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앞으로 쓰고 싶은 비평글의 초안이다. 보통 천계영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로서의 만화이고, 혹은 남성만화의 특성을 순정만화에 도입하기라든가, 상품으로서의 만화 등등이다. 이 부분은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의도하는 것은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기이다.
천계영의 만화가 가지는 상업적 파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간 반면, 그의 만화가 놓인 미심쩍음, 애매함 등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그의 만화는 부르주아적인 만화라는 인식 속에 있다. 이러한 부분은 천계영 만화의 캐릭터들이 매우 캐릭터성이 강력하다는 부분 때문이며, 트렌드적이라는 이야기다. 대중성이 강한 만화는 잘 평가되기 어렵다. 대중성이라는 부분이 너무 큰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천계영의 데뷔작은 '탤런트'라는 단편이었다. 이 작품에는 그의 모든 주제가 함축된다. 그의 만화가 가진 내용은 실제로 잘 뜯어보면 독특한 부분이 있다. 이 만화는 생각없이 읽을 수 있다. 천계영의 만화는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대중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캐릭터들이 놓인 현실적인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여주인공은 나쁜 머리를 싸쥐고 길거리르 걸으면서도 영어단어숙어를 암기한다. (성적인 최하위) 남자주인공은 싸움 잘 하는 깡패다. 그 외에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는, 그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불허한다.
'탤런트'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함축적이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재능에 대한 갈구다. 혹은 가지고 있는 재능이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재능이다. 머리가 나쁘지만 여배우로서의 자질을 가진 여자주인공, 싸움을 잘 하는 재능으로 그녀의 보디가드가 되는 남자주인공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상으로서의 부분이 아니라 현실로서의 부분이다. 천계영의 만화에서는 단 한번도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부분, 그것은 정말 암울한 현실이 분명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편집에 등장하는 만화들을 포함, '언플러그드 보이' 역시 마찬가지이며, '오디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디션'에서 주인공들은 천재라고 일컬어지지만, 사실은 비참한 지경에 처해 있다. 미끼의 어머니는 버스 정류장의 노점상을 하고 있다. 황보래용은 정신질환환자이다. 국철은 소매치기다. 짜장면 배달부도 있다. 탐정은.. 말만 탐정이다. (굶어죽기 딱 알맞다) 음반사 회장인 할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려는 손녀는 가진 옷과 구두를 팔아서 그들에게 악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현실은 집단자살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현실이다.
이러한 설정은 '단지 설정'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만화에서 초지일관적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남자만화의 코믹화법과 캐릭터성을 도입해서 천계영은 자신의 만화를 환상으로 비약시킨다. 현실은 전제로 까는 선에서 철저하게 억압시키고, 그의 만화는 대중성으로 비약한다.
천계영의 만화를 볼 때 느끼는 아찔함은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그의 만화를 '단지 생각없는 만화'로 구분하는데 애매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만화는 '단지 생각없는 만화'가 아니라 '생각이 없고 싶어하는' 만화이며, 조금 더 비약시키자면 '실제로는 무엇이 현실의 문제인지를 아는 만화'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만화는 가진 것 없는 자들, 절망적인 자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정에서 반드시 등장하게 되는 절망과 투쟁의 욕망이라는 부분을 코믹함과 캐릭터성, 트렌드화 전략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천계영의 만화는 슬프다. 그의 만화는 현실을 모르는 만화가 아니라 현실을 무시하고 싶어 하는 만화, 억압된 만화이다. 그것은 천계영이 대변하는 새로운 세대의 초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천계영 만화의 독법을 다른 방향으로 한다면 기존의 '대중적인 만화'에 대한 독법 역시 약간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탤런트', 이것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표다. 표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태지에 대한 신화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대중문화의 시대에서 '탤런트'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환상이다. 천계영 만화에서 쟂능, 천재성이란, 하나의 호소이며, 약간만 재구성을 가미한다면 울부짖음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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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 12, Read : 2997, 2001/10/11 Thu 04:43:52 |
| 손 님 |
못난현실을 잊게 할 하나의 희망인 천재컴플렉스져..천계영만화보면 어쩐지 안쓰럽거든요...알수없는 열등감...컴플렉스가 느껴져서....울부짖음..탁월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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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기린아 |
딴지를 걸어 보자면..^^; 도대체 그런류의 환상이라는 것이 복권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요. 복권을 걸지 않을거면 모르되, 복권을 걸어놓은 상황 - 그것은 재능의 발현이라는 - 을 연출하는 것은 그런 슬픈 느낌을 받지 못하게 하는군요. 더군다나 `재능`이 터지기를 바라는 복권은 어쩐지 암울한 사람들을 드러내는데도 곤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죄송하지만, 재능에 대한 문제는 명백히 부르조아적인 사상과 생각이라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군요. 그것도 가장 20세기 적인 부르주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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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lx___xl |
이노우에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괴짜 사쿠라기, 짐승 무사시. 뿌리 없는 강함에 대한 집착. 조금 역겹습니다. 천계영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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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halim |
밑바닥에 깔린 암울함과 `그런 식의 재능의 발현`은 조금 분리해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암울함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어떠한가 이전에 `대중만화`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요. 더 많은 대중을 소구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당위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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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깜악귀 |
전 분명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부르주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윗 글도 그런 이야긴데) 그런데 그렇다고 똑같지는 않다는 거죠. 아, 그리고 슬램덩크를 첨가해서 쓰려고 하기도 했는데.... 음. 재미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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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깜악귀 |
그러니까 전 천계영의 만화가 현실을 보여주는 만화라고 한 것이 아닌데요. 다만 기묘한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는데, 그것을 읽는 다른 독법이 가능하다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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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깜악귀 |
아니, 위의 이야기 취소. 전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부르주아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 부르주아적이죠.... 잘 사는 애들 이야기라는 건가요?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물들었다는 건가요? 대중사회는 못난 현실을 내부에 껴앉고 있고, 재능이란, 그 품을 벗어나기 위한 날개를 꿈꾸는 것과 같은 거죠. 그래서, 천계영의 `탤런트`는 복권만큼의 현실성도 없습니다. 그건 그냥, 그러니까, 환상, 그 자체죠. 여기에서 천계영 만화의 대중성이 있는 것이구요. 이런 포맷은 물론 현실의 암울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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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기린아 |
부르주아의 신화는 최근에 돈에서 교육과 재능과 능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적어도 제 생각은. 차라리 재능에 대한 고전적인 영웅 신화를 그렸다면 저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군요. 가난에 대한 상찬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지를 - 통나무집에서 산 링컨은 그 시대 아주 일반적인 집안 출신이었다는 것은 시사점이 꽤 있지요. - 생각한다면, 즉 가난에 대한 역경 극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맛가는 신화인지를 생각한다면 저는 쉽게 긍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고전적인 영웅 신화이기를 바라는 것이구요. 뭐, 이것도 나름대로 이시대의 영웅의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쉽게 정당화 되지는 않는군요. 부르주아의이야기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사용한 것입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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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1 |
| 깜악귀 |
실제하지 않는 것을 그리는 작가에게 실제를 들어대서 비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잘 이해가 안 가요. 일단, 저는 천계영 만화를 인정하라! 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잘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여튼 근데, `부르주아의 신화`가 뭘 의미하는 거죠? 재능에 대한 고전적인 영웅신화는 뭘 의미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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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2 |
| 깜악귀 |
차라리 덧달기 말고 리플을 이용해야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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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2 |
| 벡터 |
내눈에 오디션은 튀고싶은 범생이 그린 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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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4 |
| dust |
텅빈 고뇌, 재능을 부각 시키기 위한 장치적 절망. 암만 보는 사람이 안쓰럽고 쓰라린다고 해도, 만화 속의 그들은 그다지 동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디션을 보고 아파하지 않는다. 장치로서의 아픔이고, 비중도 없다. 본인으로선 불쾌할 따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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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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