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 단편집 [첼로의 오후]
-저번에 여학생의 환타지를 거론했지만, 오경아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꿈이 아무리 행복한 형상을 하고 있어도, 텅빈 현실에선 악몽과 다를바가 없겠죠' -{누군가 내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네} <[첼로의 오후]
말하자면 긍정적인 꿈- 불만스런 현실에 대해 잠시 꿈을 꿈으로서 새로 기운을 차리게 하는-과 부정적인 꿈- 꿈으로 도망치다-을 구분하자라는...
-오경아의 초기 단편들 (순정잡지 르네상스가 등장하기 전, 대본소 단행본으로 나온 [호수]같은 장편들의 뒷페이지에 덧붙여있던)이 긍정적인 꿈; 잠시간의 소녀다운 꿈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이후의 단편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꿈;그 위험성을 다루는 경향이다. 언제까지 소녀일 수는 없는거야. 피터팬식 퇴행은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야.
-독자들은 소녀시절을 금방 지나 버리고, 오경아 역시 초창기 애띤 신인의 시기를 지나 원숙한 작가로 나이들고 있다. 즉 작가나 독자나 이제는 현실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어른이 된거고,이제 오경아는 부정적 꿈을 경고하면서 대신 별로 흡족하지 않은 현실(혹은 만족되지 못하는 욕망)에 대한 대처법.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단편집 [첼로의 오후]역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릎쓰고 몇가지 단어로 정리해보면..
기다림 받아들임 흘러가게 내버려둠
-도피성 꿈의 위험함이나 백해무익함에 관해서라면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런 식의 대처법이라면 좀 생각이 틀리다. 기다림이나 받아들임, 내버려 둠이 마냥 아름다울 수 만은 없는 일 아닌가. 소녀적에 일장춘몽으로 욕구불만을 잠재웠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가능한 것을 이루거나, 이루려고 노력하거나, 적어도 욕구를 표현하는것으로 그 꿈을 대치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책임진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도 책임지는것을 말한다. (물론 오경아의 메시지가 전부 이런 것은 아니다.특히, 장래희망, 특히 예술가가 되려는 희망에 대해서는 상당히 격려하고 장려하려는 듯한 감이 팍팍 온다.예를 들어서 이 작품집 안에 수록된 {내 책상위의 천사}라든가, [어항속의 하늘]이든가(?)..에서 읽은 {시인의 왈츠}라든가. 그런데 남녀문제라든가, 사회문제, 혹은 가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주춤거리고 포기나 체념조로 나가는 것이다.)
- 가령, [ 누군가 ...]의 정운해가 그토록 박탈감 ( 꿈은 그 박탈감의 양면이다. 여기서는 피아노의 꿈)에 시달렸으면서도,결국은 모든 문제를 자신의 집착-과도한 박탈감-때문으로 결론내버리고, 불만스런 것들을 참아내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을 보면 답답해 하면서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그건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심하는거 아냐?' 정운해는 너무 많이 포기만 해왔고, 그래서 집착하게 된것이다. 하나쯤 실현해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집착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겠는가.집착에서 해방되는 길이 '포기'만은 아닌것이다. 그렇다. 나로서는 그애의 욕망 자체가 무시되는 것이 마음에 안들고 운해를 닮은 모든 여자애들이 좀 더 이기적이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포기'에 완전히 '중독'되버리기 전에..
마찬가지의 답답함을 {첼로의 오후}에서 내내 기다리기만 하는 남자를 보면서도, 또, {맛있는 차를 마시는 방법}에서 아무리 일방적인 이별도 고통도 그대로 달게 받아들이는 (... 모든 차는 다 맛있어, 과연.) 한덕희를 보면서도 느낀다.
-오경아는 뭐든지 아름답게 묘사한다. 그것은 다양한 은유를 통해서 이루어지곤 하는데, 차 (tea)라든가, 유리창 너머의 첼로켜는 여자, 그림, 춤, 시, 음악등의 대상이 선택되곤 하며, 그러한 대상물이 소유한 조용하고 우아한 이미지들이 그것이 은유하는 주제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단편들이 늘어 갈 수록 ( 오경아의 단편은 많은 편이다 )그 은유와 상징의 구조물은 절제력과 기교적 완성도를 더 해가서 미학적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일단 아름다움을 앞에 두면, 설사 생각이 달라도 굳이 반감을 표시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오미희의 가요산책을 일주일 내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것이다. 저녁나절의 센치한 아름다움과 성숙한 여인의 달관적 삶의 태도가 불러일으키는 '국화옆에서'류의 아름다움, 그래,삶이 다 그런거지 뭐 하며 다독여주는 다정한 멘트, 조용히 흘러가는 옛날 가요들, 처음엔 그런 분위기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만,며칠안가서 지겹고 답답하고 급기야는 뭔 노래를 하는지, 뭔 소리를 하는지 라디오 혼자서 웅웅거리게 내버려두게 되고, 다음주엔 결국 채널을 돌리게 된다는..
돌아설 줄 아는 아름다움 이란건.. 당차게 밀어붙이는 시원스런 아름다움과 공존할때 지속적으로 빛나는 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꾸
|
| Read : 894, 2001/09/02 Sun 21:02:59 → 2001/09/02 Sun 21:18: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