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누프걸

 1. 실마리부터

한국 순정만화가 일본 소녀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독자성과 별개로, 그것이 일본소녀만화에서 출발했으며, 그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둘은 어느 정도 공통의 역사와 전개과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특히 양자가 여성 장르 로서 내적 심리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소녀만화 [뉴욕뉴욕]과, 같은 동성애 소재의 순정만화 [금지된 사랑]의 비교에 앞서 먼저 상기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그러므로 소녀만화가 동성애를 다루기 시작한 초기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그건 제가 20년전에 발표했던 것인데 당시 일본은 성 개방이 문제가 되고 있었지요,. 하지만 남자에겐 개방이 됐지만 여자에겐 개방이 안됐어요. 그러나 성 개방이 됐다는 것 자체가 여자들에게 다가오는 문제가 아닙니까? 그래서 미소년을 등장시킨 반발적인 작품으로 여자들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런 것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보고 싶었어요' (르네상스 91.7 황미나의 일본탐방중 다케미야 게이코와의 대담)  

다께미야 게이꼬가 자신의 작품  [바람과 나무의 시]에서 일본 소녀만화사상 최초로 미소년사이의 동성애를 소재로 삼게 된 의도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여성에게 불평등한 성 개방 풍조에 대해 여성독자들과 함께 '반발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이루어진 일본 소녀만화 최초의 꽃 미남 스캔들 은 이후 일본 소녀만화에 두 가지 적극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 하나는 이를테면 '예쁘게 꾸민 소년 (남성)들의 섹스를 관음 하는 ' 측면으로서 그것을 즐기는 여성독자의 쾌감-많은 여성주의적 견해들이 옹호하는 '반발적'인 쾌감을 내포한다. 물론 이 쾌감의 성격에 관한 담론이 진행되면서 남성들을 노리개로 만들 때 '여성화'시켜서 한다는 측면이 지적되고 그것 자체가 여성의 자기비하적인 측면을 내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초창기 에 어느 정도는 반발이요 쾌감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보여진다. 다케미야의 말마따나  성 개방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런 종류의  쾌감규명 관련 논의는 그녀의 '대화시도'자체가  일정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영향은 그것이 '동성애'를 소녀만화의 소재 반열 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동성애를 어떠한 의도에서 다루었는가 와는 별개로 [바람과 나무의 시]안에서 그것은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에 유행하던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내적 논리를 갖춘 모습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즉, 온전한 하나의 소재로서 탐구되는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시초에 던져진 두 가지 의미-'남성동성애를 통한 쾌감'과 '온전한 소재로서의 동성애'는 지금에 와서 '야오이'와 '동성애물'이라는 개념 쌍으로 존재한다.
이 개념 쌍은 실제에 와서는 다소 혼란스럽고 구분이 불명확한 상태지만1)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소재로 하거나 꽃 미남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녀만화 (와 순정만화)는 언제나 그 경계선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소녀만화 [뉴욕뉴욕]과, 순정만화 [금지된 사랑]역시 그러한 동성애+야오이 의 역사적 맥락속에 위치해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특이하게도  이 줄타기의 현실에서  단호하게 '이것은 야오이 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이 두 만화는 동성애를 리얼하게 다루었다는 평을 공통적으로 받고 있다.

2. 순애보 의 전통에서

 일단 이 두 작품이 어떤 방법으로 '야오이'의 혐의를 벗고 잇는지 대략적으로 훑어보자.
[아기와 나]를 통해서 대표적인 휴먼 소녀만화 작가로 알려진 마리모 라가와는 [뉴욕뉴욕]에서 역시 휴먼 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동성애의 양 당사자인 케이 와 멜의 사랑의 시작, 전개,위기와 고통을 섬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둘의 사랑의 순수성 자체를 납득시키고, 이들의 사랑이 동성애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주변으로부터의 고통을 상당히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나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다시한번 증명하므로써 결국 독자로 하여금 동성애도 정당한 하나의 사랑으로서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함을  납득하게 만들어버린다. 적어도 이들의 순수한 사랑이 '야오이'라는 중상모략을 받아서는 안됨은 물론이요,그 순수한 사랑자체에 감동했음을 밝히는 독자가 적지 않다.
한편 한 혜연 의 [금지된 사랑]은 [뉴욕뉴욕]과는 달리 남자들간의 사랑이 아니라, 여자들간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은 애초부터 '야오이'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여자들간의 동성애는 야오이가 추구하는 관음 적 쾌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단지 동성애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를 포함한 여러 가지 평범치 않은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여러 유형의 사랑에 대해 '대화'한다. 그런데 [뉴욕뉴욕]과 비교해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은 마리모 라가와가 반복해서 말하는 '지저스,이것은 운명이다'식의 영원불멸 순수한 사랑 자체라는 개념은 여기에 없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여러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사랑 자체는 삶의 일부분으로서 상대에 따라, 또 자신의 상태에 따라 여러 형태와 상황 속에서 변해가는 것,혹은 그 경험 모두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독자가 사랑에 감동할 여지는 없다. 감동보다는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2)
다시 말해 이 두 작품은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해 전혀 다른  마인드를 보여주고 있다. 한쪽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라는 아주 전통적인 순정(소녀)만화의 이데올로기로 승부했고, 다른 한쪽은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을 살아가는 속에서는 생기는 별 별일에 대한 대화'라는 전통순정(소녀)만화화법에서는 다소 생소한 전략을 택하고 있다.

    

3. 동성애자의 자기긍정

동성애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질문은 스스로 그것이 비정상 적 이다 라는 생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 다시말해 타인에게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전에 자기자신이 어떻게 긍정할 것 인가 라는 문제다.
[뉴욕뉴욕]의 앞 부분은 바로 그러한 질문에 대해 답을 시도하고 있다. 주인공  케인 은 터프한 미남형의 경찰로  멜 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한다. 케인 은 보통의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듯 멜 에게 반해 그를 원하지만 이 감정이 얼마나 절실할 것이며, 얼마나 책임질 수 잇는 것인지에 대해 처음에는 반신반의한다. 한편 멜 은 그 미모로 인해 양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상처를 지닌 비극적인 인물로 케인 을 자신의 고독을 영원히 치유해줄 평생의 동반자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사랑한다.  이러한 과정은 흔한 멜로 물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고, 두 사람의 갈등관계는  마치 육체관계만을 원하는 남자와 결혼을 원하는 여자의 흔한 갈등관계와 그리 틀릴 것이 없지만 그 주인공이 둘 다 남자라는 점에서 중의성을 띤다. 케인 은 동성애자이지만 그런 자기자신을 긍정하기보다는 혐오하고 있다. 그가 멜 에 대한 진지한 사랑을 긍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상 그가 자신의 동성애를 스스로 긍정하게 되는 자기 변신 과정과 동일하다. 멜 이 하필이면 미소년으로 설정되어있는 것도 (그래서 결국 야오이 의 혐의가 거론되게 되는...). 어찌 보면 케인 의 그러한 상태에 대한 가장 섬세하고 적절한 묘사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인 은 스스로 동성애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자신을 달가와 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같은 동성을 선택할지언정 가장 정상적인 경우와 근접한, 즉 여성에 가까운 동성을 선호하게 되는 것으로 보면 ...여하튼 멜 은 계속 유린당하고 배신당하는 상처 투성이 의 천사로 그런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대안을 케인 과의 진실한 사랑에서 찾고 있다. 멜 의 그러한 플라토닉 한 면모는 동성애가 단지 변태성욕에 불과한 것이라는 편견에 분명한 선을 긋고자 한 의도인 것 같다. 케인 의 자기혐오는 스스로의 사랑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멜 의 사랑방식이 그의 그런 경향을 교정(?)해주게 된다. 결국 [뉴욕뉴욕]에서 내려주는 답은 '사랑하라'라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당당해진다는 것이고 그런 과정 자체가 자신에 대한 긍정과정이다 라는 것. 이러한 대답은 사실 '비정상'을 일단 인정하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이다. 작가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그리고 있다는 느낌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가령 멜이 동성애자가 된 이유는 그의 과거의 '비정상'으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그려지며, 3권에 등장하는 동성애 엽기 살인마 의 경우도 비정상적 과거의 산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비록' 비정상적 사랑이지만 그런 사랑조차도 당당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진실됨이다 라는 논리가 성립하고 주로 멜 이 케인에게 이런 교리를 포교한다. 물론 예측할 수 있는 다음 과정은 케인 과 멜 이 함께 세상을 향해  포교하는 과정이다.  
 
한편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 지이 와 희성 은 각자의 속마음과 연애담 을 숨김 없이 나누는  절친한 친구사이다. 지이는 사랑의 배신과 실연, 죽은 언니를 사랑했던 30대 남자와의 관계와 기대. 그 남자가 유부남 이었고 언니와 그들 부부는 선후배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 여고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을 끝까지 뒤쫓아 결국 이미 유부남 이 된 선생님과 내연의 관계를 맺다가 끝내 결혼에 성공하는 친구의 이야기등 여러 가지 사랑 -그중엔 '비정상'혹은 '금지된' 것도 포함되는 -을 목격하고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친구 희성 역시 사실은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희성은 동성연애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경험해온 바, 커밍아웃 하면 친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숨겨오다가, 그들 둘의 사이를 질투한 옛날 애인 명주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자신의 속사정을 밝히게 된다.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 대답은 앞서의 경우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지이 가 희성 을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초대하여 허물없이 여전한 친구로 대하므로써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마무리를 찍어준다. 희성 은 그제서야 비로소 안도한다. 즉 . '너의 불안과 자기혐오는 너로부터 연유한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불안은 타인을 통해서 회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비정상이란 타인의 태도에 의해 상처받음으로써 만들어지는 일종의 외상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4. 편견에 대한 투쟁

여기까지 오면,주변의 편견과 냉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잇을것인가 라는 다음 질문에 대한 각각의 답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뉴욕뉴욕]의 뒷 부분 에서는 맺어진 두 사람이 부모와 주변에 커밍아웃 하면서 부모를 포함한 주변의 시선과 편견에 굳건한 사랑을 당당히 보여주고 인내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그렇게 해서 주변은 점차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멜 을 먼저 보내고 홀로 늙은 케인 앞에 미소 짓는 멜 의 유령이 손을 내민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꼭 맺어져 있던  두 사람, 갖은 우여곡절과 힘든 상황을 헤쳐온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로 남겨진다. 그리하여 두 사람 의 관계는  단지 두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힘든 사랑에 대한 선구적 변호가 될 수 있기 위해서 말하자면 신화가 된다. 혹은 사랑의 전설.

반면에 [금지된 사랑]의 사람들은 신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유부남인 선생님과 불륜을 맺다가 결국 결혼에 골인한 석희는 '뭐라 한들 어때,결국 결혼했으니 성공했잖아? '하고 웃어버리는 식이다.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 입고 옥상에 올라가서 줄담배를 피워물며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대해 긴장하는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를 쳐다보며 예쁘다고 생각하는 지이는 정말 뭐라 한들 어때, 학생 때부터 쫓아다니던 선생님을 기어이 나꿔 채고는 이제 마주할 또 다른 현실에 골몰하는 친구의 모습이 귀엽고 신선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여기서 내려지는 답은 이렇다. '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모르고 멀리서 욕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가까이 와서 내 귀에 대고 욕한다면 밀쳐내 버리면 그만이다"

5. 가족과 친구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터부시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히 정치적인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기존 가족질서의 권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뉴욕뉴욕]에서 기존 가족질서는 부정되기보다는 긍정되고 설득되어야 할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체인과 밀은 부모 앞에 예의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당당히 이해시킴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하고 노력한다. 특히 당혹감과 거부반응을 보였던 체인의 어머니는 결국 '부모의 사랑'을 기초로 그들을 이해하기에 이르고 받아들이게 된다.여기서 '부모의 사랑'은 사실 체인과 밀의 '진실한 사랑' 만큼이나 강력한 것이다. 역시 '사랑'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이 사랑은 그저 피로 연결되어있다거나 부부 관계라는 형식에서 비롯된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에서 어느 정도의 시련 (주변의 편견, 동성의 배우자를 데리고 온 아들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통해 확인되고 다져져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혈연관계가 없는 그들의 양녀가 어느 누구보다 그들을 부모로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마무리 설정은 가족,사랑과 관련된 전통적인 요소들의 형식성과 안일함에 대한 경고다.   케인 과 멜 의 사랑은 어떤 면 에서는 순교 적인 의미가 강하다. 특히 사생아로 버림받고 양부에게서 학대받은 과거로 인해 동성애자가 된 멜 의 존재가 그러하다. 그들의 순교를 통해  가족은 ,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있는 세상은 새롭게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보다 관용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긍정적일 수는 없다.   

[금지된 사랑]에서  가족질서는 육체적으로 자신이 속한 분명한 생활공간이자, 내면생활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그래서 일단 분리된) 주어진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희성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부모에게 감히 커밍아웃할 생각을 못한다.케인과 멜같은  '진실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어쩔지도 확신할 수 없을 뿐더러, 별로 부모에게 이해 받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도 않는 듯 보인다. 거기다 딸의 도리로서 그녀는 잔잔한 가족호수에 돌을 던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족 사이에 그러그러한 사적인 관계와 경험은 그리 유통되지 않는다. 지이는 독립생활을 하고 있지만 죽은 언니의 생전에 그 언니가 자살한 확실한 이유도 알고 있지 못했고, 언니의 주변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와 문제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걸 몰랐다는 것에 괴로워 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그 언니의 자살을 괴로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외박한 사이에 언니가 자살했다는 직접적인 죄의식이다. 언니와 연관된 '그'의 고백에도 그러려니 하고 끄덕이며, 이제 그와의 관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실제적인 문제에만 태도를 표명한다. 즉 주어진 관계는 그냥 주어진 환경으로 처리한다. 상당히 실용적인 태도. 오히려 여기서 신경쓰는 관계는 친구관계다. 여자친구들간의 관계는 주어진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만드는 관계다. 스스로 그 내면적 친밀도 를 결정하고 조절한다.  [뉴욕뉴욕]이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가족, 그 연장의 친구와 이웃'이라는 방식으로 인간관계의 중심에 가족을 둔다면, [금지된 사랑]에서는 주어진 관계로서의 가족과 대비하여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하는 친구관계'를 강조하는 느낌이다. 물론 여기서 다뤄지는 친구관계가 주로 여자친구들임은 말할 것도 없는데3), 이것은 '여자 동성애'와는 조금 다른 의미다.  섹슈얼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도 그렇지만 (하지만 이들 여자친구 관계에서 섹슈얼함과 그렇지 않음 사이의 거리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가령 희성과 지이는 연인사이는 아니지만 키스와 스킨 쉽 에 자연스럽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특수성이겠다. 여자친구들끼리 손잡고 다니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이 화장실 가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에선 너무 당연하다. ). 그보다 욕망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중요할 듯하다. 희성 을 (다소 배타적인 소유욕으로) 사랑한 명주가 눈물을 머금고 희성 의 곁에서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스스로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인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애초에 설정했던 의미부여-자신의 의지로 만들고 조절하며 내면생활을 나누는 관계-가 망가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6. 반발적인 대화

[뉴욕뉴욕]은 동성애를 보고자할 때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점을 최 우선시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전통적인 순정(소녀만화)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아름답고 힘겨운 사랑의 또 하나의 케이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뉴욕]이 독자로 하여금 진부하게 느끼기 기보다는 감동하거나 끄덕이게끔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동성애자들의 사회와 이슈, 그리고 문화에 대해 성실하고 디테일 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러한 면은 그 선배작가 다케미야 게이코가 25여년전에(76년)[바람과 나무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면과 퍽 닮아있는데 거기서 동성애는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에로티시즘 문화로서 더할 나위없이 섬세하게 파악되고 재현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멀고 또 로맨틱했던 시공간을 다루었던 것에 비해서 [뉴욕뉴욕]은 아주 최근의,게다가 (헐리우드 드라마를 통해서) 한층 가까와진 시공간을 다루고 있으므로 해서 상당히 '리얼하다'는 평가를 획득하고 있다.4)
하지만 다케미야의 또하나의 시도인 '여성독자들과의 반발적인 대화'에 대해서는 어떨른지? '야오이'로서의 논의를 차치한다면, 내가 보기엔 반발적인 요소는 전혀 없는 듯 하다. 너무나 긍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제시된 사랑, 휴머니즘등은  언제나 아주 작은 대화의 여지마저  앗아가기 마련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일처제=순수한 사랑= 상처주지 않는 사랑이라는 강한 주제의식속에  AIDS문제, 게이의 아내 (고슈의 아내), 고슈의 방치된 애인문제등이 단순논리로 묻혀버리고 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여성독자와의 반발적 대화'라면 오히려 [금지된 사랑]이 유효한 듯 하다. 이 경우 동성애 자체보다도 그 주체에 주목하고 있는데,  우선  주체인 '나'가 있고 내가 판단하거나 선택 혹은 경험해야 할 타인,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가 있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그들은 모두 각자 주체이자 타인이고 그러한 한에서 서로를 경험한다. 그 연장선상에  동성애라는 하나의 경험이 존재한다. 여성독자들에게 던져지는 '동성애'라는 화두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야오이'이며, 한편으로는 '레즈비언'의 경험이다.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보다 현실적인 것은 직,간접적인 경험으로서 레즈비언 쪽임이  물론이다. [금지된 사랑]이 획득하고 있는 [뉴욕뉴욕]과는 또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는 여기서 나온다.   여기서 동성애라는 경험은 분명 긍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뉴욕뉴욕]과 같이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가꾸어져야 할 사랑으로서는 아니다. 이성애의 경험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랑의 경험을 통해 '사랑'은 도리어 질문되어진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 혹은 결.혼.하는 것? 그게 과연 사랑이 이루어진 걸까? (2권 에필로그) "

이러한 질문은 아주 반발적임에 틀림없다. 가부장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 있어 사랑과 결혼의 절대성을 의심하는 것만큼 반발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단순 야오이가 아닌 이상,  순정만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는데 있어 이런 주체+의미론적 접근은 사실 [금지된 사랑]한편에만 국한되는 사실이 아니다.  이진경의 [사춘기]에서 레즈비언 소재를 다룰 때도, 원수연의 [렛다이]같은 남성들을 내새운 작품도, 박희정의 [마틴앤 존],그밖에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적지않은 (그렇다고 많은것도 아니지만 ) 동성애 소재 작들은, (그것이 앞으로 각각 어떤 내용으로 완간될 지라도) 동성애를 다루는데 있어 어느정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즉 주인공은 주체의 입장에서 동성애의 경험의 의미를 추구하고 고뇌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혹자가 말하듯 단순 '삽질'에 불과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진지하게 일관할 것인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이런 면을 다케미야 게이코 25년 후인 지금의 소녀만화와 순정만화의 차이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지 어쩐지는 아직 증거 불충분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식의 '반발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순정만화가 많아지면 그만큼 한국 여성독자들의 삶도 주체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거꾸로 해도 의미는 통한다. 한국 여성독자들의 삶과 사고가 주체적으로 나갈수록 순정만화속의 반발적 대화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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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독자들은  만화속에서 자기가 즐기는 부분을 따로 끄집어 내어 집중적으로 즐기기도 한다.  '야오이'라는 말은 그런 연장선에 위치해있다. 야오이와 관련된 독자들은 예의 관음적 쾌감을 집중적으로 즐기고 싶어한 나머지 그것만을 원할 수도 있다. 혹은 그런 맥락하에 끄집어내어 커플링시키고 이야기를 꾸며가며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만을 다량 원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만화는 '야오이', 즉 내용이나 흐름과 상관없이 예의 '쾌감'을 보다 집중적으로 즐기게끔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구체적으로 들어갈 때  애매한 딜레마를 발생시킨다.
독자가 캐릭터를 창작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림을 못그려서가 아니다. 창작캐릭터가 가지는 진짜 생명력과 매력은 만화작품 전체의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인격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오이'로서 제대로 즐겨지기 위해서라도 만화자체는 야오이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또 반대의 경우, 작가는 야오이 논란을 떠나서 동성애 자체를 소재로 삼아 탐구하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을 접하는 독자는 그 속에서 다른 종류의 쾌감을 추구하고 그에 의해 그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좌우될 수도 있다. 결국 야오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문제는 개별작품의 내적 완성도와 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통해 내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 한혜연은 1편 서문에서 '금지'를 '금하여 그친다'가 아니라 '그치는 것을 금한다'로 해석해 '금지된 사랑'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풀이해보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렇게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 결코 멈춰서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랑'이라고.

3) 하지만 이 친구관계에서 남성이 아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지이는 태경과의 관계를  '지인'관계로 정리한다.

4)이런 경향은 일본만화 전반의 경향이자 장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재와 설정에 관한 디테일.또 디테일. 몇번이나 현장답사를 할정도의 놀랄 만한 성실성..혹은 장인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