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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랄랄라17] 박성우의 만화들에 대한 짧은 단평
[팔용신전설]은 그러니까 한국만화가 일본만화를 따라잡으려 발버둥치던 초기의 인기작이었다. 즉, 독자들이 즐겨 읽을 만한 일본양식의 한국만화였단 뜻이다. 이 만화를 지금 다시 보면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설정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하고, 종종 엄청나게 비약하며, 팔용신전사들이 왜 팔용신전사가 되었는지의 필연성은 전혀 없다. ."주요 인물이 한 8명 정도 되는데, 그들이 모두 용신전사나 혹은 그 주변인물이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운명?", 결국 운명이라는 말로 밖에 해결되지 않는데, 이를 위해서 다른 만화들은 전생이라든가 신화라든가 하는 설정들을 잔뜩 끌어온다. 팔용신전설에는 이런 정도도 없다. 아니, 미처 준비되지 않고 그려나간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조잡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연출도 그저 그렇다. 그리고 큰 단점 중의 하나는 캐릭터들의 형상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 팔용신 중의 어떤 캐릭터는 그냥 등장하기만 할 뿐이다. ... 이런 점들은 이것이 박성우의 최초 연재작이라는 점과 그의 군입대 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작품 자체로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의 한국소년만화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박성우의 스토리.... 의 특색이 하나 드러난다.

그것은 '폭주하는 힘'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이 상정된다는 점. (지극히 흔한 일본만화적인 설정이다. 이 설정 그 자체에 대해서 언제 한 번 논의해보고 싶다) 천성적으로 엄청난 힘을 타고난 주인공은 폭주하는 힘에 지배되지 않고 그것을 다스리는 데에 번번히 성공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는 '아버지이거나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와의 대립, 극복'이다. [팔용신전설]에서 주인공은 천마뇌제의 힘에 의해 지배당하는 자신의 사부, 길러준 아버지를 죽인다. (실제 아버지와도 한바탕 싸운다)

이러한 설정은 [천랑열전]에 의해 이어진다. 천량열전에서 주인공은 연오랑은 '대사형'(아버지 역할 캐릭터)이 스스로의 힘에 지배당해 폭주,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이상의 힘을 그러한 힘을 타고났다는 것을. '천랑의 재능'이라고. 그리고 대사형과의 대립과 극복. [천랑열전]의 시나리오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팔용신전설]의 스토리 골격을 꽤나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자와 주인공과의 대립은, 암투, 음모, 미스테리 등으로 상당히 개연성있게 짜여졌고, 읽는 이의 눈을 찌푸리게 할 만한 설정 상의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레이'의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 캐릭터와의 로맨스. (천산검녀의 제자... 이름이 뭐였더라) 연출이 대단하다고까지는 할 수가 없지만 작화들도 눈길을 끌 정도로 세련되어졌다. 이 작품은 박성우 스타일, 혹은 박성우 스튜디오(스튜디오 Zero) 스타일을 확립시킨 작품이라 할 만하다.

아마도 이때까지는 박성우는 시나리오에 상당히 개입을 했다고 생각한다. (확인해보지 않았음) 그러나 그 이후에 시나리오는 아예 독립파트로 분리된 듯 하다. 때문에 시나리오를 가지고 박성우를 평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팔용신전설 Plus]는 시나리오 작가가 8권 정도에서 한 번 바뀐다. 문하생 중 한 명이 스토리를 쓴다는. 콘티까지 담당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적어도 아주 최근의 작품들, 게임과 함께 나온 [Zero 시리즈] 라든가 [페이건즈], [사이버 돌] 등은 아주 명백하게 스토리와 콘티가 분리되어 전문인에게 맡겨졌다는 티가 난다.

이 최근의 작품들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별로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들은 아니다. 잡지사의 입맛에 걸맞게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는 느낌이어서, 이런 요소를 약간 첨가, 저런 요소도 약간 첨가, 이런 캐릭터는 필수로 등장함.... 하는 식의 스튜디오 생산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런 저런 자극적인 요소들마저 거의 완전히 표준화된 느낌이라는 거다. 일본만화들에서 이미 검증된 샘플들을 조합해놓았다는... 뭐, 어차피 우리는 만화에 별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것은 [팔용신전설 Plus]다. 이 작품은 [팔용신전설]의 스토리의 골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 팔용신들이 존재하고, 진룡인 주인공은 여전히 폭주하는 힘에 의해 골치가 아프다.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은 좀 예외성이지만. 그리고 음모라든가 암투 등.... 박성우 만화의 전개요소들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연재잡지가 중단되는 바람에 (어디 연재작이었지?) 단행본으로만 나온다는데.. 꽤 오랫동안 다음 권이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메카물의 요소를 결합시킨 '용신기'의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그 이전작품과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도 좋다. '손룡'은 항상 약삭빠른 여성 캐릭터라든가 하는 식의.

이 작품은 되도록 완결되기를 바란다. 한국소년만화에 완결된 대작이라는 것은 무척 드무니까 말이다.

박성우의 (혹은 박성우를 수장으로 하는 스튜디오) 또 하나의 후속작이 있는데, 그것은 [천랑열전] 후속작인 [나우]이다. 이 작품에서 어린 주인공들이 전작에서는 초필살기였던 것을 마구 써버리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드래곤볼에서 오천과 트랭크스가 5살 경에 초사이어인이 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이 작품은 또 어찌 될 터인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Read : 1922,  2001/09/14 Fri 23:23:21 → 2001/09/15 Sat 02: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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