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편집진 + 멋진 손님들

 

 

 

왔다! 담대한 대담 제2탄! "그것을 알고 싶냐 - 순정만화의 원형"!

  이번 대담은 지난  대담(김성모의 만화세계  - 남자만화의 원형)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처절하고 철저한 200% 남자만화의 대당으로 청승맞고 아련한 순정 키치의 원형을 캐 보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다.
  원래 주 대담자로는 순정만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 미혼 여성  서넛, 보조 대담자로는 후까시 잡는 마초 하나, 어설프게 개기다가  얻어터져서 깨갱 하고 꼬리를 내리는 강아지(--;;) 하나 정도를 잡았다.  그러나 ACA 참관 오프 일정와 함께 잡은 대담에 나타난 사람은 여성 둘, 남성 셋이었으니.... 대담을 진행시킬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참여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여기서의 호칭은 각각 순희, 정희, 마이오, 조종인, 강유노로 한다. (그러나 부지런한 독자라면 누가 참여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훗훗)

 

  @`-,--순정이란?

순희(이하 sun)  : 순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 역시 야오이가 아니겠어? 여성 독자가 원하는 건 꽃미남들이 나와서 보여주는 애정행각이니까! 남성을 커플로 등장시킴으로써 캐릭터의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강간 신 같은 것에서도 여성 독자가 훨씬 이입을 덜 할 수 있으니 편하게 볼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어.

정희(이하 jung) : 어라? 난 반대!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말 그대로 '원형'을 찾자는 거잖아. 'Boy meets Girl'이란 말이야. 야오이는 일종의 변형태라고 봐요. 그리고 여자애들이 야오이를 그렇게 많이 본다고 할 수 있나? 난 거의 안 보는데..

마이오(이하 ma) : 많이 보는 게 맞지. 나도 야오이가 순정의 정수라고 생각해.

조종인(이하 cho) : 어차피 경계를 긋는다는 건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일이니까 역사적인 맥락에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한다. 우선 소비층이 분리되기 시작한 원인을 따져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강유노(이하 gang): 그럼 엄희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거예요?

jung : 그럴 필요는 없지. 순정을 정의하는 건 '감성'이다. 이 정도만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냐?

gang : 감성의 차이라면.. 애틋하고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건가요?

jung :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여성 독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꽃미남(들)의 등장이 더 필수적인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꽃미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주인공(여)의 존재의 의미가 되고 말이지. (남자만화에서는 주인공(남)이 꽃미녀들의 인정이 아니라, 남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과 대조!)

sun  : 맞아. 주제나 소재, 배경으로는 순정을 정의할 수가  없어. 예를 들어 배경만 우주인 SF 순정은  사실 SF와는 거리가 멀지. 별빛 속에나 라비헴 폴리스, 디오티마..

 

ma   : '캐릭터의 중요도, 심리묘사,  서사'를 순정의 특성으로 꼽을 수 있겠지.

cho  : 순정에는 문외한이라더니, 줄줄 꿰고 있군. 어쨌든 순정을 크게 분류하면 대하순정(역사물), 학원물, 할리퀸의 만화판인  대본소순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sun  : 혁명의 낭만성은 확실히 중요해. 학원물은 설정이 편하고  독자들의 이입이 쉽다는 점이  있겠고.. 대본소순정은 말  그대로 쉽게 소비되는 저급물.

jung : 검열이 심해서 괜히  외국이나 가상국의 혁명을 배경으로 한 면도 있지.

@`-,--순정의 원형을 찾자!

gang : 오늘 하려는 건 순정만화의 원형을 찾는 것이잖아요!

sun  : 그럼, 우리가 하나  만들어 보자고. 뭐, 만화방에서  황미리나 한유랑 만화 두세 질 빌려  놓고 짜집기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긴 한데.... 전형적인 원형적인 프로토타입이란?

   jung : 우선 주인공은  금발소녀랑 흑발미남! 으흐흐..  (수많은 만화 속 꽃미남을 떠올리며 음흉하게 웃는다.) 이름부터 짓자구요.

sun  : 순정 주인공들은 정말  이름들이 --;;;; 샤르휘나가 대표적이지. 어떻게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jung :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엽기적인 감각인데,  고등학교 때는 그걸 또 좋아했지. 푸핫. 한글 이름일 때도 꼭 서양 이름인 것처럼 발음이 굴러가게 짓지.

ma  : 그리고 성도 꼭 유, 윤, 강, 하, 민 같은 거. 변,  김, 차, 박 이런 성은 절대 안 나와.

cho  : 프랑소와즈, 아델라이드, 크리스티나.. 그런데 배경은 한국. 주위 인물 이름은 철수, 춘희, 돌쇠, 삐꾸...

jung : 여주인공 이름은 꼭 '샤'가 들어가야 해. 그리고 '느'로 끝나면 좋겠다.

gang : 샤리안느라고 하자구요.

sun  : 얘는 반드시 털털하고 발랄한 성격이어야 해. 외모는  평범하지만 귀여운 편.(이라고 설명은 나오지만 그림으로 보면 엄청난 공주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남자들에게 인기는 엄청나게 많음.

jung : 가정 환경은  평범하고... 부모, 여동생  하나가 적당해. 아차, 그리고 괜히 붙잡고 독백할 동물이 필요해. 예를 들면 강아지를 껴안고 '그는 내 마음을 알까? 어쩌구..' 하는 용도로.

ma  : 자, 이제 남자주인공! 이름은 뭔가  강한 느낌이 들게 해야지. 마......륵스 어때?

cho  : 취향 하고는. --;;; '칼'은 어때? 괜찮군.

sun  : 하하핫! 반드시 '카알'이라고  써야 해. 반드시 긴  흑발에 긴 다리. 고독하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고.. 그림에는  어떻게 보이든 '매우 잘 생겼다'고 설명이 나와.

jung : 몸매는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벗겨 보면 의외로 근육질(이라고, 그림으로는 알아보기 어렵지만 설명이  나옴). 이는 물에 빠졌다든지, 위험에 빠진 샤리안느를 구하다가 상처를 치료하게 되어  웃통을 벗을 일이 생기면 알게 되는 사실이고... 이 때 우리의 샤리안느는 속으로 '어머! 의외로 남자다운걸?'하면서 혼자  얼굴이 빨개져야 해. 카알은 절대적으로 엉덩이가 주먹만해서 쫄바지를 잘 입고  나오지... 으흐흐..

sun  : 카알은 불행한 가정사나 불행한 연애사로 트라우마가 있어야 하고, 과묵하고, 연애 경험은 꽤  되는 편이야. 물론 그 연애  경험이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성격이 어둡기 때문에 창가에서 후까시 잡으며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이 종종 나오고, 또 그런 카알을 샤리안느가 흠모의 눈길로 쳐다보지.

cho  : 장편으로 간다면 과거의 여자가 등장해서 꼬이게 된다.

ma  : 공부도 잘 하고 이것저것  만능이지. 남자들도 멋진 놈이라고 인정하고.. 오토바이나 스포츠카, 아님 승마 같이 뽀다구 나는 탈것이 필수적! 그리고 오토바이를 비맞으면서 타는 장면도 필수적!

jung :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조연, 도와주는 조연의 설정.

sun  : 도와주는 친구는 매력없는  여성이야. 그리고 딱 한 명  뿐이야. 대체로 남자주인공과 엮이게 되면서 또래 여성들이 집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기 때문에 여자주인공은 살기 고달파지지.

jung : 방해하는 인물은 나쁜  년과 그에 딸린 부하 2,  그리고 나쁜 놈이지. 아! 진짜 전형적이다. 나쁜  년은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거나 아니면 팜므 파탈이거나... 반드시 날카로운 눈매에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지. 아닌 것도  있다. 백장미. 백장미는 남자가  결여되어 있군. 음, 잠깐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기준도 있겠지만, 조연을  다루는 방식에서 저급 순정과 고급  순정이 나뉘는 거라고 봐. 대본소 순정에서는 조연들이 별 이유도 없이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아무 이유 없이 죽는 걸로 처리되거든.

ma  : 어떤 장치들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것이죠?

sun  : 감정이입을 위한 장치는 이런 것들이 있지. 표정이  풍부하게 살아나는 클로즈업. 둘의 이름은 만화 전체에서 수백 번은 읊어지지. 아아.... 카알.... 아아... 샤리안느....  이러면서.(이 때 반드시 장미꽃이 휘날린다) 호홋. 한국 이름은 이름만 부르는 일이 별로 없고 '이오야! 종인아! 유노야!' 이렇게 부르게 되어  있는데 배경이 한국인 만화에서도 '이오... 종인.... 유노..'하고 불러. 이런 것도 필요해. 괜히 필요도 없는 곳에 영어 대사 (물론 짧고 쉬운 걸로) 넣기. chu~(이은혜 졸라 많이 씀) please.. I love you....

jung  : 이은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걔는 대사가 왜 그런 걸까? 전부 비문에다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고... 그런 것에 소녀 독자들이 끌린다고 봐?

sun  : 대충 초등학교 4학년 정도까지는  멋있다고 생각하는 애들도 있을 거 같은데, 그 이상 나이의 독자는 짜증낼 거야. 이건 뭐... 유치하기가 일일아침드라마 대사 수준이잖아.  내 친구 중  하나는, 그냥 이은혜 그림이 깔삼하다고 하면서 읽는 것 같던데.

jung  : 말할 것도 없이 그냥 할리퀸 로맨스야. 그  화려체의 비문투성이 문장들.

gang  : 난 할리퀸 로맨스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왜 읽는 거죠?

sun   : 야하기 때문이지. 물론 적나라한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애매모호한 서술로 상상력을 쓰게 만들어.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강인한 몸을 벅차게 느꼈다, 이런 식으로.

jung  : 그러다가 꼭 결정적인 순간에는 벽난로 묘사로 넘어가. 하하하. 그런 면에서도 할리퀸 로맨스와 순정만화의 공통점이 있지. 여성들에게 있는 정체불명의 섹스공포감을 건드리지 않고 상상력만 증폭시키는 특징.

ma   : 섹스는 둘의 최종  합일점이기 때문에 절대 남발되지  않아. 섹스의 기교, 구체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해가 되기 때문에 절대 나와서는 안 되지.

gang : 하지만 아저씨 대상 만화에는 섹스가 나오잖아요. 시마  과장 같이 남자들이 보는 연애물에는.

cho  : 아저씨 연애물이랑 순정이랑 무슨 상관이야? 감성 코드가 완전히 다른데.

gang : 그래도 앞으로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sun  : 아유!! 정말 말귀 못 알아듣네!!! 아무리  아줌마 대상 순정물이 나온다 해도, 기본적 감성은 유지되어야 하는 거야. '적어도  나는 마음만은 순결하다. 이 깨끗하게 간직된 마음을 알아봐 줄 왕자님이 언젠가 나타나겠지?'하는. 그걸 순정이라고 부르는 거고.

jung : 그래. 절대 '불륜'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성관계는 아주 신비스러운 그 무엇으로 처리될 뿐이고, 오히려 둘 사이의 교감이 중요하게 그려지지.

ma  : 교감이 아니라 거의 텔레파시던데? 영혼이 직접 통하는  관계로 그려지잖아.

jung : 아차차! 절대 빠지면 안 되는 게 있지!!

ma  : 뭔데?

jung : 의도하지 않은 Kiss!

sun  : 맞아, 맞아! 우연한 첫키스에 사랑을 자각한다! 이거 정말 필수적이지!

ung : 첫키스에 그렇게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건 순정 작가들이 성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거야.

gang : 아녜요... 첫키스가 엄청난 충격이 되는 수도 있어요....

jung : 그거 네 얘기냐? 너 연애한 적 없다며?

gang : 그게.. 들어봐요! 술자리에서 그냥 당했다니깐요!

jung : 짧은 거였어, 긴 거였어?

gang : 깊은 거.. 그것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다들 경악한다.. 꾸오오...  _O_ ;;;;; ) 그런데 그 때  제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니까
요....

cho  : 헉..(영혼의 교감이냐?) 그건 너니까 그런 거지.

sun  : 할리퀸에도 나오듯, 상대의  테크닉이 절묘할 경우는 당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는 건가? 난 몰라∼

 

  @`-,--순정의 미래

jung : 이건 일반화시켜서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는 건데.... 순정만화가들은 자신의 만화가  사회성을 띠는  것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 것 같아. 가벼운(?)  예를 들면 이미라의 남성해방대작전... --;;; 그리고 달의 아이의  경우, 작가가 독자들이 의미를 확장시켜 해석하는 것을 여유있게 받아들여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이 만화는 반핵만화가  아닙니다'라고 밝힌단 말이지. 클램프의 탐미주의도 그런 맥락이고.

sun  : 그건 모든 장르에서 마찬가지 아니야? 일부의 영화가 오락성만 추구한다고 해서 영화라는 장르가 다 그렇지는 않은 것처럼.

jung : 내 말은, 보편적인 여성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사회성을 제거하고 고립적인 남녀관계에 매몰하는 것 같다는 거지. 아무튼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네. 자, 그럼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 여성만화가들은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sun  : 자신이 그리는 인물에 빠지면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가  있어. 만화 보다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쩐지 화가  나서 다시 고개를 파묻고 '에잇, 다시 고개 안 들란다'  하잖아. 만화를 보는 우리도 그런데 만화가야 오죽 하겠어? 만화 속의  인물과 비슷한 남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테니.

jung : 대부분의 남조선 인민들이 결혼을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순정만화가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어. 상당히 특수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내가 중고등학교 때 즐겨 보던 만화의 작가들이 당시 이미 '노처녀'라고  불릴 나이였거든.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그 작가들은  여전히 독신이야. 이젠 '노처녀'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 나이대가 되었지. 김진, 강경옥,  신일숙, 김혜린, 황미나, 원수연, 이미라, 이은혜  등등.  그렇다고 동거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변변한 연애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sun  : 연애를 할 상황이 아예 안 되는 것 같아. 집에만 틀여박혀 있고, 대체로 낮에 자고 밤에 깨어  있으니까. 그리고 만화가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지도 않는  데다가, 남자를 만날 상황도 안 되지요. 만나는  남자는 출판사 사람이랑, 자기 담당 기자가 거의 전부가 아닐까? 그리고 남자를 만난다 해도 만화 그리는 여자를 달가워할 사람이 없을 것 같고..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만화 그리는 데도 지장이 많을 테고 말야.

jung : 그래서 부부만화가가 많은가봐.

sun  : 만화가들은 계속 나이를 먹는데 독자들의 연령층은 그대로라는 것이 큰 문제야. 자신의  또래와 동떨어진 상황에서 여전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연애물을 그리고 있으니.. 아마 자아분열도 심각할 거야. 그래서 계속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ma  : 한편으로는 중년들은 볼 만한 만화가 없어서 문제다.

cho  : 만화가가 독자들과 함께 성장해 가는 경우는 남자만화에서도 아주 드물어.

sun  : 순정만화가 중년에게 잠재되어 있는  일탈의 욕구를 잘 형상화하면 좋을  텐데. 순정만화의  정체기를 뚫기  위해서는 만화가가 30-40대의 감성을 포착해야 할 거야.

jung : 응.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야 순정만화에 미래가 있는 거겠지?

gang : 그럼 오늘의 결론은 '불륜순정! 30-40대를 뚫어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