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삶을 이야기하는데 개념어나 사상가를 늘어놓는 것은 혐오스런 짓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진경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학은, 실제로 독자의 철학적 교양을 늘려주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진경과 이정애의 비교인가요? 이정애의 오타인가요....? 무의식에라도 비교대상인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플라톤식의 고루한 남성적 철학관도 없고... 현학적인 내용도 무마시켜 버리려는 경향이 있는 편인....)
가지고 있던 이정애에 대한 불만을 잘 쏟아주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비슷하네요...감상이.... 두고보자에서 제일 재밌는 게시판은 릴레이단평인것 같아요.....새 팀으로 끼어들고 싶을 만큼...^-^; 하지만 능력이 없으니까 그냥 구경만 할래요..... 그래도 재밌어요.....
깜악귀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 이정애에 대해서 논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깔고 들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이제 남자 둘이 사랑하는 것이 페미니즘적으로 읽힐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정애의 만화에서 주인공이 남성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야오이에 대해서 이야기되듯이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인 경우도 있는 듯 하지만, 그냥 '남성'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성구분을 초월하기 위한 것으로는, 적어도 이제는, 여겨지지 않는다. (애당초 이정애가 자신의 작품을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 : Bath & Shower에서는 여성이 여성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은 남성과 남성 간에 이루어진다. 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메타포도 아니다. 내가 떠올린 것은 그리스 식의 동성애를 동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지적이다. 플라톤은 동성애야 말로 육욕을 벗어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했다던가. 즉, 지적욕망은 하나의 섹스와 같다는 식의 그런 메타포일 수도 있다. : :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정애의 지적욕구는 다분히 신비주의적이어서, 전생이나 최면술 등등의 소재를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그의 만화에서 소재 이상의 지위를 차지한다. 어쨋든 이정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초기작을 읽어봐야 할 텐데, 나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 : : 하지만 지적욕구라고 할 때, 이정애의 만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지적 애두름.... 뭐랄까 현학의 과시는, 단지 과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꼭 해 두고 싶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편하게 이야기하는 법이다. Bath & Shower에서 지식인을 비방하는 주인공들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온갖 어려운 현학적인 용어들을 동원한다. 풀어보면 다 쉬운 말이고, 그런 용어를 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 : 다음과 같은, 나를 경악하게 했던 대사를 옮겨보겠다. : : - 다시 말하면, 저 니체를 위시해서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주장하고 있는 체제(구조)의 희생양에 불과하단 거지. 그러니 과연 노파의 순간적 악의를 - 뻔뻔스러움과, 불친절함과, 타인의 존재를 짓밟고서라도 존재하고자 하는 질긴 생명욕을, 실질적인 악의 외재성에 포함시켜도 무리가 없는 것일까? - : : 다시 말하면 세상이 나쁜 거지 그 노파가 나쁜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 정도 내용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주장하고 있는 체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 이것은 지적 권위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할 수 없으며, 그리고 심하게 잘못되어 있다. : : ------------------------ : : 니체가 체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을 그의 저서에서 단 대목이라도 내게 내밀어주었으면 좋겠다. 니체-프로이드-마르크스를 구조나 체제를 중시하는 구조주의적 사회학의 선구자로 보는 시각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후대의 자의적인 해석이 그러하다는 소리이며, 그것도 아주 일부의 이야기다. 니체나 프로이드는 (마르크스는 몰라도) 체제를 한탄한 적이 없다. 이런 식의 해석은 아주 한국에서 편향되어 받아들여진 후기-구조주주의, 그것도 개론서에만 나오는 이야기다. : : ----------------------- : : 이런... 삶을 이야기하는데 개념어나 사상가를 늘어놓는 것은 혐오스런 짓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진경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학은, 실제로 독자의 철학적 교양을 늘려주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 그것은 일단 이정애가 독자를 빨아들이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정애는 다른 작가라고 여겨지는 데에는 이러한 현학적 용어를 늘어놓는 것도 한 몫 하는 것이다. :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주인공들을 특화시킬 수 있는 것, 그들을 인간이상의, 정신적인 존재들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애의 만화들은 아주 많은 비율로 인간이상의 존재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바깥의 세계에는 인간에 불과한, 그러니까 인간이하의 비참한 존재들이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잡초, my love>와 함께 읽으면 궤가 닿는다.) : : 인간 이상의 주인공들은 인간이하의 비참한 존재들(보통인간들)을 쳠오하고 동시에 사랑한다. 선망한다. 마치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남성 간의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이라고 말하지 말자. 뭘로 봐도 남성이다)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 : 이러한 남성 간의 관계는 거의 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우월한 한 쪽이 한 쪽을 거두어들이는 관계이다. 그리고 우월한 자는 열등한 자를, 열망하고, 열등한 자는 우월한 자를 열망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의 자의식을 융화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관계를 남-녀 간의 상투적인 러브 스토리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표준적 인류'라고 받아들여질 법한 남성과 남성 간의 이야기로 나아간다고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정애의 만화는 계층, 계급문제에 함의를 가지고 있을 지언정 페미니즘에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 : 그것이 이정애가 말하는 '인류애'이다. 계층지어지고 계급지어지고 그에 따라서 자의식도, 영혼의 본질조차도 달라져버린 (이정애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인종을, 그렇게 혐오와 사랑이 뒤범벅된 상태로 숙명적인 사랑에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융화시키는 것. 갈등과 모순을 전생이나 영혼의 상태에서 해소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러한 융화는 육욕의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비천한 것이 가장 숭고한 것이련가... : : 그러나 혐오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오직 작가의 자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쪽은 정신적으로 초월되어 있고 숭고한 존재이며, 한 쪽은 속세의 잡초. 글세, 자신이 정신적으로 초월되어 있고 숭고한 쪽에 동일시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화해의 교향악이 되겠지만, 잡초에 동일시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이해할 수도 없거나 (이 비율이 무척 크다) 기분이 나쁘겠다. 그렇게 숭고하고 초월적인 척 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 : Bath & Shower가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흔적. 꼼꼼한 플롯. 이정애라는 작가가 진지하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너무 도취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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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 880, 2001/08/20 Mon 05: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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