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이재수의 논쟁이 연예계에서 뜨겁다. 패러디에 대한 문화적 정의부터 저작권에 관련된 법리논쟁까지.. 뭐, 그 논쟁에 대해서 말할 건 별로 없고(별로 없다고 말하지만, TV토론회를 보면서, 꾸꾸와 꽤 논쟁을 했음), 역시 패러디하면 만화는 빼놓을 수 없는 쟝르 아닌가? 일찌감치 패러디을 활용해 선구적인 작가 고유성이 있고, 90년대 패러디 만화의 신기원을 이뤘던 '미스터 부'가 있는가하면, 아마 동인의 활동은 패러디가 이미 주류를 이루고 있을만큼 만화에서 패러디는 유효한 명제다.
여기서 웹진 COMIX에 연재중인 인디만화 쾌남아 프로덕션의 몇몇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쾌남아 프로덕션의 작품은 작가의 발언에서 밝힌바 있다시피, 대본소 만화풍의 그림체로 그 만화들의 헛점을 노리는 패러디 만화다. 하지만 패러디의 성공에 있어 관건은 기발한 착상, 재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하는 것이 소재의 유효성이다. 즉 패러디의 원대상이 얼마나 유명하며 인지도가 높은가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쾌남아 프로덕션이 잡고있는 이현세풍의(더 정확히 보면 박원빈 풍의 그림) 캐릭터체는 유효성면에서 일단 문제가 있다. 이현세풍을 패러디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이 현재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쾌남아의 탄생부에서 공장제 만화의 직공이었다가, 어찌어찌 죽어 쾌남아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가 공장제 만화를 비판하고 있음을 누가봐도 알 수 있지만, 공장제 만화의 주류조차 이제 이현세풍의 만화가 아니고, 황성,하승남 등의 무협만화와 또다른 신예 김성모 등 이제 이현세풍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브랜드들이 나타난 현황에서, 패러디의 유효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소재의 유효성이 상실될 때, 즉 패러디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릴 때 쾌남아 프로덕션의 작품은 만화적 기본기를 잃어버린 불량품이 되고만다. 조악하고, 불량스러운 작품, 잃을 때 감정적 소비조차 제대로 해줄 수 없는 만화로, 읽는 이의 시간을 강탈하는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엽기의 시대에 일부러 조악함을 선택하는 많은 이들을 있다는 이유가 변명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필자는 내용의 빈곤함을 엽기적 말투나 그림으로 때우려는 행위를 증오한다. 최근의 딴지일보 몇몇 기사들은 그런 의미에서 해악이다.)
외연적 부분에 있어 이러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쾌남아 프로덕션의 작품들의 내연적 부분은 더욱 심각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마초성을 어설프게 비판하려고 마초의 문법을 사용함은 결국 자신의 마초성을 강조하고 만다는.. 이 부분에 대해 쾌남아와 COMIX는 매너리즘을 벗어나, 좀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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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 840, 2001/08/23 Thu 13:01:48 → 2001/08/23 Thu 13: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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