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전사 109> SF로 그린 민중만화. 신기한 것은 이 만화가 오직 한국 SF의 걸작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전사 109>는 굳이 SF라기 보다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던 소위 '민중만화'에 속하는 것 같다.
스토리를 쓴 것은 노진수다. 작품 표지에 스토리 작가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스토리 작가의 인터뷰를 어디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본래는 그냥 탄압받는 노동자가 나오는 스토리였다고 한다.
검열 때문에 SF 식으로 뜯어고친 것이 우리가 보는 '기계전사 109'의 스토리라고 들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미래를 관조하는 통찰력이나, 과학적 묘사의 리얼함보다는 그 시대 상황을 SF라는 형태를 취해서 보여주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즉,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이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봐도 SF 자체에 대한 탐닉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비인간적이고 사이보그는 인간적이다"라는 영화 '2001 블레이드 러너'의 컨셉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노동자는 인간답고 자본가는 비열하고 냉혹하다는 도식일 것이다.
'사이보그 해방', '기계해방'을 '노동해방'으로, 사이보그들을 노동자로 바꾸면, 자본가와 국가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승리를 그리는 만화가 된다. 어쨌거나 억지는 아니다. SF소설에 나오는 로봇이나 사이보그는 본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니까.
그냥 본래의 스토리였다면 '아이큐 점프'에 연재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결국 SF만화팬들이 이 작품을 SF의 걸작으로 보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만화의 외양은 그렇게 'Science Fiction'였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은유'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돌려 말하기' 정도였다고 하겠다. 관념적-형식적 차원에서의 고민보다는 하고자 하는 말을 보다 뜨겁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메세지 중심의 만화였다. 이 만화는 사실 nonfiction을 말하고자 했는데, 이 간극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걸작은 종종 이런 식으로 탄생할 수도 있나부다. 이 작품이 SF의 걸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SF 팬들이 뭔가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이유일 것 같다.
민중적 메시지는 직설적이면서 복잡하지 않았고, (탄압하는 자, 탄압받는 자가 분명하다) 분명 토종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89년 당시는 아직도 광주학살의 비디오가 전국을 남몰래 돌고 있었던 때다)
더구나, 그냥 현실의 이야기라면 이에 대해서 고개를 돌렸을 사람들도, SF라는 형태를 띠자,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이 '장르' 내지는 '형식'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기계전사 109'가 그린 현실이, 미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도 있겠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SF물로서의 평가는 좀 과장된 면이 있다는 정도인 것 같다.
특이하고 괜찮은 민중만화로서, 나는 '기계전사 109'를 다시 본다. 공을 들인 작화와 연출의 힘도 대단하다. 허영만과 이현세의 영향이 느껴지는.
<기계전사 109>의 내용이 단지 스토리 작가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중에 김준범의 단편, '흐린날'에서 김준범은 효과음과 대사를 억제하는 등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시대를 다시 읽는다.
전투경찰과 운동권 학생들의 '전투'를 그린 이 단편은 작가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화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흔적이 넘쳐 흐르고... 걸작이다. 운동권 학생이다가 전투경찰이 된 남자 주인공과 시위대에 있는 여자 주인공. 여전히 결말부는 좀 딱딱하지 않은가 싶지만.
김준범의 만화는 도덕주의적이다. 심지어는 록이라는 쾌락주의적인 소재를 다룰 때 조차도 그렇다. (실제 록커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가 정직하다는 말도 된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한다는.
<기계전사 109>의 마지막, 사이보그 해방전선 만세를 외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아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느 편의 승리를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정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s 난 이 만화를 중고서적판매장에서 샀는데, 왜 표지를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캐릭터 생김새가 완전히 틀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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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 6, Read : 7687, 2001/10/25 Thu 02:50:02 → 2001/10/25 Thu 20:17:02 |
| capcold |
!@#...원판에서는 당연히 작가가 직접 그렸으나, 97년 즈음에 (플러스 마이너스 1년...기억이 가물가물) 나온 복각판(재판이라고 하기는 뭐해서...)에서는 이 작품을 존경하신다는 박무직 작가가 표지를 새로 그렸음. `다시 그려서 넣었어야 했을` 정도로 잘된 표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오마쥬`로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듯. 음...흐린날, 용캐 다시 구했나보군...단행본으로는 `버그` 마지막권에 짜투리로 들어가있던 것으로 기억. 판형이 너무 작아서 작화가 잘 안살아나는 경향이 있던데...큰판형으로 인쇄해서 일종의 무크처럼 만들어서 개별판매하는 포맷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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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5 |
| chocochip |
[흐린날]이 제가 본 그게 맞는진 모르겟습니다만 서점에 [아니타 레바] 2권 뒤에 그런 내용의 단편이 실린 걸 봤습니다만. 저도 [버그]에서 처음 봤었는데요. 그나저나 [아니타 레바], 단행본으로 나오길래 신나했더니 연재 중단된 부분에서 나레이션만 바뀌어 나왔더군요. 아쉬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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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7 |
| 에구 |
[기계전사 109] 눈썰미가 나름대로 있어, 당시 어린 나이의 김준범이 모만화를 참고해서 그렸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 이유는.ㅠㅠ.? [흐린날]은 영점프 창간호를 가지고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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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2 |
| 기타등등 |
109 새롭게 다시 나온다고 하는군요. 선주문후제작 방식이라는데...500권의 주문이 모이면 책을 찍는다고 합니다. 딴지랑..어디든가? 같이 한다던데.. -_-;;아직 딴지에는 기사는 없군요. 여하튼. 새로나온 아니타레바 2권에 [내곁의 잠수함]과 [흐린날]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니타레바.. 불미스럽게 끝난 작품이라서 뒤이어 새로 그릴 마음이 없다고 하는군요. 쯔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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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
| 김혜림 |
표지는.. 김준범님이 박무직님께 부탁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마쥬라고 하기보단.. 김준범님이 그때의 감정을 갖고, 다시 그리기엔 너무 지난뒤였고, 해서.. 무직님께 부탁한걸로 알고 있습니다..(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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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7 |
| 김혜림 |
그리고.. 109... 새로 나오는거 맞습니다. 이미 주문은 다 끝났고, 아마 한달 뒤쯤에 나오는데.. 간신히 주문수량을 맞췄다고 하는군요.. 100%는 아니고..98%정도 주문량을 달성했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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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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