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漫畵의 現實'을 스캔하다가 문득 끄적끄적 ...
나는 만화독자이기도 하지만 만화평론의 독자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열심인 ... 이런 따분한 취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처음으로 접한 평론다운 것이 만화광장에 실리던 최열의 연재물이었으니 그때쯤일까. 뭐 ... 만화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최열의 논지자체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 그저 고등학생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읽고 넘어간 정도. 그러다가, 오규원의 만화평론집 ‘韓國漫畵의 現實’을 접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부담 없는 가격 때문에 서점의 가장 구석에 꽂힌 이 책을 집어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읽는 것도.
‘오 ... 이거 괜찮은데 ...’ 민중만화 담론이 아직 위력을 잃지 않던 때였고, 90년대 새로 등장한 평론가들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은 있던 때여서 ... 70년대 후반에 쓰여진 이 책을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90년대에 이루어진 평론작업들에 대한 실망과, 이 책(그리고 당시 오규원과 김현이 보여주었던 일단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가 교차했고, 결국 ‘뭐야 10년 주기 퇴보냐?’ 라는 것이 이 바닥에 대한 h의 기본 인식이 되었다고 할까.
김현은 평론을 ‘지식의 예술’이라고 정의했고(다른 누가 먼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멋지구리). 김윤식 교수는 퇴임하면서 자신은 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실패자라고 ... 꽤나 자괴적인 인터뷰를 하던데(보는 사람 무안하게 말이지). 이 대단한 평론가들의 머릿속은 잘 모른다 그냥 찍어서 말해보건대 ... 여기서 예술이 된다고 하는 것은 모랄까 ... 평론이(여기서 평론과 비평을 굳이 구분하진 말자 ... 귀찮다 ... 그건 나중에) 평해지는 대상을 떠나서 혹은 그것 없이도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그럭저럭 무난한가?
음 ... 왜 ... ? '***만화에 대한 리뷰‘는 ’***만화‘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글의 수준에 대한 문제는 아닌 거다. 평론을 통해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공간에 단순한 정보전달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하겠다는 진지한 의도가 보이는가. 90년대의 평론 글에서 이런 면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나 같은 평범한 만화독자의 입장에선 정말 슬픈 일이다.
‘韓國漫畵의 現實’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의 하나는 ‘뿌리깊은 나무’ 만화공모전의 한칸만화 심사기인데, 다시 들쳐 볼 때마다 흥분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다고 할까. 그 이후 20년이 넘도록 이만한 만화심사평을 본 적이 없다. 그 반(의 반)에 미치는 것도 없었다. 최근의 출판사 만화공모전은 대개 편집부 기자들끼리 심사해서 최종당선작을 뽑는 모양이다. 외부공모전은 대개 만화가들과 약간의 평론가들이 하지만 ... 뭐 좋다. 심사기준? 작품의 수준? 다 괜찮다. 맘대로 정해 ... 근데 왜 거기엔 ‘觀’이 없는가. 뭘 보고 뽑았는지.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통찰을 했는지, 어떤 새로운 흐름이 있는지, 이 신인의 작품에 독자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 알게 뭔가. 얘기 좀 해줘! 심사위원이라면 작품을 응모한 신인들이 진지한 것의 반만큼이라도 진지해야 할 거 야냐. 심사평은 아예 없거나 ... 몇 줄의 공치사로 때워지는 것이 전부. 거기엔 진지함도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겠다는 시도도 ... 아무 것도 없지.
h는 스캐너 구입기념으로 이 책을 스캔하면서 ‘한 칸 만화 심사기’를 다시 음미해본다. 지면의 성격과, 심사위원의 면면과, 응모된 작품과 작가와 거기서 오간 이야기들의 진지함에 관해서 ...
“역시 10년 주기로 퇴보하고 있다니까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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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 2, Read : 2264, 2001/10/05 Fri 12:31:23 → 2002/10/24 Thu 11:28:36 |
| 기린아 |
뭐 틀린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과거의 만화평론이 과연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길을 갔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군요. 적어도 제가 들은 것들은 90년대 후반을 이해하는데는 눈꼽만큼도 도움이 안되는 툴을 사용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종속된 시장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들은 대부분 너무 극단적이고, 극단적 종속 이론이거나 아니면 너무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그런 점에서 미형그림의 내적 재생산을 지적한 박무직은 꽤나 대단한 일이었습니다만...(왜 지금은 이런지...으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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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5 |
| halim |
말씀하신 부분은 ... 아마도 80년대 민중만화담론들에 해당될 겁니다. 최열, 위기철, 곽대원 등이 참여했던 당시의 논의들은 ... 남미의 민중만화운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당연히 종속이론, 일본/미국풍에 대한 배척 그런 것들이 따라왔습니다. 상업만화의 흐름을 지나치게 도외시했구요. (그렇다고 뭐 ... 인디만화적인 감수성을 가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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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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