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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글] 뒤늦은, 드래곤 라자 평

어딘가에 팔아먹어 보려고 했는데,
이제와서 [드래곤 라자]이기 때문에 결국 어디에도 팔지 못했음.
그냥 공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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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 이상구현에 실패한 영웅들에 대한 조롱과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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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가 인간보다 빨리 늙는 이유는 한 가지 뿐이야, 호라이즌. 자넨 악기 뿐만이 아니라 자네 자신도 죽이고 있어. 지평선을 넘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보인다고 해서 전부 다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 - [오버 더 호라이즌] 中

이영도의 환타지 소설들은 환타지라는 장르로 인하여 적절한 비평을 받지 못해왔다. 환타지 소설은 신세대의 문학이라는 규정 속에서 그의 소설은 일본류의 엔터테인먼트 환타지 소설의 한국판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한국의 환타지 소설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기성세대는 동양식 환타지 서사인 무협지를 열심히 읽고 있었으니까. 환타지 소설은 [화이널 환타지]와 같은 일본 RPG게임과 [타이의 대모험]과 같은 일본만화를 즐기며 자란 세대의 무협지에 다름 아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B급 장르문학의 발생이 갑자기 문학계의 도마에 오른 것은 그것이 기성세대의 눈에 이해하지 못할 무엇인가가 갑자기 출현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이 통신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소설을 쓰고 읽고 있다는 사실 - 그의 소설들은 하이텔에 연재되었다 - 이 불러일으킨 충격이었다.

당시는 "신세대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따라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있다"라는 시기였고 그에 따라 문화시장의 급격한 10대 위주로의 변동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하이텔에서 연재되던 [드래곤 라자]가 통신폐인들을 낳으며 자생적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하고 급기야 출판되어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올렸다. 이전과 비교해 젊은 세대가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당혹감과 위기감까지 겹쳐서 비평가인 정과리가 이영도에게 "환타지 소설에 문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진지하게 대담하는 일도 있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왠만한 소설가들이 자신의 카페나 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약간의 조소가 떠오를 수도 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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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최초로 주목받은 환타지 소설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주목이 작품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세대 현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이름이 많이 거론된 작품이 되었으나 소설가 송경아의 글줄 정도롤 제외하면 작품 내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된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이영도의 소설에 내재된 흥미로운 점을 간과하고 있었는데 만약에 작품 내적으로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흥미로운 논의점이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드래곤 라자]는 통신공간에서 연재되었다는 이유로 신세대 소설이라고 이야기되고, 또 그 안에 신세대들의 취향이 잔뜩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용이 지향하는 바와는 상이하다. 그의 소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상구현에 실패한 영웅들에 대한 조롱과 연민"은, 작가의 80년대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386 후일담 문학에 가까운 면이 있다. 주인공들이 마법을 난사하고 엘프나 나오고 난장이가 나온다는 점에 현혹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좀 더 논의할 꺼리가 많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라자]의 예를 들자면, 주인공들이 겪는 여행의 외형은 '반지의 전쟁'과 같은 전형적인 원정대 형태이지만 우연찮은 사건이 연이어져 큰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거치면서 주인공 일행은 전시대 영웅들의 신화가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전제군주인 '드래곤 로드'로부터 인간의 시대를 연 대마법사는 인간 종족의 완전성을 얻고자 부질없는 몸부림을 친 인물로. 그러나 그 어떤 시도도 모두 실패하고 몸을 숨긴 채 맹인이 되어 죽지 못하고 떠도는 인물로 그려진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독재로부터 승리한 성공담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이상에 패배한 이야기다"라고 [드래곤 라자]는 말한다. 

이상구현을 위해 몸부림친 영웅들. 지평선 너머로 가려 했으니 실패하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드래곤 라자] 뿐 아니라 그의 단편집에서도, 이후의 [폴라리스 랩소디]나 [눈물을 마시는 새]에도 반복된다. 불가능한 그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연민은, 이영도의 세계에서 코미드와 하드보일드, 낙관주의와 허무주의, 가벼움과 진지함이라는 양면성으로 드러난다. 이상사회, 인간사회의 완전성, 이와 같은 테마에 대해서 이영도는 어떤 시대가 그것을 이루려고 하던 영웅들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패배한 인간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환타지 소설에는 언제나 전시대 영웅의 신화가 등장하지만 그의 환타지 소설의 그것은 결코 '반지의 제왕'처럼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의 소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의 한 가지가 "이상구현에 실패한 영웅들에 대한 조롱과 연민"이라면 다른 한 가지는, "이종족과의 교류"이다. [드래곤 라자]의 '드래곤 라자'는 인간과 드래곤과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완전한 종족'인 드래곤과 교류하게 하여 인간을 완전하게 하려는 전시대 대마법사의 발상이다. 결국 결론은 드래곤이 인간에게 오염되어 미쳐 죽는 형태가 된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도 주인공은 이종족을 믿고 교류하려 하다가 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그 역시도 죽지 못하고 아내를 죽인 종족을 사냥하며 살아나간다. 여기에서도 타종족과의 균등한 발전이 "모두 완전해지는" 길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타자에 대한 이해가 대안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한 종족의 이데올로기가 옳다고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정 종족의 일방적인 교류의 강요는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영도는 90년대에 가까이 있기도 하다. 그는 90년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했을 법한 연령인데, 그것은 386도, 신세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이다. 이러한 중간자적 입장이 그를 전시대의 영웅들에 위치하게 하지도, 집단이 지지하는 대의명분의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 시대에 위치하게 하지도 못하게 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화자는 경계에 사는 인물이다. 그의 단편의 주인공 '티르'는 제국군의 검술사범이었다가 동료에 위해 배신당하고 작은 마을에서 신분을 숨기고 보안관 보조를 하고 있다. 그는 영웅과 작은 마을 공동체 사이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주인공은 인간 종족과 나가 종족의 경계에 사는 인물이다. 시대와 시대의 경계, 종족과 종족의 경계에 이영도 소설의 화자는 위치한다. 마치 나는 80년대의 인간도, 90년대의 인간도 아니고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니라는 듯이. 그러나 교류의 꿈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배신당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만으로는 완전해지지 않는다고. 하나의 정치 세력이 그 자체로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이상의 구현", "이종족과의 교류" 이 두 가지는 따로 떼어지지 않는 테마이다. 여기에서 대해 비관적일 때 그의 소설은 관념적으로 흐른다. 그의 장편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보면 주인공이 소소한 인간에서 신(新)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드보일드해진다. 그것은 그가 과거에 잠식당하는 순간이다. 반면 단편집에서는 시종 유쾌하고 낙관주의적인 사건들이 행해진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무대는 이종족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처럼 오크 보안관과 난쟁이 검사, 엘프 악사와 위어울프 친구가 한 마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그것은 허무주의와 다를 바 없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풍경에서 패배의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치유한다. 그것은 그가 90년대가 닥쳤을 때 그 풍경에 자신의 이상론을 덮씌운 결과이다. 이러한 아나키 소공동체는 물론 환타지이지만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일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또 이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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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소설이 "현실과 무관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신세대의 도피적 서사"라는 것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과 무관한 도피적 서사"라는 말도, "신세대"라는 말도 [드래곤 라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통신연재에 걸맞는 문법과 템포로 쓰여졌고 "화이어 볼" 같은 일본식으로 게임이나 만화에 맞게 변형된 엔터테인먼트적인 설정이 등장한다. 그런 것들이 신세대 취향이긴 하지만, 이건 외형의 설정일 뿐이다. 만약에 당시의 논자들이 신세대들이 "환타지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고 "80년대에 대해 집착하는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면 논의는 훨씬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논하는 자들이 이 장르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 개별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 각론이 서지 않는, 그저 현상에 대한 해프닝에 다름 아니었다.

[드래곤 라자]의 주인공 후치는 전시대의 영웅들이 어떤 이상을 걸고 싸웠던 간에, 자신은 마을에 돌아와서 소소하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마지막 드래곤인 아무르타트를 떠나보낸다. 그것은 신화를 떠나보내는 어린 세대의 이야기다. [드래곤 라자]는 독재정권과 싸웠던 세대, 그러나 결코 완전해지지 못한 채로 패배한 세대, 신화의 세대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해명하고 떠나보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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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아무르타트의 모습을 놓치기 싫어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후치, 그에게 무슨 말을 했지?"
"특별한 말은 없었지요. 그저 내가 지금껏 겪었던 일들을 들려줬지요. 그리고…"
"그리고?"
"극서를 향해 떠나달라고 말했어요."
이것이 나의 선택이다.
----------------------------------- [드래곤 라자] 中

[드래곤 라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세대구도는 작가의 세대에 대한 생각과 바램을 보여준다. 대마법사 '핸드레이크'(타이번)가 전시대의 지식인을, '후치'가 어린 세대를, '칼'이 그 중간자적 입장의 방관자에 대입될 수 있다. '칼'이 설명적인 화자라는 점에서 그에게 작가의 입장이 가장 많이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사건의 실제 화자이며 주인공은 후치이며 칼은 어린 그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종국에 대마법사는 새파란 꼬맹이에게 "어리석은 꿈을 꾸고 실패한 불쌍한 자"로 비판받고 전락된다. 그러나 여전히 영웅시대는 위대하다. 이상 속에서나마 그들의 업적은 노래로 불리워지고 있다. 괜찮은 균형인지도 모른다.

전시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중간자 세대의 입장에서 해설하게 하고, 어린 세대로 하여금 행동하고 판단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신세대에게 읽히는 작가의 교훈적인 소설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린 세대의 판단은, 이영도에 의해 대리로 행해진 것이다. 주인공 후치의 말들이, 사실 칼이 하는 말과 거의 다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교훈소설'은 어쨌거나 어린 세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20040602
Comment : 1,  Read : 5095,  IP : 61.73.67.99
2004/06/16 Wed 13:56:41

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군요! 흠흠 역시... 0.0

200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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