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를 푼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림직한 작가를 만화계에서 찾아본다면 역시 강철수 일터인데(뭐 ... ‘그를 위해 준비된’ 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사랑의 수첩’ ‘시인수첩’ ‘발바리의 추억’ ‘반디’ ‘밤사쿠라’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노라면 안그래도 뻑뻑하기 그지없던, 노가리의 껍질이 점점 두꺼워 짐을 느낀다.
90년대 강철수의 작품들은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는 양 끊임없이 노가리를 풀고 거기에 지친 독자들이 뭔가 있지 않을까 하여 가만히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껍질을 벗겨보노라면 역시 속까지 모두 노가리더라는 식의 초지일관이랄까. 게다가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간 신문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보통 1-2년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가리를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그쯤 되면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 ... 작가의 진심은? 진실은?(X파일이냐...) 따위의 질문을 던져볼 틈도 없이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강철수는 만화가지만 사실 그의 독자들이 만화독자는 아니다. 신세대도 아니고 ... 스포츠신문을 읽으며 잠시의 시간을 소요하는 40대 전후의 거뭇한 남성들 ... 그에게도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썰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잡아채어 주기를 바라는 뭔가가 (아직 남아) 있을까 ... 굳이 그것을 찾아보고 싶다면 ...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구작들을 떠들어보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조금은 껍질이 얇던 때. 감수성의 여린 부분들이 그 사이로 살짝 살짝 비치면서 ‘나 여기 있음’을 작게나마 이야기해 주던 때.
제목에 언급해버린 작품 얘기를 조금만(;;;) 하자. 87년에 선보인 ‘무지개 수첩’은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긴 힘들다. 어딘가에서 연재되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쥐고 있는 것은 한 권 짜리 단행본이고 ... 그 모양새는 이 책이 ‘장르만화’가 아니라 그저 성인남성을 위한 대중소설임을 말해준다. 그냥 만화란 ... 말이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백수로 바닥을 기고 있는 한 남자와 그를 구원하고자 했던 어떤 여성의 이야기 ...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스스로의 역량을 과시하듯 기본 구도의 식상함을 특유의 노련함으로 간단히 돌파해 버린다. 언뜻 이해 불가능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의 반전을 넘어 마지막 페이지에서 상큼하게(정말이다!) 뒤통수를 때리는 이 작품은 확실히 90년대의 강철수에게 목이 졸려 있던 혹은 순정만 읽다 지쳐버린 독자들에겐 뭔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 일본의 30대 남성을 겨냥했던 星里もちる의 작품들을 한국으로 옮겨온다면 이런 기분이겠지만, 나라면 강철수의 손을 들어주겠다.
유감스럽지만 요사이의 (특히 신세대의) 남성작가들은 이런 작품을 그리려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독자들 또한 거기에 호응하여 (대중만화든 고급스런 취향의 그 무엇이든)만화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정서적 만족감의 대부분을 전적으로 순정만화에 의탁하게 되었다. 강경옥이 줄 수 없는 ... 강철수가 메꿀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 그 만큼 독자들은 잃어버리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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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 2820, 2001/10/18 Thu 23:53:04 → 2002/10/24 Thu 11:2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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