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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끼 - 꽃미남의 계보학
- by 견(객원기자)
꽃미남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이쁜 남자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때로 그 의미는 외모와 성격상으로 두루 미모와 섬세함을 갖추고 있는 남성,이라는 데까지 넓어지기도 한다. 꽃미남은 특별히 연예계와 만화의 세계 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 말이 시작된 것도 아마 순정만화라고 통칭되는 일군의 만화들에서였을 것이다. 꽃미남없는 만화를 무슨 재미로 볼 것인가. 꽃같은 미모의, 꽃그림 배경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그 아해들.
예전엔 만화속의 꽃미남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꽤 있었다(아니, 지금도 있던가). 현실에 없는 남자들이라든가, 여성들의 환상일 뿐이라든가. 이에 대한 보편적인 대답은 그것이 여성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미모가 좋다는데, 섬세한 남자가 좋다는데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단 말인가. 안 그런 남자들이나 긴장하라지.
해서, 꽃미남의 순수절정 류미끼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끼는 모 잡지에 연재중인 만화 『오디션』(천계영 作)의 네 주인공 중 한사람이다. '재활용밴드'의 드러머로서 여자애들이 졸졸 따라오고 남자애들이 침 흘릴 정도의 미모를 갖춘 그는 초단위 이상의 세밀한 박자도 정확히 분할해서 쳐낼 수 있는 천부적인 리듬감과 혼혈의 금발을 가지고 있다. 백댄서 경력의 춤솜씨, 학년짱 경력의 싸움 솜씨(를 뻥치는 배짱)도 빼놓을 수 없겠지. 자기가 이쁜 걸 너무 잘 알고 특별히 남자를 꼬시는 데 재주가 있어서(^^;) 밴드의 베이시스트 달봉이를 이미 꽉 잡고 있다.
미끼는 아주 화려하고, 야하고, 솔직하고, 당당하다. 공격적인 구석이 있어서 성질이 좀 나빠보이기도 하지만 아무 때나 그러는 건 아니다. 미끼가 누군가에게 삐딱하게 군다면 그건 상대쪽이 나쁜 인간이거나 재수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친절하고(주변인 중에서 미끼가 놀려먹는 인간은 터프가이인 리더 국철뿐이다. 미끼도 마초를 싫어하는 걸까?) 엄마를 몹시 사랑하고(거의 응석받이), 보컬 래용이를 다감하게 돌보는 모습에선 모성적 성향이 드러난다.
나는 미끼를 보면서 비슷하게 느껴지는 다른 남자들을 떠올리곤 한다. 말하자면 꽃미남 계보의 윗대 조상들인데 - 예를 들어 『북해의 별』의 비요른이나 『불새의 늪』의 쥬델 같은 인물들이다. 미끼는 그들과 어딘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고, 그래서 더 이쁘다.
쥬델과 비요른은 순정 만화의 반영웅적 조연의 한 전형이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북해의 별』이나 『불새의 늪』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품성 훌륭하고 정의파에 카리스마 넘쳐서 너무나 주인공다운 유리핀 멤피스나 레니비에 따위보다는 거기 나오는 불행하고 아름다운 조역들에게 훨씬 끌렸었던 것 같다. 가느다란 몸 속에 독사를 품고 다니던 차가운 손의 쥬델, 선명한 붉은 입술과 상처난 창백한 뺨을 갖고 있던 비요른. (아, 그립다)
쥬델과 비요른은 비천한 출생과 불행한 삶, 치명적인 미모를 더 날서게 하던 위험한 성격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었다. 아름답고 재능있는 인간이 불행과 고통 속에 있으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안타까움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쥬델은 어머니이자 유일한 연인이었던 세스피앙과 독배를 마셨고, 비요른은 한나와 카니오의 손을 잡고 폭약의 불꽃 속에서 자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다운 죽음이지만 『북해의 별』 마지막 권에서 비요른이 죽는 장면을 보고 너무 슬퍼서 하루종일 아무 것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미끼는 쥬델이나 비요른이 갖고 있던 전형적인 조건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사람을 홀리는 건전치 못한 미모에다 천재적인 재능, 공격적이면서도 순수한 성격, 비천(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궁핍한 환경)한 출신까지. 그런데 미끼를 바라보는 일은 안타깝기는커녕 몹시 즐겁다.
순정 만화라는 것은 독특한 탐미적 취향의 세계이다. 새로운 캐릭터는 그 취향의 영역을 더 세분화하고 넓혀준다. 한 시절동안 순정 만화의 꽃미남들은 대부분 (원래는 낙천적이고 밝은 인간이었더라도) 불행한 운명과 우울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Mr.블랙』의 에드워드, 『비천무』의 진하, 『별빛 속에』의 레디온... 그러나 지금의 꽃미남들은 자신의 내면을 쿨하게 정돈하고 무표정하게 개그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슬픔 때문에 어두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거나 외로움으로 독기 어린 입술을 갖게 된 모습에 다들 연민과 매혹을 느꼈던 한 시절의 경험이 지나가고, 대신 변함없이 꽃같지만 더 담담하고 건조하며 웃기는 남자들이 지배적인 추세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류미끼는 꽃미남의 우울한 과거와 쿨한 현재를 연결한다.
미끼가 가진 매혹은 그가 그늘을 갖고 있음에도 슬픔으로 어필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미끼의 미모는 그의 불행 때문이 아니라 거침없는 자유로움 때문에 더 빛난다. 반반한 얼굴 때문에 학교에선 질퍽대는 일진들에게 따먹혀주어야 했고 장사보따리를 이고 단속반에게 쫓기는 엄마를 보고 눈물을 쏟았었지만 그에겐 스스로를 감추는 어두운 구석이 없다.
미끼는 불행에 고뇌하는 대신, 꿀꿀한 과거 따위엔 발길질을 해버리고 턱을 들고 머리칼을 찰랑이며 오만하게 걸어가버리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는 계보상의 선배들보다 훨씬 강하고, 그래서 언제까지고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면서 어떤 힘든 일을 겪게 되어도 그가 옛날의 선배들처럼 고통에 파먹히거나 막다른 곳에서 자살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작품 내용상 당연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기쁘다.
국철이 말한 것처럼 정말 변득출같이 느끼한 중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똘똘한 아이니까 아주 현명하고 귀여운 노인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끼가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드럼 연주를 즐기고, 좋은 남자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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