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에 빨리 들어와서 연체료가 붙은 비디오테이프를 갖다주고 오려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지나간다고 만화책을 빌렸다. (우리 동네는 보통 비디오대여점과 만화대여점을 같이 한다) 제목은 '연애알레르기'라는 만환데 첫눈에 그림체가 너무 좋아 빼들었다 그림체는 h5하고 헌터헌터의 키르아를 섞어 놓은 거랄까 그랬다.
집에 와서 애기 봐주는 사이에, 애기 젖먹이는 사이에, 밥먹는 사이사이에, 빨래 게고, 청소 하는 사이에 화장실에 가서 큰 거 하는 척 하면서 봤다. 이일 저일 하면서 보다 보니 세시간이나 걸렸다. 이런 내 꼴을 집사람이 벼르면서 보다가 갑자기 비수를 꽂는 것 아닌가? "아직도 유치하게 여중생들이나 보는 순정만화를 보면서 키득 거리고 말이야, 실망했어" 운운 "좀 고급스러운 문학책이나 그런 건 하나도 안보고 날마다 만화에 무협지에 으이구" 운운 "하루종일 만화책이나 보고, 집안일은 신경도 안쓰고" 운운 억울했다. 맘먹고 잡으면 20분만에 해치울 만화 두권을 세시간만에 읽은 것은 얼마나 그 사이사이에 일을 많이 했다는 증거랴.... 그런데 집사람은 갑자기 진짜 비수를 꼽는 것이 아닌가! "연애하는 순정만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고등학교때 여자하고 말한마디 못해서 보상심리로 보는 걸꺼야, 아직도 사춘기에 고착되어 있는 인간아" 그런데 집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더라는 거지. 고등학교때 야자니 뭐니 하면서 새벽별보고 학교와서 새벽별보고 집에 가는 마당에 무슨 연애를 했을까, '그러는 너는?' 하고 쏘아 붙이려다가 봐줬다.
만화에 대한 비애호가들의 인식수준이 이것밖에 안된답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비난하는 집사람에게 따지지 못했을까요? 설득하기가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내 깊숙한 곳에 만화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이 잔존해 있어서 그랬는지 ........
* 이 글을 통해서 양해를 구하려합니다. - 저 앞에 짜고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은 정확한 사정을 모르고 첫눈에 드는 인상을 그대로 썼던 겁니다. 두분께 혹시나 심려를 끼쳤다면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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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 63, Read : 985, IP : 211.50.217.132 2000/09/20 Wed 01: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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