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우 [은복이]
[은복이]는 귀여운 책이다. 물론 그 캐릭터 디자인부터, 작중에 사용하는 소품들이나 이미지 연출의 스타일도 마치 키티나 테디베어같은 팬시적 귀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때문에 이 작품을 '귀엽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은복이]는 나라는 독자로 하여금 어린시절의 감수성과 생활,취향에 대한 기억을 끌어낸다. 잊고 살았던 그런 것들에 관한 주제는 별로 특이한 발상은 아니다. 김진의 [인형의 기사]가 언뜻 기억나는데, 그외에도 여러 작가들의 순정단편들은 한때 소중한 친구였던 인형 같은것들의 잊혀지고 버림받은 입장, 혹은 과거의 잊혀진 기억들이 아직도 구석에서 햇빛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내용들을 다루어왔다. 하지만 [은복이]의 특별한 점은 그러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작품 자체로 다시 잠시동안 어린시절의 사고패턴이나 취향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는 점 이다.
은복이의 사고흐름과 생활흐름은 참으로 단순해서 뭐, 딱히 드라마나 로맨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심심하다..놀아야겠는데 누구하고 뭐하며 노나가 최대한의 관심사다. 뭐하고 놀지? 친구..(앗,친구는 공부해야 된대) 할머니..(흑흑 할머니가 날 구박하네) 고양이 후추 (고양이 조차 날 비웃는군)...하지만 비장의 무기,잠이 남아있지. 아, 즐거운 잠....같은 그의 사고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단순한 모습으로 표현된 은복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그것의 단순함은 흡사 곰돌이 푸우의 세계같은데,푸우와 푸우의 친구들의 생활이나 사고 역시 오로지 먹는것과 노는것 밖에 없는 지극한 단순함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푸우(특히 그림책과 애니메이션 푸우)의 주요 소비자층은 어린애들이 아니라 여고,여대생,오피스 걸들,그리고 내가 아는 수준에서는 일부 (몰지각한 !^^)젊은 아줌마들 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가끔씩 단순한 세계를 그리워하게 되나본데, 은복이의 세계는 푸우의 세계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것은 그 향유층에게 푸우보다도 좀 더 구체적인 호소력과 동일시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어린 소녀들이 가졌던 생활에 대한 공통의 기억 말이다. 만일 단순한 세계로 도망가서 잠시 숨돌리는게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그것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은복이]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독자들의 어린시절의 감각과 취향, 사고패턴을 최대한 되살려주려고 시도한다.
여담일 수도 있는데,(음, 이 글 자체가 여담 아니던가..) 얼마전에 캔디사이트에 가서 캔디 일러스트를 구경하다가 흠칫 했던 기억이 난다.캔디가 양산들고 있는 그림인데, 어린 나의 자석필통에도 인쇄되어있던 바로 그 그림이었던 것이다. 목메고 졸라서 겨우 얻어낸 그 자석필통을 얼마나 좋아하고 소중히 했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내게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애지중지 하는 물건은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 물건 하나에 그렇게 정을 붙이고 노심초사하는 단순한 심성이 없어진 것이다. (음..그래도 그건 필통으로의 효용성이나 있었지, 그때 죽기살기로 모아대던 스티커며 만화 딱지같은 것들은 정말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었지 않는가. 당시 엄마는 쓰잘데기 없는 것에 목숨건다고 맨날 뭐라고 그러시고, 정리 제대로 못하면 다 쓸어다 내버린다고 위협했었다. 근데 그 '쓸데없는것'에 대한 엄마의 가치관이 어느새 지금의 내 가치관이 되어버렸다니, 난 지금 '모으는 것'보다 '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청소하기 힘드니까.. )
하지만 은복이 세계는 그 '별것 아닌 것'들로 꽉꽉 채워져있다. 아니 은복이 세계 자체의 그 '별것 아님'이라는 성격이 그 잡동사니들과 닮아있다. 부록으로 딸려있는 스티커는 나의 옛 취향을 기억케 하고 단번에 부활시키고 별 역할도 없이 왔다갔다 하는 후추는 내게 고양이는 아니라도 고양이 인형을 가지고싶게 만든다. 비록 일시적일 지라도 말이다. 냉정하게(!) 커버린 나를 잠시라도 그렇게 귀엽게 만들어주는 작품 [은복이]가 나는참 귀엽게 여겨진다.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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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 776, 2001/08/09 Thu 12:26:00 → 2001/08/09 Thu 15:5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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