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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이언 맨'을 비평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나에게, 차라리 그와 비슷한 한국만화를 평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권유가 들어왔다. 귀가 매우 얇은 나는 즉시 그 제안을 받아들여, 배금택이란 작가를 비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나에게 영심이는 아련한 청소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만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미운 오리새끼 같이 좌충우돌하는, 무언가 어설프고 엉성하고 풋내 나면서도, 산뜻하고 상큼하지도 않은... 그렇게 이상야릇했던 내 청소년기의 냄새를 이 만화에서 맡을 수 있었다. 순심이같은 여동생을 가진 미운 오리새끼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를 보면서도 나는 영심이를 떠올렸다. 그런 영심이를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약간은 즐겁기도 했고 약간은 괴롭기도 했다.
이 글은 배금택 만화에 나와 있는 섹슈얼리티(라고 배금택이 그린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 점에서 그의 성인만화들과 '국민만화' 영심이 간의 연계를 분석해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상의 특성, 서사 구조, 다른 작가와의 연계, 독자층, 그리고 그의 전공이라고 하는 경마에 대한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왜 배금택인가'라는 질문에는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금택 이외의 신문연재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읽고 비교분석해야 하는데, 나는 굳이 한희작, 강철수 등의 작품을 찾아서 열심히 읽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읽는다고 해도 내공부족으로 의미있는 분석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배금택의 데뷔작은 '미스 도돔바'이고, 그간의 작품으로는 '14살 영심이', '종로 고금소총', '변금년뎐', '종마부인', '경마, 렛츠 고', '천일마화', '벽계수뎐', '0자병법', '인간아! 인간아', 그리고 인기 단편을 모은 '男과 女'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매우 많은 작품이 있지만, 계보학을 만드는 것 역시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체계적인 목록을 모으기도 힘들다.)
배금택의 만화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 인터넷을 뒤져서 웹 상에 연재되는 만화를 두세 쪽이라도 읽어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배금택의 만화에서 다음과 같은 요소를 추출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통제불가능한 성욕은 본능이다.
*여자의 성욕은 본능이 아니라 몇몇 색기를 타고나는 색녀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에로틱한 모든 것은 성기( = 질-음경)에 집중되어 있다.
*남자는 큰 것을 바라고 여자는 큰 것을 밝힌다.
*큰 물건을 가진 남자가 우위를 점한다.
*처녀라면, 처녀막 파열시 반드시 매우 큰 통증이 따르기 때문에 성적 흥분이 불가능하다.
*처녀가 아니라면, 남성의 성기가 -비록 강제일지라도- 삽입되면 반사적으로 흥분된다.
*즉 삽입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고 희열을 느끼면 처녀가 아니라는 증거다.
*빵빵한 가슴, 엉덩이, 꽉 조이는 질을 가지는 여자는 그러한 자신의 신체 권력으로 남성을 농락한다.
*이런 권력을 가진 여자의 인생 목표는 젊을 때 실컷 즐기다가 돈 많은 남자를 낚아채어 질주름(처녀막) 재생 수술을 받고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자의 얄팍한 수작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결과로 끝난다.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은 모두 일회적인 해프닝으로 희화화될 수 있거나 상당한 액수의 돈이면 처리될 수 있는 문제이다.
*남자이성애주의자들이 여성의 질을 최종목표로 잡듯, 남자동성애자들은 남성의 항문을 최종목표로 잡는다.
*성기가 큰 남자는 정력이 반드시 좋으며 발기를 자주, 오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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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그의 단편은 위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전제들을 몇 개씩 조합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성기중심적인 소재를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내어, 그 소재를 중심에 놓고 이리저리 끼워맞춘 것이다. 그리하여 성적인 코드의 일부분을 확대하여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피소드에서 에피소드로, 절정에서 절정으로 건너뛰어,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성기를 노린다는 것 말고는 어떤 개연성도 없다. 그리고 뻔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로, 전혀 극적이지 않은 반전이 매번 반복된다. 하룻밤의 성욕을 달래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떠도는 남과 여, 그들이 만나서 꿍꿍대는 것이 시작이자 끝인데, 그들은 성에 너무나 집착해있는 나머지 다른 것에는 신경쓸 여력이 없다. 오로지 신경쓸 것은 섹스뿐이기 때문에 '프리 섹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프리 섹스'에도 어겨서는 안 되는 철칙이 있다. "여자는 언제나 건드려짐을 당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유혹의 직전까지 성욕을 표현하면 안 된다". 즉 최후의 결정타, 또는 최초의 행동개시는 반드시 남자가 해야 한다. 여자는 적당히 저항하지만 옷이 찢겨지고 성기가 들어가면 이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여 이성을 잃는다(성기 삽입에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동물적인 존재!). 이같은 어설픈 프리섹스주의와 난폭한 보수주의가 하나같이 짜증나긴 하지만, 나에게 가장 짜증나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광범위한 폭력은, 단지 행복한 성기결합으로 해소/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고 해도, 잠시 후 삽입성교로 아내를 흥분시키면 -둘이서 떡을 치면- 그것으로 아내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물리적인 폭력 후 당하는 강제적인 성관계가 여성에게 극도로 치욕적이고 공포스러운, 또 하나의 폭력이란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배금택 만화에 나오는 여성상을 살펴보자. 일단, 여자는 성욕을 타고나지는 않지만 질주름(처녀막)이 파열되고 질에 '길'이 닦아지면 몇몇 밝히는 여자는 그 분야에 도가 트게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즉, 건강한 자연인으로서 평범한 여성이 성욕을 가지는 경우는 없다. 성욕을 가진 여자는 특이한 여자, 색녀다. 게다가 그 성욕이 충족되려면 반드시 발기된 남자의 성기가 필요한 것이라서, '좆에 환장해서 안달하는' 여자는 아주 웃기지도 않게 보인다. 좆에 환장한 결과 여자는 '강간이라도 당해서 성욕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고, 만일 '강간당할 정도의 성적 매력'도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여자로써의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옆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는 위에서 말한 "빵빵한 가슴, 엉덩이, 꽉 조이는 질을 가지는 여자"이며 그러한 자신의 신체 권력으로 남자 하나 후려보려고 한다. 그런데 어리버리하고 매력없는 남자 하나가 자신을 계속 에스코트(정확히 말하면 스토킹)하며 멋진 남자와의 만남을 방해하자, 그를 수면제로 잠재우고 멋진남과 화끈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멋진남과 보내게 될 화려한 미래에 도취되어 있다. 그러나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결과를 맞고, 그 때 못생긴 순진남의 지고지순한 스토킹(헉!)을 왜 받아들이지 않았나 후회한다.
기본적으로 여자는 모두 다음과 같다; 단순하고 물질적인 허영을 추구하며 허영심을 만족시켜 줄 남자를 찾는다. 그래서 유난히 부티 나는 남자(유부남?)를 찾아 헤매는데, 그 계획이 뜻대로 안 될 경우에는 신세를 망치게 된다. 신세를 망치게 된다는 것은 아주 형편없는 남자를 만난다거나, 윤간을 당한다거나, 창녀로 전락하게 됨을 말하는데....이런 일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남자를 갖고 놀려고 했던 죄로 인한 인과응보처럼 그려지기 때문에 만화를 읽는 남자 독자는 죄책감으로부터 아주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처녀막'(이 '처녀막'이란 단어는 '처녀'와도 상관이 없고 '막'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이 글에서는 '질주름'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사용하겠다. 참고 : 언니네 페미사전)은 누구에게나 있고 첫 성교 때 파열되어 반드시 피가 나오고 여자에게는 엄청나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배금택은 그렇게 믿고 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처녀성'이라는 자신의 재산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마구 굴리다가 질주름(처녀막) 재생 수술로 남자를 속여보려고 하는 여성도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그런 여성 역시 -감히 남자를 속여넘기려 한- '괘씸죄'로 언제나 신세를 망치고 만다.
질주름(처녀막)에 대한 신화를 재생산하는 동시에, 배금택은 월경에 대해서도 섹슈얼리티를 입혀 보려고 노력한다. 현실의 여성들에게 월경은 그저 일상일 뿐인데, 배금택 만화의 여성들은 월경의 유무를 남자들에게 열심히 어필하려고 든다.
한편으로 여자는 마음이 한없이 약해서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만병통치약처럼 나오는 이놈의 '진정한'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쉽게 동정과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만다. (옆의 변금련은 순박한 시골 처녀였다가 소동팔에게 강간당하고 복수를 별러 왔으나, 소동팔이 해소될 길 없는 성욕을 타고난 자신의 신세한탄을 몇 마디 늘어놓자, 마음이 풀어지고 바로 그 남자와 결혼까지 결심하는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소위 '백치미'를 지닌 여자는 바로 남자들이 최고로 다루기 쉽고, 어떻게 막 다루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그런 여자다. 말 그대로 남자를 위한 백치이다. 막 굴리고 난 후에도 '진정으로 사랑해서 그런 거다, 네가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불쌍한 척을 하거나, 돈 몇 푼을 주기만 하면 마음이 누그러지는!!
하지만 그런 여자의 그런 순정도 끝끝내 짓밟혀서, 여성은 끝까지 유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바보임이 밝혀진다. 이것은 살아남고자 하는 여성의 어떤 몸부림도 헛수고로 끝나고 마는 현 사회의 심각한 모순을 폭로하려는 작가 배금택의 우회적 문제제기일까?
예를 들어 우리는 그렇게 애써 '변금련뎐'을
"성폭행은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극대화되어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 작품은 갑자기 주어진 물질적 풍요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쾌락과 욕망에 몰두했던 우리 사회(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의 일그러진 단면을 집약시킨 사회성 강한 작품이다"(씨네21, 98호)
라고 읽어 주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만화에서 가치를 읽어내기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 걸까? 아니... 도무지 그렇게 읽어 주기에는 그 피해자 여성을 껄떡대며 난도질하는 그 시선이 너무 잔혹하다. 나는 그 사시미 같은 시선에 나도 역시 저며지고 있다고 느낀다.
자, 우리의 열네살 영심이는 과연 어떤가.
영심이는 무지 밝힌다. 그것도 무지 추하게 밝힌다. 돈 많고 정력 센 남자를 밝히는 설정은, 영심이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빈티 안 나게 멋지고, 핸섬하며 근육질의 잘 빠진 오빠'에게 홀딱 반하는 은유로 옮겨진다. (배금택의 다른 만화에서 킹카로 등장하는 남자들과 영심이가 짝사랑하는 남자들의 외모/성격이 일치한다.) 영심이는 아직 어리지만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자로서, 돈과 섹스라는 세상살이의 핵심을 동물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겸비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힘껏 달려가기 시작한다. 추하게 밝히는 영심이의 몰락은, 다행히 아직 영심이가 어리기 때문에, '가정과 학교의 보호' 아래 그냥 망신살만 뻗치는 것으로 그친다. 영심이가 좋아하던 오빠는 영심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족들은 영심이를 한심하게 여기고 학교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영심이를 비웃으며 영심이는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정도. 만일 스물네살 영심이가 추하게 밝혔다면, 신세를 이래저래 망쳤을 것이다.
영심이는 돈도 밝힌다. (왜? 여자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의 사치품에 자극받아서, 어떻게 허영심을 충족시킬까 고민한다. 이 때 순심이가 나타난다.경태와 여우 같은 동생 순심이가 합동작전으로 자신을 구워껜쨈募?것도 모른 채 또다시 속임수에 빠진다. 순심이가, 법적으로 파혼당한 쪽에서는 약혼 예물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며 경태에게서 약혼반지를 받아낸 후 파혼당하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쫓아다니는 경태와 약혼해서 금반지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영심이. 여기서도 혼전섹스가 약혼이라는 은유로, 섹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약혼반지라는 은유로 옮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이라는 고정적인 상품을 제공하는 대가로 반드시 그럴 듯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이런 영심이가 나이가 들면 자신의 질주름(처녀막)을 책임지라며, 또는 임신했으니 책임지라며 돈 많은 남자를 따라다닐 것임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중학생인 영심이는 약혼과 동시에 정당화되는 경태의 성적 접촉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경태는 약혼자니까 당연히 어깨동무할 수 있고, 껴안을 수 있고, 뽀뽀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영심이는 그 말에 따른다. 싫어도 약혼자니까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결혼은 막무가내의 성관계를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제도라는 은유이다. (그러므로 아내 강간은 죄가 되지 않는다.) 이미 한 남자에게 귀속된 여자는 그의 요구에 어떠한 거부도 해서는 안 된다고 배금택은 믿고 싶은 거다.
게다가 남자가 결혼할 여자에게 많이 주는 비싼 선물은, 어차피 결혼이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하기 때문에 결혼 전에 하는 적당한 투자라는 음흉한 사고방식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굴욕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상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약혼반지를 사수하려는 영심이의 노고는 역시나 헛수고로 끝난다. 파혼을 당하기 위해 온갖 지저분하고 추한 짓을 다 하지만, 영심이의 쪽만 팔리고 고생만 할 뿐 경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영심이가 지레 지쳐 파혼당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이 파혼을 선언하여 약혼반지를 돌려주고 만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무한 루트.
동네에 불량배들이 출몰한다. 동네의 여학생들이 한 번씩 손목을 잡힌다. 영심이만 희롱을 당하지 않는다. 영심이 자존심이 상한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노처녀 또는 과부가 강간당하고 싶어하지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는 강간범 때문에 속상해한다는 내용의 잔인한 농담 말이다.
자신이 성적 매력이 없다고 고민하는 영심이... 그래, 그 심정 이해가 간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성적 매력이 남자에게 건드려짐을 당하는 것으로 검증되어야 하는가? 여기에서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손목을 잡히고 찝적댐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져있지만, 나이 든 영심이는 아마도 왜 자신을 덮치는 남자가 없나를 고민할 것이다.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남자는 성폭력을 가해야 한다고. 훗.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학교에서 단체로 극기훈련하러 갔다. 영심이는 발을 삐끗하고 낙오되어, 산에서 경태와 하룻밤을 지샐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경태는 불을 피우고 영심이를 보호해주며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영심이는 경태가 자신을 건드리지 않은 걸 새삼 고마워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경태는 2% 부족한 걸 채워주지 못한다는 식의 야릇한 말을 남기고 뛰어간다.
여기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와 남자가 바캉스에 갔는데, 여자가 텐트 안에 금을 그어놓고 '너 이 선을 넘어오면 짐승이야!'라고 해서, 남자는 밤새 고민하다 금을 안 넘어갔다. 다음날 아침 여자가 화를 내며 '너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야!'라고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세상에! 대체 영심이에게 여자의 NO는 YES라고 누가 알려준 것인가. 이쯤 되면 배금택의 국민만화 영심이가 끔찍스럽게 느껴진다.
영심이는 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월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에로틱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인지 영심이가 입을 열면 주위 사람들은 대경실색한다.
정말 성이 생활의 일부라면, 그것도 중요한 일부라면, 왜 성을 담담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일까? 만화에 나오는 한, 영심이는 성에 대해 무지하고 순진하다. 이런 영심이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둔갑하는 그 순간은 언제일까? 젠장, 섹스를 섹시하게 그리고, 청소년과 성인을 분리해내어 배금택이 얻는 효과는.... 아마도 자신의 만화 같은 에로물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일 게다.
그래서, 바보같고, 당하기만 하고, 성에 무지한 여성은 나이대만 달라진 채로 영심이-변금련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배금택 자신이 말하길, 90년도에 스포츠 서울의 판매부수는 30만부였다가 93년도에 '변금련전'이 연재되면서 1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아마 자신은 아직도 외압 때문에 붓을 꺾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 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만화가 괜찮은 성인 만화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성기의 명칭을 직설적으로 발음하지 않고 '응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배금택 수준의, 한국적이고, 해학적인 성인 만화인가? 현실의 여성과 한참 동떨어진 여체들을 날이면 날마다 그려 대면서 모종의 교육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신하기까지 하는 건 더더욱 참을 수 없다. 그 모욕적인 시선이 나와 내 친구들에게 그대로 투사되는 것이 느껴지기에. 배금택 만화를 편하게 읽는 남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여자들이 불편하게 사는 세상이 되는 거 아닌가.
아아.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무식한 이야기들로 도배가 된 만화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누가 나서서 배금택 아저씨에게 성교육 좀 시켜줄 수 없을까?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텍스트에 충실한 비평(^^;;;;)을 하기 위해 나는 단행본 '열네살 영심이'를 찾아 대여점 30여군데, 만화방 20여군데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영심이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부천만화정보센터까지 찾아가야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한국만화로는 드물게 두 번이나 애니메이션화되었고, 한국만화로는 더더욱 드물게 영화화까지 되었으며 -그 때 당대의 최고가수 박남정, 당대의 최고배우 이경영이 출연했다- 기념우표까지 발행된 인기만화를 찾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인기만화가 이 정도라면, 당시 인기가 없었으나 재해석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필화사건(?)에 휘말려 공개되지 못했으나 재발굴되어야 할 작품은 아예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국만화에 대한 계보학적인 분석 따위는 아예 불가능한가 하는 암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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