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미남 계열>
 비요른
 유제니
 애쉬
 유이
 아키라
<보너스>
 미중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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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른, 비요른, 아아, 비요른...
- Mission Impossible - to be a Coolguy ...
- by 유아/미숙/권위/상투적인 깜악귀
나는 남자다. 나는 여성들이 흑발의 냉미남과 연애하고 싶어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흑발이기에 이제 냉랭해지기만 하면 된다는 공식이 떠오른다.
("넌, 미남이 아냐!"라는 지적은 제발 무시하도록 하자.) 눈을 감고 자신이 냉랭하기 짝이 없지만 그건 어두운 과거 탓이지 내 탓이 아니며 실제 속내는 타인을 배려해주고 싶어하고 배려받고 싶어하는 미남자라고 믿어보자.
그리고 어떤 여인인가는 반드시 자신의 그런 내면에 매혹당해 오겠지만 그런 것은 사실 이미 포기한 지 오래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의 가능성은 있노라고 상대에게 드러내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게 쉬운 게 아니다. -_-;
술자리에서 누가 한 우스개 소리에 웃어버렸는데 그 웃음소리가 "하하하...."가 아니라 "으히히...."였다면 어쩌겠는가. 씨익 웃어 보이는 자신있는 웃음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을 수도 있다.
진지한 표정은 5분 이상 지을 수 없다는 우수한(사에바 료던가, 시티헌터의)의 제약은 그대가 만화 속 냉미남이 되고자 몸부림칠 때면 정말 강력하게 다가온다.
길거리에서 오뎅 사 먹는 데도 주저주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고독한 체 하고 코트 깃 올리고 서 있으면 여성들이 "이상한 놈.... "하면서 툭 치고 지나가기 일쑤다.
이 때의 처참함이란.
정말이지. 여성들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이건 차별이야..... 라고 되뇌이며 소주를 들이킨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입으로는 "크으.. 조타!"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 나는 냉미남이기는 틀린 놈이었다는 것을.... 어흐흐흑! 그 때 옆에서는 (여자)친구가 "그러니까 넌 안 돼, 새끼야....."라면서 위로랍시고 찌껄이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만화 속의 흑발 냉미남을 증오하기 시작한 깜악귀. 같은 Dark(암울) 계열의 녀석들이기에 증오심은 더하다. 내면의 어둠이 증폭되고 열등감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 나는 그런 에너지로 생을 영위해 온 것이다.
여성에 대한 복수. 나는 이제부터 여성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국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 비요른은 내게 구원처럼 다가왔다.
<북해의 별>(1983~1987)의 비요른은 내게 김혜린 만화에서 뿐 아니라 한·일 순정만화 역사상 가장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 캐릭터이다. (지금은 그 비수도 거의 빠질락 말락 하지만 다 빠지기 전에 헌사를 바치고자 한다.)
* * *
김혜린의 최초의 대하역사드라마 <북해의 별>. '유리핀 조안 아우구스트 멤피스'(헥헥)는 부담감을 넘어서 속이 미식미식할 정도로 계몽군주의 광휘에 가득 차 있다.
"…그는 본연적으로 자유롭고 강인한 기질을 타고난 사나이다. 또한 철저하게 자기육성된 이성의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 외부의 자극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하지만 실제 결론은 그의 내부에서 맺는 자결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정한 방향에 대해선 결국 행한다.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그 의견과 사상을 듣지만 결론은 자신의 의지대로 내린다. 자질이 모자라는 위정자에겐 탐탁치 못한 존재…
아래로부터는 일종의 신비성과 동경의 존재… 옛부터 역사의 키를 쥐었던 인물들의 한 전형이다. 위정자와의 복잡한 관계… 그가 가진 측량불허의 힘…
어떤 형태로든 그는 분명히 우리의 꿈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그는 분명히 나의 꿈에 변수로 작용하였다. 절망의 변수로. 어떻게 이 따위의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이 만화가 나올 때의 시대를 생각하면 무척 선구적이었음에 확실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매혹될 수 없는 캐릭터다.
어디에서 빛의 조각만을 끌어다 붙여 형체를 완성한 후 가상의 역사 속에서 일부러 생고생시킴으로서 현실감의 숨결을 불어넣으려 했다고 할까. 이 캐릭터는 내 취향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 어둠의 함량이 너무 적다.
아니, 어둠이어야 하는 순간에야말로 빛이라니. 이런 넘은 없다, 없어야만 한다...!! 으으으....
'비요른 누벨 파르티프'는 유리핀에 대극이다. 정치적 음모와 복수를 위해 몸을 파는 것은 물론 음지의 정치깡패조직인 '로사 토이플스'의 두목이다.
귀족인 아버지와 평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의 사주에 의해서 어머니는 죽었다. 순간 어린 나이에 생의 모든 가치를 잃어버린 그는 야심이 큰 고위귀족인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그의 비서가 된다.
그의 복수는 그의 부친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짖밟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배다른 여동생마저 광증에 빠트리게 될 정도로. 절망의 늪은 너무나도 깊고 그 절망은 이미 자기자신 그 자체인 인물.
비요른은 유리핀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희생된 인물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는 빛을 더욱 돋보여주게 하기 위한 어둠의 역할, 철저한 어둠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비요른이 없었으면 작품의 매력은 반감되었으려니와 유리핀도 별로 빛을 보지 못했을 거다. 언뜻언뜻 보이는 서로 간의 숙명적 연관성. 유리핀이 빛이라면 비요른은 그림자라고나 할까.
김혜린은 이 구도에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고 유리핀은 비요른을 처음 보자마자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고 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비요른은 유리핀보다 더 존재감이 있는 캐릭터였다.
믿거나 말거나 유리핀은 결코 냉미남이 아니었다. 그는 흑발도 아니다. 온미남은 있었다. 그는 바로 아니타 에델라이드의 공식적인 남편, '에드와르 브리가'.
허약하고 착하고 현명한 괜찮은 인간이었으나 동시에 유리핀처럼 빛으로 가득찬 인물도 아니고 비요른처럼 어둠의 화신도 아닌 그냥 악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우유부단한 인간. 그가 바로 아주 전형적인 온미남이다.
그럼, 냉미남은 대체 누구냐? 김혜린 만화에는 대체로 거의 반드시라 할 만큼 온미남과 냉미남이 나오는데, 이 만화라고 없을 리가 없다. 있다. 바로 비요른이다. 봐라, 머리도 흑발이지 않는가!? 냉랭하기도 저만큼이면 다른 만화의 냉미남들이 혀를 깨물고 죽어야 할 지경이다.
웃기지 마라, 냉미남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비요른은 주인공도 아니다. 비요른은 여성독자들이 사랑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너무 무섭다. 실례를 들어 표지를 보라. 모든 표지에 유리핀이 각종 포즈를 취하며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유리핀이 흑발이 아니다 뿐이다.
이 만화에서 흑발 냉미남과 금발 온미남, 그리고 여주인공의 삼각구도는 유리핀과 에델, 에드워드의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확실하고 비요른-한나 커플은 그 비중도 적지 않은가?
물론 그렇겠지. 그럼 왜 <비천무>에 가서는 주인공의 머리칼 색깔이 금발에서 흑발로 바뀌지? 이건 마치 왕족이 노예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인데? 그건 바로 비요른 성분이 섞여들어가서 그런 것이다....
즉, 비요른은 미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주인공 성분의 여분으로 이루어진 캐릭터였고 사실 이 쪽이 더 매력적인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것이 합쳐져서 비로서 흑발 냉미남의 완성품이 된다.
그것이 바로 빛의 유리핀, 어둠의 비요른 합체...!! 유진하 혹은 자하랑은 비로서 음양조화의 비천검무를 이루어내고 비참한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그러니까 김혜린의 탐미적인 성향에는 어둠으로 향하는 벡터와 빛으로 향하는 벡터가 있었다는 것인데, 빛으로 향하는 벡터는 자꾸만 알팍한 소녀취향의 감상주의로 흐르려고 하는 성질이 있었다.
때문에 이후의 주인공은 어둠과 빛을 적절히 섞어 놓았으면서도 빛으로 향하는 벡터는 한껏 억눌러지고 어둠으로 향하는 벡터가 좀 더 돋보이게 된 것이다. 낭만주의 사조를 연상케 하는 깊이가 생겨난달까. 물론 외면적으로는 머리가 검어진 유리핀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비요른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후로 나는 김혜린의 흑발 냉미남들에게서 비요른의 냄새를 맡는다. 유진하에게서는 물론이오 유제니에게서는 상당히 본격적으로. (그러고 보니 다 유씨 돌림이군... 불의 검은 제쳐두자.)
그림자는 빛의 부산물이라구? 빛이 없으면 바로 어둠. 어둠이 더 본질적인 거다. 사실 유리핀은 껍데기였단 말이다. 유리핀은 빛이 너무 많아서 절망다운 절망 하나 해보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규하기는 해도 여전히 빛이 너무 많다.
절망이 어쩌구 하는 말만 숱하게 늘어놓는다. 저 놈 고생을 덜 했구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에 반해서 비요른은 언제나 절망 그 자체이지만 절망이 어쩌구 하는 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비천무>의 진하의 절망은 비로소 좀 절망이구나 싶은데 이것은 그의 외형은 유리핀과 대동소이할지 모르나 내면에는 알게 모르게 비요른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만화 <북해의 별>에서는 비요른이 유리핀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비요른은 유리핀을 구원해서 주인공답게 만들어준 것이다.
비로서 유리핀은 제대로 절망할 줄 아는, 사도-마조히즘이 넘쳐나는 속에서 고통받는 연기를 제대로 해 내는 주인공으로, 유진하(자하랑)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비요른, 그의 절망이 주인공을 구축했다. 작가로서도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듯.
하지만 유리핀의 외형에 녹아들어간 나머지 나의 비요른은 이제 다시 독자적인 캐릭터로 떨어져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비요른, 비요른.... 그래, 악하려면 완전하게 악해야 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두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냉미남들은 실제로는 사랑에 굶주린 유아기적 호색한에 불과하지. 끝까지 너는 구원을 거부했다. 아니, 구원 같은 것은 어차피 너와는 연관이 없었다.
작가는 너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그는 구원을 바라고 있었노라고 묘사하려 했지만 너는 겨우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뱉을 수 있었지. "이것이 나다운 거다!" (세주판 11권, 177쪽)
비요른, 아니, 레도. 사랑한다. 언젠가 비요른을 중심으로 하는 외전을 누군가가 그려주기를 부탁하며. 아니 유리핀을 침대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학대하는 비요른의 모습, 그 음험한 표정을 보고 싶다.
나와 너는 빛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혜린님, 아니 누구라도, 그려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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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미남 계열>
 류미끼
 군나르
 홍차왕자
 고로
 반리
<보너스>
 미소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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