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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타로리] 문흥미 단편집 [상처]

문흥미는 언제 한 번 그의 작품에 대해서 차분하게 써 보고 싶은 작가다. 문흥미가 다른 순정작가들과 특별하게 대별되는 지점은, 자의식이 강하면서 동시에 계층적으로 하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우리가 90년대 들어서 실제 정서적으로 하위계층에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비평적 가치가 있는 만화가를 거의 가지지 못하였다는 점, 그리고 순정만화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는 점이다.  나는, 90년대 순정만화의 주목할 만한 흐름은, 많이 교육받은 중산계층 여성작가들에 의해서 일구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의식을 가지고 만화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민감한 발언들을 시작한 이들도 이들이다. 대체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여성의 속성 - 정서적으로 연약하고 의존적이며, 사랑에 근거하면 바보같은 짓도 한다는 식의 - 에 대해서 혐오한다. 

이 작가들이 (여성들) 보통 계층적으로는 중산계층이며, 보편적으로 제대로 교육받기 시작한 거의 첫 여성세대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서 '보편적으로'라는 뜻은 여성이라고 해서 고등학교까지만 나와라라는 식의 압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인생의 차원이 그들의 만화에는 보통 빠져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전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것이 표현소재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도 역시, 돈이 없어서, 남자에게 차여서, 비참해진다..... 라는 감정 자체에 대한 터부시와 거부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어쩌면 세속적이고, 신파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실제 대부분 여성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여기에 문흥미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In 서울>이나 이 단편집 <상처> 등. 문흥미의 작품에서는 얼마든지 신파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상처>에서는 여성의 의존적인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때의 인간의 심리적 상처가 나중에 인간에게 무엇을 안겨다주는가. 끊임없이 상처받고 상처입히고, 상처를 위안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칼날이 되고 계속해서 그 상처를 건드린다. 반복되는 악순환. 눈물과 토로, 울다가 웃었다가, 다시 매달리기, 섹스. 상처 그 자체가 이미 존재의 전부가 되었다. 어느 새 나의 상처는 사랑받기 위한 구실이 되어 있다. 그렇게 인간은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유시진이라면 왜 사랑할 수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만화를 그릴 것이다. 이런 식의 신파를 견뎌내기에 유시진의 자아는 너무 섬세하다. 울고 웃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의 독립적인 자아는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문흥미는 그 안에 있다. 이미 그녀는 그 속에 있고, 그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려 하지 않는다. 분리할 수 없다. 이런 것은 만화가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권 그 자체와 큰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문흥미가 <In 서울>에서 그려내는 "밤에는 술집 삐끼하고 자취하면서 살아가는 고교 자퇴생 이야기"는 실제로는 그와 아무런 연관도 가지고 있지 않은 특권계층의 인간이 동정심과 한 순간의 치기로 그려내는 그런 풍경이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아질 것 없음. 전망없음. 상대방으로부터 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근거가 없음. 이미 절망 속에 있는 자들은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절망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혹은 폼잡으면서 이야기하는 놈을 보면 증오심 때문에 소름이 돋는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어떤 사상적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부조리 그 자체의 풍경에 대해서 섬세한 감각을 가지가 묘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작품이 된다. 물론 문흥미가 아무런 사상적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뭣하다. 리얼리즘 만화의 영향이, (특히 이희재... 아악! '만화삼국지'가 생각난다) 짙게 깔려 있고, 그 결과물을 <This>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상 문흥미의 만화는 이러한 리얼리즘적 경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This>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 차별성은 바로 문흥미의 정서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상처에 대한 감각'에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상처주고 상처받기.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 상처받아야 하고, 상처받으려고 상처주기, 등등 '상처를 위한 연속콤보'라는 세계를 과연 문흥미가  넘어설 수 있는가, 그것을 넘어서고 나서도 과연 자신의 속내를 그렇게 깊은 자학의 힘으로 그려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

요컨데 나는 리얼리즘 경향의 문흥미보다 자기 속내를 드러낼 때의 문흥미, 그 문흥미의 수치심과 축축함, 애처로움 등등을 좋아한다. 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을 주고, 그래서 또 상처받고 하는 그런 여주인공들은, 그렇게 상처를 받고 또 자기 상처를 샤프 끝으로 파헤치는 것 같은 여주인공들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연약하고 솔직하다. 이런 식의 정서상태가 바로 하위계층의 정서상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나는, '그 때 그 남자에게 내가 받은 상처들'이라는 식으로 나아가는 문흥미의 작품들을 싫어하고, (약간 증오한다)

묵묵히 묘사하고 관조하고, 그 관조와 묘사의 끝에 집요한 동일시가 숨어있는 문흥미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단편 '상처'나 'In 서울' 같은)

리얼리즘적 경향의 작품들은 도덕적 당위성 때문에 그냥 고개를 끄떡이면서 본다.

문흥미가 상처에 대해서 연민하지 않고 칼을 들이댈 수 있다면,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은 그런 것이다. 꼭 문흥미에게 기대한다기 보다는... 어쨌든 변할 때가 되었다.

Read : 900,  2001/08/11 Sat 03: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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