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문하생들, '사부'를 고소하다
"노예적 도제 시스템 더 이상 용납 못해" 만화계의 고질적 착취 구조 드디어 폭발
홍미진 기자 mizin@jinbo.net
인기만화가 장태관씨의 문하생 2명이 지난 7월 31일 문하생들에 대한 폭행 혐의로 장씨를 고소하자 같은 피해를 당하고 화실을 떠났던 다른 문하생 6명이 최근 이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이 사건을 알리는 일이 발생했다. 문하생이 '사부'인 만화가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좁은 만화시장에서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는 일종의 금기였다. 이 금기를 깬 대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제자도 피고용자도 동료도 아닌 애매하고도 종속적인 위상 하에서 '문하생'들의 인격적·직업적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자라는 이름의 노예"
장태관씨 문하생들이 고소취지에서 주장한 장씨의 범죄행위는 '폭력, 협박, 감금, 갈취 등'으로 화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다 일어날 수 있을까 의아하게 만들 정도이다. 이들이 검찰에 넘긴 장씨의 폭행일지 보고서에는 비현실적인 상황묘사가 마치 '만화'같다. 권투 만화를 그린 만화가답게(!) 권투 글러브를 착용하고 '벽에 피가 튀도록' 문하생을 때렸다든지, 마감을 이유로 귀가를 허락하지 않은 반감금 상태의 연속, 그리고 이를 견디지 못해 화실을 뛰쳐나가는 문하생을 창고에 감금시켜 놓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서야 도망을 칠 수 있었다는 등 '만화 같은' 폭력행위가 일상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조사에서 장태관씨는 "따귀를 몇 번 때린 적은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스승의 체벌 수준이었음'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장씨는 여성문하생을 포함해 문하생들을 사창가에 데리고 가 여성문하생 앞에서 매춘 여성의 웃옷을 벗기고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폭력도 자행하면서 이를 자칭, '제자들이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세상의 이면을 알게 하려는 스승의 뜻'으로 미화했다. 한편 장씨는 문하생들에게 개인의 대소사를 챙기는 몫까지 맡겼다. 아들을 돌보거나 가족을 챙기는 일, 심지어 집안 잔치에 동원돼 음식을 나르는 일까지 하는 동안 문하생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제자라는 이름의 노예"라고 표현했다. 점차 그의 폭력은 계약서와 차용증 등 비합리한 채무관계를 통한 지능적인 착취의 형태로 변모돼 갔다. 질 낮은 그림으로 스승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므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상호 신뢰의 상징으로 (실질적인 금전거래는 없는 상태에서) 문하생들에게 차용증 형태의 빚을 지우는 등 채무관계의 형태를 띄며 폭력 수위가 높아졌다. 이번 장태관씨 고소사건은 만화계의 도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열악한 만화시장의 정점에서 이뤄지는 착취와 만화계가 이를 암묵적인 용인해 왔음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모든 만화가가 비인격적인 관계에서 문하생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겠지만 만화가는 문하생을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채용한 일종의 '고용주'이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계급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런 종속적인 관계가 폭력을 낳거나 혹은 용인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 사건이었다.
열악한 만화시장 속 착취구조
장태관씨 문하생들은 "모든 만화인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며 장태관씨가 유독 함부로 폭력을 행사한 특수한 상황이었으므로 이 사건으로 만화인 전체를 매도하고 싶지 않다"고 당부했지만 장태관씨 문하생들 역시 "문하생들이 만화가에게 도전하는 것은 곧 만화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이 사건이 얼마든지 일반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췄다. 만화 출판인과 결탁한 만화가가 자신의 문하생들이 전문 만화인으로 등단할 때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유명 만화가가 신인작가를 추천하는 경우 수상 가능성 여부가 변화할 수 있는 정도라든지, 스승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은 문하생이 만화시장에서 그나마 입지를 세워갈 수 있는 구조, 결국 연줄로 이어진 만화계 자체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장태관씨뿐 아니라 일부 권력화된 만화가가 만화계의 고질적인 상업구조를 악용해 만화계의 모든 환경을 차지해 왔음을 시사한다. 이번 사건은 대여점 폐해 등으로 만화인 대부분이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화계의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부 유명 만화가의 독식과 그를 중심으로 한 만화계의 재생산 구조를 보여주었다. 결국 장태관씨 사건은 장씨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만화계의 문제다. 유명 만화가의 그림이 아니면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구태의연하고 비합리적인 출판만화산업의 다른 한 축에는 세금 없는 대본소 수입, 잡지 연재물 고정수입, 단행본 1권당 1천만원 수준의 계약금 등 신인이나 비상업적 비주류 만화가는 꿈꿀 수 없는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한 정점에 서 있는 문하생과 비주류 만화인의 고혈을 바탕으로 다른 한 정점에서 유명 만화가의 이름은 곧 하나의 기업이 된다. 유명 만화가의 독식,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출판만화시장의 구조적 맹점, 그리고 이 먹이사슬이 장태관씨와 같은 폭력을 용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착취를 자행하지 않더라도 이 구조 하에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일부 만화인은 만화계 정상화에 가장 큰 책임을 안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만협도 한 통속"?
혹시나 중재에 나서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국만화가협회 게시판에 하소연을 올린 장태관씨 문하생의 사연은 '근거없는 인신공격'이라는 이유로 삭제됐다. 문하생들의 입에선 '만협도 결국 한통속'이라는 탄식만 나오기에 이르렀다. 평소에 운영자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만협 게시판에는 어느날부터 갑자기 '만화박물관'이라는 이름의 옛날 만화 주인공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장태관씨 화실의 팀장이었던 K씨는 대출받은 돈으로 문하생들에게 월급을 준 경우까지 있었다. 다른 장태관씨 문하생들도 그 동안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1∼2년 일하는 동안 통장에 들어온 입금 총액은 평균 100만원 내외였다. 현재로선 장태관씨를 폭행 혐의만으로 형사 고발한 상태지만 이들이 장씨의 임금 체불과 미지급을 문제삼아 민사 소송으로 확장할 경우 문하생들의 '노동자성' 여부는 애니메이터 노조의 투쟁에 이어 다시 도마에 오를 예정이다. 암묵적인 관행으로 작동하고 있는 문하생들에 대한 착취에 대한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는 침묵의 카르텔을 깬 양심적 내부고발자로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이어가는 것은 기득권 만화인들과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의 몫이다.
<월간 문화연대 2000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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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Read : 1485, IP : 218.52.224.101 2002/09/09 Mon 22:44:33 |
| 흥분 |
장태관 개쇅! 니만화는 대여점에서도 퇴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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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1 |
| 한진욱 |
물론 좋은 사람이 좋은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사기꾼이라고 밖에 생각을 못하겠군요, 꿈을그린다는 만화가가 남의 꿈을 짖밟고 이용하다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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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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