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미남 계열>

비요른



유제니



애쉬



유이



아키라



<보너스>

미중년론

한 올드팬의 가슴팍에 자리잡은 유제니의 무덤


- by nufgirl


1.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천국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부자들은 느끼기 어려운 행복도 있다.
매일같이 푸와그라로 죽을 쒀 먹는다 해도 (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에서 부자 악녀 쵸코가 이 짓을 했었지.^^) 배고픈 퇴근길, 눈 맞으며 길거리서 사먹는 오뎅이며 떡볶이가 주는 행복감이 그보다 떨어지랴.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순정만화 독자들의 계급(?)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서다. 순정만화 독자의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우리들은 서민이며, 여성이라는 점. 즉 2중적 의미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공유하면서 부자들이나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순정만화의 행복을 만끽한다.

2.
서민계급 소녀들의 유년기 갖가지 취향과 꿈과 철학(!)을 온통 쥐었다 폈다 하는 순정만화는 앙큼하다. 한편으로는 으리으리한 성이며 재벌미남이며 화려한 스타들이며 상류층 전문직의 세계며 고상한 예술가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우리들에게 12시 칠 때까지 잠시 유리구두를 신겨준다. 휘황한 조명등 아래 정신없이 왈츠가 돌아가는데 어쩐지 한쪽 홀 귀퉁이의 조명은 어두침침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복수심에 찬 눈빛을 번뜩이며 엿보고 있는 비천한 신분의 악마형 꽃미남들이 우리들을 자극한다.
[북해의 별]의 비요른이며, [불새의 늪]의 쥬델이며, 그들의 반항심과 냉소가 내뿜는 검정색 아름다움이 이 환한 무도장에서 특별히 더 돋보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우리 역시 사실은 비천한 신분의 재투성이 소녀들인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각별히 애정을 쏟게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들은 그들의 소외감과 비뚤어진 복수심과 말라빠진 비루한 몸매를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높이 빛나는 그들의 미모와 재능을 사랑한다. 그 어두움 뒤에 있는 순수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두가지 조건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미남에 재간꾼 이어야 할 것' - 그래서 그들은 정당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아름답지만 비극적으로 '죽어가야' 한다는 점. 어찌되었든 우리는 여왕이 된 신데렐라, 못된 새엄마와 언니들을 용서해야 하며, 무기력한 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며, 세상을 여왕의 자비와 사랑으로 뒤덮어야 한다. 어두운 미남들은 죽음으로서 진정한 안식과 아름다움을 얻게 될 것이다..!

3.
하지만 여기에 보다 강력한 '삶'을 이야기하는 최강, 최후의 어두운 미남이 있으니 바로 [테르미도르]의 유제니다. 우리들의 대변자일 수도 있는 그의 애인 알뤼느는 마지막 순간 그에게 말한다 '행복하게 살 수도 있잖아. 응? 널 사랑해!' 하지만 그는 '천상에서 사는 것은 내 삶이 아냐, 난 땅위에!' 라고 외친다. '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라고 일러준 신부님을 향해 '단지 이기기 위해 떠났던 것이 아닌 것처럼 패배했기 때문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통해서 부자들이 못 들어가는 천국으로 간 것이 아니다. 그는 땅위에서 되풀이 울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래'를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면 유제니는 더 이상 복수의 화신이나 비뚤어진 반항아가 아니다. (일개인을 떠난) 계급의식으로 한차원 업그레이드 된 전사라고나 할까. 굳이 순교하는 성자에 비유하지 않는 것은, 그는 어디까지나 '땅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사실 돌이켜보면 쥬델과 비요른, 유제니는 그들이 놓여진 작품내 시대적 배경과 참 잘도 맞아 떨어진다. 역사상 피지배 계급은 계속 있어왔지만, 그들이 개인적 차원이 아닌 보다 전면적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항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차가 있다. 중세와 절대왕정시대에 살아가던 쥬델과 비요른이 개인사적인 맥락의 처지와 그에 대한 개별적인 저항을 보여줄 때 그것은 우리들의 심리적 공감대를 자극하지만 이 공감대는 '측은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성모'로서 애정을 보낸다. 하지만 공화국을 살아가는 유제니가 전체 인간의 평등을 한어깨에 짊어지고 삶을 부르짖을 때 우리는 내심 당황하게 된다. 신데렐라는 공화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숨에 우리가 (어린이용) 유리구두를 신기에는 너무 커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더 이상의 동화는 없다. [테르미도르]라는 순정만화는 우리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서민 여성의 실생활로 다시 끌어온다. 우리를 둘러싼 불공평과 비합리성이, 그것이 우리에게 주었던 갖가지 상처와 소외감의 현재성이 우리와 시민 유제니와의 동지애를 자극한다.

5.
동지로서의 시선과 성모로서의 시선이 사뭇 틀릴 것임은 말 할 것도 없다.
비요른이나 쥬델에게서는 기대도 요구도 하지 않았던 면을 유제니로부터 발견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깨닫는다. 그는 어머니의 아들로, 아버지의 아들로, 알뤼느의 애인으로 어떤 자였던가? 그는 여성들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 결국 그는 너무나 여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작가가 여성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는 여성과 애정에 대해 끈기있고, 동등하며, 수줍은 사람이다(사실 답답하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그 목적이 무었인지 너무나 잘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아 유제니(으음..)를 현실의 수많은 운동권 마초들과 구분짓게 하고, 그것이 바로 다른 수많은 귀여운 꽃미남, 화려한 왕자형 미남, 어둡고 측은한 검은미남들 사이에서 그를 유일하게 툭 튀어나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기사 왜 죽였버렸어!하고 따지고 싶지만, 할 수 없지. 죽어서 다시 사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다른 더 많은 괜찮은 사람을 살리는 법이니까. 아마도 앞으로의 어두운 미남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살지 않겠지. 더불어 더 이상의 성모도 없어지는 거다. 순정만화는 앞으로 부자남자들은 알 수 없는 우리들의 동지가 되어주리라.

                                                   


<온미남 계열>

류미끼



군나르



홍차왕자



고로



반리



<보너스>

미소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