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누프걸


1.저칼로리영양식

 '만화는 보통 일하기 전이나 시험준비중에 책을 팽개쳐버렸을 때, 집에 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미장원에서 파마를 할 때, 라면 그릇에 머리를 박고 있거나 커피솝 같은 데서 친구를 기다릴 때 등과 같은 자유시간에 읽혀지는 칼로리가 낮고 재미있는 오락물이다.'
(프레드릭 L.쇼트, [이것이 일본만화다 (DREAMLAND JAPAN)] 서문중)

나로서는 밥먹으면서나 자투리시간에 하드한 연구서적을 읽기도 하고, 반대로 마음먹고 정좌해 만화를 정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칼로리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독서에 있어서 '저칼로리'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것을 몽땅 기억하게끔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든가..너무 난해함으로써 독서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 말것이나, 또는 너무 무겁고 진지한 주제로 독자의 책임감을 자극하여 두렵게 하지 말거나...' 한마디로 말해 머리에 부담을 주지 말 것... 확실히 고칼로리의 너무 기름진 음식들은 위에 부담을 주고 포만감을 넘어 무기력증을 자극한다. 위가 지쳤을 때는,  저칼로리의 담백하고 간단한 음식들이 보다 쉽게 소화되어 위를 쉬게 해준다. 즉 보다 즐겁게 먹힌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가 처음에 만화를 좋아하게 되고, 그로부터 지속적으로 기대하게되는 우선적인 면모는 바로 이런 저칼로리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보다 즐겁게 먹히고 보다 쉽게 소화되는 것이 영양가가 없다는 말과 동일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납득해온 말, 책은 마음의 양식... 저칼로리의 만화 역시  영양이 담겨있는 양식임에 는 분명하다. 이번에 다루려고 하는 두 요리(^^)는 '정치'를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치'라고 하면 어쩐지 무거운 것이 '저칼로리'하고는 영 상관이 없게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모름지기 훌륭한 저칼로리 요리라는 것의 핵심은 어떤 종류의 기름기많은 음식재료로도 그 영양가치는 그대로 살리면서 담백하고 산뜻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것에 있지 않겠는가. 허영만의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안온다]와 히로가네 켄시의 [정치9단]은 각자 한국과 일본의  일류 요리사로서 정치라는 하드한 재료에 덤벼들었다. 그들은 이 부담스런 재료를 가지고 어떤 담백한 영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2. 대변과 계도

허영만은 아동만화와 청소년,스포츠물, 성인,기업 거의 모든 장르를 다 섭렵한 작가지만, 특히 시사만화를 제외한 우리 만화사상 정치를 직접적인 소재로 다룬 거의 유일한 작가다. 한국전쟁을 포함한 근대 정치사를 직접 다루어서 유명해진 [오!한강]이후로, 87년이후 쫓겨난 전두환을 풍자한 코미디 [대머리 감독님], 지금 거론하려는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단행본 95년 세주문화)등은 다른 성인만화들의 간접적인 정치성 (가령 고우영의 삼국지등..)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직접적인 접근법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이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의 경우는 아예 본격적인 정치극화로 분류할 수 있을 듯 한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정치인과 정치사건을 직접 다루고 있으며 더우기 당시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있던 이른바 정치의 계절-9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하여 일간지 (스포츠 조선) 에 연재되고 있었다는 그 '현재성'에 있다.

당시의 상황을 잠깐 훑어보면 87년 이후 전두환이 백담사로 쫓겨나고 노태우정권 하, 다가오는 선거를 맞이하여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가 합당과 창당을 반복하면서  본격적인 대권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양김씨와 5공 잔당을 중심으로 매번 '깨끗한 선거'라는 화두와,  또 한편으로 '정치불신-무관심'이라는 화두에 불을 지르며 치뤄지고 있었던 선거판은 그 와중에 재야출신 출마자와 또 80년대 학생 운동권 출신의 세대가 진입하므로써, 아예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를 논픽션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 논픽션 드라마의 음흉한 나레이터 역할은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한국언론이 맡았다.)  

논픽션 정치 드라마.. 이런 상황은 '정치불신-무관심'이라는 진단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일종의 정치열기를 표현한다.  말하자면, 성인남자 두명만 모이면 밥먹으면서도, 술 마시면서도, 정치판의 동향과 다가오는 선거를 그 안주로 삼는다는. 그렇기에 성인 스포츠일간지에 '오락물'로서 실리는 극화의 소재로도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닭목을..]의 위상이랄까,,기능, 그리고 내용적 함의는 그러한 술자리 정치담론의 가감없는 반영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이런 '술안주 정치'는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적어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격동반세기'를 살아온 우리나라 사회는 정치와 생활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시간을 살아왔고, 정권이 한번 바뀔때마다 그 밑의 관료며, 사법관이며, 기업이며 차례차례로 마지막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운명까지  뒤바뀌는 사회였다. 정치 불신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를 인식하고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정치불신-정치가와 정치판에 대한 혐오-은 사실이되, 그것이  무관심으로는 결코 이어질 수 없었던.(물론 2001년 현재 새로 등장한 세대에 대해서는 일단 제하고 ).여기서 본격정치극화 [닭목..]의 현재성이 나온다.

그런 우리 사정은  히로가네 켄시의 [정치9단]속에 나오는 일본정치 사정과는 많이 틀리게 보인다. 차세대 일본 정치가의 이상형으로 그려진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는 작가를 대신해 설명한다.
" 일본에서는 여당이 누가 되건, 정권의 향방이 어떻게 되건, 일본의 국민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내정분야는 지방자치와 엘리트관료들에 의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 안정을 기반으로, 일본의 중앙정치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장기집권을 이뤄왔지만,  고인 물은 ››기 마련, 여기서 부패와 정치음모가 나온다. 또 유권자들은 단지 지역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선거나 그외 정치사안은 무관심하게 된다."
이러한 견해가 얼만큼이나 진실이고 얼만큼 주관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닭목..]과 비교해볼 때 [정치9단]은 그 출발부터 대조적임에 분명하다. 앞서 말한대로 [닭목..]이 서민들의 정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관심 (혹은 관점에 따라서 왜곡된 관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의 반영이자 대리표현이라면, [정치9단]은 반대로 작가가 속한 지식인층(히로가네 켄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만화가로 출신과 성장이나, 작품의 면모 모든 면에서 볼 때 지식인층위에 속하며 그러한 자신의 견해를 작품속에 싣고 있다) 의 다분히 의식적인 정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어느정도는 '설명' 혹은 '계도'하고 있다.   

 

3.선동과 균형

또 다른 의미의 '현재성'-즉, 참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치9단]은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기한 일본 정치상황에 대한 인식위에서 그 대안으로 합리적 사고방식과 효율적 활동력을 지닌 전후 베이비 붐 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 이상적인 정치가의 상은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로 형상화되는데, 그는 '일본 정치계가 일당 장기집권으로 고여서 부패한 물이니까, 더 이상 고일 수 없는 다당구도로 체질개선을 하고 , 또 한편 일상사와 근접한 내정은 관료들에게 맡기고 정치가는 국제정치에 힘을 쏟아 세계속의 일본이 되자! 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주인공의 정치선언, 출마,음모,선거,내각경험, 해외연수,등의 정치활동이 이어지면서, 그 안에서 각종 제도, 국민의식, 관습, 정치 외교 사안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견해를 풀어낸다.

사실, 이런 구조는 참여적일 뿐 아니라, 다분히 선동적이라고 보이는데, 아주 지적인 선동(그러니까 보기에는 선동답지 않은 선동)이기 때문에 더욱 선동적이다. 독자는 여기서 머리 아프게 이리저리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냥 그렇군 하고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둘중의 하나의 태도를 정하게 된다. 즉, 내용에서 거론되는 정치사안이나 정치관에 대해 독자가 이미 어느정도 알고 있거나,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전자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던 무관심층은 만화고유의 극적 재미(카지 류우스케가 토마토세례를 받는 장면이나, 재일 한국인을 테러하는 사태에 TV에 출연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장면..으.닭살..! )에 쉽고 객관적인듯한 해설을 섞은 이 선동에 그냥 끌려가게 되지 않을까.
카지류우스케의 입을 빌어 극중에서 미디어에 관해 비평하는 대목이 떠오른다. '신문과 TV등에서 보도 하는 내용은 객관보도만 제외하고 그외 발언은 하나도 듣지 말게 ' 하며 자기 보좌관에게 미디어의 쉽고 대규모적인 일방적 선동의 위험성을  충고하는데, 그 스스로의 만화에는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역시 독자가 똑똑해야...하는 답밖에 안나오는 듯 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가 [정치9단]을 보며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도 거기서 나온다. 독도문제라든가, 남북문제, 일본의 다국적군, 또 UN 상임이사건, 전범규정에 대한 문제등 우리나라도 관계되는 정치사안들에 대한 다분히 우익적이고 몰역사적인 견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너무나 일방적인 근거자료제시에 뭔가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가령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희생양이 되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배상문제를, '반성하고 있고, 미래를 보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반성하기는커녕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역사교과서라던가...
이런 경우  제대로 된 '현재성'이라면 끝없이 재고 되고 반성되어야 할 이슈의 '현재화', 그리고 주장보다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정치9단]의 현재성은 이미 균형을 잃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4.청산의 역사의식

이런 문제에 대해 [닭목..]의 경우는 너무나 노골적인 선동이라서 오히려 균형을 잡게 되는  경우로 느껴진다.
주인공 석기는  친구 각기의 아버지이자 거물정치가인 이진우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데, 그것과 때를 같이 하여 그 주변에서 모종의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고, 그 배후에는 선거승리를 위한 음모(혹은 전술?)가 추측된다. 당선후 의정활동 중에도 살인사건은 계속되고 그 배후에는 대권을 향한 거물정치가 이진우의 음모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결국 석기와 그 친구들도 몰랐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었던) 이진우의 추악한 전모가 밝혀지고,다른 모든 미래적 전망 이전에 그러한 추악한 인간의 전모를 폭로,박살내는 것이 석기의 목적이었건만 그는 대를 이은 이진우 진영의 거대한 권력앞에 암살당한다.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각종 제도나 정치이슈에 맞춰져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에 맞춰져있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의 아름답지 못한 면모만을 모아놓은 것 같은 이진우라는 인물, 그의 왜정시기 친일,매국행각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로서는 공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 이진우라는 가공의 인물은 바로 식민지시대부터 오로지 개인적 탐욕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군림해온 지배계급-정치꾼-의 집대성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닭목..]에서 선동을 목적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 '청산'의 문제다.
개별 정치 이슈 조차도 우선은 그 청산과 관련된 이슈들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가령 석기의 보좌관 아란의 오빠는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는데, 고문한 당사자는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 아란은 그걸 단신으로 해결해보려고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권력자의 노리개로 전락했을 뿐이다. 한편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시도했던 석기는 결국 암살당한다.(아마도 친구였던 각기에게!) 결국 이를 통해 확실해지는 것은 한 두사람 고문관의 검거나 재판이 아니라, 그것전체를 가로지르는 전체적인 청산의 문제라는 것을 끝없이 확인시킨다.
이런 선동내용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해방직후 반민특위 해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줄곧 마땅히 투명하게 규명되고  청산되어야 될 것들이 그렇게 되지 못한채 계속 쌓여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그들끼리 각축전을 되풀이해온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당연히 인정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실제로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추구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청산되어야할 바로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갈파하고 있다.)주1

그래서 '청산'을 강조하는 시각은 예를 들어 카지 류우스케의 일본정치에 대한 비판하고는 그 차원을 달리 한다. 그것은 공시적차원의 논쟁과 개혁이 아니라,  통시적인 차원의 청산,혹은 혁명적인 무엇을 요구한다. 정치영역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밖의 사회와 역사,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의 기본적인 대립쌍의 하나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영역에서 노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한편의 시각 (극우, 보수, 때에 따라서 온정주의등으로도 나타나는 )을 바로 전제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서 독자로 하여금 심각하게 균형감각을 재고하도록 자극한다.

5.공과 사

이 두작품의 각기 다른 정치관은 그 안에 포함되는 정치이슈나 사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둘의  드라마적 공통점으로서, 두 작품 모두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친구들을 전면에 내새우고 이 친구관계가 정치와 사회라는 성인적인 공간을 만나는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단  [닭목..]에서는 네명의 고교동창들을 등장시키는데, 이들 중 신석기를 포함한 세명의 친구는 나머지 한명의 친구 각기와 그 아버지 이진우로 인한 남모를 상처를 제각기 안고 서로에게 조차 숨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각기는 자기와 자기가문의 대권행보를 위한 전략에 이른바 '우정'과 '의리'를 빙자하며 친구들을 끝없이 이용하려 든다. 결국  그들의 이용가치가 없어지고 다급해지자 우정과 의리의 마지막 한조각까지 가차없이 스스로 찢어버리는 각기, 그 순간, 그는 아버지 이진우의 대를 이은 정치-권력형 악당 2세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뻔하게도 여기서 명백하게 주장되고 있는 것은, 우정이나 의리, 연고 따위의 사적인(그리고 일견 평등해보이는) 관계가 정치나 사회,권력 문제같은 공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면 그 순간부터 노골적인 가학자와 피학자의 관계로 변모되기 마련, 혹은 적어도 여태껏 그래왔다는 점이다.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은 개인적인 친분의 깊음과 얕음 정도를 떠나서 구조화되어있으며, (그래서 공과 사를 구별해라 따위의 말이 나왔겠지만) 그것 조차도 청산되어야 할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사실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지역맥 학맥 인맥등등의 허울좋은 가치들을 포함하여, 그러한 상황이 변하려면 일단 허울은 벗고 실제 관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작가는 끝없이 요구하고 있다.(덧붙여 이 작품의 스토리 설정상 네친구의 공범의 기억과, 그 죄의식이 의리의 껍데기를 쓰고 서로를 옭아맨 과정,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나머지의 인생을 뒤흔들어왔던 과정등은 명백히 남한 근대 정치사의 비유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런식의 꼬인 인간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 [정치9단]의 특징이다.
 [정치9단]에는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를 포함한 동경대 럭비부 동창 세명이 등장해서 활약하는데, 카지 류으스케는 정치가요, 또 한명은 내노라 하는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요, 나머지 한명은 외무성 고급공무원으로써 한 화두 던져질때마다 모여서 밥먹으면서  관계된 정보나 의견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토론 비스끄레한 것을 벌이다가 결국은 카지 류우스케의 의견으로 정리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그것의 전파와 실현을 위해 뛴다.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동경대!럭비부!출신이라는 점인데, 이것은 신석기 패거리의 고교동창인맥, 게다가 친구의 여동생을 저마다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그런 맥락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설정으로, 사실상 미국식 취향과 사고방식의 (럭비!) 엘리트집단이라는 점이 극구 강조되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그들사이에서 배반이니,이용이니 가학이니 피학이니는 이루어질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 함께 초엘리트 계급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카지 류우스케를 중심에 세운 무슨 일본 전국시대 영주와 그 휘하 장수들 같은 관계로,말하자면  일본정치의 미래를 두 어깨에 실은 협력관계로 한정된다. 이 작가의 주된 관점으로보면  상황을 이끌어갈 지도자 그룹을 만들어내는데 학맥(엘리트에 한정된?)이 도움이 되며,적극 이용할 것을 요구하는 듯 하다.같은 맥락에서 당연히 그가 비판하는 '나쁜' 관계는 '무능하고 무식한'한 관계다. 기껏해야 지역구 관리나 하거나, 개인적인 대권욕심으로 만들어지는 관계는 그 목적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에서 무능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거부되고 있다.정말 '공적인'차원의 기준이다.
[정치9단]의  '좋은'관계와 '나쁜'관계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다. 맨 위의 기름만 걷어내고 일본 국민들이 마셔야 할 것은 바로 물이다..라는.
반면에 [닭목.,,]의 인간관계는 구정물 같은 것이다. 여러 사건과 과정을 거쳐서 분해되어 최종적 정화수만 남게되는, 그리고 여기서 한국 국민은 사실상 그 물의 일부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양 사회가 전혀 다른 사회라는 것을 극명히 느끼게 되는 대목이지만, 나로선 정말 궁금한 것은 일본사회는 정말 어떤사회일까하는 것.  히로가네 켄시의 만화로는 계속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6.기다리며..

다시 정치만화의 영역으로 돌아와서, 문제는 [닭목..]이 본격 정치극화이면서도 사실은 작은 의미의 정치의 영역을 뛰어넘고 있는 우리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때-90년대 초중반-이 문제의식은 선거와 정권교체를 둘러싼 정치일정으로 집중화되었었고, 그것을 반영하듯이 [닭목..]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상반기에 있었던 국회의원선거는 상황이 점차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의 문제의식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되, 그것과는 별도의 독자Ю?영역으로서 정치공간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문제의식이다. 양김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지역주의 경향이 점차 변모하면서, 지방자치제 안정, 민주노동당등 진보정당이 계급정당이자 정책정당으로 약진하고, 또 민주노총등의 노동운동단체가 스스로의 정치활동과 노동당 지지 활동을 표명하고, 기타등등 일본식의 안정적 기반(!)은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정치지형 자체가 변모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닭목..]의 현재성은 분명히 제한된다.
오히려 역사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아도 될지도 모른다.
정치의 영역은 기왕의 역사인식을 분명히 하되, 그것을 뛰어넘어 각종 정치현안과 경제현안, 국제현안에 대한 정책개발중심으로 제안되고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치의 나아갈 길이라는 일반론이 되가고 있는 지금,
오히려 정치만화를 보는 우리의 관심사는  [정치9단]이 다루고 있는 한일,남북,아시아-미국간의 정치현안으로 쏠릴 수도 있다. [정치9단]이 가진 그나마의 덕목은 바로 그러한 점일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  히로가네 켄시는 그리 훌륭한 요리사는 아닌 것 같다.
[정치9단]은 너무 계몽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서 무슨 학습만화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전혀 맛있지 않다. 결국 그는 정치라는 재료를 다루는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이 뭔가 좀 아는 독자들 (가령 한국독자들 )한테는 거부감이 일 정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에 허영만은 꽤 괜찮은 요리사였지만 한물 갔다고 하면 실례일까..
[닭목..]은 이제 정치요리로서는 스테디한 요리가 아닌 셈이다.
정치를 맛있고 담백하게 요리하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 기왕이면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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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허영만은 매편 서문에 덧붙여놓기를 잊지 않는다.'권력잡기가 지상목표고 권력주위에 기생하길 좋아하는, 항상 배신과 음모를 꿈꾸고 국민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기만하려드는, 닭목을 비틀면 새벽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당착에 빠지는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