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대학의 신문에 제미있는 기사가 나와서 퍼 보았습니다. 만화독자들도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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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괴(志怪)와 엽기 - 기이한 것의 정치학>
김광일 인문대 석사과정/중문 좋은 조건으로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런데 이사를 가자마자 집안에 변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대 뜸 이렇게 말한다. “얼마 전에 사는 곳을 옮겼지?” 놀라서 물 어보니 뒷마당을 파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땅을 파보니, 거기 에서 이상한 석상(石像)이 하나 나온다. 그래서 얼른 그걸 내다 버린다. 그 후에 집안은 평안함을 되찾게 된다. 「다큐멘터리 이 야기 속으로」 같은 TV프로그램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진부하지만 사람들은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열심히 그걸 즐 긴다. 아니, ‘즐긴다’는 말은 약간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 어디 나를 얼마나 두렵게 만드는가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인 위적으로 ‘만들어진’ 괴기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이야기의 생산자를 향한 대결의식을 품고 그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 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확인할 방도 는 없지만 그런 일이 실제 있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TV 앞에 앉는 것이 아닐까? 중국의 문학사를 살펴보면 ‘지괴(志怪)’라는 장르를 발견할 수 있다. 지괴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기이한 것[怪]를 기 록한[志] 글이다. 그 내용은 귀신, 요괴, 기이한 사물, 기이한 사건, 기이한 풍속, 신선 세계, 이역 여행 등 지금/여기에서 쉽 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로서, 이 지괴의 편집자들은 엽기(獵奇) 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기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허구’로 생각하지 않고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였다. 흡사 「이야기 속으로」를 시청하 는 우리들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유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단순히 황당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기이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유체계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는 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기이한 것들은 끊임없이 우리들 앞에 출몰한다. 사람들은 그런 기이한 것들에서 묘한 호기심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품게 된 다. 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일은 자기 정체 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이한 것들이 기존의 사유체계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 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체계는 기이한 것들을 통제하기 위해 서 힘겨운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 시중에 ‘엽기(獵奇)’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너무 진부하다. “기이한 것을 좇는다”라는 의미 역시 변질되었다는 것도 상식이다. 한 단어의 운명이 이렇게 달 라질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마는, 전혀 ‘엽기’적이지 않은 것조 차 발랄하게 ‘엽기’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는 ‘엽기’적인 상황 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랄한 엽기들’을 대하면서 뭔가 걱정스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것이 거세당한 엽기, 아무 런 힘을 갖추지 못한 엽기, 진짜 엽기적인 것은 희화화하고 뒤로 숨겨버리는 ‘물타기’ 엽기가 아닐까하는 의심 때문이다. 나는, 기이한 것까지 우습게 만들어 흡착하는, 내가 속한 이 체계의 위 력에 아연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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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 21, Read : 810, IP : 211.47.111.229 2000/09/20 Wed 01:4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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