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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2001.9.23. Bing7 Studio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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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를 풀러가면서 다소의 잡담과 함께 슬슬 질문을 시작) - 안녕하세요... 우선, 독자들을 위해서 스튜디오 구성원을 소개해주세요. 8:
총 3명입니다. 형(이병승), 동생(이병철)이 있고... 또 "시다바리"(주영이라고
하는데, 돈 많이 준다고 속여서 2년전에 데려왔습니다. 원래는 형제끼리
하면서 맨날 싸웠는데, 2년전에 쓱싹쓱싹... 컴 관련으로 흥미있다길래
한번 해보지 않겠냐?하고 권유했지요. -
작업에 대해서 한말씀... 7: 작업은 Mac 아닌 PC로 하고 있습니다. 8: ('-' 들에게) 담배 피우실래요? ... 7:
저 같은 경우는, 담배를 피면 손이 떨려서 안피워요. - 처음에 시작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일본 진출을 먼저 염두에 두셨다고 하셨는데요. 7: 95년에 형이 사진관을 차리고, 제가 화실을 같이 차렸어요. 처음엔 4명... 그림그리는 사람이 2명이었죠. 그때 저는 컴맹이었어요. 그런데 돈 안되니 다들 나갔고, 600만원어치 컴퓨터 장비만 덜렁 남았어요. 그래서 혼자 계속 공부했죠...포토샵 등. 그때 (지금 일어번역해주는) 친구가 일본 잡지를 하나 들고 와서 그쪽 응모전이 있다고 알려줬어요. 한번 전화해봤더니, 그쪽에서 원고를 fax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그래서 2p 분량을 보내줬죠...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다시 10p를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보낸 것은 고교시절 그림이었는데...사이트에도 올라와 있는 그 그림입니다) 다시 20-40p 보내달라고 또 요청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슬 질에 대한 욕심이 나서... 친구는 손으로 하라 했으나, 오기가 나서 컴작업을 고집했습니다. 원래 일본에 대한 반감이 좀 있어서 기 죽일려고 생각한거죠. 일본 반감이 생기게 된 계기는 고교때 들은 옛날 미야자키 하야오 방한 이야기였는데... 당시 3박 4일동안 한마디도 안했다고 합니다. 다카하다 이사오 어머니(한인출신)가 다 대답했다더군요. 공항에서 나갈 때 하야오가 딱 한마디 했는데, "한국에는 인재가 없다"라고 했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래소년 코난' 하청 때 한국 하청업체들이 그림을 망친 것 때문이었다는 군요... 한국인, 흑인 등을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언젠가 동아시아 만화가 모임에서 서로들 눈치 보고 있는데...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우리가 만화 형님이니 먼저 이야기를 꺼내겠다'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런 행동들을 듣고 나니 매우 기분 나빴죠. 그래서 일본 연재에서 한국인의 이름 3글자를 드러낼 생각이 있었습니다. -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화들이죠...-_-; 컴작업을 계속 고집하신 데에는 극일 욕심이 작용했다는 말씀이시군요? 7:
컴 작업을 하느라고, 300Mhz 급이 처음 나왔을 때 그 비싼 물건을 구입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40p 만드는 데 3개월 걸리더군요. 그리고 일본기자를
만났는데... 그림은 누구에게 배웠나? 해서 혼자 했다라고 대답했더니,
"...달인이군"이라고 하더군요. 그림에 대해선 논할 것이
없으나 스토리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그 기자는 하와이로
휴가 갈 예정이었는데도, 스스로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났는지 어쩐지
다른 기자한테 넘기지 않고 그냥 남겨두고 가라고 하더군요. 출력해서
보니 스크린톤 아닌 full-digital이라서 신기해하면서도 우려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저희는 쉽게 하는 그림체를 원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아이러니는, 제가 일본만화를 7년여 동안 안 봤는데, 다시 보니 일본만화
그림 수준이 너무 낮아 보이는 것이었어요. 일본기자가 원한 건 10대가
쉽게 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대사가 너무 적다고
하더군요. 4-50페이지 안에 주인공의 소개와 눈요기등이 모두 들어있어야
한다. 이건 내레이션도 없고 해서 영화같기는 하지만..., 고 기자가
말했습니다. 여하튼 원고를 한 부 복사하고, 그 기자는 하와이로 휴가갔습니다.
그 뒤에는 '후타바샤'('크레욘신짱' 등)에 원고를 들고 갔습니다. 아까
갔던 '슈에이샤'(정리자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확실한 메이져)와는
달리 소규모였죠.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 와닿았습니다. 대하는
태도 등이 전혀 달랐죠...그래서, 일본을 더 알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쪽 기자는 응모해도 좋겠다, 좋은 결과가 있겠다고 해주더군요. 하지만
저는 응모가 아니고 연재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30p를 우선 줘보라고
하더군요. 슈에이샤는 30p하면 무조건 실어주는데, 반응을 절대적으로
볼 것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큰데서 하면 글쎄... 기자가 함부로 개입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복선을 해치면서도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죠. '후타바샤'는
어느정도 작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98년 여름, 이쪽에다가
70p를 주기로 되었습니다. 오토바이 만화였죠... 그런데 또 욕심 부려서 기죽여보려고 발동이 걸렸죠... 먼저 원고를 오타쿠들에게 보여준 결과, 이게 나오면 엄청 성공할 거다, 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이 퀄리티면 그림만으로도 대박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결정적인 한국인의 핸디캡이라면, 바로 웃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일본인들이 원하는 바로 그런 스타일, 그들의 문화의 일부를 파고들지는 못하는 거죠. 그런 부분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림과 전개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컴작업을 위해서 12대의 오토바이 모형을 만들고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당시 2천만원 고가모델이어서 구입 못했죠. 필름스캐너 등을 사용하려 했으나, 이게 전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오토바이와 사람을 같이 그리는 것은 쉽지만, 오토바이 사진을 놓고 사람을 그 위에 입혀서 그리기란 어려웠던 겁니다. 게다가 당시 최신버젼이었던 포토샵 4.0은 성능이 미비했어요(Undo도 한번 밖에 안되고). 게다가 모형과 길도 각도 맞추기(광각 등)가 너무 난해합니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 없이, 모든 각도를 전부 사진찍어서...(-_-;) 모형 만드는데 한달 반 걸리고, 그 뒤 죽어라 스캔했습니다. 원래는 후다닥 유명해지고 하야오에게 '봐라, 이래도 인재가 없단 말이냐' 하고 항의하려 했으나...어렵더군요(^^). 그 뒤 오기로 장비를 계속 보충했습니다. 망원 렌즈 등도 구입하고. 하다보니 80p로는 안되겠다, 한권으로 가자, 라고 되버렸습니다. 이번에는 디지털의 이점을 살리자고 해서, 방안에서 대부분 일어나는 일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이미 '타마토리'는 1000p 콘티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구상한 것 중 뽑았죠. 그리고 뒤에 이것저것 더... 대사는 거의 없이, 남상수 씬, 회사 터지는 씬 등 추가했습니다. - 그래서 '퀸'을 구상하신 것이군요. 7:
그런데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방이 너무
좁아서 초점을 못맞추는 거죠...화각이 안나옵니다. 세트도 아니고...
게다가, 사람 모델도 없었습니다. "서주세요..."하고 부탁하면
"벗는 것 아니에요?"하는 실랑이의 연속이었죠. 결국 '비스트'는
주영, 남자주인공은 형, 여자주인공은 형수님이 서주셨어요. 현실 공간인
세트의 문제...사실, '반딧불의 묘'(정리자 주: 다카하다 이사오의 애니)도
세트 세우고 사진찌겅 참조자료 삼아가면서 그린 겁니다. 실물공간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상상력만으로 제대로 된 공간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퀸'의 경우, 방안 후레시 나온 것을 수동으로 일일이 다
지우다가 결국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야 말았습니다(초기의 고가
모델...-_-;). 이제는 좀 쉽겠지 했는데... 다른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고공씬은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그래서 형이 또 엄청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부분은 직접 필름으로 작업하다보니... 8: 수천장을 직접 찍었죠...(ㅜ.ㅜ) 7:
풍선에 매달아서 한번 해보자...했는데, 터져서 안된다고... 그 다음엔
모형 헬기 대여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싸고, 도심에서는 안된다고
하더군요. 이 이상 안된다, 하면서 형이 카메라를 던지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그때, 건물을 밑에서 찍고 거꾸로 돌리자, 라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일본 도심의 경우는 미니어쳐로 시도해봤으나(이것 만드는데도 물론
수십만 깨졌습니다...) 초점이 한곳만 맞더군요. 시행착오로 수천만
깨졌을 겁니다. 게다가 유리 깨지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포토샵 만화
기법책도 최근에야 한권 나왔죠(3-4년만 일찍 나왔어도...) 하지만 터지는
씬 등은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연기를 손으로 그려서 넣자니까, 또
디지털하고 안맞고 말이죠. 그래서 후반부 몇 페이지를 위해 다수의
액션영화 DVD도 구입했습니다. 총구의 불빛을 묘사하려고 매트릭스만
100번 이상 본 것 같습니다. 폭파 씬, 총격씬 등을 연구했죠. 계속 보고
또 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포토샵으로 구현하도록 연구했죠. 당시는
파일이 좀만 커도 컴퓨터가 꺼졌습니다. 레이어, DPI 커지니까 불안정해지고.
효과까지 다 넣었는데 친구가 와서 "어, 효과글이 이게 아닌데?"
했을 때 장난 아니었죠... 당시는 일어지원이 안됐거든요. 워드에서
복사해서 카피를 일일이 해야 했습니다. 일어지원을 위해서는 일어윈도우가
필요했고. 일어는 또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크기, 식자 부위 등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들 착각하기 쉬운 것이 일본 글자로 번안하기가
쉽다는 것인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간판 글자도 바꿔야 하는데...이
부분은 자존심 때문에 영어로 넣었습니다. - 그리고 원고를 들고 일본으로 가셨군요. 7: 원고를 들고 일본으로 가기 4일전, 대사를 쳐넣어 친구가 붙이겠다고 했죠. 그런데 ?澎邦?일어 한문 간자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관계상, 일본에 가서 손이 부르터라 다시 대사 파트를 썼습니다. 파일을 사다가 전산 스티커를 오려서 다시 다 붙였죠. 친구녀석은 불쌍하게도, 3일 꼬박 다시 대사를 썼고... 다행히 1시간정도 늦었는데도 그 쪽 기자가 화 안내더군요. 결국 완성해서 가져갔습니다. 출판사 12개를 돌아다녔는데, 호응은 좋았습니다. 모두, '누구한테 배웠냐','왜 일본에서 하냐, 그 실력이면 한국에서 프로하지'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좀 더 상황들에 익숙하다 보니, 대처도 의연해졌습니다. 제 대답은, "배우러 왔다, 니네가 형님이니."였죠. 그런데, 전에는 그 쪽 사람들이 철저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직업'이라서 하는 것 뿐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엉뚱한 질문에는 대답 잘 못합니다. 그리고 일본 연재 진출작 '좀비 헌터'에서 스토리 작가를 일본인으로 썼던 양경일 씨도 이해가 갔습니다... 조금만 자기네 감수성에 어긋나는 것도 거부하거든요. 한 곳에서는 기자분이 원고를 보시더니, 내용은 안보고 그림을 좋아하더군요. 그 분이 만화가 이상하다, 어렵다고 해서, 몇가지 질문을 했죠.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등은 한번에 이해했냐?"고 물어보니, "저는 SF 싫어해요." 라더군요. 그래서 결론 내린 바는, "이 여자분은 빽으로 들어왔다" 였습니다 (^^). 원고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도, 그 윗선에서 결정을 내립니다. 부장이 오면 한마디도 이야기 못하는 분위기죠. 만화를 아는 사람이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로 판단을 내립니다. '우리가 당신 작품 해주고 싶으나, 연재 없이는 단행본 안 내준다' 라는 것도 공통된 반응이고. 해주는 곳이 작은 곳 하나가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못찾았습니다. 일본은 약도도 없이요... 길을 물어보면 일본인처럼 생겼다고 길도 안알려줍니다(...일본인들은, 외국인에게는 친절하지만, 일본인이 길을 물어보면 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청 헤맸습니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면 누가 들고 오더라도, "당신들은 어차피 신인이다|"라고 합니다. 자신감보다 자존심이지...그 전에 여러 한국인 왔으나 그림 개판이라 반려했다 합니다. ...사실, 연재없이 낸 것은 오토모 가츠히로의 초기작 한편이었죠(정리자 주: '도무童夢'). 그 책을 낸 것도 '후타바샤'였죠. 지금 그런데 그곳도 변태물로 가고 있습니다. 후타바샤 그 분 충고가, "당신, 그림엔 재능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러나 이름이 나야한다. 노선 안에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 제가 보았을 때 일본기자들의 결론은 진짜 일본인이 원하는 소재를 위해서는, 와서 사는 것이 좋다...그래도 한국인이 일본을 소재로 사용하기란 어렵다."였습니다. 기자와의 관계라는 것이, 사실 일본만화 'GTO'의 경우도, 결국 마지막엔 기자 3명이 글쓰고 만화가는 그림만 그리는 꼴이 되었죠. 토리야마 아키라도 마찬가지고. 기자들은 흥행을 보고, 그것을 가르칩니다. 도리야마 아키라도 처음 2년간 계속 반려당하다가 '닥터 슬럼프'를 탄생시켰죠. 미국이나 유럽은 그런 관행이 없습니다. 반려면 반려지, 바꾸라고 하지는 않지요. '우리문화' 의식도 강하고. 어른도 슈퍼맨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태권브이 좋아한다 못합니다. 김국환씨 만화주제가 경력을 창피하게 느끼고 있는 나라입니다. 8: 우리나라는 애국심 어쩌지만, 실제보면 미국 유럽 선진국애들이 더 애국심 강해요. 우리나라는 실제 가져야 할 것들을 합쳐내지 못합니다. 일본 중국애들도 자국 이익을 제대로 챙기는데... 우리나라는 애국심이 형식만 남은 거죠. 7: 미국...이번 테러 사태 봐요. 한번 애국하자 하니까 다른 누구에 어떤 말도 안들어 버리고 꽉 막혀버리잖아요. (정리자주: 물론, 그것이 좋아보인다, 옳다 라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님. -_-;) 8: 캐나다 가니까...차이나타운 아니어도 중국가게는 중국어 간판이 대부분이더군요. 국민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 자체가 부족합니다. '정'이 요새는 없어요...-_-; 7: 전 만화책 다 사서 봐요. 지금은 돈이 없지만...차비도 없을 정도고. 뭐 취직해야죠. 일본의 한 잡지사는, 70년대에 표지를 흑백으로 낸 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들이 표지에 적기를, 우린 돈이 없어서 흑백 찍었으나, 여러분이 사주면 컬러로 해도 값을 안올리겠다 장담했죠. 엄청 잘팔렸고, 잡지사도 그 약속도 지켰습니다. 8: 한국인은 너무 속아서 지금 이렇게 된지도 몰라요... 7: 김청기 감독만 하더라도...지금도 집도 없습니다. 처음에 히트치니까 돈된답시고 투자자들이 모여서는, 맨날 졸속 제작에다가, 수입만 하고...그러니까 자꾸 감독 자신도 마인드가 변한거죠. 키워지기도 전에 부딪히면 상처만 남을 뿐입니다. - 잡지 연재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오호...그 동호회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7: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나중엔 12명이 되었죠. 하지만 결국 동호회를 일부러 파해버렸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하고 책을 만들 줄 알았는데, 서로 만화 본 것 가지고 자랑만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당시 활동하던 동호회를 수 십팀 봤는데, 만화책을 제대로 만드는 팀은 2개 밖에 없었어요. 우리하고, AAW하고... (정리자주: 나중에 김태형씨는 AAW에서도 계속 활동) 한번은 허영만 화실에 찾아갔을 때, 그쪽 문하생 분한테 "너는 문하생하지 말고 니 그림을 그려라", 라고 충고받았습니다. 스크린톤 많이 쓴다, 이 내용이면 1권 아니라 20권은 만든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는 사람 중에 펜터치 잘하는 형 있었는데, 오래된 펜촉으로도 가는 선 긋는 것이 예술이었죠... 문제는 다 베낀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 형한테, 같이 문하생으로 들어가자고 권유받았습니다. 그 형은 장태산 선생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현세, 장태산 선생이야 그림 잘그리나,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 그림을 그리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스크린 톤, 애니 화풍 등을 좋아합니다. 그에 비해서 아직도 이런 중견 작가분들과 그 화실은 '한국만화는 펜선이다'라는 식으로 인식이 박혀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톤을 고집하고 싶고... 결국 안들어갔죠. 8: 지금은 출판사 차리기도 엄청 쉬운데...그냥 해버리자 해버렸습니다. 7: 태형이가 먼저 방위하면서 데뷔했었죠... 만화가 이빈씨의 권유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빨리 데뷔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급하게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충분히 시야가 못 크고 시작했던 거죠. 나중에는 몸도 축나고 아이템도 탕진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리 돈도 못벌고, 빚까지도 있었을 정도니까요(3년전 상황만 해도...). 또 속타는 것은 , 태형이가 게임으로 돈 벌었다 소문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공부하느라고 화집 몇가지만 사면 들어오는 돈은 거의 다 나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정말 대견한 건, 초창기부터 디지털을 적극 사용했던 것입니다. 거의 최초였죠... 윈3.1가지고 486에서 작업한다고 죽겠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부분이, 자금적인 부분만 당시에 됐으면 태형이는 더 대단해졌을 것이라는 거죠. 수용이는 처음부터 히트칠 것이다 느낀 것이, 잘 웃기거든요. 가족환경도 괜찮고...아버지도 교수시고, 어머니도 허물없으신 분입니다. 따라서 자신감이 있는 친구입니다. 당장 잘 그리기는 것보다 재미있는 내용 집중하더니, 결국 히트치더라구요. - 당시 동호회 활동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
...여하튼 데뷔는 계속 늦어지고...친구가 캐나다 국립 애니메이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가사보조원으로 캐나다에 와서 만화를 같이 해볼 생각 없냐고 하더군요. 학교에서는 뒤에서 2등(뒤에서 1등은 학교를 안나옴)하고 있었는데, 고 1때부터 만화그리겠다 고집했습니다. 체력장도 안보고, 어느날 경기도 이천으로 글쓰러간다고 학교 빼먹고 내려가버렸습니다. 태형이도 같이 따라왔죠...그때는 내가 술담배 가르쳤는데, 지금은 태형이가 더합니다.(^^) "학교 어쩌고 여기왔냐?" 하고, 결국 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11월이었어요... 춥고, 도둑들고... 엄청 고생했죠. 그런데 어느날 담임이 전화를 하더군요: "너 며칠 계산하고 결석했어? 법 바뀌었어, 유급 기준이 15일 줄었어!" 해서 결국 다음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태형이 어머니한테 무지 혼났습니다...(-_-;) 태형이는 결국 입시를 안봤는데, 그래서 제가 어머님한테 태형이를 같이 캐나다로 데려가겠다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태형이는 데뷔해서 그 계획은 무산됐지요. 그 뒤 수용이도 만났는데... 수용이는 노는 것을 상당히 좋아해요. 그런데 한참 뒤에 다시 만난 수용이가 많이 변했더군요. 물어보니 "만화만 그린다"고 하더군요. 문하생 생활 하면서 SBS에서 안무도 했는데, 어느날 만화가 선생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처음으로 정식으로 혼났다더군요. 그러나 연재하면서 '해뜨는 것 보는 것이 무서워'진 적도 있다고까지 토로하더군요. 사실 '힙합'도 3-4권 이후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죠. - 연재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7: 원래 저같은 경우는 '트웬티세븐'에 갈 뻔 했으나 (주변에 출판사 사람이 많았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구호 프로덕션 진행자이셨고 ^^) 거부했습니다. 사실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지망했었습니다; 따라서 책을 보면서도 영화적 감동을 얻어보기를 바랐습니다. 잡지 연재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선 그림체도 버려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20p 단위 끊은 것을 바라더군요. -_-; 연재를 한다면 아동만화를 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사람 윤승운, 후지코 F 후지오 씨 등입니다. SF는 만들기 힘들어요... 매핑 위에 사람 씌우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퀸도 콘티는 안 그렇지만, 효과, 대사 등 여러 요소를 씌우기 힘들어서 언발란스한 면이 있었죠. 잡지 연재를 하게되면, 이 그림체를 고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입니다. 결코 같은 스타일을 다시 안하기로 유명하죠. 인생은 길지 않고, '몇가지나 그려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연재가 싫은 것이, 하나만 계속 기계처럼 그려야 하기 때문이죠... 히트치면 칠수록 말입니다. 이 화풍은 완성되진 않았지만, 계속 고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못해본 것,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희망합니다. 현재같은 경우, 흑백만화에는 더 이상 흥미 없습니다. 톤도 거의 연필그림 질감까지도 낼 정도로 능숙해졌지만...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돈이 깨집니다. 스폰서도 없고...특히 출판계가 불황이니까요. 데즈카 오사무의 경우는, 낮에 의사, 밤에 만화를 했습니다. 좋은 선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만화하는 게 힘든 것이, 대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호소하고들 있는데... 대안이라면(사실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게, 모두에게 해당되는 대안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이미 책을 만들면서 깨닳은 바가 있습니다: 상황은 더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쇄소 등의 경험에서 그런 것을 깨닳았죠. 그래서 다음에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직업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화와 상관없는 것으로. 만화계가 어려워...그런가보지. 독자들이 안사줘...그런가보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직업하며 그리면 더 잘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쓸데없는 스트레스들을 너무 받고 있습니다. 8: 모든 사람이 자기 직업에 만족할 수 없지... 당신이 서점을 내... 7: 서점도 할꺼야...직업은 뭐 임시변통이라는 거지. 8: 예능계가, 다른 직업을 가지기가 애매하죠. 창작하시는 분들, 내내 그 생각만 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니까요. 7: 적응을 해야죠... 486 시절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와서는 굳이... 스토리는 이미 다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너무 많아wu서 오히려 탈이죠. 8: 그게, 책 내며 투자한 시간과 돈...그것에 대한 부담이 많아서죠.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고집 부렸으나, 지금은 스스로에게 고집부릴 때입니다. 단 한 명의 감동받는 독자를 위해서는 계속 책을 내야합니다. 7: 자본이 없어서 못그리는 것 보다... 연재가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무서운 건 자신에게 인정이 안되는 것이죠. 8: 어려워도 작업에 전염해야죠. 일본에서 돌아와서 '7'이 한동안 기죽어있었는데, 여차저차 전세를 빼고 월세로 바꿀 때 그 돈에서 빼서 책을 내버렸습니다. 내가 내줄테니 책 내고 신인 딱지 때자!라고 밀어붙인 거죠. 지금도 책 낸 것, 가족은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는 데 집안에서 반대했죠. 하지만 여기까지 만화로 왔는데... 인기로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7: 벌면서 그리자, 그런데 만화로 벌기는 싫다는 것일 뿐입니다. 준비를 해놓고 해야... 음향 전문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같이 애니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1,2분짜리 단편 애니를 해보고 싶어요. 퀸 후속편의 경우, 이미지를 전수해야하는데, 인원, 투자 등이 필요하죠. 특히 인쇄에서 문제입니다. 인터넷도 유료는 싫고, 무료는 그만한 바탕이 없습니다. 칼라 제작... 디지털로 가려면 또다시 돈이 요구됩니다. 인쇄 등에서도, 용량에서도. 만화판에서, 태형이와는 항상 정반대의 의견을 가졌죠. 그가 좋아하는 배우는 미키루크였는데, 그 사람의 배우로서의 신조는, '직업이니까'입니다. 그것도 멋진 신조지만, 저에게는 '재미가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고 하는 것 아닙니다. 8: 극단 다닐 때 알던 형...학력 문제는 있었으나 연기력으로 항상 주연을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지하철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라고 하소연하도군요. 모두 다 다른 주문, 다른 취향을 가지고 요구를 해댑니다. 저는 그때 "형 방식으로 해라"라고 충언했습니다. 이 친구한테도, "너의 만화를 가지라"고 하고 있구요. 이제는 적어도 하나 가졌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중고생 YWCA 심사시 1,2명씩 눈이 가는 친구들 있습니다. 그 친구들을 연재시켜주고 싶어요. 실력있는 사람은 눈에 띄어야 합니다. 나중에 신인 위주의 마이너한 잡지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책('퀸') 넣기 위해 영풍문고에 갔는데... 그 사람 말이 이거 직접 그렸나, 자기 직원 중 만화에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일 때문에 여기서 못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책 넣기 위해 가는 곳마다 들었습니다. 자기 만화를 죽이고 연재하지 않아도 되도록 등단시키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퀸은 딱 영화 한 편 분량같은, 완결 형식이라서 좋았습니다. 기존 주류 만화는 거의 다 'TV 드라마' 식의 컨셉인데 말입니다. 잡지 연재-단형본식의 기존 주류 유통방식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덕분에 가능한 형식인 듯 싶습니다만.
현재 출판계는, 확실히 엉망입니다. 좀 있으면 대기업 출판만 남을지도 모르죠. 기성세대는 절대로 못 고칩니다. 만화 그리시는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출판사 등록, 쉬워졌습니다. 직접 사이트 개설하시고, 내시기를 바랍니다! 7: 소학관, 슈에이샤 일화도 있지요... 조그마한 건물 한층에서 시작하더니, 지금은 슈에이샤가 더 커지지 않았습니까. 8: 유통하시는 분들은 만화가 생각을 해주지 않습니다. 돈을 생각할 뿐이죠. 만화하시는 분들이 직접 차리고, 그런 경우들이 모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프로로 가면서 죽어버린다는 문제입니다. 대학가면 (거의 다) 공부 안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7: 인터넷을 위한 만화, 단편으로 게재하고 싶습니다. 뽑든 링크하든...이름만 안 바꾸면 무한정 공개하는 식으로. 책을 스캔하는게 아니라... - 참, 이번에 사이트 디자인이 바뀌었더군요... 7: 사이트 바꾼 이유는, 사람이 불어나면서 하루 전송 제한량(300MB)을 초과(3GB)해서입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호소하더군요. 8: 어느날부터, 하루에 수백명으로 불어나 있더라는 겁니다...책은 안팔려도 방문객은 많다는 거죠. 이름은 유명해졌다 좋아하는데 그 전화가 왔습니다(트래픽 줄여달라고...^^;). 7: 책이 잘 안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는데...책을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일어 번역해주는 친구도 책을 엄청 봅니다...차비도 없을 정도로. 하지만, 책을 권해주긴 해도 빌려주진 않습니다. - 정부 문화 지원 등...자료 지원 등을 잘 모으면 사실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영화에서는 김기덕 감독이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지요. 그런 지원 관련 정보를 모아야죠... 7: 최대한 많이 알려주세요...(^^) ...일본에서는, 애프터눈에도 갔었는데...모닝과 애프터눈이 같은 층에 있어요. 원래는 애프터눈이 더 넓었는데, '배가본드' 연재 때문에 모닝이 완전히 잠식했더군요. - 그곳에서는 반응이 어땠나요? 7: 그렇게 일본에서 독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줄은 사실 몰랐습니다. 하지만 걱정하기도 하더군요... 인쇄 포맷이 고정되었으니. 그래서 이것을 하려면 새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난처해했습니다(이런 것을 제대로 살릴려면 칼라나 마찬가지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새 방식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단행본 덩어리로 주니까 난처해 하더라구요. 그리고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렇다면 (단편집은 논외로 하고) 너희는 한 권으로 끝난 것 얼마나 있냐? 라고 항의하자 잘 못 찾더군요. 일본 만화를 독창적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한국이 더 부유해지면 갈 길이나 다름 없다고 느꼈습니다. Alternative를 막아버리는 거에요. 한국인이 가져왔다는 것도 큰 핸디캡으로 작용했겠지만. 8: 일본인 친구가 해준 이야기인데...한국인의 경우, 고장나면 직접 고쳐버립니다. 일본 애들은, 자기들이 판 후 6개월 뒤에 다시 와서, 한국인들이 고친 부분을 보고 배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산화시켜서 한국기업을 눌러버리죠. 7: 일본기자들 이야기 뒷 편에는 이런 심리가 있었어요...우리에겐 만화 후보생이 쌓였다, 당신이 굳이 아니어도 우리에게는 흥행에 성공할 친구들이 줄을 서 있다. 심지어 애프터눈 기자가 한다는 이야기가, "축구 만화를 한번 그려보지 않겠냐?...히트할꺼다"였습니다. 황당했죠. - 스토리는 누가 씁니까? 7: 다 혼자했습니다. 98년 8월∼9월 쯤... - 몇 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문제들을 굉장히 잘 캐치하셨습니다. 7: 그것은 사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타마토리'는 뒷이야긴데 오히려 삐삐가 등장하지요. 이제는 바꿔야 하는데...그래서 주인공이 일.부.러. 삐삐를 구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폴더형 핸드폰만 하더라도 당시엔 없다시피 해서, 주인공의 핸드폰은 주웠다는 설정으로 바꿨습니다. '퀸'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 카페도 지금은 더 없습니다. 8: 사람들이, 사진찍어 컴 작업한다면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훨씬 어렵습니다. 7: 사진 만화라 하는 것은 더욱 고생입니다. 필터로 자동처리 되는 것도 아니고... 8: 사람은 어차피 도구를 쓰는 것이죠. 예술가가 연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사용하는 방식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7: 첫째는...고3때 사진 공부를 시작했었죠. 헌책방서 책 보고 공부했습니다. 정식 출판 아니어서 조리개값이 거꾸로...수동 카메라로 하다가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림 그리면 그냥 그릴 것도, 실제 사진 자료를 얻으려면 망원렌즈가 필요했죠. 친구한테 4일 조르고 실패한 후, 아버지에게 1년반 졸라서 결국 입수했습니다. 사진하면서 든 생각이, 영화 등의 blur 표현... 같은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였습니다. 만화도 흐르는 것이고, 영화적 형식을 띠면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살려보자고 생각한거죠. 처음은 사진을 복사해서 사용하고, 그 다음은 망점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인이 판형을 만들기가 힘들어 좌절했죠. 게다가 사진의 질감을 좋아합니다. 애니 그림체의 경우 쉽게 질감에 질립니다. 색이 너무 단순화되어 있는 등의 이유가 있겠지요. '퀸'도 중후한 느낌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전부터, 영화 'TAXI DRIVER'에 열광했습니다. 그 이미지가 너무도 입자로서 느낌에 강하게 남았었죠. 지금도 ANALOG적인 질감을 좋아합니다. 사진을좋아하고, 그림의 한정적 느낌은 한계가 있었죠. 또 하나 이유는 고집이 세서, 그림만 그리는 사람과 같이 못있는 것이었습니다. (^^) 음. 똑같이 사람 그려도 주변과 맞아야 하는데, 감각에 도구를 접합시켜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는것이죠. 만화는 표현의 장르지, 반드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작가로서의 집중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진하는 형도 같이 하고, 저 친구도 데려오고...당시에는 "별거아냐"라고 꼬시면서.(^^) 우선 눈이 열려야 합니다. 많이 그리는 것보다도. 컴도 권장하고 싶은 것이, 가격도 많이 떨어졌잖아요, 요새. 조금만 익히면 도구의 도움으로 표현력을 살릴 수 있습니다. 플래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컴으로 인한 장점은, 그림으로 표현 안되는 질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기법 들을 모사 하는 것에 그치면, 굳이 컴으로 할 필요가 없지요. 컴 특유의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퀸'의 경우, 망점을 통일화했습니다. 기존 만화의 들쑥날쑥한 망점 엇갈림을 극복하기를 바랬고... 대신 단점은 차가운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데생은 어떻게 하십니까? 7: 손으로 합니다. 10년 넘게 하던 버릇이 있어서... 게다가 아직 타블렛은 기술적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컴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쓰기 나름이죠. 다음 작품에서 하고 싶은 것은 광장 씬입니다. 두 페이지에 어느 정도나 넣을 수 있나?라는 거죠. 전에 손으로는 400명까지 넣었는데... 2일 걸렸습니다. - '퀸'의 스토리 작성 기간은? 7: 글 쓰는데 1개월, 콘티 2개월이 걸렸습니다. 글은 항상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생각하는 건 흐름입니다. 대사에 그림이 얽매여 따라가는 것 싫어합니다(특히 일본 연재물). 영화는 영화만의 표현 개발하듯이, 만화는 시각적 흐름, 그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사)글이, 콘티 만들면서 다 바뀝니다. 누가 글을 준 것을 그 공간 안에 제대로 펼칠 자신이 없습니다. 슈에이샤 갔더니, 응모 우승작 주며 이것을 하면 연재해주마, 하더군요. -그 쪽은 들고간 원고의 내용은 보지도 않았던 것입니까? 7: 그림 때문에 인정받겠지만, 30p로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 안에 다 담아봐라, 라는 식으로. 한 10군데 넘게 다니니까, 완전히 반응들을 예상할 수 있어서, 우리가 아예 미리 상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20p 안에 충격적 상황이 없다는 점이나, 캐릭터성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점 등을 우리가 아예 미리 이야기해버렸습니다. 어떤 기자분은 유심히 보고...1.여자 캐릭터가 섹시하지 못하다. 2.스토리가 너무 축소되어 있다.(20권 정도로 표현하기를...) 라고 하더군요. 사실 캐릭터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왔는데, 무조건 패셔너블한 것 - 예를 들어서 힙합풍 -을 요구하더군요. 한 곳은 이야기의 밀도를 좋아했으나...잔학해서 싫다고 했습니다. 너무 리얼하게 잔인하다고... 일본인에게 "퀸" 번역자문을 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일본사람은, 이름을 한국이름으로 쓰지 말고 애매하게 처리하기를, 즉 아직도 한국 싫어하는 사람 많다, 라고 하더군요. 일본에서 하모니카 연주하시는 분을 통해서 소개받은, '슈퍼망가테크닉'에서 물고기 입에 문 스크린톤만화 그렸던 그 분(정리자주: '스크린톤의 신' 히로키 마후유씨)을 알게되서 평가를 부탁드렸습니다. 먼저 그분이 자기 그림을 보여주는데... 음악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깜짝 놀라더군요. 그 다음에 '퀸'을 보여주니 다시 놀라면서, '힘이 느껴진다'고 평해주셨습니다. 특히 빌딩 유리파손장면에서 놀라시면서, 오히려 배우자고 하시더군요. 나이 많은 만화가가 그렇게 대해준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약간 일본인관이 바뀌었습니다. 역시, "나라가 나쁘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분도 일본만화는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저를 보고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자기도 지금 일본의 작가 의식 부재가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 '퀸'에서, 군인이나 장교들은 약간 설정이 어색한 듯 하던데요? 7: 원래 자위대로 하려다가 싫어서...국군으로 하려했다가, 그것도 좀...(몰살당하는 역할이니) 사실, 군 무기나 체계,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안한 것은 변칙을 시도하느라고 그랬습니다. 일본 오타쿠와 다른...그들은 고증만을 하려하고, 상상력을 죽입니다. 현실에 너무 매이면 재미가 없어지는 단점이 있어요. 거기에 맞장구치며 전문만화 어쩌고...하지만 진짜 명작은 현실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증만 파고 드는 것은...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책은 많이 사고 많이 읽었으나...의미가 없더라구요. 만화에서,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을 너무나 고증으로 죽여버렸습니다. 6-70년대에는 영화가 앞섰으나, 지금은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느라 바쁩니다. 현실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죠. 그래서 B급 영화를 좋아합니다. 저예산으로 각종 효과와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아요. 아날로그, 분장, 묻어나는 것에서 거대함을 느낍니다. 기왕 흠이 있는 것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맥이 풀어질 정도로 허술하면 안되겠지만. -'퀸'에서의 한/일 상황을, 일본으로 들고 갈 때도 그대로 해서 가져갔습니까? 7: 친구가, 내가 통역한다...해서 여주인공을 러시아 여자(KGB)로 바꿨습니다. (-_-;) 콘티 당시도, 일본이라고 썼다가 여러번 지우면서 고민했어요(일본가야되는데...). 책은, 원래 한권 한권마다 점점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말미의 머리 터지는 씬은...3일 동안 밤에 나왔어요. 원래 좋아하지 않는 방식인데...그거 콘티 때문에 사흘동안 '홀로코스트' 사이트를 돌아보며 자료수집을 했어요. - 황미나, 안수길 씨의 일본 연재 선례도 있지요... 7: 연재했다, 정도가 아니라, 대작이 되야죠...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정도로. 그런 것을 하나 해놓고, "나보다 실력있는 일본 새 작가를 보고싶다" 선포하고 싶습니다.(웃음) 8:
바둑같은 것만 하더라도, 일본 기전이 상금 최고잖아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런 방식으로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셈이죠. 7: 그리고, "퀸"은 현재 뉴욕에서 영역 중에 있습니다. - 남자주인공의 독특한 말투 등 뉘앙스 번역이 제대로 될까요? 7: 일어의 경우도, 일역을 한 친구 말에 의하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들 나라 말은 사투리가 3개 정도 밖에 안된다고... 또 우리와는 달리 억양에 의해 표현되는 게 많다고 하네요. - 여담으로... '퀸' 말미에 있는, "왜 이런 장면들은 빠졌는가" 퀴즈의 해답은? 7: 쪽수를 생각해서죠. 하지만 사실 첫째는...게임을 너무 좋아해서...(-_-;) 스타하느라 눈 실핏줄이 3번 터졌어요(그림 그릴때도 안그랬는데...). 지는 것 싫어해서...친구들한테 깨지고 죽어라 했죠. FIFA와...(^^) 마지막 단계에서 많은 장면들이 짤렸습니다. 그래도 많은 복선들을 숨겨 놓았습니다. 즉, 답은 5번인 셈이죠(^^). 다른 4가지도 거의 맞습니다. 숨겨진 부분도 많은데, 다른 이야기들 보면서...빙산의 일부만 보여주기로 갈 생각입니다. - 제작 속도 부분은? 7: 연구 끝났으니, 더 빨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스타일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그룹 '퀸'을 좋아해요. 앨범 디자인은 프레디 머큐리가 대부분 직접했다고 하죠. 못 그려도 자기 것을 관철시키는 태도입니다. 다음 작품은 색을 바꾸는데, 기존의 분들이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손떨림을 시도해보려고 노력중입니다...너무 깔끔한 것은 배제할 것입니다. 선화를 강조하고. 사진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게 쓸 계획입니다. 디지털을 쓸 때, 뭐가 뭔지 모르도록 말이죠. 다음 작품은 선이 많고 미세하게 선을 바꿔서 감정변화를 하려 합니다. '퀸' 다음 부터는,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와이드판 커트들을 다 만들고, 그 뒤 컷을 서로 편집해서 만화책화 시키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해서, 소스를 애니 원화로도 쓰려합니다. 퀸이 퀸Ⅱ,Ⅲ가도, 아마도 같은 시리즈라고 잘 못 알아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포맷으로 계속 한다면 작업속도는 나겠지만...다시 포맷을 만들어 봐야할 것 같습니다. 한 Ⅲ까지 구상중입니다. 다음은 중간으로 단작(아마 인터넷 무료 게재)으로 실험 후, Ⅱ에 돌입할 것입니다. 만화강의도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강의를 진행하다보면, 직접 해보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기죠... 그래서 자꾸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념이지요. 그 바탕 위에 더 다른 사람들이 쌓아가야 합니다. 만화강의는 일·영 번역 안할 것이고, 한글만 나올 겁니다. 책은 앞으로 꾸준히 내겠지만, 인터넷, 애니, 플래시 등에도 도전하려 합니다. 한 방향에서 완성도만 높이는 것은 거의 포기상태입니다. 애니도 가장 해보고 싶은 건 공포물이죠. - 자, 그럼 마지막으로, 사진도 찍도록 장비 자랑 좀 해주세요...^^ 무언가 위압적인 것으로... 7: (대뜸 영수증 상자를 꺼냄!) 지금껏 산 장비들의 영수증들을 모아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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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PC: 3대 A- 800듀얼. (BX보드 때문). 1G 30G·4개 B- 500듀얼. 1G 13G·4개 C- 450듀얼. 512MB 8G·1, 6G·2, 5G·3 // SCSI 하드 2G (300Mhz급은 쓰다가 해체) (하나는
친구가 뺏어감)
* 이외에도 이런 저런 스피커들로 5.1채널로 조립한 오디오 시스템, 프로젝터, 프린터, 스캐너 및 카메라 장비들 등 각종 기자재가 즐비하고, 부엌 찬장까지 가득한 촬영용 모형들이 방긋 웃고 있었다(-_-;). "장판 바닥이 CPU로 가득 넘쳐나지 않는 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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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홍보포스터에 사인을 받으며 마지막 몇마디 잡담을 나누다가, 밤 11시 넘어서 Bing7 스튜디오를 나서는 '-'들. (Fade Out) (두고보자 초장편 인터뷰 제6막, 끝.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