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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랄랄라07]초기 권현수;여학생의 복고적 환타지
유행은 되풀이되는게 '법칙'이라고들 한다.
더이상 새로운 변신거리가 궁한데도 신상품은 팔아먹어야겠고 하니까 시간적으로 한참 떨어진 (그래서 새로 사야만 하는) 과거의 것으로 돌아간다..라는 상술 정도로 이해했었지만. 요즘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웃곤 한다. 단지 상술의 농간으로 쳐버리기에는  (그런 발상이 재미없음은 물론이고)지금의 복고취향들은 너무 사랑스러운 점이 많다.
그 '촌티패션'이라는 말. 분명히 '촌스럽다'-유행감각에 뒤쳐진다-라는 판단을 하고 있으면서도 거꾸로 그것이 선호되는 기이함은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 각자의 과거 기억을 자극하는데서 오는 것이리라.  너무 먼 과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경험했고 그래서 앨범속에 박혀있는 구체적인 시공간, 그때의 나는 무엇을 꿈꾸고 동경하면서 살았었나.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그것은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재밋게 여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유익할 경우도 있다. 한국영화 걸작선 같은걸 EBS에서 하는 이유가 그런 거 아니겠는가. 혼란스런 현재를 다시 인식하는데도 유용하다는..

영화의 예를 들었으니 말인데, 감독겸 비평가 김홍준은 영화 [고교얄개]를 거론하며 학원'환타지'라는 말을 했다. 당시 학원을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기 주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타지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학생의 사회를 그리는 순정학원물 역시  일종의 환타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심드렁한 일상에 이러쿵 저러쿵 다른 옷을 입혀보는 것이다.다락방의 소공녀처럼 말이다.(연애 환타지를 거론하지는 말자. 연애환타지의 최고봉은 역시 학원물이 아니라, 역사물이나 비애에 가득찬 스케일과 운명론..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학생환타지의 작가는 권현수가 아닐까.

권현수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지만 난 옛날 소녀잡지 데뷔와 대본소시절의 권현수 작품을 더 좋아한다.아마 예의 복고적 사랑스러움과 재미를 찾는 거겠지. [러브방정식][하늘색 종이비행기][너와 나의 비망록]..권현수를 떠올리면 반드시 생각나는 몇가지 것들.
흰색(흑백이지만 아마도  흰색일것이 틀림없는)으로 둘러쳐진 울타리에 정원딸린 이쁜 집.
창가에는 어김없이 놓여있는 작은 화분.
테디베어가 침대(이부자리가 아니라)에 뒹굴고,
엄마들은 쿠키(부침개가 아니라!)를 굽고 주인공이 조금만 기침을 해도 즉시 온도계를 가져오고
이층에 있는 주인공방의 창가는 반드시 옆집 소년의 창문과 직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엿보이는 그방 침대는  야구용품과 해드폰에 팝송과 기타로 잡다해야 한다.
서서히 등장하는 또 하나의 남자는 섬세한 손가락을 가진 락커여야 하고....
이런 것들은 내가 좋아하던 권현수의 만화 자체다. 그의 세계에서 몇번 등장했던 결손가정(!)이라든가 각종 불행한 설정들은 관두자. 암울한 청춘의 고민같은 것은  아무래도 권현수에 어울리지 않는다.(그래서 삑사리 나기 일쑤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 이상형의 가정환경을 대신 그려주는 것이다.
한승원이나 김동화 역시 레이스가 연상되는 예쁜 소품들을 선호하지만, 연애스토리가 너무 강조되어서 그런 소품들이 시야에서 밀려나 버린다. 또 소품이나 배경이 어느 인테리어 잡지속에서 그대로 뽑혀나온듯이 너무 화려하고  너무 그럴듯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서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지게 된다.
반면에 초기  권현수는 그림체 자체가  소녀들이 직접 하는 낙서와 큰 차이가 없는 소박한 그림체다. 깔끔,단순하기는 하지만  날카롭지 않고,직선도 없고 삐뚤삐뚤하기까지 한 선으로 사람은 물론이고 배경까지 다 그냥 그려버린다. 또 원근감이나 질감같은 것도 적당히 처리해버린다.
말하자면 별로 프로같지 않은 소박한 선과 그림체가 오히려 그의 장점이었던 셈이다.
 
요즘의 순정만화들은 요즘 소녀들의 환타지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외모도, 그림의 선도, 사용되는 소품과 복식들도, 대사풍 마저도, 더 세련되고 더 화려하고 더 고집세고 더 다양한......
그리고 그 환타지는 낭만적이고 소박한 환경에 대한  꿈 보다는 연예인이나 인기인의 위치, 사치스런 소비생활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더 비중이 크다. 권현수의 지금 작품들 역시 그런 경향에서 크게 삐져나와있지는 않다.( 안 그러면 안될것이다)
하지만  순정만화 독자가 요즘 소녀들 만은 아니다. 예전에 소녀였던 독자도 있는 것이다.
영화계에 고교얄개가 있고 그걸 다시 보고 웃을 수 잇는 것 처럼, 순정만화계에도 권현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권현수의 초기작품들은 모두 복간되었고, 그리 구하기 어렵지도 않으니 말이다. 적어도 복고적으로 그리워하거나 향수할 대상의 실체가 있는 거니까. 거기서 조금 더 바란다면 그 독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지점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순정만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음.재밋겠군..

...꾸..
Comment : 1,  Read : 792,  2001/09/01 Sat 01:32:42 → 2001/09/01 Sat 01:33:18
차횰 

언니글 읽고 충격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마키쿠즈모토가 소녀적 환타지였는데... 10년의 차이가 크네요 ^^

200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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