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그 이름 석자.
이게 또 말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좀 등록이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요? 일단은 저도 여기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런 공간에 글자를 남기고 싶은 거라고나 할까요? 이쯤에서 저는 박무직..이라는 사람을 저 나름대로 정리해두고자 합니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변명할 것은 변명..하고 말이죠.
에반게리온과 영화 '꽃잎'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뒤범벅된 고 3 여름, 문득 사본 잡지 윙크에서 박무직이라는 만화가를 알게 된 것이 저 개인으로써는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만화책과,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과 영화 잡지 키노 97년 8,9월호와 주말 새벽에 보던 영화 비디오 테잎만이 그 지독하게 암울했던 고딩어 시절을 지탱해주고 있던 그 때. 즐겨보던 만화책들 중에서도 여름부터 끔찍히도 아껴보던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박무직의 단편집 '하늘 속 파람 그리고 별'이었습니다. 가끔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부모눈에 띌까 고이 책장속에 숨겨둔 이 녀석을 꺼내어 보곤 했습니다. 마지막 단편 'Night'의 그 깜깜한 밤하늘이 나올때까지..
그리고 대학생이 된 저는, 98년 9월의 키노 기사에서 자신의 작품 'Toon'의 이야기라며, 그(박무직)가 '대여점 문제'를 거론한 기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98년 2월부터 매월 영화잡지 키노를 사봤습니다. 현재는 '오후'창간만 기다리는중 --;) 저는 지금도 그 기사에서 그가 한 주장들과 근거들이 '거의'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여점이라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필자 박무직은 그 폐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단, 250 페이지 네번째 단락의 첫번째 문단에서, "...만화시장을 축소시키고 권당 판매량을 최소화하고 상한선을 규정해버린다."라는 주장과 그 이후 전개된 필자의 잘못 쌓아올린 모래성만 뺀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 저 문장이 성립하기 위한 몇가지 현실상에 존재해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무지했던 거죠. 만화를 보는 것만 생각했지,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어쨌든, 그 때 그 기사를 읽은 뒤부터 저 역시 그냥 지나치고 있던 '대여점'이란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때껏 대여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 자신이 '다독'을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대여점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거니와, 으레 보고 싶은 책은 사서보는 습관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1년 6월까지는 박무직의 주장을 별다른 고민없이 수용했고, 여기저기의 공간에 그 주장을 반복상영 했습니다. 네.. 그러니까, 이곳 두고보자에 특집기사로 '만화대여점은 만화계의 수치인가'라는 특집기사와 그 이후 모님과 박무직님의 이 웹진의 논쟁게시판에서의 토론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결국, 계속된 득행(?)끝에 저는 98년 9월호의 기사에서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그 문장이 나온 때부터가 박무직의 '오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2001년 8월에 이르러서야 내리게 된 결론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 때 내린 결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매해 5월이 될 때마다, 그리고 무슨 청소년 범죄가 터질 때마다 '불량문화'의 선두주자로 흠씬 얻어터져도 괜찮을 만큼 만화라는 매체는 그것이 갖는 '시장의 규모'가 정부에서 무시해도 좋을만큼 충분히 작은 시장이었던 겁니다.
통계자료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단순히 생각해 봤을 때, 대여점은 시장의 규모 자체를(양적인 면에서만) 엄청나게 키워놓았던 겁니다. 그렇기에 출판사들은 박무직이 언급한, '판매의 상한선이 정해진 시장'에 대해서 별 거부감없이 적응한 것입니다. 자의식이 강하고 참여의식이 투철한 만화가 박무직은 옳았습니다. 대여점에 대항해야만 한다는 그 방향에 한해서 그는 옳았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방향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박무직은 잘못 생각했다고 봅니다.
결국, 그는 대여점에 대신할만한 다른 무언가를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여점에서 300원어치 만큼의 '소비'를 즐기는 독자에게 그것을 대신할만큼 충분한 매력을 가진 '만화'의 모범작을 당장 보일 수도 없었거니와, 출판사들에게는 대여점이 없어지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수익 모델'을 제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만화책을 사서보라는 막연한 '건의'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닌 '한계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자신의 만화가 '시장'에서 대접받기를 원했던 겁니다. '분배의 정의'를 만화판에서 외친 최초의 선구자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무직은 그것을 만화판의 '한계'로,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 설정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악바리 근성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점점 더 '선동성'을 띄기 시작하고, 그에 기반한 '매카시즘'에 의해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면 모두 다 '반동'으로 만화계 사람들을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만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박무직의 주장에 대해 근거하나가 좀 수상하다며 쉽게 의심하고 금새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박한 만화가 박무직을 이해하지 못한채,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아가며 불쾌해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화가에 대해서 그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가진 '사상'을 이유로 설자리를 멋대로 빼앗아가는 출판사들을 비판합니다. (사실 그의 최근작들은 제가 보기에도 다소 전작들에 비해 떨어지는 듯한 감이 듭니다만) 그리고, 만화가라면 '만화'로 말하라며 그의 발언 자체를 막으려는 일부 꼴통들 역시 비판합니다. (만화가건, 노동자건, 학생이건 그 누구건간에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가 신문 기자에게만, 청문회에서 심문하는 국회의원에게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한 만화가에게 상처만을 안겨주고 있는 저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직접 제 글을 봤건, 보지 않았건 간에.. 이것은 하나의 '여론'에 가세했을테고.. 결국 어떤 억압으로 만화가에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꽤.. 착잡합니다. 그리고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런 글 썼다고, 제가 그에게 던진 돌들이 다시 물러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눈 앞에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요. 만약 그가 다시 '선동'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논리에 찬성하지 않으면 모두 적으로 몰아가려 한다면, 다시 그에게 돌을 던지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렇기에 걱정됩니다.
1998년에 박무직처럼 움직이는 만화가가 몇 명만 더 있었어도, 박무직씨가 저렇게 극단적으로 갔을까요. 그의 모습과 절박한 심정의 테러리스트가 포개어지는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역사에 'if'라는 건 없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s. 낼름 글하나 써놓고 죄의식이 씻겨지길 바라느냐..라는 조의 비난글 환영입니다. 글 진짜 허접하다도 환영. ㅠ ㅠ. 단, 이 곳의 다른 모든 분들까지 싸잡아서 비난하는 식의 리플은 삼가해주세요. 기왕 쓴 글 그냥 삭제하고 싶지는 않네요..
ps2. 자야하는데.. 잠이 잘 안 오는군요... 그냥 그런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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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Read : 583, IP : 61.101.37.95 2003/04/14 Mon 04:58:00 → 2003/04/14 Mon 05:00:02 |
| c |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윙크에 박무직의 원고가 한 페이지만 실려도 반갑고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고 그의 단편집이 나왔을 때 반가워하며 책장에 꽂은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에는 그의 작품이나 글을 대할 때 마음 무거워지곤 해서, 그것이 또 마음 무겁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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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4 |
| PINKSOJU |
...죄책감을 더해서...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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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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