惑世誣民

"....이혼도, 판자촌도, 파출부도, 가난도, 분노도, 힘없는 걸음걸이조차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나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남기기 위해 애쓰고 애쓰다가 다운되어 버렸다......원고는 이미 '우향우'를 하였고 이제 와서 다시 그리기엔 시대가 변하였다....."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를 두고 작가가 한 말이다. 이 작품은 앵벌이 출신의 남매가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이를 앙다물고 살아가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는 서글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진섭은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했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권투선수로 나선다. 진섭의 동생 신애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신애의 친구 지운은 무용가로서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진섭의 친구인 권투선수 진희는 친구를 위해 깡패조직과 싸우다 신경이 손상되어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학교는 순수한 그들에게 더러운 낙인을 찍어대고 가족은 갈가리 찢겨져 간 곳이 없다. 살기 위해 권투를 시작했지만 계산과 모략을 꽉 찬 그곳에서 바라는 것은 철저한 '상품'이 되는 것일 뿐이다.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지친 날개를 파닥거리며 계속 날아야 하는 새처럼 그들은 몸담을 곳이 없다. 황미나의 다른 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도 희망의 여백을 약간 남겨 놓을 뿐 해피 엔딩이 아니다.

황미나는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고, 다양한 소재를 써온 연륜 있는 작가로서의 저력은 상당하지만, 현재 그렇게 '잘나가는' 작가는 아니다. 황미나의 팬들조차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는 무려 15년 전 작품이 아닌가?(나는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학년은 뭐였냐고? 글쎄..^^) 나는 이 작품을 평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약간 다른 얘기를 꺼내자. 작가가 이제 와서 그 당시에 그릴 수 없었다고 죽 늘어놓는 그것들을, 실제로 나는 그 당시의 TV에서 본 적이 없다. 접근할 수 있었던 영화의 어느 장면에도 없었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고, 신문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깨끗하고 건강하고 교양있고 부유하고 행복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것같이 능력있는 아버지와 자상한 전업주부 어머니가 꾸려가는 사랑과 우애만 가득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좋은 나라라고 정말로 믿었다. 내 바로 옆에도 '결손 가정'의 친구가 있었는데도, 그녀를 특별한 경우라고만 생각했지, 일반화할 수 있는 사회 집단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 집만 해도 허구한 날 지지고 볶았는데도, 나는 우리 집만 화목하지 못한 특별한 문제 가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실이야 어찌되었든, 현실을 설명하는 틀('담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은 역관계에 의해 구성되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여간다고 할 수 있겠다. 거칠게 말하면,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 담론 속에서는 없어지기도 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담론 속에서는 존재 이유+의의+가치를 가지가지로 갖춘 채 있게 되기도 한다. 담론이 구성되는 역관계에서 우세인 집단은 곧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일 텐데, 이 우세가 극단 적일수록 담론은 실제의 삶과 유리되어 기형이 되어 간다.

여기서 지배 똘마니들의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면, 아예 언급할 필요가, 아니 언급할 언어 자체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즉, '부재하는 현존'! 동성애를 금지할 법안을 상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영국 지배 계급 남성들이 빠진 딜레마가 이것이었다. 동성애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이것을 공표해서 금지한다는 것은 이미 그 존재를 인정한 것이 된다. 이런 이중기준에 걸려 돌머리 굴리고 골머리 썩힌다. 이럴 경우 두리뭉실하게 말을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한 후, 그 불분명한 기준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식으로 걸고 넘어져 각개격파 때려잡는 방법이 임시방편으로 쓰인다. 그냥 '부도덕한 행위'라거나 '불순한 행위'(심지어는 머리 속을 파헤쳐 '불순한 사상'까지도!)라고 해 놓고 걸면 걸리니까 걸리는 것이다. 걸면 걸리니까 짤라 버리는 것이다. 애매모호하게 봉합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방법도 애용된다. 건전명랑행복자유민주한나라에 불순세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그럴 경우 불순세력을 심리학적이나 생물학적으로 뭔가 잘못된 극소수의 광신도 집단으로 색칠하는 조잡한 방법을 쓴다. 그리하여 남한의 대학생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상들을 부여잡고 혼자 세뇌되어 하란 공부는 안 하고 거품 물고 지랄발광하여 날뛰던 미친년놈들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의 노동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착취, 인권탄압, 산업재해, 성폭력, 구사대, 백골단, 고문에 대항해서 허공에다 헛주먹질을 해대는 또라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의 여성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성차별에 항의해 제풀에 뒤집어지는 저능아들이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되고 있)는 것들을 '있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반역이다. 외국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도시미학적(?) 관점에서 88올림픽의 성화 봉송 1분을 위해 싹 밀려 버려야 했던 상계동 판자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영화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감독, 1988, 27분, 푸른영상)에서는 '없다'고 기록된 침묵의 역사를 깨고 그들의 모습을 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황미나가 그리려고 했던 장면들은 철저하게 소외된 시대의 이면이었다. 없다는 금기를 깨고 그것을 일단 그리는 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유죄이다. 게다가 그의 매체는 만화가 아닌가? 만화는 속일 수 없다. 숨길 수 없다. 누구나 다가갈 수 있다. 아무리 꼴통이라도 만화는 씹어댈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책이 한자 제목을 달고 있으면 한문을 못 읽는 전경이라면 검문에서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만화는 잠깐의 검열로도 가뿐히 짤라낼 수 있다. 게다가 자신들의 불순하고 불쾌한 상상을 덧칠해 음란하고 폭력적으로 읽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천국의 신화'를 둘러싼 소동을 상기하라! 이현세의 그림보다 그 위에 덧붙여진 검찰의 기소 사유가 더 '음란'했다.) 또한 다른 어떤 매체보다 자본을 덜 요구하기 때문에, 자본의 제공을 수단으로 해서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만화가 그렇게도 무시되고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터지는 이유가 아닐까? 만화가 무슨 일만 나면 꼭 죄인처럼 주범으로 몰리는 이유가 아닐까? 만화가 그렇게도 만만한 이유가 아닐까?

사실 이 작품은 구성상으로는 별로 빼어난 작품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앵벌이 두목이 십몇 년 후에 다시 찾아와 진섭에게 집착하는 설정이나, 우연히 유복한 부자집에 입양된다거나, 등장인물들이 우연히 연결되는 등의 설명은 어설프다.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요즘의 만화에 비하면 '우리는...'은 빛바랜 듯한 감성으로 그려졌다. 상투적이고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헝그리정신의 권투선수, 유복한 부르주아집안의 몰락, 파출부로 전락한 고상한 사모님, 그리고 불치병, 터프하고 고독하고 가난한 남자와 멋쟁이 부자집 공주님의 사랑, 술집 나가는 여동생을 룸에서 만난 오빠, 알고 보니 아주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었더라 식의 설정.... 그러나 '우리는...'이 매 장마다 무자비하게 검열되고 결국 무자비하게 중도하차된 작품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언가 더 많은 말을 하려다 꾸역꾸역 삼켜버리는 듯한 이 작품이 만화 외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그 어색한 모든 것을 이어주고 자연스럽게 만든다. 황미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그릴 때 애정을 듬뿍 담아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또한 상투적인 동정 의 묘사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을 때 인기가 높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을 그렸을 때 호응도가 높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뭐,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작품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달콤한 '신세대' 연기자들이 나와서 사랑 타령만 하다가 끝났고, 만화 원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공들의 이름과 약간의 설정만 차용했다는 혹평을 두들겨 맞았다. ('비천무'도 매체를 옮겼다가 원작을 망치는 역사를 잇게 될 듯...젠장.)

첫 만화비평의 대상을 무엇으로 할 지를 정하지 못해서 꽤나 고민했다. 첫 대상 작품은 한국 만화였으면 싶었고, -같잖은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때문은 절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듯- 또, 마구 까대는 글보다는 사랑과 희망을 담아 매만지는 글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 점점 나아지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대표작

 - 이오니아의 푸른 별

 - 푸른 시절

 - 유랑의 별

 - 페르디낭

 - 꽃잎으로 보낸 편지

 - 별 헤는 밤

 - 에게해에 바친다.

 - 아뉴스데이

 - GooD Bye Mr.블랙

 -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

 - 안개 유희

 -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 다섯 개의 검은 봉인

 - 보헤미안 렙소디 (방랑의 광시곡)

 - 메이저에서 마이너까지

 - 녹색의 기사

 - 스턴트 맨 스턴트 걸

 - 엘 세뇨르

 - 그랑프리

 - 무영 여객

 - 상실시대

 - 취접냉월

 - 수퍼 트리오

 - 태백 권법

 - 맹걸이 소림사에 가다

 - 웍더글 덕더글

 - 파라다이스

 - 윤희

 - 당산 대협

 - 모먼트 드리밍

 (투유 1호부터 3회 연재)

 - 당산 여협이 간다.

 - 기적의 아이들

 - 귀여운 동반자

 - 타임 헌터

 - 레드문

 - 청계 동자

 - 알게 뭐야

 - 아르테미스의 활

 - 이씨네 집 이야기 (진행중)

 - 천국의 계단(진행중)

 - B.S.T (피와 땀과 눈물)    (진행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