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제부터는 본 기자를 명예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곳에 온 지 32일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에 대한 감탄사를 멈출 수가 없다. 이는 단지 축구장에서 뿐 만이 아니라 (물론 화요일 독일과의 준결승 상대인 한국팀의 기적과 같은 선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곳에서의 모든 일상에서 다 그러하다.
일례로 오늘 나는 비를 맞으며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한 중년 남성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싱긋 웃으며 나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다. 지난 주 한 동료 여기자는 경기가 끝난 후 너무도 지쳐 지하철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진맥진한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어깨를 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 옆자리에 앉은 한 한국 할머니가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는 것이다. 그 할머니는 그녀 귓가에 조용한 자장가까지 불러주었다.
사실 지난 12월만 해도 나는 미국 월드컵 대표팀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다소 실망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음식 문제 때문에, 어쩌면 서울이 도쿄보다는 덜 매력적인 듯해서, 이도 아니라면 내가 뭘 몰랐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사실 나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운이 좋을 수도 없었다. 나는 아르헨티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 자국팀이 우승해 온 거리가 열광하던 그 현장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고 이야기 한다. 올해 월드컵 대회가 있기 전까지 나는 4년 전 프랑스 대표팀이 우승하던 당시 프랑스 현지의 축제 분위기 같은 것은 결코 경험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또 한 번 틀렸다. 지난주 화요일 밤 비번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유흥가인 이태원에 위치한 '3 앨리즈'라는 주점에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편집자와 (그리고 다른 열성 축구팬 친구들과) 함께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를 지켜봤다. 그곳은 만원이었다. 그곳 손님의 절반 가량은 한국인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영미권 사람들이었다. 한국이 안정환의 연장 후반 헤딩골로 이탈리아에 승리를 거두자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거리마다 인산인해였다. 폭죽도 밤하늘을 수 놓았다. 이후 자리를 옮긴 '게코'라는 주점에서는 한국인이고 외국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브라이언 아담스와 본 조비의 음악에 맞춰 의자위에 올라가 춤을 췄다. 이날 광경은 4년전 자국팀 우승에 기뻐하는 2백만명의 프랑스인들이 운집한 샹젤리제 거리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이날 승리는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8강 진출이었다.
(나는 지난 주말 한국이 8강전에서 스페인을 물리칠 당시 기사마감에 쫓겨 이곳의 축제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그때도 근무를 비웠어야 했는데..)
나는 이틀 후면 이곳 한국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만약 한국이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면 일본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 아마 나는 경기 내내 서울로 다시 돌아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마음씨 고운 서울의 축구팬들과 함께 하기를 바랄 것이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또다시 재현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국의 어떤 점을 이토록 사랑하느냐고? 나는..
... 한 입 물자마자 이마에 땀이 송송 솟게 만드는 김치의 맛을 사랑한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맛좋다.)
... 한국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사랑한다. 이들은 단지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술과 근성을 갖췄다. 또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격할 줄도 안다. (미국과 이탈리아 팀들에게 물어보라.) 심판 판정으로 득을 보지 않았냐고? 어쩌면. 하지만 이런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바로 홈 어드밴티지다. 한국팀은 충분히 4강에 오를 자격이 있다. 불만을 내놓고 있는 유럽 팬들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듀크대 블루 데빌 팀이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우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다. 더 이상 논쟁은 필요 없다.)
... 한국 SBS 방송의 축구 해설자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모든 경기를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어로 '네'(영어로는 '아니요- nay'라는 말로 들린다)라는 말은 그렇다(yes)는 뜻이다. 나는 아직도 이 점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지만 어쨌든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린다.
해설자 1: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해설자 2: 아니요!(nay!) 해설자 1: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해설자 2: 아니요!(nay!) 해설자 1: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해설자 2: 아니요!(nay!)
이런 식이다. SBS 축구 해설자들은 어떤 나라 선수든 간에 실수를 저지르면 매우 안타까운 신음 소리를 낸다. 또 한국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서로에게 마구 고함을 질러댄다. 심지어 이들은 8강전에서 한국팀이 승리하자 방송 중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는 물론 지나친 자국중심주의겠지만 어느 정도는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 거리 응원전에 나온 많은 한국 시민들이 경기가 끝난 후 쓰레기 줍는 모습을 사랑한다.
... 한국 축구팬들의 BE THE REDS 티셔츠와 KOREA TEAM FIGHTING이 적힌 스카프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USA TEAM FIGHTING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미국 축구팬들도 발견했다.)
... 미국전에서 골을 터뜨린 후 스피드 스케이팅을 흉내낸 안정환의 골 세레모니를 사랑한다. (잠깐: 천박한 행동이었다고? 만약 클린트 매티스가 골을 성공한 뒤 같은 행동을 했어도 이렇게 말할 것인가?)
... 한국 월드컵 조직위가 프레스 센터에 설치한 아름다운 '청사초롱'과 무료 스포츠 마사지 코너를 사랑한다. (어쨌든 프랑스 월드컵에선 이런 것은 없었다.)
... 박지성 선수를 사랑한다. 이 선수가 대 포르투갈 전에서 아주 멋진 골을 성공시킴으로써 미국이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아마도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은 그를 위한 자리를 하나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축구팬들은 등에 안정환의 이름이 적힌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다.(안정환은 한국의 데이빗 베컴 격이다.) 하지만 나는 박지성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구할 생각이다.
...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바깥 광경을 사랑한다. 며칠 전 한국 대표팀이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수많은 팬들과 취재진들이 호텔 밖에 밤낮없이 모여들고 있다. 오늘 더러운 빨래가 가득한 가방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온 나는 이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왜냐고?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 친구 여러분. 나도 열렬한 환호를 당신들께 보낸다.
Grant Wahl - SEOUL (CNNSI) / 오병주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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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Read : 308, IP : 211.209.4.7 2002/07/02 Tue 19:22:55 |
| capcold |
!@#...지극히 한국적인(...) 손님 접대 풍습이죠: `잘보이고 싶은 손님이 오면 집안 기둥이라도 뽑아서 내놓는다`는 것 말입니다...-_-; 뭐, 다행히도 이번 월드컵의 장점은, 접대하는 집주인들끼리도 전반적으로는, 무척 재밌었다는 것^^. 하지만, 역시나 이제 한달간 미룬 현실의 문제를 다루어봐야 할 때...(업데이트...라든지-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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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2 |
| capcold |
...위의 미국 기자는, 한달만 더 살면 아예 시민권 테스트라도 볼 채비를 하고 있겠군요. 평소에도 느끼는 바지만, 한국의 특이한 역동성(다르게 보자면 냄비근성, 닥치면다한다주의와 휘발성 사회적 기억력 등)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외국인들이 이리저리 있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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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2 |
| 무희 |
업데이트..하긴 하시는 겁니까??? 은근슬쩍 8호 표지로(역시 표지만)바뀌어버리고 모두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역시 휘발성 기억력인게지요..쿡쿡쿡 ^-^;;;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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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2 |
| ash |
[지나가다- 직접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백인/기자라는 점도 생각해 볼 만... 동남아 노동자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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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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