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에 대해서.
앞의 논쟁에서, 대여점이라는 토픽에서 시작된 언쟁은 결국 중반부에 가서는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층 더 감정적인 이야기들 위주로 흘러가고 말입니다. 애초에 두고보자라는 활동을 시작한지 그렇게 대단히 오래되지도 않았고, 소위 '검증된' 경로를 거치지도 않았으며, 덤으로 각 성원들이 아직도 스스로에게 평론가라는 직함을 붙이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실제로 본지의 글들이나, 각 성원들이 다른 공간에서 활동한 모습들을 우선 제대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그냥 평론가도 아닌 '자칭 평론가'라는 명칭을 붙여주신 정성, 확실히 과분합니다. 특히 지난 1-20여년간의 한국 만화평론계의 모든 양상들을 두고보자에 첨부시켜주시는 논지는, 두고보자에 대단한 '문화권력'을 부여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선, 몇가지 기본 전제를 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우선 공식적 견해, 개인적 견해의 이야기는 했으니까 넘어가고, 여기서는 평론가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겠습니다. 첫째, 저는 평론가가 만화가에게 사랑받는 평론가가 되야한다는 기본전제를 조금도 공유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공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활동의 와중에서 그런 상태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평론가가 추구해야할 목표도, 미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는 독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정부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평론가가 유일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전문 분야가 사회 속에서, 담론 속에서 안정적이고 올바른 지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누구에게 무슨 욕을 들어먹어도 논지를 전개시키고, 활동들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평론가의 역할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면적으로 부정을 당하고 나니까 오히려 다소 당혹스럽군요.
둘째, 저는 밑에 토론에 참가해주신 박무직님과 다른 분들이 만화가 전체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표하고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두고보자가 만화평론을 대표/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밑의 의견들이 무의미하고 미미하다는 말이 아니라(제발 그런 식으로 오해하지 않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 차원의 이야기들과 이견들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소년만화와 순정만화의 판도도 다르고, 단행본 만화와 일일만화의 체계도 다르며, 주류만화와 인디 만화의 상황이 다르고, 젊은 만화가들과 '사라진 중견들'의 처지도 다르며, '소수 스타 작가'와 '대다수 일반 작가'도 다릅니다. 이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일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것을 전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서, 한국의 인디만화는 대여점이나 대본소와는 전혀 상관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은 묻혀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타칭 '자칭 평론가'인 저같은 사람들이 당연히 피해나가야 할 오류입니다. 두고보자를 만화평론의 중심, 혹은 대표격처럼 간주하는 듯한 논지 또한 별로 이해가 안가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히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한 권력을 부여해주신다면, 앞으로 열심히 써먹어야 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두고보자 혹은 그 성원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 적이 없는 일반적인 평론계의 병폐나 오점에 대해서까지 특정적으로 비난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대여점 철폐 운동에 헌신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이 '없는' 것으로 간주당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과 여러 두고보자 성원들이 관공서에 굽신거리고 심심하면 날밤 새우면서까지 그쪽 공공예산을 지원받아서 한국만화에 관한 종합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려던 것이(그나마 현재 거의 파국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단지 안티 대여점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나태한' 작태로 매도당하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던 '빠담빠담' 등의 작품활동도 그렇고, 개.인.차.원.에서 각종 만화 관련 논문과 기사들의 아카이브를 만들고 계신 하림님도 그렇고, 심지어 이런 '엉터리 도깨비같은 한국만화판'에서 아직도 진지하게 이런 지면을 유지해 보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입니다. 아마도 대여점 철폐 운동에 뛰어들지 않은 데에 대한 변명으로밖에 안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뭐라고 말해도 그렇게 들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독단을 깰 수 있는 방법이 '논리'이외에는 현재로서는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셋째, 만화평론'계'를 항상 전제로 논지를 전개시키는 부분에 대해서 이견이 있습니다. 과연 한국만화에 '평론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저는 그것부터가 궁금합니다. 특히 현재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말입니다. 만문연은 거의 2년째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의 중심축이었던 손상익씨와 박석환씨는 시공사 코믹플러스에서 한 자리씩 하고 계십니다 - '코코리뷰'는 언제쯤 다시 나올지, 전망이 없습니다), 오즈도 폐쇄했고, 코믹스투데이나, 코믹플러스, n4 등 대형 '만화포털' 사이트 들의 만화 담론란들은 실질적으로 활동이 정체되어 있습니다(아, 천리안 웹툰도 까먹을 뻔 했습니다). 특집 개념으로 한가지 사안을 다각적으로 파고들어가는 식의 기본적인 '커버스토리' 구성을 지니고 있는 지면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남은 것은 작품 소개, 리뷰하는 란과 신간소식, 최신뉴스 등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현재 그렇게 이야기하는 '평론가의 지면'입니다. 여기서 취재기자가 신간소식, 최신뉴스까지 차지한다고 치면, 애초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풀어낼 '공식지면'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입니다. 또한 단행본은 어떨까요? 작품 리뷰 소개집, 혹은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거의 나가지를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제대로 내줄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인 조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속에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평론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까? 한국만화평론가협회고,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학회고 간에 현재 몇 년간 이미 실질적인 유령단체처럼 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개인 평론가의 공식적 '등단' 통로처럼 여겨졌던 신문 공모전도 중지된지 오래이고 말입니다. 만화평론계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이미 과거의 환영을 쫒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재는 몇몇 평론가 개인들이 몇 안되는 지면에서 소개나 리뷰 칼럼을 연재하고 있을 뿐이고, 어쩌다가 평론을 표방하는 자생적인 단체들이 '그냥 독립적으로' 몇 생겨나서 자신의 지면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뿐입니다(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문화권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두고보자는 만문연보다 올쏘에 가깝다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분석일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특히 시간과 비용, 노력을 일방적으로 쏟아부으면서 이런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만화창작보다 열배 백배 전망도 없고, 현재 가진 지분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로 만화 평론입니다. 돈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예도 권력도 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론가' 전체를 들먹이면서 영화니, 문학이니 하는 부문들을 끌고와서 '평론가란 이런 대단한 권력자들이다'라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만화평론이라는 것은, 부러워 할 구석도, 대단해보일 구석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만화 평론계'의 실체입니다.
넷째, 다른 '타칭/자칭 평론가'라는 사람들이나 그들에 대한 기대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시간과 능력이라는 변수를 제발 가볍게 여기거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문제를 담론화 시키기 위해서 특집으로서 다루고, 공청회를 기획하고 있는 등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작년 하반기에야 활동을 시작한 웹진이 97년부터 대여점 철폐 운동을 벌여오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힙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그것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시기에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고, 다양한 시점과 대안들을 분석, 제시하는 것이 '공식지면'의 당연한 수순이며, 담론화에도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지금이 가장 다루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금 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4번밖에 나오지 않았고, 제도권을 목표로 한 적도 없는 웹진에게, 이것이 결코 '과도하게 때 늦은' 기획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간할 때 톱으로 대여점 특집을 했어야 했고, 매 호마다 대여점만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싶으시다면, 죄송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0호에서 두고보자는 한국만화에서 '중견'의 고리가 사라져 버려서 하나의 문화로서의 힘이 상실되었다, 이를 다시 끄집어 내야 한다는 취지로 특집을 만들었고, 1호에서는 90년대 이후 독자들의 '힘'을 상징하는 동인/동호회 문화를, 2호에서는 작가와 장사꾼 간의 첫 데뷔에서부터의 권력관계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공모전을, 3호에서는 한국만화가 나갈 수 있어야 할 다양한 만화 형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유럽만화의 한국 유입을 다루었습니다. 지금껏 대여점 철폐만을 전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고 해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묻혀 버리는 것은 정중하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여하튼, 또다시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무슨 소리를 듣던지간에 이번호에서는 대여점 문제를 다룰 것이고, 그 중에는 어떤분들은 좋아하실 부분도, 어떤 부분은 싫어하실 부분도, 어떤 부분은 완전히 새로 듣는 부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원래 뭐든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한번도 제대로 소속해본적이 없는 거대한 모호한 실체인 '만화평론계'의 핵심인양 취급받는 것도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도 직접 주장해본 적 없이 타칭으로 '자칭 만화평론가' 소리를 들을 만한 이유도 없으며, 프로는 모든 글에 똑같이 책임이 있다라는 획일적 잣대의 말도 사양합니다. 더 공식적인 지면, 덜 공식적인 지면, 대놓고 사적인 지면, 등 모든 지면은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그 차원들을 흐트려놓고 호도하는 것은 좃선일보나 하는 짓입니다(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가지고 공적인 스캔들을 만드는 등). 모든 개인 성원들의 글을 임의적으로 '공식적 견해'로 만들어주시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평론가의 위상이나 현재 하고 있는 역할 등에 대해서는, 저도 불만이 많고, 그것과 관련해서 제대로 된 특집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때, 박무직님 등 여러분들의 도움 다시 부탁드립니다.
자꾸 '방어적이고 변명조의' 이야기처럼 되버리고 있어서 저도 참 답답합니다(제 성격에 너무 안맞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문화관광부 사이트도 아니고, 대여점협회 사이트도 아니라 제 홈그라운드이고, 전체 논쟁 자체가 두고보자(를 가장한 전체 만화 평론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서 시작된 이상, 이렇게 되는 것을 일정부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다음 이런 토론은, 앞서 이야기한 그런 곳에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안이든 정책이든, 그 사람들한테마저 먹혀 들어갈 정도여야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상식만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우선 그쪽으로 가기 이전에, 두고보자는 원래대로 기획을 밀고 나갈 것입니다. 더 서두르지도 않을 것이고, 더 지체하지도 않습니다. 공청회 또한 원래의 수순대로 진행할 것이며, 저희가 도움을 청할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손을 내밀겠습니다(자칭평론가라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라, 라는 말은 사양합니다). 그때 뜻이 맞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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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 11, Read : 516, IP : 210.114.16.202 2001/06/10 Sun 13: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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