 훨씬 작가진과 장르가 다양했으며 질적으로도 수준 높았습니다. Q) 90년대 이후 일본만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이후의 한국만화가 80년대보다 발전했는가? A) 이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했다` 입니다. ... 한국영화의 수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인 부분입니다만 ... 현재의 한국영화가 내는 흥행성적은 스크린쿼터가 보장하는 것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입니다. 현재 스크린쿼터상의 한국영화 연간상영일수는 연간 100일이 약간 넘습니다. 비율로는 30%가 채 안됩니다. 반면 지난 2~3년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관객수대비 45~50% 내외이죠. 만약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의 불공정한 지원에 기대어 억지로 시장을 확보하는 상황이라면 40%이상의 관객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한국영화가 연간흥행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겠구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장들은 자발적으로 스크린쿼터가 규정하는 것 이상의 스크린을 한국영화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영화가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지요. 쉬리 이래 5년간 연간 흥행수위를 기록한 영화는 모두 한국영화입니다. 타이타닉, 스타워즈, 해리포터, 반지전쟁과 같은 쟁쟁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매번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고서도 결국 최종적인 관중몰이에서는 한국영화에 뒤쳐져서 흥행1위 자리를 매년 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스크린쿼터에 기댄 승리일까요? ... 마지막으로 스크린쿼터가 정말로 미국영화산업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면 이미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무역분쟁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고 끊임없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쌀문제가 그렇고 반도체와 철강이 그렇고 FTA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지요. 스크린쿼터 이후 - 정확히는 쉬리 이후 - 한국영화의 흥행은 시장을 두배로 키우면서 미국영화의 전체 매출까지도 끌어올렸습니다. 이 사실을 미국영화관계자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일간신문 주요지면에서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한미 무역분쟁기사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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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hyol |
딴소리지만, 전 한국 만화계에 쿼터제를 도입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만화를 원하는 독자는 어떻게 하냐구요? DVD로 사보면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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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halim |
일본에선 만화도 DVD로 나오기 시작했단 말입니까? 호오 역시 만화천국의 향기가 풀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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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capcold |
!@#...제 경우, 스크린 쿼터제 폐지 반대 입장입니다. 쿼터제는 당혹스러운 물건이기는 하지만, 당혹스럽지 않은 합리적인 보호책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우선 남겨둬야 한다는 겁니다. 1. 스크린 쿼터는, 미국식의 시장경제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제도는 아닙니다(이 이야기야 워낙에 많이들 하시니까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터이고). 스크린 쿼터는 `오세암`에도, `오아시스`에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 역시 익히 알려진 사실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써는 스크린 쿼터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기 밥그릇 수호의 목적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명분 내세우면서 삭발하고 있는 일부 스타들을 위해서? 당연히 아닙니다. 스크린 쿼터 없으면 안그래도 경쟁력 없는 한국영화가 다 망하기 때문에 보호해주기 위해서? 말이나 됩니까. 쿼터제를 아직 못치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직 대안적 유통경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등급외 전용관과 유통망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백날 등급 거부권을 통한 사전검열 폐지니 뭐니 도입해봤자 말짱 헛것인 것 처럼 말입니다. 한국영화 전용관, 예술/인디영화 전용관을 전담하는 대안적인 유통망 없이 하나의 판 속에 다 꾸역꾸역 쳐넣은 상태에서, 한국영화 - 아니, 한국영화 가운데 보호와 지원을 받을 이유와 가치가 있는 영화들 (즉, 문화적 품질이 우수하여 시장성과 관게없이라도 장려해야할 만한 일부의 작품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으로서는 스크린 쿼터 정도밖에 다른 방안이 없는 것 뿐입니다. 비시장적 문화적 취향을 인정하는 안정적인 전용관과 전용 유통망이 확보된다면, 불완전한 보호책에 불과한 스크린 쿼터제 따위는 없어지는 게 낫겠죠. 2. 끼워팔기는 공정거래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대표적인 경제관료형 환상입니다. 왜 극장주들이 나중에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지금의 부당함에 대한 항의를 하겠습니까(장사 한 번 하고 그만둘것도 아닌데). 워너에서, `매트릭스2를 유치하려면 XX영화 5편을 같이 사가고, 각각 1주일 이상씩 틀어라`라고 강요한다 칩시다.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극장주들은,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물론 부당하다는 것 따위는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워너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소할까요? 안한다에 500원 걸겠습니다. 이번에 개겼다가는, 매트릭스3를 못받아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화에서도 일본만화 수입할때 끼워팔기가 성행중입니다. 그 폐단은 이미 넘쳐나고 있지만, 그나마 규모의 경제를 늘리기가 그나마 좀 더 용이하기 때문에 현재 수준인거죠. 영화의 경우 실제 극장을 짓고 유통망을 확대하는 것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끼워팔기의 폐해가 더 빠르고 극명하게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스크린 쿼터제가 끼워팔기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식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모호한 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다른 합리적인 규제책이 없으니까 이러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한국의 공정거래법이 극장주나 배급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간에 끼워팔기를 범죄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막아낼 수 있다면 그때가서 쿼터제를 축소/폐지해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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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들 꺼내시는군요. 원칙을 편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들이 기가 막힙니다. 첫째, 제산권 보호는 님들이 든 그 어떤 이유들보다 우선합니다. 기본권이기 때문입니다. 대안적 유통을 원한다면 원하는 쪽에서 자기 재산으로 개척해야 합니다. 둘째, 끼워팔기를 방지하기 위해 끼워팔기를 규제하는 법이 아닌 스크린쿼터를 유지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본에 어긋납니다. 쿼터에 의한 선의의 피해자 구제가 우선하기 때문이고, 권리를 제한하는 법은 명백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재산권 행사는 기본권입니다. 님들 발상대로라면 야간의 높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통금을 실시하자는 주장도 정당할 것입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 목적보다 범위가 넓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규제를 가하자는 주장이 과연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섹스 횟수와 장소를 제한하자는 주장은 왜 안합니까? 그리고 끼워팔기를 공정거래법으로 전혀 규제할 수 없다는 말도 웃기는 소리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극장주와 배급자의 관계가 완전히 일방적인 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영화배급업은 자연독점의 경향이 있음을 먼저 증명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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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hyol |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섹스횟수와 장소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은 섹스횟수와 성범죄와는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스크린쿼터와 뭔 상관이 있는지... 그건 그렇고, 깡패인 국가를 믿지 못하고, 국가의 힘을 비는(등에 업는) 어떠한 행위도 불법적인 것이라 단정하는 최님께서 그 국가의 원칙인 법치주의에 동의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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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섹스 횟수보다는 섹스장소와 성범죄가 상당히 큰 관계가 있지요. 아니, 섹스신고제를 채택한다면 성범죄는 확실히 잡을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주장하시지요? 그리고 함부로 남의 말을 왜곡하지 마시오. 내가 언제 국가를 믿지 못한다고 했으며, 깡패라고 했는지? 국가의 힘을 등에 업는 어떤 행위라도 불법적인 것이라고 단정했는지? 이거야 원 기초부터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국가는 자기 할 일이나 하고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얘기에도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하오?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기본권끼리의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에 한정된다는 것도 설명해야 하나요? 법치주의란 국가의 원칙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한계를 긋는 원칙임도 친절하게 강의해야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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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재산권의 `행사`와 `보장`을 구분해서 논리를 펴주시기 바랍니다. 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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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만화관련 사이트에서 만화 정보를 얻으러 왔다가 이상한 논쟁에 빠져들었지만 제발 좀 생각하고 얘기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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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횰 |
. 정부야말로 한계없는 텃세를 자랑하는 조직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를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 방법은 이민 뿐이지요. 경쟁에서 거의 완전하게 면제된 정부에게 시장의 텃세를 조정하라는 건 늑대를 피해서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짓입니다. 위의 최님 글에서 인용(저작권은 최님에게 귀속됩니다) 즉 경쟁에서 면제된 정부야말로 어떠한 후발주자도 용납하지 않는, 시장경쟁에서 자유로운 존재이고, 이 정부가 지금 (영화)시장에서 텃세를 부리고 있다. 라고 이해했습니다만;;;; 그리고 법치주의는 국가의 원칙이지요. 당연-_-. 법치주의를 택하지 않(았)는 국가도 있는걸요. 스크린쿼터는 최님의 말씀에 따르면 (겉으로는)공정한 경쟁을 하는 선발주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섹스신고제나 통금과 마찬가지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누구의 재산권인지는 몰라도)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위에 여러분들이 설명을 해놓았네요.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끼리의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에 한정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저도 동의합니다. 스크린쿼터도 그에 입각해서 생겨났다고 생각했는데요. 국민에게는 독점 자본에 의해 조작된 욕구가 아닌, 자신이 진정 보고 싶은 영화를 볼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앗, DVD로 보면 되겠군요. 이런... 죄송합니다. DVD플레이어 사주세요 ㅠ_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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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그 헌법조항 들고 나올 줄 알았습니다. 남의 재산 날로 먹으려는 도둑놈들이 성경 문구처럼 휘두르는 문구지요. 관련된 내용들을 이곳에서 토론할 수는 없는 내용이고... 첫째, 공공 복리처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는 최소한도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3조1항은 무의미해집니다. 둘째, 공공 복리는 무슨 공공복리입니까? 영화인들의 복리지...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어야 하는 경우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에 심각한 해를 가할 경우에 한정됩니다. 그렇지 않고 23조 2항을 마구 확대 해석하면 북한같은 나라가 되는 것이지요. 참고로 행사되지 않는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국어공부부터 하고 오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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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스크린쿼터가 극장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제라는 명백한 사실을 누가 반박했는데요? 그리고 횰님. 국가가 할 일이 있고 안 할 일이 있다는 상식만 숙지하시면 님의 글이 참 부끄러울 것입니다. 독점자본이 조작한 욕구라... 드디어 남의 취향은 조작된 것이고 자기 것은 아니라는 기괴한 엘리트주의까지 등장했군요. 잘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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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최 |
헌법 23조 3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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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iamX |
(내 이럴 줄 알았지. 법치주의 어쩌고 하면서 결국 `성경문구` 운운하면서 무시한다니깐.) 누가 권리를 행사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스크린 쿼터가 나머지 55.5%의 기간 동안 외국 영화를 걸지 못하게 막은 적 있습니까?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무한정 행사할 수 없게 막는 겁니다. 아파트 분양할 때 왜 한 가구에 하나씩 줄까요. 그냥 돈 있는 놈이 매점매석하게 두지? 그건 재산권 보장의 침해입니까? 아닙니다. 재산권 행사의 제한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각 개인의 기본권을 보다 더 잘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시가가 천만원짜리 아파트 10집을 분양하는데, 11명이 사람들이 있다 칩시다. 그리고 10명은 500만원의 돈을 갖고 있고, 1명만이 1억을 갖고 있다고 칩시다. 이럴 때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명이 10집을 사서 `독점`하고 나머지 10명에게 1천만원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전세를 놓든,..)을 뽑아내는 것이 국가에게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국가가 나머지 구성원 10명에게 저리의 이자로 500만원을 빌려주고, 각자가 집을 갖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겁니다. 특정 계층의 끝없는 재산권 행사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재산권의 보장을 침해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권의 보장은 행사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스크린 쿼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영 기간의 `고삐`가 풀리면 해외 자본들이 국내 배급망을 `자금력`을 동원해서 독점할거라는 건 삼척 동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 더 큰 `자금력`을 동원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헐리우드` 자체가 가장 큰 `자금력`을 가진 영화계의 초거대 자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영화 배급망에 있어서 `독점`이 도래할 거라는 겁니다. 저 역시 스크린 쿼터가 아주 멋진 제도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현재 시행되는 스크린 쿼터는 극장주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의 관객 동원율은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한국 영화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애국심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대 영화로 놓고 봤을 때, 헐리우드 영화 못지 않게 한국 영화도 볼만하다는 겁니다. `한국`은 한국 영화가 유일하게 배급되는 곳입니다. `한국`은 헐리우드 영화가 수출하는 수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것이 재산권의 보장이고 재산권의 행사이겠습니까? 어느 것을 제한해야 한국의 영화 시장에 더 풍성하고 많은 영화들이 선보일수 있겠습니까? 밀림에 던져놓고, 살 수 있는 사람만 살라는 식으로 방관하는게 국가가 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살 수 없는 사람도 최소한은 살 수 있게 해주는게 국가입니다. 국민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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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1 |
| 시내마로 |
한국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들을 하죠.. 한국영화치고 잘만들지 않았냐고요? 그말의 함축적인의미는 두가지가 있지요. 첫째는 한국영화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다와 한국영화는 같은 한국영화와 경쟁한다라는것이 바로 그거입니다. 영화를 선택할때 꽤 많은분들이 시간과 장소에 재약을 받는것이 보통입니다. 즉 이영화 보자 하고 별러서 보는것보다 시간과 분위기와 장소가 허용하는범위에서 영화를 고르는것이 보통이죠. 관객의 입장으로 보면 떨어지는 영화를 어쩔수 없이 보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죠. 이건 관객의 입장에서 입는 손해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림님 타장르에 전부 스크린쿼터라는 장막을 치면 우리의 이득이 있을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큰장르때문에 다른 장르들의 장벽을 낮추는 명목과 그들의 약점장르의 장벽을 높일 명분이 된다면 그게 타장르에 해악을 주는것이 아닙니까? 90년초이던 80년대이던 지금 현제까지도 공장만화는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현제는 님이 말씀하셨다싶이 발전했죠. 그건 경쟁자로 일본만화를 의식해서 생긴부분이 상당할겁니다. 공장만화 조차도 일본만화를 의식하죠. 물론 그래봤자 공장이지만... 그리고 제가 드린 손익분기에 관한 대답은 안하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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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
| iamX |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 요새 한국 영화더러 `한국 영화치고 잘 만들었다` 이야기는 님한테서 처음 듣는구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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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
| apostle |
0. 영화 시장 규모의 확대는 스크린 쿼터보다는 멀티 플렉스 도입의 결과라고 봅니다. 스크린 쿼터는 한국 영화가 헐리웃의 블락 버스터 전략을 흉내내어 멀티 플렉스 붐에 편승하도록 도와 준 것이 아닌가 하죠. 스크린은 늘었는데, 외화 상영일수가 제한되었으니 한국 영화를 틀어야 하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 성수기에 헐리우드, 비수기에 한국 영화를 틀었죠. 쉬리, JSA, 친구 각각 2월, 11월, 4월 개봉작입니다. 최근까지 7월, 12월은 헐리웃 차지였고, 한국 영화는 소위 2등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1. 스크린 쿼터와 대안적 유통 경로는 관련 없죠. 끼워 팔기의 폐해와도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스크린 쿼터는 한국과 외국의 차이만을 반영할 뿐, 주류와는 다른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되지 못 합니다. 지난 몇 년간의 영화 시장이 그렇게 말합니다. 스크린 쿼터가 도와준 것은 다른 영화, 작은 영화가 아니라, `한국형 블락 버스터`를 추구하는 토착 자본이었습니다. 덧붙이면, 영화인의 처우 개선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죠. 2. 스크린쿼터는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합니다, 결국. 실제로 스크린 쿼터가 효용을 발휘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 영화게가 헐리웃을 흉내내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봅니다. 보호무역이라고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합당한 근거와 보상 없이 침해하는 경우에는 변호할 필요가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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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
| apostle |
아, JSA 9월 개봉작입니다.;;; 쉬리와 JSA는 아마 구정, 추석에 개봉했을 겁니다. 엄밀히는 비수기는 아니지만,,, 극장주들이 여전히 헐리웃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헐리웃 영화들이 개봉관도 많고, 개봉 일정도 좋고, 부율도 배급사에 유리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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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
| hyol |
최님,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한마디만 덧붙일께요. 저는 `독점자본에 의해 조작된 욕구`가 옳지 않고, 제 욕구가 옳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홀로코스트 상업주의`의 전형인 피아니스트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관객들의 욕구가 조작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욕구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좀더 올바른 정치적 관점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요구하는 제 욕구 역시 정당하다고 생각하구요. (뭐 그렇다고 -위의 분께서 말씀하셨듯- 스크린쿼터가 독립영화나 대안영화의 유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그래도 헐리우드 영화들이 극장을 꽉 채우는 것은 막아주니 기분이 덜 나쁘죠.) 전혀 문맥에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혼자 상상하셔서 덧붙이고 계시는데, 오해 푸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니 되도록 삼가해주시고, DVD플레이어도 빨리 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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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
| capcold |
1.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영화배급업은 자연독점의 경향이 있음을 먼저 증명하십시오.` (인용) ...-_-;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 http://www.screenquota.org )에서 지금까지 수년간 연구해오고 수집해온 문서들은 다 허공에 대한 메아리였나보군요. 영진위에서 나온 `한국영화 산업구조분석 : 할리우드 영화 직배 이후를 중심으로` 또는 `WTO 및 뉴라운드의 시장개방압력과 한국영화의 중장기 발전전략 2000-5`도 추천해드립니다. 양쪽 측면에 대한 이야기 모두 나와있으니, 거부감부터 먼저 가지시지 마시기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나온 논문인 `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스크린쿼터제도)정책 연구` 에도 쟁점들이 잘 요약되어있는 편입니다. 불편하시다면, 3-2장 `세계 영화산업의 현황`만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문광부에서 98년에 낸, `국내영상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경제, 사회/문화적 연구`도 좋은 자료같군요(이건 저도 못구해봤습니다;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인용문들만 봤을 뿐. 예를 들자면 `영상산업에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배제된다`라는 우려 같은 것들. 원본을 구하게 되시면, 저한테도 한부 복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배급업이 숙명적으로 자연독점만을 향해가야만 하는지, 그거야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헐리웃 영화를 중심으로 지난 수십년간 그렇게 이루어져 왔다는 증빙들을 놓고 볼때, `경향`은 확실한 것 같군요. 2. 다시 한번 주장하지만, 스크린 쿼터는 좋은 제도도 아니고 많은 해답을 주지도 못합니다. 그런 제도따위 없어도 되는 - 즉 그런 제도 없이도 시장의 독점화 경향과 문화적 다양성 개발이 공존할 수 있는 훌륭한 상태 - 가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또한 정작 중요한 대립구도는 `한국/헐리웃` 이 아니라, `공식화된 주류 상업문화/다양성` - 당연히도 깨끗하게 흑백논리로 구분될 리가 없지만 - 이라는 것도 기본전제입니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를 없애도 될 만한 조건기준이라는 것은, 기계적인 한국영화 점유율 50% 달성이 아닌 다양성이 존중되는 유통망의 확보입니다. `오세암`이 스크린쿼터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니 폐지해도 좋지 않겠냐는 식의 인식은 곤란합니다. 극장주들이 오전 반나절이라도 오세암을 걸어주었던 것이 마음씨가 좋아서였을까요? 흥행 수익과 시장 전망을 노려서였을까요(그랬다면 오후부터는 `시카고`를 틀었을 리가 없죠)? `변칙적으로 의무상영일수 맞추려고`라는 답에 500원 걸겠습니다. 비록 보잘것 없지만, 쿼터가 최소생존기반을 만들어주기는 한 셈입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최소한의 구급조치일 뿐이고, 빨리 제대로 된 다른 해결책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경제관료들이 스크린 쿼터제를 폐지하자는 주장, 시장이니 산업이니 하는 차원에서 한미협상까지 이야기하는 것의 요지는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단 하나입니다: 한국의 산업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영화분야는 이제 그만 포기하자, 하는 겁니다. 반도체 부문을 위하여 신발 제작을 포기하자, 라는 말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수치로 환산하여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시장식` 사고방식의 틀만으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의 사회 또는 문화권이 가져야 할 온전한 모양새와 균형의 차원도 좀 고려해 주었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하기야, 농산물, 금융, 공공부문 서비스 등 이러한 인식차이와 갈등은 오만 군데에서 서로 충돌했지만. 하지만 저로서는, 왼손이 마비되어있고 다리를 절뚝이는데 오른팔만 세계 최강 근육질인 몸보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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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capcold |
사지멀쩡한 몸을 더 바라게 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3. 저도 헐리웃 오락물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헐리웃 오락물`만` 극장에서 보라고 누가 강요한다면, 절대적으로 반대할 것입니다. 게다가 주류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경우, 한번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불편했던 적 따위는 없었습니다.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그 주가 지나기 전에 빨리 다른 약속들 취소해버리고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봐야만 한다고 걱정한 적도 없습니다. 시간이 안맞아서 아직 고대하고 있던 매트릭스2도 극장에서 보지 못했으나, 무사태평입니다...하지만 저는 고양이도, 라이방도 극장에서 못봤습니다. 제가 관람한 주말이 지나가자마자 와이키키는 막을 내렸으며, 개봉 첫주의 오후에 오세암을 보기 위해서 4군데의 극장 시간표를 뒤져봐야 했습니다. 예, 저 역시도 저에게 보장이 안되어 있는 소비자 권리가 좀 보장이 되었으면 하는 입장입니다. 일정 취향을 가지고 있는 관람객으로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좀 더 편하게 극장에서 보고 싶어서 주류 유통업자들 및 극장주들과 의견이 충돌중인 셈입니다. 그 중, 비록 매우매우 간접적으로나마 제 이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를 찬성하는 것 또한 (헐리웃 직배사들이 쿼터제를 반대하는 것 만큼이나)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 축소/폐지를 주장하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의 경우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한 의견을 주장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매모호한 `국가경제`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입장에서, 지금 실행중인 스크린 쿼터때문에 겪고 계시는 피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군요. 사실 쿼터제는 끽해봐야 마취약 정도입니다; 필요한 것은 유통 대수술이고 말입니다.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관우 운장도 아닌 이상 애써 마취약 투입한 것을 굳이 다 풀어버린 후에 수술을 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4. 영화는 그래도 이정도로라도 진지하게 신경들을 써줘서 참 행복하겠습니다. 만화창작, 생산과 유통에 대해서도 1/100 만큼 관심을 가져주면 참으로 좋을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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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capcold |
...`한국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라는 말은, 꽤 함축적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전혀 의미없습니다. `(자본력이나 특수기술 전문인력이 부족한) 한국영화치고는 폭발장면이 대단하다` 정도의 수위가 정확한 표현이겠죠. 게다가, 정말로 자국의 영화산업을 살려야 겠다는 애국심 하나 때문에 그 영화가 히트를 친다면, 그것은 아마도 21세기 초엽 지구상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대단한 의무감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몇명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 자신도 한때,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을 개봉일 첫 상영에 예매해서 본 것 처럼... 게다가 애국 마케팅을 하는 경우들도 있고, 그것으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기도 하겠죠. 그.러.나. 관람객에게는 쿼터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냥팔이 소녀가 재림을 하지 못한 것이고, 아유레디는 전혀 레디하지 못했고, 예스터데이는 어제의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대형오락물에 대한 투자가 급속하게 동결되고 있습니다. 즉...한국영화치고 잘만든 영화들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이든간에 정말로 잘 만든 (그리고 잘 마케팅한) 영화들만 성공한겁니다! `쉬리`가 특수효과도 엉성하고, 어설픈 헐리웃 액션 영화 베끼기인데 한국영화라서 한국에서 성공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니 그럼 일본에서는 왜 인기를 끌었을까요? 왜 초난강은 쉬리를 보고 반해서 한국 매니아가 되어버렸을까요? 간단합니다. 헐리웃 액션 영화에서 보지 못한 감수성이 있었고, 그것이 그들이 바라고 있던 취향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미국에서는 별반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레옹`이 허술한 시나리오나 약한 액션 장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히트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한 작품성의 증명이라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먹힐 만한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조금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제 취향에는 `쉬리`의 주제가 시대착오에 가까울 정도로 보수/반공적이었고, 인물구도는 과도하게 작위적이며, 특수효과는 뒷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다른 일반 관객 분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북한을 새로 조명한 발상이고, 비극적이고 애절한 인물관계이며, 헐리우드 부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특수효과로 다가간 것이고, 그래서 히트를 쳤습니다. 비평적 평가(이것 자체도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겠지만)와는 별개로, 이것이 기정사실인 셈입니다. ...히트를 친 한국영화에는, 히트를 칠만한 작품 내적 요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지만 히트를 치지 못한 한국영화에는, 내적인 요소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제대로 목표한 관객층과 유통단계에서 이미 접촉을 거절당해서 실패한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제가 보고 싶어했던 영화들이 꽤 섞여들어가 있습니다. 스크린 쿼터가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당장 스크린쿼터를 없애면 이 쪽의 상황들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제 폐지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간단하고 명쾌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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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capcold |
!@#... 재산권... 정당한 보상... 극장주들이 쿼터제를 지킴으로써 받는 재산권 행사상의 보상이 없다는 발상은, 대단히 놀랍고도 당혹스럽습니다. 극장주들이 받고 있는 보상은 명확합니다: 바로, `한국에서 영화관을 영업할 수 있다`는 자격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위생법을 지키기 위해서 돈 들여야 식당 영업허가가 나오고, 내 시간 투자해서 운전면허증을 따야 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그 자격 부여를 위해서 투여해야할 노력이 아깝다면, 1) 포기하거나, 2) 그 자격요건을 낮추도록 하기 위한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 입장에서, 3) 그 자격요건은 정당하다, 또는 오히려 더 높여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운동을 나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을 하고, 때로는 합의를 이룹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현행 스크린 쿼터는 `금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장 신봉자분들에게 여러모로 직관적인 거부감을 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왕의 문화 보호정책이라면 좀 더 가시적으로도 드러내기 좋은 보상들이 좋겠죠. 예를 들어서 제도화된 평단에서 공식 지정한 비주류(?) 또는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서 상영일수에 비례하여 일정 정도 상영보조금을 준다든지 하는 포지티브 지원책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제 입장입니다. 이런데가 아니라면 영화표값에 포함된 영화진흥기금 거두어들여서 어디다가 써야하겠습니까. 예, 정부의 시장개입입니다. 이로 인해 상대적 손해를 보실 분들은 열심히 싫어하시겠죠. 또는 막연하게 시장만능주의를 동경하시는 분들도 같이 싫어하시겠죠. 혹은 영화 보호정책만 포기하면 미국이 마구 신나서 규제를 낮춰줘서 반도체 수출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순빵의 장미빛 환상을 품고 계신 분들 역시 싫어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시장 만능주의나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도록 공부해왔고, 제 취향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를 좀 시장에 개입시키고 싶군요. !@#... (오랜만에 만화이야기로 돌아와서) 공장만화에 대해서... 속칭 공장만화 역시, 비평적 평가나 기술적인 세부평가와는 별개로 그 자체의 수요와 법칙, 그 속에서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한 작가의 특정한 작품들이 더 잘나간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만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특정 취향의 오락으로서 이들이 지니고 있는 역할에서, 그것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켜주는 것이 결국 히트를 치는 겁니다. 왜 아직도 대본소 일일 만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스티븐 시걸 영화를 싫어하지만 시걸영화는 만들어지듯이 말입니다. 만화판 전체가 대본소 일일만화로 뒤덮여서 제가 좋아하는 방식의 만화들이 더 이상 제대로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 없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이들의 취향을 부정할 필요도 의사도 없습니다. 이들 때문에 만화 전체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니까 배격해야 한다는 감수성 역시 황당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같은 ** 이단 옆차기가 히트쳤다고 해서 소설문학 전체가 비웃음을 산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좋은 것들을 자꾸 만들고 발굴하고 장려해서 좋은 방향으로 폭을 넓혀나가야지, 왜 자꾸 자기 판을 스스로 좁히려고 노력을 합니까. B급 취향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B급 취향을 공급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취향으로도 들어올 수 있도록 정보와 경로를 열어주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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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시내마로 |
캡쿨드님? 캅콜드님? 님 말씀이 어느정도 타당한면이 있습니다. 오락영화와 그렇지 않는 영화에 대한 말씀도 동의 하구요. 제말이 그말입니다. 국산대외제의 대결이 아닌 오락물은 그자체로 경쟁하고 교양(달리 쓸말이 생가이 안나군요 -.-)은 그들끼리 경쟁을 하는거죠. 스크린 쿼터가 있다면 오락과 교양의 쿼터가 있어야지 국산과 외제를 나누는 쿼터는 잘못되었다는겁니다. 물론 헐리우드 자본을 우리가 따라잡을수 있을까라는 문제제기가 당연히 될테지만 그건 정부에서 하기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 문화적인 핸디켑이 있는이상 헐리우드영화에 대해 밑지고 들어가는부분은 자본말고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자본부분을 정부차원에서 바쳐준다면 글쎄요... 10~20프로대의 점유율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도 자신없어한다면 타분야에 부끄러울따름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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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시내마로 |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로 극장에서 부담없이 볼수 있는영화는 돈온많이 쳐바른 오락영화임을 부정할수 없습니다. 만화역시 공장만화보는분한테 조금 생각하게만드는 만화 소개해도 씨도 안먹히는 분이 많더군요. 첨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런사람역시 인정할수 밖에없더군요. 어차피 오락영화? 공장만화?가 매출이 더많은건 어쩔수 없는 사실이고 이윤이 그쪽으로 많이 나니까 그쪽으로 가는거죠. 물론 대중성과 교양성을 두루갖춘 영화나 만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것이 명작이겠지요. 제생각으로는 스크린쿼터와같은것은 이와같은 오락대교양의 비율조정으로 써야지 다른 방향으로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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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시내마로 |
쉬리는 솔직히 약점이 많은 엉성한 영화죠. 일본에서 인기는 과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관객의 숫자는 많았지만 작품평은 그리 좋지는 못했지요. 제가 한국영화를 보고 절망한 작품중에 하나라서....마케팅과 소제그리고 배우들의 인지도그리고 대중성있는 스토리로 실제의 작품보다 부풀린점이 많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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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halim |
`오락과 교양을 나누는 쿼터는 가능하지만 국산과 외제를 나누는 쿼터는 납득이 안간다`라는 논리는 조금 당황스럽군요. 오락과 교양을 나누는 것에 관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작품발표 후라면 몰라도 (그것도 비현실적이지만) 개봉전에 (혹은 제작완료 이전에) 그것을 나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설사 나눌 수 있다고 해도 `시장논리`를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오락과 교양을 나누는 쿼터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이런 난관을 뚫고(?) 그러한 쿼터제를 성립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시내마로님과 비슷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논리로 더 화끈하게 이 제도를 비난하게 될겁니다. 또한 그런 식의 쿼터는 미국영화제작자의 이익과 몇 몇 극장주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그 멋진 법치주의와 공정한 경쟁보장의 원칙에 더더더욱 어긋납니다. 반면 국산과 외제를 나누는 쿼터는 충분히 성립가능합니다. 일단 시장경제논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스크린 쿼터제 이후의 변화하는 시장상황 자체가 현행 제도의 지속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어떤 제도이건간에 현재의 상황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면 계속 추진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검토해 보는 것이 판단의 기본이겠습니다만 적어도 현재의 스크린 쿼터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하신 지원금이야기는 (아마 쿼터제가 아니라면 이거라도 ... 라는 식으로 일단 꺼내든 논리 같습니다만) 더욱 비현실 적입니다. 한 번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지요. 하나는 한국정부가 자국(의 좋은? 교양?)영화에 대한 제작비 지원의 형태로 시장에 관여하여 한국영화가 20%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 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정부가 법적으로 스크린(상영일수)의 30%를 한국영화에 배정하도록 하여 이를 통해 한국영화가 45%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 입니다. 어떤 경우에 무역분쟁이 발생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종 보조금 제도는 현재도 무역분쟁의 단골 (아마 최대의) 이슈입니다. 한국영화의 지분이 20%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자국영화산업의 더 많은 이득을 위해 보조금 제도 폐지와 미국영화의 완전한 시장 석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때가서 지금 말씀하시는 지원금제도에 관한 주장을 철회 하시겠습니까? 좀 더 (미국영화제작자와 몇 몇 극장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반면 스크린 쿼터제는 설사 30%의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 확보하고 있는 지분이 45%라면 미국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스크린 쿼터 폐지를 요구하고 나와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스크린쿼터제가 현실적으로 무역분쟁의 이슈가 되려면 한국영화가 제도의 지원에 의해 스크린의 30%를 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흥행수익의 비율은 이보다 현격히 낮아서 `스크린 쿼터가 없어졌을 때 미국영화가 더 많은 수익을 낼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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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halim |
위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주제로 달리고 있는 댓글들이 `당위에 기초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위에 최님께서 법치주의의 근간이라든가 재산권의 보장 등등의 이야기를 꺼내신 것은 ... 아마 잠시 착각하신 탓 이겠지요. 그 동안의 의견을 보자면 최님이나 시내마로님은 아마도 당위 혹은 원칙에 기대는 이상주의자들을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공격하는 식의 포지션을 원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은데 어째 이 댓글에서만은 먼저 다소 이상주의적인 당위론을 들고나오시니 조금 어색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이 이야기가 법적 당위든 도덕적 당위든 그런 원론적인 것으로 설득할 수 있는 논의는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혹은 어떠한 선택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이득을 안겨줄 것인가가 문제겠지요. 쿼터제에 있어서도 국산과 외제를 나누는 것이 옳으냐 오락과 교양을 나누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나 원칙 ... 같은 건 없습니다. 중요한 건 한국현실에서 전자는 실시가능한 제도이고 시장경제 원칙에 의거해서도 한국(문화)산업에 좀 더 많은 금전적 이득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제도인 반면 후자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도이고 시장경제의 논리에 비춰보더라도 (미국은 얘기할 것도 없이) 한국산업 자체로도 금전적 손실이 큽니다. ps. `10~20%의 점유율은 가능할 거다`라는 멘트는 웃자고 하신 이야기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시내마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대중문화의 경쟁력은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쉬리의 일본내에서의 인기는 스머프의 전 멤버에게 물어보시면 될테고) 여하튼 저는 한국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맥가이버를 기억하십니까? 에어울프나 전격Z작전 V시리즈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그리운 80년대 (이전)의 외화 시리즈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외화시리즈가 지금은 공중파에서 밀려나 버렸죠. 공중파 어디를 틀어봐도 국산 드라마 일색이고 케이블TV 라도 챙겨보지 않으면 외화시리즈 같은 것은 어디서 하는 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이게 쿼터제 때문일까요? 80년대까지 젊은 세대의 귀를 지배하던 음악은 팝송이었습니다. 10대 소녀팬들은 자연스럽게 서구 팝스타들의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주류자리를 차지한것은 그냥 `가요`들 이었죠. 팝송은 그 자체로 마이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10대 소녀들을 휘어잡고 있는 게 누구인가를 물어보면 서구의 아무개 가 아니라 한국산 붕어들 입니다. 저도 납득이 안갑니다만 ... 여하튼 이것도 쿼터제 때문일까요? (물론 요사이 음반시장이 작살났습니다만 그렇다고 팝송이 시장의 주연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아이돌 문화의 주류도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옮겨오는 것이 지난 10년래의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당장 10대 취향의 아무 잡지든지 가져다가 80년대것과 2000년대 것을 비교해보면 외산의 고전을 실감하실 수 있겠죠. 80년대 영화잡지와 2000년대 영화잡지를 비교해 보셔도 좋고 ... 지금 제가 타이핑하고 있는 책상에만 해도 88~89년의 순정지와 02~03년의 순정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만 가외의 기사로 혹은 독자엽서와 작가후기를 통해 느껴지는 한국산과 외산의 비율은 확실히 다릅니다. 이것도 쿼터제의 덕분일까요? 한국영화의 점유율 확대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스크린 쿼터든 멀티플렉스든 결국 `문화상품에 한해서는 외국산 일류 보다는 한국산 이류가 득세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특징`을 드러내는 한 가지 계기가 되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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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
| capcold |
!@#...상영 지원금 이야기는, 말씀하신대로 현실적으로는 사전에 정해서 어떻게 한다든지 할수야 없겠죠. 따라서 일정 기간 이후의 재개봉이라는 방식을 통하든지 (한마디로, 와라나고 운동 때 `누가 좀 저들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민간 위원회를 통한다든지, 어떻게든 `얍삽이`를 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당연히 이러한 경우는 이미 쿼터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진흥책입니다. 만약 국가 정책으로서 극장주들에게 `의무적으로 비상업적인 영화를 일정 일수동안 상영하라`고 한다면 정말 엄청난 악몽이 될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요지는 역시, 한국영화라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다양한 문화적 취향(또는 `가능성`)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왕이면(당연히) 포지티브 전략으로... 그리고 그건 한국영화 점유율이 10%든 90%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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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4 |
| 일요일 |
그 잘난 미국이 제시한 조건이 40억불 투자에만 있을까? 멍청하게 소탐대실 하는 일은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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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
| 기린아 |
halim/가요가 팝송을 밀어낸데는 약간의 야사들이 있습니다. 대략 88올림픽때였나요? 코리아나가 주제곡으로 우리나라에서 100만장을 팔아치웠고, 그때 외국의 레이블들이 `아, 한국 시장도 장사가 되는구나` 하고 접근을 했죠. 그때 우리나라의 유명 DJ들이 모두 모여서 `팝송은 틀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그러더군요. 그 이후 한동안 팝송을 틀지 않았고, 그 사이에 음악 업계는 자연스레 우리나라 가요로 채웠지요. 여기에 아이돌문화가 지역특성에 기반한다는 것 덕분으로, 외국의 아이돌 - 뉴키즈 온더 블록 이후 - 들은 국내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죠. 이 경우는 자연스레 형성된 블록과 나름대로 내부 경쟁을 치열하게 한 우리나라 시장 덕택에 `시장 보호`가 제대로 기능한 결과입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이게 통할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습니다만;;;;; @기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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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4 |
| 기린아 |
아. 이 경우에도 과연 그 이후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얼마나 예쁘게 자란거냐...하면 또 할 말이 없는 것도 좀 있죠. 가령, 공개하고 경쟁을 추구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음악성이 나은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겠느냐. 댄스 일변도의 세상은 아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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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4 |
| halim |
물론 제가 90년대 이후의 음악시장지형도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극적인 음악소비자로서의 입장(무관심)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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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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