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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왕비님 이야기'/ 권교정 - 일상적 인간사의 수취 관계
이 만화 봤어? 06/01/24 15:24 capcold

여느 다른 매체보다도 특히 만화라는 분야에서, 독자들은 강하다. 독자라는 수용자와 작가라는 창작자 사이의 경계선은 영화나 대중음악 등의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으며, 오랜 저평가의 역사 속에서 만화 독자들은 강한 취향 결속력을 다져왔다. 하지만 단순히 만화광들이 결국 만화가가 된다든지 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출판이나 제작 등에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작년 [먹통X](고병규 / 코믹팝)라는 작품의 복간의 경우, 어떤 독자가 한 출판사와 일종의 조건을 걸고 진행했던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그 독자가 캠페인을 벌여서 복간되었을 때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특정 인원수의 사람들을 모아오면, 복간본을 출간하겠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진짜로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퍼트리고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긁어모은 결과, 결국 조건을 충족시키고 책은 출간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회사’도 정식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독자 자신들의 결속력과 파워가 실제적인 제작 프로세스에 작용할 힘이 크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왕비님 이야기](권교정 / 절대교감) 역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다. 작품은 만화 전문지 <계간만화>에 게재되었던 24페이지짜리 단편인데, 잡지의 휴간과 다른 단편들이 축적되어 단행본을 만들기가 애매하다는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해답은 엉뚱한 방향에서 도출되었다. 그냥 24페이지짜리로 책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할 출판사가 어디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답은 또 금방 나와 버렸다. 독자들이 출판사를 하나 만들어서 내버리자, 라는 것이다. 기존의 독자 세력화가 독자들이 모여서 출판사에 압력을 가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그냥 직접 출판을 했다. 그것도 ‘동인지’ 또는 ‘자가출판’의 형식이 아니라, 정식 유통망의 정식 출판물로서 말이다. 이러한 발상 속에서 탄생한 출판사 ‘절대교감’은, 어디까지나 여성향 만화에 대한 독자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곳이다. 잡지의 폐간으로 갈 곳을 잃어버린 연재 작품들이 다른 식으로라도 계속 지속되었으면 하는 시도였던 ‘드림서명운동’, 잡지 <오후> 휴간 당시 작가 팬클럽에서 제기되었던 만화출판 아이디어 등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회사라는 형식으로 보자면 다른 ‘정식 밥벌이’가 있는 소수 인력과 지원자들로 이루어진 가내수공업적 구성이지만,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물론 [왕비님 이야기]라는 작품 자체의 매력이, 단지 출판의 과정이 특이하다고 해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24페이지 하드커버라는 형식도 만화책이라는 범주에서는 이질적이지만, 그림책 분야에서는 그리 낮선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실제로 이 작품을 좋아하고, 책을 사줄 것인가가 관건일 뿐. 사실 원래부터 권교정이라는 작가가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지닌 팬층을 지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짧은 단편 하나로 책을 만들어 독자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비님 이야기]는 충분히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줄만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동화적인 설정에, 인간관계의 깊은 질문에 대한 알레고리를 넣어주는 작가 특유의 접근법을 능숙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왕비는 원래 마을의 인기 처녀였는데, 말을 하면 주위에 소박한 꽃들과 보석이 생겨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눈에 들어와서 왕비가 되고, 왕비를 독점하고 싶은 왕의 독점욕 때문에 궁 안에만 머물게 된다. 그 결과 마을은 꽃과 보석이 없는 곳으로 변모하고, 사람들은 왕에게 항의한다. 그런데 왕을 사랑하는 왕비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능력을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독점시켜주는 것은 과연 잘못된 행동인가? 좋아하는 대상을 독점하고자 하고, 상대도 동의한다면 그것은 문제일까? 그런 능력의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히 계속 요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하는 걸까? 사실 꽤 복잡한 인간사의 문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그것은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런 구도가 지니는 다층적인 감성 자극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흥미롭다. 왕비의 능력을 작가라는 존재의 창작 능력으로 바꿔도 되고, 아니면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냥 우리가 주변에 행사하는 일상적인 사회관계 속 매력으로 대입해 봐도 좋다. 사회적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그런 관계가 오고가는 것이고, 사실 우리는 이야기 속의 왕비, 왕, 마을 주민의 입장에 동시에 처해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발산하고, 무언가를 독점하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한다. 모순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복합성이다. 물론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 속에서 내리는 각 등장인물들의 선택, 즉 결론에 동의할 필요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지적당하고는 스스로 자극받는 감상행위 그 자체다.

시각 연출은, [매지션]등 당시 작가의 작품 경향을 반영하는 듯 다소 황폐한 느낌이 강하다. 화사한 풍경을 묘사한 장면에서도 건조한 분위기를 풍기며, 인물들의 표정은 무심하다 못해 공허한 느낌까지 주고 있다. 마치 왕비가 떠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량한 마을의 들판이 이 작품의 핵심 정서라는 지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듯, 일관성 있게 그 분위기가 유지된다. 사고를 자극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자, 평소 권교정을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기억하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질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24페이지짜리 짧은 작품이니, 독서는 짧게 감상의 여운은 길게 가져가고자 하는 본래 목적에는 충실한 선택이다.

작가라는 마을처녀는 마을 사람들이라는 대중 독자들에게 창작능력이라는 보석과 꽃을 뿌린다. 받는 것만 익숙하던 마을 사람들은 왕이 그녀를 독점하자 화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을사람들은, 왕비가 재능을 다시 그들에게 베풀어 주도록 출판사까지 차리고 책을 만들어낸다. 작품 속 사람들의 구도와는 다소 다르지만, 인간사의 수취관계라면 나는 이러한 현실 쪽의 사례를 훨씬 더 선호하고 싶다.

(출판저널 <기획회의> 게재)
(3)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132 (copy)
독자이자06/01/24 22:24 
리뷰 누가 쓰신건가요? 권교정님이? 언제부턴가 두고보자에는 리뷰어 이름을 가리시는듯 합니다.
capcold06/01/25 03:46 
!@#... 음. 이 스킨이 왠지 이상하게도 필자 이름이 가려지는군요. 스킨을 고쳐야겠습니다. -_-; 여튼 쓴 건 capcold입니다.
깜악귀06/01/25 11:36 
이런 버그를 발견 못했군요; 스킨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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