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래핑 문제
6회를 쓰려는 참에 들어온 비보가 순정 월간지 WHITE의 폐간 소식이군요.
굿바이 미스 화이트. (묵념)
이로서 폐간잡지 행렬은 펀치, 엔진, 히트, 빅점프, 나인, 화이트로 이어지는 무려 6개에 달하는 장대한 줄을 만들게 되었네요.
이 6개가 가지는 의미는 보통이 아닙니다.
이제 남은 만화잡지는 겨우 12개. 이 의미는 상당한 무게를 갖습니다.
전체 잡지의 1/3이 폐간(휴간도 있으나 사실상의 폐간)되었다니, 여러분은 한국의 대기업의 1/3이 문을 닫는 상황이 상상이 되십니까? 만화계는 지금 98년의 IMF보다 더한 상황입니다. 더구나 화이트의 폐간으로 이제 한국에는 남/녀 불문하고 성인 만화잡지가 단 1개도 없습니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전반적인 인식을 극명하게 증명한 것일까요?
결국 몇개나 살아남을지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심해도 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잡지가 손에 꼽히는 정도이니 현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지 모르겠습니다. 연재가 진행되는 것에 발맞추어(?) 무너져가는 만화시장을 보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 까 합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만화를 고르기 힘들다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만화가 볼만 한 지 알 수 없다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는 것은 불합리하다
-비닐로 싸여져 있으니 (랩핑) 도대체 속을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살 만한 것인지 고르기 힘들다'는 이 의견들은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만화책에는 랩핑이 되어있어서 내용을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기껏 표지 그림과 작가의 이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내서 작가를 믿고 그 작품을 사던지 친구들의 평가를 들어볼 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기껏 산 만화책이 형편없는 그림에 재미없는 내용이라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독자들의 욕구는 당연한 것이며 또한 정당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것을 보조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리뷰]
영화를 보는 이들은 영화잡지를 사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뷰도 있고 평론가들이 볼만한 영화인가를 점수도 매겨주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기준으로 유용하지요. 꼭 잡지가 아니라 해도
신문도 있고 TV에도 영화관련프로가 있으니까 볼 만한 영화를 찾아볼 자료는 충분할 겁니다. 그에 비해 만화는 어떤 작품이 볼 만한지 평가해 줄 만한 존재가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사회문제가 터지면 만만하기 짝이 없는 만화를 마녀사냥의 재물로 삼기 십상이고 무엇보다 만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드라마를 비난할 때 가장 모욕적인 표현이 '만화같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문기자들이지요. (여담이지만 예전에 제가 월간 NINE에 언론의 만화 경시풍조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기대할 수 없다면 잡지는 어떨까요?
<씨네21>같은 잡지가 만화계에도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영화잡지는 주간에다가 3000원이어도 수요가 충분히 있습니다. 극장을 한번 가는데 7000원. 그 정도 문화소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잡지가 그다지 아깝지 않을 겁니다. 괜히 재미없는 영화를 봐서 7000원을(보통은 2명이상 같이 갈 테니 손해는 더 크겠지요?) 날리느니 영화잡지를 사서 미리 체크를 해두는 편이 현명한 것이 되는 셈이지요. 무엇보다 20대 이상이 영화 주관람객인 만큼 독자에게 구매력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화는 일단 10대의 비중이 큽니다. 만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중고생 대상의 만화시장이 가장 치열하고 큰 시장인 것은 어딜 가나 당연한 법칙입니다. 그들에게 만화를 보조하는 비용으로 일주일에 3천원을 쓰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혹, 그 비용이 월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만화는 싸.거.든.요. 차라리 만화 잡지를 1개 구독하는 것이 경제적인 선택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부정하고 있지만 만화는 쌉니다. 이렇게 싼 문화상품도 드물다는 것이지요. 구매 가이드가 전혀 안팔리는 것이 당연할 만큼.
만화왕국 일본에서도 만화 리뷰잡지는 여간해서 찾기 힘듭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 만화 리뷰잡지는 단 하나. 게다가 계간지입니다. (계간지:1년에 4번 나오는 잡지) 한 출판사에서 만화잡지를 20개씩 내는 일본에서도 여간해서 내질 않는 리뷰잡지가 대한민국에선 절대 팔릴 리가 없지요.
그러면 네트워크를 통한 배포는 어떨까요?
한국이 인터넷 이용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게임방에서 게임 혹은 채팅을 이용해서 높을 뿐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트워크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일단, 네트워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외되게 되니 의미가 줄어듭니다. 아무리 만화 리뷰 사이트를 만들어봐도 TV방송 한번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아실 테지요.
그럼 무가지는 어떨까요?
무료로 배포하는 리뷰지도 좋은 방안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 무가지는 필경 대여점을 통해서 배포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광고수입으로 유지해야 하는 무가지에서 짜임새있는 기사나 필진, 무엇보다 공정한 리뷰는 기대하기 힘들지요. 더구나 이런 성격의 배포형 무가지는 전부 폐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뷰에 대한 결론은 어디까지나 '대책없음' 입니다. 제대로 된 만화평론가가 극히 드물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웃의 만화왕국은 리뷰잡지 없이도 만화시장이 잘 굴러갑니다. 왜 일까요? 독자들이 만화 표지만 봐도 뭐가 재미있는지 알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너무 부자라서 닥치는 대로 만화책을 사도 괜찮은 걸까요?
[랩핑]
결론은 랩핑입니다. 일본의 만화책은 랩핑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은 만화를 훑어보고 살 수 있습니다. 꼭 읽지 않아도 잠깐 넘겨보는 것으로 그림의 분위기라도 파악해서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고 나서 속았다고 발을 구를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스토리는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어떠한 소비에도 그렇게 완벽하게 상품을 알고 나서 살 수는 없습니다. 신발 고를 때 빗속에서 어떻게 될 지 테스트를 해보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랩핑이 없어서 충분히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잘못 고르면 어떡할 거냐!' 며 역시 대여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겠지요?
철저히 조사하고 비교하고 시승까지 해보고 나서 산 자동차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소비자 책임입니다. 다음부턴 그 작가의 만화를 안사면 될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현명한 소비를 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자동차처럼 비싸고 한번 사면 또 사기 힘든 물건도 아니구요.
그러면, 이렇게 사서보는 사람들에게도 불리하고, 당연히 책도 덜 팔릴테니 좋을 것이 없는 것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용을 궁금하게 해서 사보게 하려는 출판사의 잔꾀일까요?
굳이 출판사측이 랩핑을 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서점에서 책을 서서 다 읽기 때문입니다. 소설등의 일반서적과는 달리 읽는 시간이 짧다 보니 서점에서 선 채로 다 읽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지요. 출판사측 통계에 의하면 랩핑을 하면 8%의 판매량 증가가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랩핑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많은 분들이 랩핑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해 본 결과, 대부분의 구매독자들은 랩핑을 찬성합니다. (대여독자에겐 랩핑 유무는 관심밖인 것이 당연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 이유로
-남의 손 때 묻은 책을 사고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낮아진 단행본 질을 그나마 유지
-비닐 뜯는 기분이 좋다
등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타당한 의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행본 질 저하도 맞는 말씀입니다. 종이질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랩핑 찬성파들이 앞서 말한 '고르기 힘든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구요?
어차피 대여점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즉, 만화책을 사는 것은 [이미 읽은 책이지만 너무너무 훌륭한 명작이기 때문에 모셔두는 행위] 라는 것입니다. 혹은 작가의 열성 팬이던지요. 얼마나 만화책 구매가 매니악한 행위로 취급되는 시장인지 알 수 있는 결론이지요. 상당히 암울했습니다.
그럼, 결국 랩핑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8%의 판매 증가와 열악한 종이질을 참고 사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랩핑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랩핑은 사라져야 합니다.
구매자들이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판매는 정착되지 않을 겁니다. 책을 고르기 힘든 상황, 기껏 사려고 해도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것이 독자를 대여점으로 몰고 갑니다. 만화를 사서 보려던 독자들이 서점을 외면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서보는 시장으로 바꾸지 않으면 만화계는 확실히 침몰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만화시장은 대기업의 1/3이 문을 닫은 대한민국의 상황을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랩핑으로 얻어지는 8%의 판매 증가효과는 이미 무의미합니다.
이미 판매시스템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어차피 대여점에서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는 이 상황에, 랩핑은 구매자에게 방해가 될 뿐입니다. 책이 조금 상할 수도 있지만 갑자기 모든 사람이 서점으로 몰려가서 책을 구기면서 서서 읽는 것이 아닌 한, 그 피해는 미미할 것입니다. 혹, 랩핑을 없으면 구매를 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매를 자연스러운 행위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격하가 아니라 격상입니다!)
그럼 랩핑은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요?
그건 출판사가 결정할 일인 듯 하니 우리는 그냥 앉아서 랩핑이 없어지길 기다리며 그때까지는 할 수 없이(?) 대여점에서 만화를 골라야 하는 걸까요? 정답은 요구하는 겁니다. 출판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돈을 내주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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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 11, Read : 256, IP : 61.77.124.248 2001/07/01 Sun 22:5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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