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본소용 공급 스타 작가들
독자 취향변화 살아남기 몸부림
19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본소용 만화. 매일 한 두권씩 시리즈를 쏟아낸다 뜻에서 만화계에선 ‘일일 만화’라고
부른다. 이 사업에 손을 댄 많이 출판사들은 여기저기 빌딩을 올릴 수 있었고, 인기 작가 스카우트 비용에 10억이 넘는 돈을 내걸기도 했다.
한 작가가 프로덕션 개념으로 많으면 100여명이 넘는 인원을 거느리고 한 달에 10~40종에 이르는 엄청난 양을 쏟아내는 일일 만화.
이현세, 이상세, 박봉성, 이재학 씨 등이 일일 만화의 전성기를 몰고 왔다. 이현세 씨의 <공포의 외인구단>, 이재학 씨의
<추혼 13절> 등이 대표적인 일일 만화.
하지만 작가가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질이 떨어지는 작품을 상당수 생산했다는 점에서 ‘공장만화’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에게 외면 받게 됐다. 한창 때 30개가 넘었던 프로덕션 가운데 지금은 10개 정도만 살아남은 상태.
위기를 맞은 대본소용 제작만화인 이른바 ‘일일 만화’ 작가들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다. 출판사에서 엄청난 고료를 받고 나머지는
출판사에 맡기던 작가들이 직접 출판사를 차리는가 하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0여명의 작가들이 최근 처음으로 공동 대처 모임을 가졌다. 일부
작가들은 제작 경비를 낮추기 위해 해외에서 원고 제작을 꾀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일 만화 작가들의 모임인 ‘금요 만우회’가 결성됐다. 회원은 일일 만화 최후의 생존자 11인으로 박봉성(회장),
황재(총무), 고행석, 김철호, 오일룡, 사마달, 황성, 하승남, 조명훈, 조명운, 야설록 씨 등이다.
이 모임의 회원인 한 작가는 “20년 이상 각개전투를 하던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위기 의식이다. 공동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일 만화의 평균 부수는 2000년 권 당 4000부에서 현재 2500부 선으로 떨어졌다. 손익 분기점인 2800부 선이 무너진 것.
원고료를 깎아 버티고 있지만, 결국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1월에는 인기 작가 황성 씨가 소속 출판사에서 독립해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차렸다. 95년 무렵부터 일일 만화가 하향세를 그리면서
시작된 작가 출판의 한 예이다. 출판사에 소속될 경우 고료는 많이 받지만 작품이 크게 히트하면 생기는 별도의 수익은 출판사로 돌아간다. 위기감을
느끼면서 작가들이 그 수익을 직접 챙기겠다는 이야기.
동남아시아로 화실을 이전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제작비를 1/5로 줄일 수 있기 때문. ‘야컴’을 운영하는 스토리작가 야설록 씨는
2001년 미얀마에 이어, 지난해 6월 베트남 하노이에 화실을 설립했다. 하승남씨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호치민에 화실 설립을 위한 답사 팀을
파견했다.
야설록 씨는 “올해 일일 만화작가들의 해외 화실 설립이 붐을 이룰 전망이다. 인력 수준도 우수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일일 만화가들이 공동 마케팅, 인터넷 만화 수입 등 다양한 활로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 일일만화 작가 출판 형태
① 작가 본인이 작품을 하고
사장으로 경영에 깊이 참여하는 경우. 전문 경영자(월급 사장)를 두고 경영한다 : 야설록, 박봉성, 황성, 고행석 씨.
② 작가가 명목상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흥행에 따른 이익과 실패를 직접 감당하고 출판사는 출판 만을 대행하는 경우 : 사마달, 황재,
조명훈, 김철호 씨 등.
③ 작가는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의 이름을 걸고 가족이 대신 작품 제작과 경영을 꾸려나가는 경우 : 이재학 프로덕션(1996년 이재학 씨가
작고하면서 부인이 다른 제작자를 고용해 책을 내고 있음). |
장상용 기자 enisei@daily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