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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기들 02] 나름대로 ... 新暗行御史
역사상의 사실들을 재해석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작가적 허용의 영역이겠지만, 처음부터 그건 A가 아니라 B였다 라고 ‘원래의 사실’을 틀리게 알려주는 것은 얘기가 좀 다릅니다. 작품내용을 통하지 않고, 후기에 ‘작자해설’의 형식을 빌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면 더욱.

월간 Sunday Gene-X에 인기리 연재 중(11월호 표지군요)이라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국의 역사에 나타나는 몇 가지 아이콘들을 작품에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각 장별로 뒤에 해설을 달아 놓은 것을 보면 나름대로 자료조사도 하고, '의미를 담으려고 한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뭔 소랴...)도 있죠. 그러나, 그거야 일본만화작가에게나 그런 느낌일 테고 ... 한국의 평범한 만화독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가는 春香傳의 ‘진짜 원작’에서 춘향이가 자결하며, 현재 잘 알려진 고전은 아동용 버전이라고 말합니다만, 조선시대 고전소설이 따로 아동용 버전을 만들어서 유통시키는 그런 장르이던가요? 구전으로 이어져오는 춘향전에 ‘원작’이라는 것은 또 무슨 얘깁니까? 그런 내용의 버전이 존재한다는 정도라면 몰라도, 무슨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같이 원작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진짜 원작’이라니 ...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내용)은 판소리 춘향가를 옮긴 것입니다. 판소리 춘향가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여러 가지 근원설화가 재구성된 것이죠. 모처의 논문 ‘春香傳 根源 說話 再論’을 보면 춘향전의 뿌리가 되는 다양한 설화들(지인지감형 기녀설화, 관탈민녀형 설화, 암행어사 설화 등)을 검토하면서 춘향전과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수절하는 여주인공이 자결하거나, 신분상승한 남주인공이 옛 정인을 찾는 대신 새 장가를 드는 경우는 없습니다. 소설형식으로 된 각종 판본들 古本 春香傳, 東洋文庫本 春香傳과 같은 이본들을 살펴보더라도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과 대동소이 ... 자살로 끝나는 것은 제가 아는 한에는 없습니다. 대체 작가는 무엇을 본 것일까요.

그리고 ... 고려장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사서에 ‘고려장(高麗葬)’ 풍습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간혹 이 용어가 쓰인다고 해도 고려시대의 묘지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순장(殉葬)이라든가 부장(副葬)같은 풍습이 나오고, 고대로 거슬러올라가면 ... 특히 유목민의 문화가 남아있던 시절로 가면 병사자를 버려 두고 이동하는 사례가 지역별로 나타나긴 합니다만, 그것이 (나름대로 문명사회였던) ‘고려시대까지 존재’ 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고려장에 해당하는 풍습이 가장 잘 나타난 설화는 ‘기로전설(棄老傳說 -노인을 지게와 함께 버리고 오는데 손자가 그것을 다시 들고 오는 이야기)’입니다만 ... 이 설화에도 고려장이라는 표현은 없죠. 사실, 부모를 버리는 행위 자체는 몽골이나 일본에도(하기사 일본에선 100년 전까지도 부모뿐 아니라 자식도 버렸는데 뭐 ...) 두루 존재합니다. 작가는 역사를 재해석하면서, 이런 풍습의 실존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지 ... 작중에 그런 소재를 차용하는 것은 좋습니다. 작가마음이죠. 하지만 작가해설을 빌어 고려장이 한국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인 것처럼 쓰고 그것을 독자에게 설파하려 한다면 그에 관해 좀 더 책임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실제 사용되었다는 증거조차 없는 ‘고려장’이란 용어를 굳이 사용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지는군요(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습니다. 이유야 뻔하니까 ... ).

작품자체의 수준은 그다지 낮지 않습니다. 작화는 어느 모로 보나 뛰어나고, 문슈와 춘향 두 캐릭터의 형상화도 ... 일본만화의 등장인물치고는 그럭저럭 봐줄 만 합니다(사실 불만이야 있지만, 더 길게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 정도로 덮죠 ;). 과연 장기연재 될지 과도기적 작품이 될지(다음 작품은 기술적인 면에서 더 나아질 거라는 뜻입니다)는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굳이 한국의 역사적 소재를 끌어다 쓰는 것에서 작품의 독특성을 끌어내려고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군요.

일본만화에서 춘향전이나 한국고전을 소재로 삼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개인적으로는 클램프의 신춘향전이 이보다 나았던 것 같습니다. (신춘향전 때 만해도 일본작가에 의한 역사왜곡이라며 떠들던 이들이 있었는데, 많이 관대해 졌군요)


Comment : 3,  Read : 2413,  2001/10/16 Tue 22:25:18 → 2002/10/24 Thu 11:29:14
capcold 

!@#...`춘향이에게 옷좀 입혀주자` 캠페인을 벌이자는 움직임이 있더군요. 뭐라고 할까, `섹시`해 보이기보다는 `추워`보인다는...-_-; 비슷한 움직임으로, `박성우씨 만화 여주인공들에게 신발 좀 신겨주자` 도 있습니다. 캐릭터가 작중현실에 녹아들어가기보다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1/10/17
들개이빨 

강하지만 말잘듣는 섹시한 백치녀..남자들의 영원한 `이상`인가!?

2001/10/26
antihero21 

작가 입장에서 `사실은 이러했다`라는 식의 재해석이나 부연설명이 완벽한 고증을 통안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의도가 단지 독자의 흥미유발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는것 아닌지요.이 만화가 역사 교과서가 아닌이상 그 시점에서 작가의 의도해석은 그게 가치를 지니지 못할거라 봅니다. 뭐 그 진의가 어떠했는가는 알 수 없더라도...

200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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