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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신을 기억하시는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기까지 했으니,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치고는 웬만해선 모르는 이가 없을 그는 바로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이다. 일제시대, 문맹의 농촌사회에 교육계몽의 기치를 높이 들고 야학을 세우고 온갖 왜놈들의 모략과 방해책동에도 굴하지 않던 열혈 농촌계몽 운동녀. 오늘날 일본만화인 아키라 오즈 작 [명가의 술]에서 그를 떠올리는건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일일 것이다. [명가의 술]의 주인공 나츠코 역시 보장된 출세의 길을 버리고 고향농촌으로 낙향, 가업을 잇고 오빠의 유지를 이어 술만드는 새인생을 시작한다. 마을 사람이나 농협관계자들의 편견에 찬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단신으로 폭풍우에 맞서고 농약살포 헬기에 맞서다 쓰러져버리는 그의 모습은 바로 채영신의 그것이 아닌가. 하지만 소설 [상록수]가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당시의 우리나라 사회현실과 의식을 소설적 방식으로 잘 비추고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화 [명가의 술] 역시 현대 일본사회가 처해있는 현실과 의식에 대해 결코 가볍지 않은 어조를 유지하며 성실히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일본적인 작품임에 분명하다. '장인정신'이라는 일본적인 가치관과, 그것을 둘러싼 오늘날 일본산업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충실하면서도 지극히 계몽적인 접근. 이러한 본질적인 국적 정체성은 두 작품이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드라마로서 재미를 위하여 채용하고 있는 열혈소녀라는 설정의 공통점을 무색케 하는 차별성이다. 물론 오늘 [명가의 술]과 비교하고자 하는 작품은 소설 [상록수]가 아니라, 역시 '술'을 소재로 한 한국 만화, 이은홍의 [술꾼]이다. 미리 밝혀놓고 싶은 것은 [술꾼]은 만화이기는 하되, [명가의 술]같은 드라마, 혹은 극화형식의 만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말하자면 카툰 에세이...정도로 해둘까. 그것은 술에 대한 작가의 단상들, 기억들, 재미있는 발상들이 카툰, 쪽만화, 텍스트등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되어 묶여진 책이다. 형식이 그러하므로, 드라마적 재미를 위한 열혈소녀 따위는 애초에 필요없다. [술꾼]과 [명가의 술]이 나란히 비교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둘 다 '술'을 소재로 하고 잇다는 점과, 또 하나 '술'을 둘러싼 양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성실히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성실함 때문에 양자는 틀릴 수 밖에 없는 거지만). 덧붙여 말하자면 아키라 오즈나 이은홍이나 어쩔 수 없는 운동권이 아닌가..라는 ...(^^)
2. 술이라는 것 [술꾼]에서 이은홍은 자문한다. '도대체 술이 뭔길래....(중략)생명수라도 된단 말인가? ' 이에 대해 나츠코의 대답을 들어보자. '술은 햇님의 빛,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나츠코가 그토록 사랑하는 '술'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미주'로서 막소주나 거친 막걸리, 하물며 화학주같은 것은 저급술은 논외의 대상이다. 나츠코가 아는 술은 '햇님의 빛'즉, 자연의 은혜를 고스란히 받아안은 최고의 쌀과, 노력과 믿음이 담긴 인간 노동의 결과로, 그에 대한 신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즉, 나츠코의 술은 '알콜이 함유된 취하는 음료'가 아니라 '놀라운 향과 맛이 담긴 신의 음료'다. 이에반해 이은홍의 자답은. '감히 (생명수가..혹은 피가..)아니라고 못하겠다. 술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열 쳐받았거나 환장하게 기쁘거나 할 때도 술로써 적정 체온을 유지,조절해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술이란 맛이 문제가 아니라, 혹은 무슨 술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효용성이 문제다. 사람들이 나눠마시는게 술 뿐이겠느냐마는, 술이란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보통의 돈이나 이익, 일관계의 꺼풀에을 벗겨버리고 이른바 '술앞의 평등'- 평등하게 취기어린 상태의 다소 노출된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또, 삶의 여러 국면에서 오는 희노애락에 좀 더 솔직하게 반응하도록 도와준다. 결국 그의 술은 '알콜'-로서, 신의 음료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의 음료'다. 혹은 요물이라고나 해둘까. 이런종류의 차이는 양자가 서로 술에 대해 취하고 있는 상이한 위치에서 출발한다..[술꾼]이 술을 마시는 입장이라면, [명가의 술]은 술을 만들어내는 입장이다.[술꾼]의 술꾼들은 미식가가 아니라 술꾼일 뿐이고, [명가의 술]역시 기본적으로 '농부들'이나 '술만든 사람'들의 수고와 그 가치를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술도가집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양자가 서로를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술꾼]에서 나오는 작가 이은홍의 아버지는 소주가 귀하던 시절 노래품을 팔아 몇잔 얻어마시고는 좋은(희귀한?역시 화학주가 좋은 술이라고는..) 술을 마신 즐거움과 취기로 늦동이 이은홍을 가졌다는 에피소드를 낸다. 또, [명가의 술]에서 역시 화학알콜을 첨가하는 이웃집 술도가 사장의 입을 통해서 소비자가 비싼 미주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첨부한다. 하지만 문제는 간만에 좋은 술을 즐기는 것 조차 늦동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연결시킨 그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술 즐기는 방식이고, 또 자본주의적인 주류시장에서 그 몰락이 불을 보듯 뻔 한데도 어쩔 수 없이 소규모 전통 주조법을 고수하는 장인정신에 있다.
3. 술 마시는 사회 [술꾼]이 술마시는 사회를 그려내고 있는데 비해, [명가의 술]은 술만드는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술마시는 사회는 술을 마시기만 하고, 술 만드는 사회는 만들기만 한다는 어리석은 소리는 물론 아니다.[술꾼]의 1부가 개인적인 술과의 커뮤니케이션, 혹은 개인적으로 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랄까..혹은 개념정의, 아무튼 술꾼 이은홍의 술 예찬론이라면, 2부의 [음주이력서]라는 부제가 달린 부분은 그의 술에 얽힌 자전적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다. -어린시절 보고 듣고 맛본(!) 전세대의 음주문화, -사춘기시절 저마다 어른인척 하며 미래를 향한 꿈과 함께 어른의 음료라는 술을 넘보던 풍경, -고학생 자취방에서 벌어진 술타령속에 묻어나는 도시생활의 막막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르바이트 수고료를 몽땅 털어 군대 간 형 면회를 갔다가 텍사스촌의 혼탁한 술상앞에서 말없이 폭주하고 몽땅 게워냈던 씁쓸한 기억, -시국사범으로 감옥안에 들어가서 명절을 맞이하여 수감원들이 빚은 밀주한잔을 놓고 그리운 이들 모두를 상상속에 청해와 밤새도록 대작하던 사연등, 그의 음주이력서는 사실 개인적 이력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보편적인 우리 사회 전체의 과거 모습이 들어있다. 3부의 음주문화 자체와 관련한 작품들, 술이나 술상을 앞에 놓고 벌어지는 광경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들 -엄마처럼 되겠다는 애녀석을 혼내주고 헉헉 거리면서 땡볕밑에서 호미질을 하는 한 촌부의 옆에 놓인 초라한 노동주로서의 소주 -'위하여'를 외치면서도 서로 살벌하게만 보이는 단합회식광경속에서 진짜 애주가 한명이 술을 먼저 입에 댔다가 눈총받는 전도된 상황, (이것은 회식의 소외? 건배의 소외?) - 첫잔 들땐 모두가 같은 말을 하다가 이배,삼배, 술이 거나해지자 다들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하는 광경 (같이 마셔도 혼자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 ..혹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억지로 같이 말을 맞추다가 좀 풀리자 각기 다른 소리를 할 만큼 획일적으로 억압되있는 사회..) -술상앞에선 머리가 커다란 좆으로 변해있는 남자라든가.. -약을 먹어가며 접대술-독약-을 퍼붓고는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에 앉아서 '새벽쓰린 가슴으로 찬 소주를...'을 부르는 샐러리맨 -그러저러한 현실속에서 아침이면 술과 원수졌다가도 저녁이면 다시 그 품으로 기어들어가는 중독된 생활 .. 이 묘사들의 경우는 시쳇말로 '술이 웬수지'가 문제가 아니다. 술이라는 프리즘너머로 비친 좀 더 솔직한 우리사회의 모습.그 비틀려진 사회와 문화를 꿰뚫어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술은 확실히 요물이 맞다. 위로해주면서 잡아먹는...친근하게 해주면서 원수지게 하는...즐거우면서도 비참한...그렇게 [술꾼]의 펜 끝에 잡힌 우리 사회의 술은 다난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4.술 만드는 사회 [명가의 술]에서 술은 그에 관계한 사람이나 사회에 따라 이리 저리 모습을 바꾸는 '요물'이 아니라 영원불멸의 '신'이요 자연이요, 고향이요 미래로서 향수되고 추구된다. 주인공 나츠코가 동경에서의 출세길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술만드는 일을 선택했을 때 그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국만드는 냄새로 가득한 술도가집 딸로서 그 냄새는 그에게 고향의 냄새고 사랑하는 오빠,가족의 냄새고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냄새다. 지난 10여년간 일본만화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수작들중 많은 양이 이른바 전문가,혹은 전문소재 만화임을 익히 알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특이한 소재로 승부하려는 소재주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일본사회에서 전문가(혹은 장인)의 가치가 높은 것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수 많은 '명인' 시리즈의 존재는 적어도 명인이 우대받는 가치관이 보편적이라는 말이 아닌가? [명가의 술]에는 수많은 명인이 등장한다. 술의 신 '마츠오'의 혀를 가졌다고 하는 나츠코부터 시작해서, 술 만드는 장인들, 농사의 명인들, 광고의 명인(..?이라고 할 수 있나?), 주류유통의 명인.... 이들 각자의 특징은 각 분야에 대단한 전문가일 뿐 아니라, 대부분 대를 이은 전문가라는 점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명인-장인-가업의 가치관을 수용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따른 채산성문제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작가 아키라 오즈는 때로는 생명농업운동가 고다의 벽력같은 선동과 실천으로, 때로는 죽음으로서 신화가 되어버린 나츠코 오빠 야스오의 환한 웃음과 신념으로, 때로는 신녀 나츠코의 가녀린 팔뚝을 빌어 단호히 말한다. '언젠가는 이것이 승리할 거야. 옳은 길이니까. 기다릴테다'라고 말이다. [명가의 술]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이상향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진다. 그 하나는 물론 '술'이다. 이 술은 물론 미주로서 대를 이은 장인정신 -> 극한까지 이를 때 하나의 예술적 성취로서 상징됨과 동시에, 이 성취를 위해 울고 웃고 살아가는 수많은 장인들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속에는 술 장인 뿐 아니라, 미주를 즐기는 사람들, 미주의 생존을 위해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주류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나가서는 미주를 만드는 원료인 좋은 쌀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두 번째로, 생명농업이다. 이 작품이 단지 소재주의,혹은 전문가만화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술 만드는 공정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술문화가 먹거리문화라는 점을 정확히 포착, 산업 자본주의 생산,유통체제 하에서 먹거리 본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음을 끝없이 환기시키고, 어느정도는 분석적으로, 또 대안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일본의 농업생산을 둘러싼 오염문제와 농촌사회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관점은 다분히 이데올로기 적이다. 그는 명시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유통방식이나, 주말농장등 현재 존재하는 여러 가지 대안농업의 실례를 다루고 있다. 이 실례들의 성공여부에 대하여 극중에서는 별로 성공적으로 나가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의 문제라는 관점을 명백히 하면서, 의식의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것은 생명의 길이므로 결국엔 승리한다는 신념표명으로 처리한다. 세 번째로, 생명농업의 문제와, 장인적 수공업의 결합은 결국 총체적으로 봤을 때, 하나의 재생산 공동체의 상을 만들게 해준다. 그것은 전혀 도시적이지 않으며, 전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어떤 섬같은 모습을 띤다. 걸맞는 사람들의 공동체...가령 농부가 깨끗한 쌀을 생산하고 장인은그 쌀로 미주를 만들고, 그 농부는 그 미주를 즐기고, 참으로 목가적일 뿐 만 아니라, 완벽한 생산자의 세상-바로 '술 만드는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가 일본의 현실은 아니다. 그리운 냄새를 찾아서 낙향하는 나츠코가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그의 직장상사, 동료, 혹은 가족들은 '난 이 지독한 도쿄 한가운데서 연금술사 되는 공부하느라고 바빠, 너같이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어'라고 단호히 등을 보일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접한 ) 일본망가의 세계에서, 이러한 가치는 열세라기보다는 오히려 대체적으로 우세하게, 공통의 가치로 합의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듯 보이는 망가의 세계에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이 가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 술꾼과 신녀 서두에서 채영신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무래도 채영신과 나츠코는 차이가 있다. 채영신은 돈도 빽도 없고, 나라마저 빼앗긴 식민지 지식인의 처지로서,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피폐한 농촌아이들의 미래를 들고 일어선다. 하지만 나츠코는 대대로 술도가를 경영해온 마을유지의 딸이다. 그역시 술밥으로 쓸 쌀을 일구는 단계에서 오염에 찌든 쌀을 먹고 클 아이들 미래를 걱정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당면 목적은 역시 최고의 술을 만드는 거다. 말하자면 채영신은 사회운동가이지만, 나츠코는 술 제작자, 아니 술 예술가다.오히려 [명가의 술]에서는 그런 나츠코의 위상의 순결성(?)을 위해서 고다라는 운동가를 아예 따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면 술 장인이란 무엇이고.술 예술가란 또 무엇인가?술과 나츠코의 관계는 극중에서 마츠오신(술의 신)과 신녀의 관계로 흔하게 묘사된다. 신녀라는 것은 삶에서 자기자신을 위한 부분을 포기해버린다는 의미다. 오로지 신에게 봉사하고 신과 사람들 사이에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치는 것이 신녀의 삶이다. 아닌게 아니라 동경생활을 포기하고 낙향한 이후로 나츠코의 삶에서 평범한 사람의 삶은 삭제된 듯 하다. 그의 결혼상대자 리스트에 오르는 사람들 조차 모조리 그의 술과 관계된 사람들이고, 결국은 그 술을 완성시키는데 도움을 준 쿠사카베와 맺어진다. 하지만 나츠코의 진정한 상대는 역시 마츠오신인 것이, 나츠코는 그의 술로 인해 배를 움켜쥐고 산고의 고통을 느끼기 까지 한다. 이 즈음에서 나츠코는 단순한 술 제작자의 신분을 떠나 더 멀리 나간다. 나츠코 주변의 많은 술장인, 그중에서도 원래 이 집의 술 공장 공장장인 야마다와, 그녀의 술을 완성시켜 그녀와 결혼한 쿠사카베는 전형적인 술장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어야 할 그들은 우선적으로 하나의 전문적인 기술자다. 예민한 혀와 후각을 소유하고있으며, 삶의 대부분을 술을 연구하고 만드는데 바쳤고 그들의 기술과 노하우는 시간적 수순을 따라 이어지고 전해진다.(책임감 있게)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술을 창조하는데 있어 필요한 신적 영감과 계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장인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술의 창작과정에서 그들의 혀가 가리키는 방향과 나츠코의 혀가 가리키는 방향은 일치하지 않는다. 나츠코는, 시간속에 서있는 장인들과는 완전히 단절된 완벽하게 새로운 술을 탄생시켜 하나의 예술가로 승화되는데, 이는 오로지 신과 신화가 된 오빠의 영감,계시를 통해서다. 즉, [명가의 술]에서 인식되는 예술이란 그 기초에 신과의 의사소통이 전제되고 있고, 나츠코는 술의 신녀인 한에서 예술가이다. [명가의 술]에서 형상화된 술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구성은 명백한 피라미드로 보인다.맨 위에 술의 신 마츠오가 있고 그와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혹은 그를 직접 대변하는 나츠코-예술가가 있고-그 밑에 그녀를 보필하여 술을 만들고, 그 기술의 대를 이어나가며, 인간세계에 전달하는 장인집단이 있고- 그 밑에 그 술과 기술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에 보답하여 자연과 신에 거스르지 않는 청정한 쌀을 키워내는 농부들이 있다. 이러한 구성체 자체는 신의 뜻이고, 이를 잠식하며 거슬러오는 최대의 적은 바로 도시-산업사회-자본주의적 경제논리-인간적 욕구- 금권적,이기적 논리등등에 해당한다. 거기에 덧붙일 것은 [명가의 술]에서는 대대손손의 가치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즉 이 구성체는 내적으로 안정되어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체되어있다.) 농민의 딸은 농부로 돌아가고, 술장인의 도제는 술장인이 되고, [명가의 술]2부에 나오는 나츠코의 할머니 역시 술의 신이 점지한 선천적인 술에 대한 미각과 재능을 소유한 신녀다. 결국 그들 각자의 '바른' 위치는 처음부터 결정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회귀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구성도는 단지 술과 쌀을 둘러싼 구성에 그치지 않고 망가세계의 다른 모든 주제들로 변형되어서 흔히 등장하곤 한다. .만일 같은 구성도를 만화라는 장르에 비추어본다면, 작가 아키라 오즈가 나츠코-신의 영감과 뜻을 따르는 예술가-가 되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지 안봐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이상적 미래라는 것이, 혹은 예술과 예술가라는 것이 반드시 그런 뜻인 것일까? 혹은 그래야 하는걸까?'라고 묻는다면 [명가의 술]은 명쾌히 대답해주지는 못한다. 그 자체로 그러저러한 질문에 대해 닫혀진 구조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명가의 술]이라는 만화와, 그 속에 묘사된 이상형의 최대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이라는 게 원래 어느이상의 회의나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한편, [술꾼]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속에서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우리라는 영역에 대해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 [술꾼]의 특징이다. 일단 우리사회에서 '술꾼'이라는 개념은 '알콜중독'보다는 '개똥철학'과 관계깊은 단어다.알콜중독이라는 말은 근대를 한참 지나서 근래에야 상용화된 병리학적 개념이고, 사실 흔한말로 '우리나라 성인남자중 50퍼센트가 알콜중독자다'라고 할정도로 엄격히 적용하자면 뭔가 우스꽝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좀 무리하게나마 만일 알콜중독자를 술마시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자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술꾼]에서 술꾼과 알콜중독자는 별로 구분이 안가는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 진정한 술꾼이라 말하려면 중독상태조차도 경험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나? 아무튼 좋게 봐줬을 때, 그만큼 술과 함께 한 오래고 다난한 경험속에 자기만의 '관'과 '취향'과 '방법'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꾼'이라는 접미어를 붙이는 용법과도 상통한다. 그러한 한에서 이것은 전문적으로 술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마시며 사는 사람, 즉 술을 통해 삶을 사는 또 하나의 방식에 관한 개념적 함의를 지닌다. 술꾼들은 툭 하면 술을 마시면서 삶과 세상에 대해 논평하고 토를 단다. 이걸 흔히 '개똥철학'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단 삶과 세상에 대한 관이라는 의미에서 '철학'으로 불리워지는 동시에 그것이 별로 체계화되지도 않고 중구난방에다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때로는 호기와 허세뿐인 헛소리에 불과하기 일쑤이므로 개똥..자가 붙는다. 말이 길어졌는데, 말하고싶은 것은 이 술꾼들의 수작인 개똥철학이 주로 다루는 것이 신이 아니라 구체적 사람의 구체적 삶과 감정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명가의 술]처럼 단정하고 논리적인 구조물을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열려진 대화모드다. 미주를 만들고 맛보므로써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가까이 인식하고 다가서려 하기보다는, 싸구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그 취기를 통해 서로의 입을 열고 그 삶에 대해 희노애락을 같이 하려는 것이다.그래서 술꾼들은 미주를 애써 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은 술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자기자신, 혹은 술상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의 '예술' 역시 그들의 술에 있지 않과 술 마시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이런...또 하나의 개똥철학..? ^^) 만드는 축과 마시는 축, 사실 이런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다. 나는 앞장에서 적어도 망가의 세계에서나마 일관되게 합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장인, 예술가에 대한 가치의식을 지적했다.흔히들 우리나라는 장인천시경향이 있고, 그것은 사농공상을 구분하는 유교적 가치기준때문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유교적 계급구분이나, 대를 이은 직업제한은 사라진지 오래다. 정작 각 직업과 계급을 확고히, 선천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망가세계가 보여주는 '가치관'과 더 부합한다. 단지 각 위치에 대해 고유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매시기 상황에 따라서 그 지위의 무게중심이 조종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닫혀진 구조안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추구'는 언제나 그 극한, 혹은 꼭대기를 향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술꾼]의 세계는 그런식의 직업과 관련한 안정적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미리 정해진 위치가 아니라, 현재 위치가 있을 뿐이고, 그 위치가 지금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기가 팍팍한지,괜찮은지, 앞으로도 그럴지,아닐지,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될른지, 어떨지 언제나 의문부호와 변화가능성으로 꽉 차있다. (물론 이 변화가능성의 실체는 모호하다. 우리사회에서 신분이동 가능성은 이미 신화화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단,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가치관속에서 그 신화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 무엇인가에 대한 추구는 한편으로는 왜곡된 금권주의나 졸부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가 이은홍의 경우도 포함하여 ) 위치변동, 혹은 역관계변동, 뒤집기등과 연결된다. 그 어떤 경우든, '무엇인가에 대한 추구'는 '밖'으로 향한다. 정해진 것 '안'에서 극한이 아니라, 정해진 것 자체를 회의하고 흔들어버리거나 뒤바꾸는 것.
6. 마시는 작가? 만드는 작가? [술꾼]이나 [명가의 술]이 공동으로 갖고 있는 미덕중의 하나는 술 자체 이전에 술을 둘러싼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하나의 소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각자의 관점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양 작품이 주목하는 '관계'의 초점 마저 틀리게 만든다. [술꾼]의 경우 앞서 말한 대로 술의 소비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의 내면적 모순-그것이 내면화되어있고, 어떤의미에선 슬프므로 '한'이라고 불러도 될까?-를 여러 시간과 공간, 계층, 성별, 그리고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에서 엿보고 있다. 한편 [명가의 술]은 술의 생산문화라는 소재를 매개로 하여,(혹은 거기서 출발하여) 산업사회로서 일본사회의 가치관과 미래에 대해 재고할 것을 강력히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화자의 위치와 말하는 방식의 차이까지 이어지는데,[ 명가의 술]의 간접적인 화자-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수단은 열혈소녀라는 주인공이다. 서두에 드라마적 재미요소로서의 열혈소녀 설정에 대해 언급했지만, 사실은 단지 재미요소를 넘어서, 예술가-신녀라는 상징성과 함께, 가녀린 소녀의 투지라는 이미지 자체가 도덕적 가치관에 입각한 장기적인 계몽운동의 힘없음 (자본의 거대한 힘을 생각해보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끈질김을 상징하고 있다. 즉, 여기서 나츠코라는 주인공은 예쁘장한 스타도 아니고, 작가 개인을 상징하는 것도 아닌, 작가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운동세력의 인격화, 혹은 신의 뜻의 메신저라고 보인다. 명백하게 말해서, 아키라 오즈는 선전,선동하고 있다. 그것도 상당한 테크과 설득력을 가지고 말이다. 한편, [술꾼]의 경우 화자는 명시적으로 작가자신인데,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다루는 프리즘속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며, 그러한 한에서 이야기를 건네는 태도를 견지한다. 가령 그가 하는 이야기는 보통 술자리에서 나오는 추억담이며, 비아냥이며, 한탄이며, 욕지거리와 그리 크게 틀릴 것이 없다. 하지만 보통 술자리에서라면 하룻저녁 술상위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날아가버릴 그 이야기가, 아주 가끔씩 언론에서 단발적인 사건논평으로 잊혀져버릴 그 이야기가, 만화와 텍스트로 인쇄되어 '남겨진다'. '남겨진다'는 것은 그에 관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담론의 재생산 가능성을 의미한다. '....(전략) 10년동안 난 운동권공식 지정 만화가로 그 소임을 다했다....(중략)나는 작가가 아니라 선전활동을 하는 노동운동가라고...(중략)..하지만 사람들이 내게 훤한건 오직 만화라는(주, 선전활동이 아니라!) 명확한 사실. 나는 만화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중략) .' 이 구절은 작가 이은홍이 책 초반에 자신의 만화가로서의 소사를 밝힌 부분중 일부이다.인용상 생략이 많아서 좀 헛갈릴 수도 있겠지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의 만화가로서의 운동방식에 관한 것이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사회비평을 해왔던 그는 사실은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만화가인 것이고, 그가 하고픈 말은 만화를 통해서 남겨지고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선동'혹은 '선전'하지 않는다. 단지 삶속에 들어가 같이 호흡하고 그 호흡의 내용을 만화책으로 남긴다. 물론 사람많은 시장에. 그 순간 그 내용은 개인을 뛰어넘어 소비자 모두의 자전적 이야기로서 남겨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잇는 것이다. 술 한잔 받으시죠. -같이 마시며 이야기해보시죠. 이 사회에서 산다는 것, 적어도 술마시는 자리는 언제나 즐겁고 평화로왔으면 하는데,...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요. 두 작품 [명가의 술]과 [술꾼]은 각 작품의 내용과 철학에 걸맞게도, 한쪽은 마치 신의 깃발을 든 잔다르크처럼 나를 따르라고 선동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어이 한잔 합시다,라고 말을 걸어온다. 끝까지 멋진 일관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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