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누프걸

1. "만화로 성공하려면 우선 자기 캐릭터를 가져야 해"

    왠 당연한 말씀?이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 만화에 입문하려는 사람뿐 아니라, 만화판 밖에서 만화를 논하는 일반 독자들도 만화에 대해 말할라 치면 먼저 하는 소리가 이 '캐릭터'의 중요성 문제였다. 연이어 나오는 예시는 '까치', '구영탄' '독고탁' '하니' '이강토'등등.... 결론부터 말하면 여기서 '(자신의) 캐릭터'라는 개념은 보통 하나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설정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까치'나 '하니'등의 캐릭터는 개별 작품을 초월해서 한 작가의 모든 작품에 같은 모습과 거의 비슷한 성격으로 전횡하는 전천후 캐릭터였고, 이를 가져야한다는 것이 우리 만화계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왠 당연한 말씀'이지, 사실 시리즈물도 아니면서 한 작가의 모든 작품에 공통되는 캐릭터라니 전혀 당연한 말씀이 아니다. 가령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망가 캐릭터들, '캔디'나 '도라에몽'은 오로지 한 작품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캐릭터관념이 우리 만화에서만 특별히 통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생각엔 아마도 만화와 만화의 인기 등장인물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를 필요로 하는 매체 (애니메이션, 각종 교육용 매체, 기타 팬시상품등등) 와 연결되기 힘든 상황에서 (왜냐하면 그런 산업자체가 미발전되었으므로) 자신의 인기와 지명도를 달리 활용할 계기가 없으니 , 만화장르에 재투자(?)되어, 그 지명도와 인기를 업은 또 다른 비슷한 작품을 만드는데 쓰여지면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닌가 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초기부터 캐릭터산업이 융성했으므로, 말하자면 캔디나 도라에몽은  다른 작품에 다시 출연할 필요없이 캐릭터 산업에 뛰어드는 쪽으로 나갔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때'의 상황이다. 88올림픽의 호돌이 캐릭터를 계기로 각종 놀이동산의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까치'나 '하니'등 만화캐릭터가 애니메이션화 되고  캐릭터 산업에 활용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만화캐릭터 뿐 아니라 가수, 탤런트,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캐릭터상품으로 내놓는 상황이 되었다.

2.그러한 변화의 과정 딱 중간에  "아기공룡 둘리''가 놓여있다.

'둘리'가 보물섬에 연재되기 시작한 83년부터 93년까지의 10년이라는 시기가 그렇고, 2000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성공하는 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의 주인공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이 그렇다. 세대를 초월한 국민적 인기...혹은 해외로 수출해 각광받을만큼 훌륭하여 한국을 대표할만하다..는 점을 들어 혹자는 '둘리'를 우리의 '국민캐릭터'라고 칭하는데 (실제로 만화책 뒤의 카피에 그렇게 써있다) 그렇다해도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만화캐릭터역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만화의 국민캐릭터를  둘리라고 한다면 망가의 국민캐릭터로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손들어주는 것이 '도라에몽'이다. '아톰'보다도, '손오공(드래곤 불)'보다도 '도라에몽'이 추천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교육성에 있다고 하는데, 그리하여 아동교육으로 널리 활약한 도라에몽을 보고 자라난 일본의 몇세대가 함께 이 캐릭터가 출연한 TV토크쇼에 넋을 잃는다.

만화의 캐릭터를 캐릭터 산업과 관련해서만 생각한다면  만화는 사실 부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아닌게 아니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애초부터 캐릭터 상품용으로 디자인된 것들도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자(?)들이 끊임없이 만화로부터 캐릭터 소스를 찾아내고자 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캐릭터의 생명력 유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의 사전적 정의에서도 나타나듯이 그것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버릇,사고방식등등이 디테일하게 부여되어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 부각될 때 야기되는 특별한 매력이다. 생명력이 있는 캐릭터의 형상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예쁘고 귀여운 외모 자체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외모를 통해 성격과 사연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식기셋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귀여운 쥐가 그려진 식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키마우스라는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캐릭터의 가능성은 그 생명력에서 찾아질텐데, 만화캐릭터는 이미 만화작품속에서 생명력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점이 부각된다. 더욱이 그 만화작품이 인기있었고, 많은 독자층을 포괄했다면, 인지도면에서도 선취점을 따내고 들어가게 된다. 즉 캐릭터 산업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내기 힘든 창조적 측면이 만화작품에서 해결된다.

그렇게 볼 때 한 캐릭터가 '국민캐릭터'-즉 전 국민적으로 고른 세대에게 보편적인 사랑을 받고 그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 창조적 측면이 좌우할 것이고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만화원작이 있는 캐릭터가 우세하지 않을까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원작에 대한 대우를 우습게 알기 일쑤인 무식한 장사꾼들의 안목이 한심스럽다. 결국 잘 알려진대로 '둘리'의 경우는 작가 김수정이 직접 캐릭터상품을 개발하고 경영한 케이스로서 또 하나의 독특한 전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만화로 성공하려면 자기 캐릭터를 가져야 해'란 말의 의미는 또 한번 변할터, 아마 ' 만화캐릭터로 성공하려면 그 캐릭터는 작가가 완전히 가져야 한다.' 정도가 아닐까.
한편 '도라에몽'의 경우는 70년 탄생이후로 30여년간 장기연재를 지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없이 극장용으로, 또 TV시리즈로 애니메이션화 되면서도 매번 그 시나리오와 전체 컨셉용으로 새로운 원작을 또 그려내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경우는 그를 위해 먼저 장편만화 원작이 앞서 만들어지는 수순을 따랐다.
아무튼 그러한 맥락에서 국민캐릭터 '둘리'와 국민캐릭터' 도라에몽'을 본다는 것은 그 원작만화를 다시 감상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마땅할 것이다.

3. 미래에서 온 도라에몽, 과거에서 온 둘리.
 
우라나라에는 해적판 '동짜몽'으로 잘 알려진 만화 '도라에몽'.
1970년 후지코 후지오에 의해 탄생된 일본의 대표적 코믹명랑만화로, 모두 5000만 부 이상의 놀라운 판매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허약하고 공부못하고 게으른 소년 노비타(징구)에게 미래에서 찾아온 후손이 도라에몽이라는 로봇을 주고 그의 도움을 받아서 훌륭히 자라라고 경고(?)하고 간다. 체셔 고양이 같이 생긴 도라에몽은 먹보에 실수투성이지만 가슴팍의 4차원 주머니에서 미래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각종 신기한 장난감이나 도구를 꺼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 흔히 교훈이 강조되면 재미없는 만화가 되기 일쑤라는 편견을 속시원히 깨주는 도라에몽의 재미요소는 바로 이 4차원주머니속의 신기한 도구들이다.실수를 지우는 지우개라든가, 책을 찍어서 먹으면 책내용이 외워지는 식빵이라든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욕망과 상상을 그대로 반영한 재미덩어리. 한편 그 도구들은 싸구려나 장난감이기 때문에 한계나 부작용이 명백해서 그걸로 과욕을 부리다간 제 발등을 찍게 마련이라는 교훈성도 놓치지 않는다. ) 미래의 과학기술 (이른바 휴먼테크놀러지의 세계!)의 산물이자 노비타와 그 자손들, 즉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데려와진 일단은 종(혹은 보모? 닌자? 집사?)의 신분인 셈인 도라에몽은 그 자체로 '미래는 아이들의 것. 휴먼 테크놀러지..' 등의 교육적 주제의식의 상징으로도 보여진다 

반면  둘리는 과거에서 온 캐릭터다. 1억년전 우주인에 의해 정신개조되어 엄마공룡이랑 강제로 헤어진채 빙산속에 갇혀있다가 고길동 가정의 애물단지로 들어온 설정 자체가 일종의 '과거 사연'을 강조하고 있는데,  끝없이 과거시간의 엄마와 고향을 그리워할  뿐 아니라.  현재 대립관계에 있는 고길동이 없는 공간, 즉 둘리 자신을 막아세우는 타자가 없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과거가 지향되고 있다. 이런 면은 둘리 뿐 아니라 또하나의 주인공 고길동에 의해서도 매한가지인데, 고길동은 끝없이 둘리가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라에몽같은 교훈성이나 교육적 주제의식은 찾아 볼 수 없다. 주제가 있다면 '인권선언'정도일까? 둘리는 아이들도 인권이 있다고 외치고, 고길동은 '건방지게!내 인권은 어떡하고?'하고 맞고함지르면서 널리 알려진  둘리 특유의 재미요소가 만들어진다. 둘리와 고길동의 엄청난 말싸움이 그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가끔 발휘되는 둘리의 초능력은 주로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대한 반작용으로 쓰이곤 한다. 위기상황에서 탈출하거나, 남의 빵을 먹어치우고 비눗방울을 빵모양으로 변신시킨다거나, 아무튼 욕망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데는 별로 효용성이 없다. 사실 둘리의 초능력이나, 혹은 도우너의 타임코스모스나, 망가지고 불완전한 것이, 별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도라에몽의 주머니에서 나온 도구의 경우  노비타는 도라에몽의 도구를  이용해서 못살게 구는 친구를 혼내주기도 하고, 여자친구에게 뽐내보기도 하고, 부모님의 꾸중을 모면하기도 하는등 애들다운 욕망을 해결하려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구로 모든 것이 다 된다거나 잘못을 슬쩍 덮으려는 것이 헛되고 나쁜 일이라는 교훈이 강조된다. 그리고 도구들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과학상식이 소개되면서 교육적 효과가 얻어지기도 한다. 또 도라에몽의 도구는 노비타를 (그 친구들과 ) 다른 차원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통로역할을 해서 각종 탐험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모험을 하게 한다.
하지만 둘리의 초능력은 나쁘다 말다 할 것도 없이 허방인 경우가 많아서 애초에 초능력으로 뭔가 욕망을 실현시키는데는 쓸모가 없고 오히려 꿈꾸기에 주로 쓰여진다. 선물 하나 못받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어찌 어찌하여 얻은 눈물겨운 오징어와 라면 한 상자를 오징어가 끄는 산타썰매로 만들어 하늘에 띄워서, 세상에 라면선물을 뿌리고 다닌다던가, 크리넥스 티슈 한 장 한 장을 종이학으로 날려서 종이학다리를 밟고 하늘을 간다든가 말이다. (아마도 이런 꿈꾸기는 괴로운(^^) 현실에 대한 도피일까..? 아름다운 장면 연출이 이루어지면서 이후 애니메이션화 될 때 유용했을것같은..) 한편 둘리일당도 (고길동과 함께) 타임코스모스나 초능력을 사용, 여러 공간으로 모험여행을 자주 하는데, 도라에몽과 비교해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런 종류의 모험이 '그래서 악당을 물리치고 공주님을 구하는' 퀘스트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게임'이라는 점이다. 물론 아동지에 실리는 만화로서 그 강도가 조절되고 있음은 당연하지만, 이 만화의 이런 면모는 사실 성인적이라 할 만 하다. 교훈적이기는커녕 개그로 가장된 치열함.

4. 국민적 ? 국민적 !

둘리와 도라에몽 양 작품이 공통적으로 듣고있는 '국민만화'라는 평판은 어쩐지 상기한 '캐릭터'라는 단어의 상이함처럼 서로 상이한 느낌을 준다.
분명 양자는 '장기연재', ' 타매체를 통한 캐릭터 상품화에 성공여부','세게시장에서도 국제적 보편성을 갖출것','각자가 처한 사회문화에 기반할 것''세대를 불문한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을 것 '등의 요소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 내적 과정의 설명이 삭제된 채 양자 모두 그냥 '국민만화'로 불려지므로써 양자의 차이가 실종되버린다. 실종되기는 했어도 존재하기는 하는 그 차이가 이런 상이함의 느낌을 주는 것일까.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타 후지오는 <도라에몽>으로 이후의 어린이 대상 유머 만화의 전형을 확립했다 ( 이명석의 [마나마나]에서 )고 한다. 과연 도라에몽에는 재미와 코미디 (실수,반전등)가 정보와 교훈등 교육적 효과와 함께 훌륭히 어우러져서 명실상부 '아동'만화로 불릴만 하다. 그리고 이 교육적 면모가 어필해서 일본인이 뽑은 일본 수출품목 제 1위로 꼽히기까지 이르렀다. 아동이라는 보편적 테마에, 교육이라는 보편적 테마가 결합되었으니 도라에몽의 국제적 보편성에도 아무 하자가 없는 셈이다.
근데 아동만화가 곧바로 '국민' 만화와 동의어는 아니다. 일본에서  도라에몽이 TV 애니메이션으로 정기상영된건 73년. 그때부터 그 교육적 면모로 후한 평가를 받고 가족이 함께 도라에몽을 즐겼고, 그 아이들이 지금 커서 부모가 되고, 아이들에게 그 만화를 추천해 같이보고, 이렇게 해서 전 '국민'적인 만화가 된다. 원래가 아동용이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즐긴다고 보면, 지금 도라에몽을 보는 부모들은 어떤 재미로 그것을 보는가? 추억일 것이다. 어린시절의 상상과 꿈과 어린애다운 모험심이나 욕망등을 추억하면서 이른바 동심에 빠져드는 재미로 볼 것이다.

한편 아기공룡둘리는 아동지에 실렸으되, 도저히 아동용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정도의 성인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기한대로 교훈성이나 교육적 면모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 고길동과 둘리의 대결구조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언어나 행동 자체의 과격함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둘리나 고길동 등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성격구조 자체가 그 갈등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대로 둘리는 강력하게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캐릭터다.  고길동은 둘리와 대립하는 한에서만 그 포악한 성격이 주어진다. 이는 어른과 애물단지 애완동물의 갈등관계밑에 중첩된 또 다른 은유다. 즉, 행복과 자유 (그것도 아주 소박한 차원의 )를 갈구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주변의 자질구레한 방해물들의 관계인 것이다.  둘리의 어린애스런 욕망이나 상상, 꿈, 그것을 표현하는 초능력, 이런 것들은 둘 리가 아동에게 읽혀도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어른이나 청소년기의 독자가 볼 때 느끼게 되는 재미는 오히려 둘리와 길동이의 관계와 입씨름에서 찾게된다.  더구나 아기공룡둘리의 전권을 통해서 입씨름이나 모험 못지않게 큰 재미요소로 부각되는 또하나- 세태 풍자는 이 작품의 성인적 성격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10여년간 연재하면서 매 시기 유행했던 가요, 매시기 터져나왔던 사건, 심지어는 정치적 변동마저도 모두 다 둘리의 소재가 되었고 적정 수준에서 (직접 거론되든, 아니면 간접적으로 은유되든) 풍자되었다.  둘리의 성인독자는 둘리를 통해 어린시절의 동심을 추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 둘리를 다시 펼쳐든 나로서는 지금의 시각에서 둘리의 또 다른 면을 읽는다. 지나간 10여년의 풍속도와 아주 조그만 욕망도 가로막고 못살게 구는 우리사회를 읽는다. 둘리는 그렇게 세대를 초월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국민만화인 것이다

5. 캐릭터상품과, 만화의 통일과 분리

도라에몽이 교육적 아동만화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것에 기반한 전 국민의 보편적 사랑을 받고, 그것을 고스란히 타 캐릭터 산업에 나눠주어 이제는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기까지, 모호함같은 건 조금도 없다. 그러기에 그것은 '어린이대상 유머만화의 전형'이라고 일컬어져 마땅하다.

반면에 둘리가 애니메이션화되고, 캐릭터 상품화될 때, 그것은 자기 분해를 거친다. 말했듯이 둘리가 출판만화일 때 그것은 성인은 성인대로, 어린이는 어린이 대로 재미를 느끼며 볼 수 있게끔 통일되어있었다. 이를테면 아동만화와 성인만화의 통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것이 타 장르와 매체로 나갈 때 그것은 타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출판 만화 둘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줄줄이 입씨름이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줄줄 다 읊어지는건 넌센스다. (초기의 둘리tv시리즈들이 그렇게 했다가 욕깨나 먹었다,) 그렇다고 둘리일당과 고길동의 초과격 몸싸움이 동영상으로 재현된다는 건 아동타깃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tv시리즈에서 제외된, 3권부터는 더욱 더 성인적인( 이말을 섹슈얼의 의미로 이해하면 안된다)은유를 풍부히 하고, 직접적인 세태풍자마저 수시로 일삼고, 주인공들의 입씨름은 초과격 모드로 나간다.  이런 사정아래서 둘리의 연재가 일단 끝났다.(93년) 그 후 둘리의 운명은 작가 김수정의 활동을 보면 한눈에 보인다.  한편으로는 극장용 둘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캐릭터 상품개발과 국제마케팅에 힘쓰는데, 이러한 활동의  타깃은 분명 아동시장으로 한정된 채 이루어진다.
그 다른 한편으로 작가 김수정은 소년잡지였던 소년챔프에 둘리의 후속편인 [베이비 사우루스 돌리]를 연재한다. 이 [B.S 돌리]를 읽어보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둘리는 콧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중년 아저씨가 되어 다방에서 커피배달시키고 배달아가씨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마누라의 지청구를 듣는다.  가수지망이었던 마이콜은 수퍼집 아저씨가 되어서 아들 마이돌의 연예계진출을 향한 꿈을 비웃는다. 대머리가 된 고길동과 셋이서 캬바레에 가서 아줌마들을 꼬시고. (분명 이당시는 TV 드라마 ' 서울의 달'이 비슷한 소재를 유행시키고 있었고 BS 돌리는 그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전편에서 둘리의 사연을 만화화해서 성공한 작가 김파마 (김수정)가 아내잃고 줏가 떨어진 구닥다리 만화가 신세로 등장해서 '세월'을 논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만화 [BS 돌리]는 더 이상 아동만화일 이유가 없다. 즉 둘리는 한편으로는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으로, 한편으로는 성인만화로 분리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상황은 둘리라는 출판만화 자체에 내재하는 속성이 캐릭터,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변형된 과정이다.  

6. 둘리의 미래는 도라에몽의 미래?
 
평론가 이명석은  70년대의 한국 명랑만화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아기공룡 둘 리가 이어받았다고 하면서, 양자가 공통적으로 도라에몽과 흡사한 기본설정을 가지며, 둘리는 전시대의 명랑만화의 지나친 교훈성을 자제하고 더욱 활발한 상상력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주1)
내 생각으로는 요철 발명왕등 몇몇 작품을 제외한 한국 명랑만화는 발명품과 상상력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의 학교가기 싫고 놀고싶어하는 욕망과 장난질,각종 흥미거리, 그에 잔소리하는 아버지와의 술래잡기가 기본요소였다고 보인다. 도라에몽과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들의 욕망과 놀이방식에 아주 정통했다는 점일 것이다.그래서 명랑만화들은 말썽장이 친구와 장난모의를 하는것처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둘리가 전시대 명랑만화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속성의 중심에 있는 것은 미래적 상상력이라기 보다는 양자가 공통적인 기본구조로 삼고 있는 가정내의 어른과 아이의 관계 (특히 남자어른과 아들의 관계) 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70년대에는 일저지르고 도망가는 주인공 어린이를 회초리든 할아버지가 뒤쫓았다면.80년대의 둘리는 결국은 머리에 혹을 붙이고 벌서는 것으로 끝나기는 해도  대들고 할말 다하며 입씨름벌이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공통요소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으로(가령 일본 아동물에서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김수정을 포함한 명랑만화쟝르가 사실상 없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금에 와서는 찾기 힘들다. (주. 그러나 둘리가 가지는 또 하나의 요소인  세태풍자는 김진태의 만화에서 너무나 잘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둘리가 명랑만화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과 도라에몽을 관계짓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도라에몽과 관련해서 말할 때, 국민 캐릭터로서 세계 아동시장을 노리는 도라에몽의 전술이 교육성과 기발한 상상력에 있다면 둘리의 경우 역시 그러한 요소를 개발해서 더 보강할 만 하다. 하지만 만화작품에 한정해서 말할 때, 둘리는 도라에몽과 너무 틀리다. 그런데도 한꺼번에 비슷한 것으로 취급해버리면 그것은 일종의 편견이 되어 둘리의 성인적 측면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아버릴지도 모른다.
아동용 둘리는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시장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성인용 둘리는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리 만화책을 보고싶어도 구하기 힘든  지금 상황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둘리가 국민 캐릭터가 될 수 있게 한 그 오묘한 통일성은  성인적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출판만화에서만 다시 볼 수 있다.
또 출판 만화 둘리가 담은 내용들이 이제와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면 (어느정도는 그렇다. 그처럼 세태풍자적이고 발빨랐던 만화는 시간에 발맞춰 게속 나갈때만 살아남는게 정상이니까) 계속 연재하는 방법도 있다.( [하버드 맨]따위나 실리는 일간지에  둘리의 세태풍자를 실어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과욕인가?)
물론 아동물로서의 둘 리도  출판만화로 부활 할 수 있을 것이다.도라에몽은 시대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데도 아직까지 연재되고 있지 않은가?    출판만화의 측면에서 도라에몽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지속적으로 태어나고 있다는 그 점일 것이다. 되풀이 하지만 캐릭터에 생명과 창조성을 불어넣는 것은 출판만화로부터 시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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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년대에 융성했던 한국의 '명랑 만화'들 역시 이 만화 (도라에몽)의 기본 설정과 흡사한 면이 많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 중앙>에서 명랑 만화 삼국지를 구가하던 시절, 길창덕, 신문수, 윤승운 등의 작가들은 제각각의 개성 있는 선으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훌륭한 만화들을 선보였다. 이들 만화들의 생명력은 어린 아이들만이 꿈꾸고 공감할 수 있는 기발한 상상의 힘에 있다. 오늘날의 '개그 만화'가 즉흥적인 말장난이나 과장된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반면 이 시대의 '명랑 만화'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기한 발명품을 매 회마다 선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작가의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단번에 소년 소녀들의 질타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이런 어린이 만화의 세계는 단순하고 둥그스름한 선으로 표현된다. <도라에몽>의 그림체 역시 매우 단순하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미감에 애정이 갈 수밖에 없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보아서도 구성미가 뛰어나고 장면의 묘사에 대단히 성실했음을 알 수 있다.....(중략)....한국 명랑 만화의 전통은 <오달자의 봄>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이 근근히 맥을 이어왔다. 83년에 등장해 한국 만화계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가 된 <아기 공룡 둘리>는 몇 가지 점에서 <도라에몽>의 설정을 이어받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소년 소녀의 집에 어느날 초능력을 지닌 아기 공룡이 등장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사진이나 타임머신과 같은 특수 기계로 신기한 모험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도라에몽>에서는 주인공 소년의 비중이 상당히 큰 데 비해, <아기 공룡 둘리>에서는 인간 남매가 조역으로 뒤처지고 둘리의 또다른 친구들 - 또치, 도우너, 마이콜 -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다양한 재미를 선보이고 있다"          (어린이의 친구 동짜몽]-이명석의 [마나마나] )

"...(전략)...그나마 80년대에 명랑 만화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아기 공룡 둘리>의 김수정이다. 둘리, 또치, 도우너 등 개성 있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이 작품은, 전시대의 명랑 만화가 가졌던 지나친 교훈성을 떨쳐버리고 어린 독자들을 다양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 (이명석 [마나마나]-도라에몽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