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르는, 권교정 비평의 초안 정도..
"약간 들뜨는 기분이랄까- 단순한 인생을 사랑한다. 인생은 단순하고 평탄하게 -. 그런 길을 걸어가길 바래왔어. 특별한 일따윈 없어도 좋아. 내 인생에 드라마 따위는 다 가져가"
위의 인용문구는 [어색해도 괜찮아] 3권, 최정언의 대사다. 이 문장에서 최정언은 그 앞 세대의 혁명순정의 진정성을 해체시켜 버린다. 시대 속 한 개인의 일생이 숱한 굴곡을 겪고 드라마가 되는 것. 소위 말하는 "그 이야기를 다 쓰자면 책 한 권은 될 거야요..." 류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세대차를 도입하자. 이것은 김혜린을 보고 자란 세대와 권교정을 보고 자라는 세대와의 '갭'에 대한 상당히 재미있는 통찰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물론 김혜린과 권교정이 같은 급의 작가라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자)
[공포의 외인구단]이든 [오한강]이든 [불새의 늪]이든 [테르미도르]이건 그 속에는 역사와 인간의 드라마가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시대 속의 인간이다. 그것이 단순히 유행에 따른 겉멋이었던 작가의 진정성 어린 발자국이었던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의 작가들은 대하-시대물을 그리지 못한다. 그들은 책 한 권이나 가득 채워서 서술할 만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주체하지 못할 그런, 감정의 대역폭과 인간에 대한 신뢰, 배신, 사랑과 미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세상은 누구나 특별하지 않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세대가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세상은 세상의 논리대로 굴러가고 그 속에 개입할 만한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위 전문화되고 고도화된 사회라는 것이다.
비극은, 과잉이며, 행복도 역시 과잉이다. 현재의 사회는 그렇다. 물론 이것은 중산층에게 한정된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하층계급에게도, 역시 세계는 고정되어 있어서, 그들은 그들의 비극을 '특별하다고' 느끼는 힘을 상실하게 되는 징후가 있다.
내 인생에 드라마 따위는 다 가져가.
현실반영적인 이야기이다. 실제로 지금의 세대에게는 앞 세대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꺼리가 없다. 전세대의 비극의 주인공은 어찌되었건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일상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존재감' 그 자체가 희미하다는 것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것 자체로는 이야기할 꺼리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세계는 자신과는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평이한 서로 간의 소통과 대화. 약간은 현실로부터 부유하는 듯한 캐릭터들. 일상 속의 작은 것으로부터 존재감을 확인하려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기특하게도 종종 계몽적이고, 세계 속의 한 인간으로서의 성실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 '일상 속의 계몽성'이라는 부분이 일각에서 권교정을 주목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정말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내 생각에는,
- 내 인생에 드라마 따위는 다 가져가
라는 말이 나온 바로 그 시점에 한국에서는 환타지가 유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서사에 대한 강력한 욕구라고 볼 수 있을 듯. (김정란 시인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권교정의 환타지일지 모른다. 전체의 드라마보다는 한 시점 한 시점에서의 캐릭터의 통찰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권교정의 연출과, 기본적으로 드라마틱한 장르인 환타지가 어떻게 만나는가는 꽤 생각해 볼 꺼리를 남긴다.
[모래시계] 세대의 인생은 이미 현재가 아니며, 아래로 모두 떨어져버린 모래시계는 다시 뒤집어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다. 개개의 모래는 떨어지는 꿈을 꿀 수도, 혹은 정지된 상태의 부유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감동적인 드라마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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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 1142, 2001/08/07 Tue 17:50:07 → 2001/08/07 Tue 17:5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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