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apcold

 

 

 

 

1. 드래곤볼 효과와 500원의 시대

 

"500원입니다! 구구 크러스터~"

  1989년, 90년 당시의 500원이라는 화폐가치는, 모 제과업체의 고급화 전략의 일환인 아이스크림 한 개이자, 오락실 오락 10판, 혹은 주간 소년만화지 3분의 1 이었다. 500원이라는 '군것질로 낭비하기에는 다소 부담되지만, 문화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히 저렴한' 단위는 만화계에서 하나의 신 사조를 낳고야 만다.

  당시 만화계의 시대상황은, 1988년 12월부터 발간이 시작된 주간 '아이큐 점프'가 '교훈 위주의' (혹은 표절, 무단인용, 편집 등으로 만들어진 해적판들) 어린이 만화와 '성과 폭력 위주의'(여전히 해적판으로 얼룩진) 성인만화의 중간에 있는 새로운 경향을 국내에 도입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었다. '헬로 팝', '제 4지대', '아마게돈'(!) 등 중견작가들의 다소 파격적인 작품들이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실력있는 신인들의 저돌적인 작품들 ('기계전사 109' 등)이 공존하는 등 갑자기 한국만화가 한단계 진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시대다. ...물론 그런 장미빛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초창기부터 같이한 여러 실험적 작품들은 줄줄이 계승자를 찾지 못한 채 종료를 맞이하고, 점차 일본식 편집부 제도의 폐해들(인기순위 지상주의, 작품의 획일화/유행화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서울문화사(아이큐 점프)는 국내 사상 최초로 일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일본만화를 라이센스 연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이후 한국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드. 래. 곤. 볼.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간 것은 결코 아니다. 연재 시작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라이센스 계약을 채결하기 전부터 연재가 먼저 들어갔고(아마도 이것은 최대한 '구두계약' 까지만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현재도 일부 문헌에서는 아예 '불법 연재'라고 못박기까지 한다. 그정도까지의 극단적인 관점이 아니라도, 이는 기본적인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상에 대한 반증이며, 해외만화 유입의 합법화 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보여준다. 물론 당시의 상황 자체보다도, 그런 불미스러운 상황들에 대한 어떠한 증언도, 인정도 심지어 변명도 없이 '그때 그사람'들이 여전히 만화계의 주류를 차지한 채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볼의 특약 연재는 이후 만화계를 바꾸어놓을 몇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도입한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좌철의 도입과 단행본 체계화이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성과 폭력을 유머의 한단계 자유로워진 표현이다(특히 성과 폭력을 '유머'와 결합시킨 것은 '고인돌' 등 일부 성인만화를 제외하면 전례가 거의 없다). 드래곤볼의 성과 폭력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 시각적 표현양식 등의 '히트 요인'들은 굳이 여기서 분석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나 널리 알려져있다(아니라면, 나중에 다른 지면에서 차근차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해적판의 흐름에서 드래곤 볼이 정작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단행본화'의 문제였다. 드래곤볼 정도의 확실한 히트 수입 아이템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잡지연재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며,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단행본 시리즈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해서 (일본식 모델을 본딴) 잡지 소속 단행본 시리즈 '아이큐 점프 코믹스' 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아이큐점프가 연재를 개시한 시점에서 실제로 일본에서는 단행본이 15-20권 가량 이미 나와 있을 만큼 장기간 연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잡지사로서는 당연히도 일본 현지에서의 장기간 연재로 그 인기를 검증받은 작품을 들여온 것이지만, 여하튼  아이큐점프에서 드래곤볼을 별책부록(좌철방식)으로 하여 매주 3-4회 분량의 연재분을 개시하는 빠른 연재속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볼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서 팬들은 항상 '더빨리, 더 많이' 보기를 요구했다. 기존의 한국만화는 '대본소 만화' 식으로 한 시리즈가 완결된 형태로 나오는 방식, (주로 일본 만화 해적판) 에피소드 방식으로 각 권이 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향식, 그리고 잡지 연재 분량을 직접 읽는 것 등 3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래곤볼 단행본은 '연속적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되, 단행본으로 읽게 되어서 당장이라도 (아직 풀시도히지 않은) 다음 권을 읽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만화읽기 형식을 '강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해적판'이라는 화두가 등장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까지의 해적판은 대부분 '원전을 구할 수 없는 해적판'이었다. 즉, 아무리 같은 작품의 다른 해적판들이 판을 쳐도 (바벨 2세 등 일부 유명만화들은 수많은 '해적판 외전'으로 유명하다) 일반인들이 그것의 비합법성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번듯한 만화사의 형식을 갖춘 듯하게 보였던 '콩콩' 등 출판사 판본들은 (사실은, 그 무성의한 '심의필' 도장이 주는 권위와, '정식 만화 출판사'의 만화에 대한 무신경함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진열, 판매가 되고 있었기에 오히려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의 문방구에 '드라곤의 비밀'이라는 이상한 소형 책자가 배포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판형, 출판사 정보, 번역, 인쇄질, 종이질, 제본 등 어떤 하나도 "이건 불법 불량 해적판 만화다"라는 의심을 도저히 사지 않게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국내 시장 내에서 합법적인 오리지날과 비합법적인 해적판 사이의 마찰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만들어서, 해적판의 불법성을 단지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닌,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했다. ...그 가격은 바로 한 권당 500원!

  드라곤의 비밀 시리즈를 낸 '호호 샘 코믹스'는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의 전례에 따라서 오렌지색 양장을 하고 있었으며, 세로길이가 기껏해야 10cm 가량밖에 안되었다. 위의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가 히트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물건이 그 드래곤볼의 '뒷부분'이었다는 사실이다. 거의 매주 4권씩 몰려나오는 엄청난 물량과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은 조악한 편집, 조악한 번역, 조악한 제작방식 그 자체를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도록 했다. 애초에 '드라곤의 비밀' 1권은 아이큐점프 당시 연재분에서 기껏해야 4-5회 분량 뒤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볼때, '인기에 편승한 손쉬운 돈벌이'를 위한 것이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이들은 이후 만화 유통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았다. 도매상마저도 거치지 않고 제작사의 '봉고차'가 직접 책을 소매상에 납품하고 사라지는 게릴라식 유통과 '죽어도 재판은 없다' 식의 일회성 등, 비합법 출판사를 규정짓는 일방향성이 그중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덕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만화팬들이 '매일 문방구/서점에 들려서 출시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직접적으로 하나의 매니아군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확실히 만화팬들의 만화 구매의 방식에 더욱 강력한 적극성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는 각 학급 등 제반 사회단위 내에서의 만화팬들간 가료 교환을 활성화시켰다.

  물론 '500원 판본'은 이후 더욱 확장되어갔다. '드라곤의 비밀'의 폭발적인 판매에 힘입어, 이들은 다른 일본 인기 만화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는 드래곤볼의 인기에 계속하여 편승하기 위해서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다른 작품인 '닥터슬럼프'를 '드라곤 비밀의 열쇠'라는 (연상작용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제목으로 출시하는 등, '드라곤' 시리즈를 출시했다. 또한 다른 한쪽으로는 '피그마리온', '파트레이버'등의 다른 인기작들을 출시했다. 물론 상당수 작품들은 1권만을 내본 후에 판매성과가 저조하면 바로 출간이 중단되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검증된 초 히트 인기작'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만화팬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연재중단되었을 경우 이후 이야기도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켜, '회현 지하상가'와 '중국대사관 뒷골목'으로 대표되는 '명동 세대'를 키우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전에는 일부 지역의 학교들('여의도 고등학교'는 그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을 주축을 했었던 '원판이라도 구해보는 적극적인 만화팬들'이 더욱 그 폭이 넓어져서, 여러 사람들이 용돈을 쪼개가면서 일본 원판(그리고 만화의 애니메이션 판을 보기 위한 일본 LD의 VHS 더빙판)을 구하게 된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컴퓨터 통신의 보급 등의 다른 주요 요인들이 같이 작용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다른 지면에서 다루어보기로 한다).

  500원 판본은 또한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필요없는 해적판'의 시대를 선포했다. 기존의 해적판의 경우, 심의필 등 나름대로 '합법적인' 경로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비록 유령작가들의 프로덕션이라 할지라도 직접 원고를 그리는(베끼는) 작업이 항상 필수적이었다(물론 편법은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500원 판본의 시대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고, 단시간 대량 생산을 위해서 인쇄기와 화이트가 그 모든 역할을 대신했다. 즉, 원본을 복사, 바로 그 위에 화이트칠을 하고 번역글과 지문을 집어넣고 순식간에 인쇄를 해서 배포하는 방식이다. 물론 렇다고 해서 원본에 대한 훼손이 적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500원 판본은 검찰과 시민단체의 주목을 끄는 것을 최소한으로 방지하려는 일환으로, 작품의 폭력과 성적인 부분을 필요이상으로 삭제처리하였다. 물론 각종 이름의 번안 또한 필수적이었다. '양파 껍질'(벗어도 벗어도 계속 그 속에 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플라나리아'(아무리 신체가 절단되도 다음 컷이면 다시 돋아나 있다!), '일본풍습의 한국화'(깃털치기, 잉어 걸기 등 도저히 한국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풍경들이 어엿한 한국 명절풍습으로 묘사된다) 등 악명높은 기법들이 여기서 탄생한다. 이전의 '베껴그리기' 해적판에서는 장면 자체를 아예 손봤지만, 이제는 장면에 대한 부분적 수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기에 이런 '만행'들이 저질려진 것이다(물론 모든 종류의 원작 훼손은 작품과 작가와 독자에 대한 범죄다).

  해적판 단행본의 분량구분은 '원본'과는 차이가 많아서 호흡조절에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막강한 분량으로 이것을 극복했다. 또한 해적판의 진행이 일본의 원본 진행속도를 '따라잡게' 되었을때, 미련없이 출간은 중단된다. 다만 드래곤볼에서 이 법칙은 깨지게 되는데, 연재분량이 3-4주정도쯤 쌓이면 (약 50페이지 정도) 그것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출시해버리고, 나머지 페이지(약 100 페이지 정도)는 다른 만화로 대충 채워넣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특히 드래곤볼의 500원 판본은 (적어도) 무려 3개의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진도경쟁은 더욱 가열되었다(물론 이런 출판사들은 하나의 출판사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번역 및 인쇄 스타일을 통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이후 많은 일본 동시연재 인기작(란마 1/2, 시티헌터 등등)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심지어 완간되어있는 시리즈의 경우에서마저도 도입되었다. 물론 이러한 관행은 항상 팬들의 욕을 먹었지만, '보너스로 억지로 끼워넣은' 만화로서는 오히려 소개 기회를 얻게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렌지 로드'의 짜투리로 끼워넣어졌던 작품인 '오렌지로드 II'가 아다치 미츠루의 국내 데뷔무대였다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다('미유키'). 어찌보면 단순한 '유행'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출판사측이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취향들이 표면화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한 것이다.

  500원 판본의 진도 경쟁이 한참 과열되었을 때, 정식 단행본이 아닌 잡지 연재분을 그대로 복사해오다 보니 인쇄의 품질은 더욱 조악해질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대만 해적판을 다시 가지고 와서 해적판으로 복사한 경우도 있었다('드래곤볼' 해적판에서 '기뉴 특전대' 멤버들의 이름이 모두 '귀鬼'자 돌림이 되었던 부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수요만큼 '오리지날' 라이센스판을 내는 쪽의 지분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에 대한 서울문화사의 대응은 지극히 미온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스스로 '일본과의 연재 시간 격차를 줄이기'에서 아예 '동시연재'라는 지극히 위험한 방식을 채택했다. 원고전달, 명절 및 휴일의 한일 차이 등 여러 측면에서 원고 관리를 힘들게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그만큼 다급했다는 증거다.

  이러한 성공담에 힘입어, 오래지 않아서 500원 해적판은 모든 서점과 문방구의 한쪽 코너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선구자격이었던 '붐붐코믹스'의 전략을 거의 그대로 따랐고, 이러한 계기로 북두의 권, 씨티헌터, 란마 1/2 등 80년대 말-90년대초를 풍미한 초히트작들이 거의 고스란히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500원 해적판은 작품의 처절한 왜곡, 조악한 품질로 인한 만화에 대한 일반적 시각의 하향조정, 비합법적인 만화출판의 확대로 인한 만화시장 구조 부실화 등의 수많은 폐해를 나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급부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첫번째는 뭐니뭐니해도 '페이퍼백'의 실현이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일반 활자 서적의 경우에도 한국 단행본 출판물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렴한 페이퍼백 판본의 부재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푸코의 진자'를 읽고 싶으면 7불을 내고 두꺼운 소책자 하나를 간단히 사면 되지만, 한국의 경우는 8000원짜리 단행본 3권을 사야한다). '가볍게 읽을 저렴한 판본'(페이퍼백)과 '소장하고 다시금 읽는 호화양장판본'(하드 커버)의 구분이 없기에, '한번 읽고 넘어갈' 책에 대해서 비싼 책값을 제대로 물고 사는 것이 매우 비경제적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대여점'의 비정상적인 확대로 이어지며, 판매시장의 부실화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500원 해적판은 진정한 '페이퍼백'이었다고 할 수 있다. 품질이 조악하여 대여점에서 장기간 대여해 줄 수 있을 정도에 미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주소비층인 학생들이 구입하여 소장하기가 용이했다. 결국, 만화산업이 대여점문화의 독재에서 벗어나서, 판매 문화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500원 해적판의 시장에서의 성공은 페이퍼백 문화라는 것을 한국에 도입할 수 있다는 하나의 모델로서 남을 수 있다. 이것은 국내에서는  특히 '소장' 개념이 희박한, 만화라는 매체에서 더욱 중요하다.

  두 번째 '업적'은 위에서도 언급한, '만화팬' 층의 확대다. 더욱 쉽개 다양한 취향의 만화가 소개되었고, 이런 소개를 바탕으로 모든 사회단위에서(특히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만화 애호 공동체가 폭넓게 생겨났다. 이들은 이후 단시간내에 90년대 만화계의 판도를 가로짓는 가장 중요한 집단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하게 된다.

  세 번째는 해적판의 '독립'이다. 500원 판본으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해적판과 제도권 한국만화들은 그 오랜 혼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동시에 이는 본격적으로 '일본만화로서의' 일본만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성운아가 한국 만화가의 이름이라고 믿지 않게 되었고, 어렴풋이만 들어본 일본의 선진적인 작품들을 하나씩 해적판으로나마 직접 만나게 되었다. '불량만화'급의 조아한 판본 속에도 때로는 몇발치 앞선 만화기법과 주제의식들이, 때로는 이질적인 문화가 담겨있었기에 그것은 '제도권'의 한국만화와 구분되었으며, 어떤 것이 일본만화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게 자리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해적판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제도권 국내 작가들은 만협 등의 단체에서 해적판 자료집을 만들기 까지 하는 등, 해적판에 대한 공격과 비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비난을 하면서도 과거 자신들 스스로의 원죄(해적판 제작 행각)에 대한 아무런 인정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단지 '시대 탓'으로 돌리고 쉬쉬하면서 지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런 공격들은 명확한 역량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백만개의 시장현황 자료집들보다도 중견/원로 만화작가/출판인들의 집단적인 양심선언과 과거인정이 '만화계의 발전'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고양이 방울인 셈이다.

  이후 상당수의 신예만화가들의 작품경향을 좌우한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의 여파로 시작된 500원 해적판은, 그러나 라이센스의 증가와 소비자의 눈높이 향상 때문에 서서히 '고급화'되어가면서 600원, 800원, 1000원 판본을 거치면서 결국은 '유사 정식판본'으로 합쳐져서 표면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음회 예고:  

 - 유사정식 판본

 - 일본 것이 아닌 해적판들

 - 출판대전

 

!@#...저 혼자 자료를 찾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제 경험 조사만으로는 전체적 상을 그려내는 데에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습니다...그러니까 항상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mailto://capcold@nownuri.net

 

 

 

 

 

<500원 판본 대 일반 단행본 >

 

 

 

  

 

 

 

 

 

 

 

 

 

 

 

 

 

 

 

 

 

 

 

 

 

 

 

 

<다양한 드래곤볼 500원 판본>,

 

 

 

 

 

 

 

 

 

 

 

 

 

 

 

 

 

 

 

 

 

 

 

 

 

 

 

 

 

 

 

 

 

 

 

 

 

 

<오렌지 로드 2 - 미유키>

 

 

 

<심지어 잡지 형식까지!>

 

 

 

 

 

 

 

 

 

 

 

 

 

 

 

 

 

 

<500원 대 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